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베트남 전쟁사]베트남 전쟁사 - 18. 제네바 협정 체결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02.03|조회수1,318 목록 댓글 2

7년 가까이 명분 없는 전쟁에 지친 프랑스는 1953년에 들어서야 인도차이나 사태를 협상으로 타결하려고 하였다. 더구나 프랑스 국내에서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반전운동이 가열되는 가운데 1953년 5월 프랑스 원정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나바르 장군은 병력증원을 요청하였다.

당시 프랑스 수상 라니엘(Laniel)은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이 타결되는 대로 종전을 위한 협상을 개시해야 하기 때문에 협상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추가 파병은 않는다고 나바르 장군에게 통보하고 의회에서 인도차이나 사태의 ‘협상에 의한 해결 용의’를 표명하였다.

조셉 라니엘

 

1953년 11월 29일 베트민의 호치민도 휴전에 관한 협상문제를 검토할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이 같은 호치민의 공식 발표가 있기 2일전에 소련도 1954년 1월 25일 베를린에서 독일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미, 영, 프, 소의 4대국 외상회의를 개최하는데 동의하였다. 이 4댁 강국 외상회담에서는 독일문제 외에 한국문제, 인도차이나 문제도 토의될 예정이었다. 호치민의 협상용의 표명이 소련과 중국의 압력 때문인지 아니면 자의인지는 불분명하나 베트민은 협상용의 표명 후에 바로 디엔 비엔 푸 결전을 결정한 것이다.

승리 퍼레이드를 펼치는 베트민

 

1954년 1월, 베를린 4대국 외상회담에서는 한국 인도차이나문제를 토의하기 위하여 4월 26일부터 제네바 회의를 갖도록 합의했다. 프랑스 의회도 1954년 3월 9일 하노이와 종전에 관한 협상을 갖는 데 동의하였고, 제네바에서는 디엔 비엔 푸 패전 다음날부터 인도차이나 문제 토의가 시작되었다. 회담 참가국은 당사국인 프랑스, 베트민, 라오스, 캄보디아, 바오 다이가 이끄는 베트남과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이었다.

프랑스와 베트민의 군사대표가 휴전협정의 체결을 협의하고 있는 중인 6월 12일 프랑스 정부의 라니엘 수상이 사임하고 망데-프랑스(Mendes-France)가 뒤를 이었다. 망데-프랑스 수상은 6월 17일 프랑스 의회에서 앞으로 1개월 이내에 제네바에서 휴전협정을 체결하지 못하면 사임하겠다고 서약을 하였다. 그가 약속한 시간은 7월 20일이었다.

망데-프랑스

 

이렇게 하여 프랑스는 시한부 협상이라는 스스로의 손발을 묶은 상태에서 위협과 양보로 협상을 급진전 시켰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과 프랑스, 미국과 영국, 프랑스와 소련 간에 접촉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프랑스와 소련간의 최종 문제점은 베트남 분할 경계선과 협정 조인 후 남,북 베트남 통일선거 시기였다. 이 문제는 마지막까지 끌어오다가 협정체결 수시간 전에 극적으로 타결되어 망데-프랑스 수상은 약속 시한을 지킬 수 있었다.

분할 경계선은 공산측이 북위 13도선을 계속 주장하였으나 17도선으로, 남북 통일선거 시기는 공산측이 협정 조인 후 수개월 이내에 실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결국 2년 후에 실시토록 타결되었다.

1954년 7월 20일 <인도차이나 정전에 관한 제네바 협정>이 조인되고 <인도차이나에 관한 제네바 회의 최종 선언문>이 7월 21일 발표되었다. 이로써 8년간 계속되었던 제1차 베트남 전쟁은 종결된 것이다.

 

1954년 제네바 협정 조인 모습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이사르 마그누스 | 작성시간 13.02.05 일단 프랑스가 한숨돌릴시간은 생긴셈으로봐야하나요
  • 답댓글 작성자명일 | 작성시간 13.02.07 프랑스는 이걸로 한숨 돌리는게 아니라 완전히 떠나는거고 이제 미국차례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