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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역사 - 6. 예니체리, 오스만 투르크의 외로운 영웅들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시간12.07.23| 조회수112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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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데미르 카라한 작성시간12.07.23 초기에는 투르크 귀족 견제용이였으나 파티히 이후 예니체리의 세가 급격해졌고.. 심지어 셀림1세(즉위때 예니체리의 지지를 얻음, 칼다란 전투 승리후 더 진격하러 했으나 보급+예니체리 반대) 술레이만 카누니(도 빈 공성전때 비슷한 경험을 함) 정도였고.. 셀림2세는 즉위 때 예니체리에게 포상금 안주자 예니체리가 반란직전까지 갔었다는 -_-... 그리고 셀림1세때까지는 공식적으로 결혼,사유재산 없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데미르 카라한 작성시간12.07.23 하지만 17c 이후 데브쉬르메제도의 유명무실-붕괴와 인력이 지나치게 늘어남에 따라 군대의 질적저하를 가져다주었고(하지만 수공업자, 등 각종 길드에 참여하여 대중화됨) 이들이 투르크 귀족의 영지(티마르 시파히...)를 잠식함에 따라 전체적인 군 질적 저하..(오죽하면 나중에 크리미아 기병이 전부가 되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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