203고지가 함락된 후, 러시아군은 북부전선과 서부전선의 전진진지를 방치하고 후퇴했는데, 이것은 요새의 항포격용보루선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일본군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노기 장군은 더 이상의 돌격전을 감행하지 않고, 대신 갱도전쟁과 체계적인 포격으로 뤼순 요새를 서서히 함락시키려 했다.
괜히 우리편의 희생을 늘릴 필요 없다. 서서히 말려죽이자!
제4차 돌격전 중에도 끊이지 않았던 지하갱도작업이 더욱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항포격용보루 №.Ⅱ의 흉장 밑으로 2개의 갱도가 구축되었다. 각각의 갱도로부터 지류갱도가 굴착되었으며, 모든 지류갱도에 8개의 장약이 배치되었다. 항포격용보루 №.Ⅲ의 흉장 밑으로 5개의 갱도가 구축되었으며, 보루 №.3의 아래에는 3개가 구축되었다. 그 외에도 포대 B와 쿠로파트킨 안경보, 만리장성 방향으로 갱도가 각각 구축되었는데, 이 모든 갱도는 러시아군 요새로부터 약 30~50보 정도의 거리를 두고 구축된 평행호에서 시작되었다.
러시아 수비대는 이전과 같이 항갱도나 기타 수단을 동원하여 일본군이 지하갱도를 폭파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려 했다. 그러나 인력, 작업도구와 자재의 부족으로 인하여 언제나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보루 밑으로 굴착된 땅굴을 공격하는 러시아군
203고지가 함락되면서 뤼순 요새와 시를 향한 포격이 끊이지 않았다. 다수의 포탄이 병원과 입원실이 있는 건물에 명중되었다. 요새와 시내의 식량사정이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었으나 주 작전지역으로부터 아무런 대응이 없자 수비대의 사기가 위축되었다. 조악한 급양으로 인해 병사들 중에서 티푸스, 괴혈병 및 야맹증 환자가 다수 발생했다.
라셰프스키 중령은 당시 장교와 육,해군 병사들이 체험하고 느낀 것을 자신의 일기에서 일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불명확성과 정확한 정보의 부재로 인해 진저우(金州) 방면에서 포성이 들렸다는 식의 상이하면서도 그럴 듯한 일련의 소문이 퍼졌다. 모두가 강한 호기심 속에 여러 가지 소문에 귀를 기울였다. - 계속되는 포위상황과 구출될 가망이 없는 기다림 속에 지친 모든 이들이 신경질적으로 변했으며, 피로하고 쇠약해졌다.
12월 1일자 그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보인다.
오늘로 포위된 지 11개월이다.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기적적으로 현재까지 요새를 고수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군수품이 고갈될 것이며, 그러면 우리의 저항도 분쇄될 것이다.
일본군은 12월 2일 아침부터 항포격용보루 №.Ⅱ의 보루외벽갱도의 점령지에서 가죽펠트를 태워서 유독가스를 발생했다. 가스가 러시아군 점령지의 갱도로 스며들자 러시아군이 다음 방어선으로 40보 후퇴하면서 일본군이 그 갱도를 점령했다. 그러나 제26연대 소속의 제12중대가 코르니엔코 상사의 지휘하에 수류탄으로 일본군을 격퇴했다. 이때 일본군은 독가스를 사용했으며, 결국 갱도에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즉시 콘트라첸코 장군에게 보고되었다. 20시경 보루 №.Ⅱ에 도착한 콘트라첸코 장군은 정황을 관찰한 후, 일본군이 보루의 측면 흉장 밑으로 이미 지하갱도를 굴착했기 때문에 갱도의 폭발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이런 결론은 지나친 희생으로부터 수비대를 보호해야 한다는 배려이기도 했다.
이때 일본군이 11인치 포를 동원하여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 발의 포탄이 부서진 천정을 통해 콘트라첸코 장군과 그의 수행장교들이 있었던 토치카 내부에 명중되었다. 이 폭발로 콘트라첸코 장군을 위시하여 나우멘코 중령, 라셰프스키 중령 및 그 외의 장교 6명이 전사했다.(콘트라첸코 소장과 라셰프스키 중령 그리고 나우멘코 중령은 전사한 후, 각각 일계급씩 특진되었다.) 훌륭한 애국자였던 로만 이시도로비츠 콘트라첸코 장군은 전투초소에서 이렇게 전사했다. 그의 죽음은 요새수비대를 극도로 의기소침하게 만들었으며, 전쟁 초에 마카로프가 전사한 것과 함께 러시아군의 큰 손실이었다.
로만 이시도로비츠 콘트라첸코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