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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사]베트남 전쟁사 - 23. 남베트남군의 성장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02.08|조회수1,636 목록 댓글 4

프랑스 식민지배 하에서 많은 베트남인들은 프랑스군에 징집되어 군사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1950년 2월 미국은 베트남을 프랑스 연방국의 일원으로 승인하고 12월에는 프랑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와 상호방위 및 원조 조약을 체결하고 프랑스를 통하여 인도차이나 3개국에 간접원조를 하기 시작하였고 이 원조에 의해서 남베트남군이 창설되기 시작하였다.

창설 당시 남베트남군 수뇌들은 대 게릴라전에 대응할 수 있는 경(輕) 보병대대로 구성되는 육군을 만들어야 한다고 프랑스군을 설득하였다. 이 경보병 대대는 게릴라와 똑같은 지형에서 생존 가능하고 전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편성 개념에 따라 1953년도에 프랑스와 600명 규모의 대대를 120개 창설하기로 합의하였다.

제네바 협정 이후부터 미 군사고문단(MAAG)이 남베트남군을 맡게 되었다. 당시 남베트남군 총참모부 참모장이었던 트란 반 돈(Tran Van Don, 후에 1군단장, 국방장관, 상원의원 역임)은 1954년 11월 군사력 건설에 관한 미 고문단과의 연석회의에서 경보병 대대 위주 편성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트란 반 돈

 

이미 편성된 경보병 대대를 기간으로 포병, 기갑, 통신, 공병 등의 전투지원 부대로 구성되는 기동전투단 개념으로 편성하자는 것이었다. 포병부대는 기동이 용이한 105㎜ 포로 편성하고, 기갑부대는 기본적으로 수색정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프와 차륜 장갑차 같은 경장비로 편성하여 신속한 기동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보병대대 요원은 지역 내에서 징집하여 대 게릴라전과 민사활동을 동시에 수행하게 하고, 중부 고원지대는 지하 게릴라부대로 만들어 캄보디아, 라오스로부터 적의 침투를 차단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남베트남군들이 1차 베트남전쟁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그러나 미 군사고문단은 이를 지도할 능력이 아직은 없었다. 미군의 경험이란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방적인 승리와 한국전쟁 경험 밖에 없었다. 더욱이 한국전쟁에서는 미군식 편성으로 성공한 예가 있었다. 미 군사고문단은 남베트남군의 제의를 일축하고 미군식 사단을 창설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미군과 같이 편성되어야 군수지원이 가능하고 또한 편성이 다르면 지금까지 자기들이 배운 교리를 적용할 수 없어 고문단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미군식의 편성, 교리, 무기체계에 의해서 남베트남군도 편성되고 훈련되었다. 물론 해군, 공군, 해병대도 창설되었다. 육군은 보병부대 외 레인저부대, 공수부대, 기갑부대 등도 구색을 다 갖추어 편성되었다. 15만 명의 정규군에 10개 사단과 4개 군단이 창설되었다.

군사작전의 효율적인 수행과 통제를 위해서 전국을 4개의 군사작전 지역으로 나누고 이를 4개 군단이 맡도록 하였다. 군단장은 지역 내 모든 군사작전을 통괄하는 지역사령관으로서 지역 내 모든 부대에 대한 작전지휘권(지방군과 민병대를 성장(省長)이 지휘토록 했던 디엠 정권 시는 제외)을 가지도록 하였다.

정규군 외에 지역부대로서 지방군(Regional Force)과 민병대(Popular Force)도 편성하였다. 이 병력은 계속 증가하여 1972년도에는 50만 명이 넘었다.

지방군의 기본적인 편성은 최초 100명 단위의 중대로 시작되어 1968년도부터 200명 단위의 중대로 증강되었으며, 1972년 말에는 900~1,800명까지의 대대 단위로 편성되었다. 기본임무는 지역경계이며 1968년 이후부터는 공격작전도 수행하였다.

1965년 남베트남 빈딘 성의 지방군

 

민병대의 기본 편성은 30명 단위의 소대로서 1968년도에는 60명 단위로 증가되었다. 마을마다 편성되어 그 마을의 경계를 담당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남베트남 민병대

 

디엠은 지방군과 민병대의 지휘를 성장이 하도록 하였다. 이 병력을 군에서 통제하면 군의 권한이 너무 커져 자기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이었다(이러한 모순은 디엠 정권 붕괴 후에 군에 작전지휘권이 이양되어 해결됨). 병력은 충분하였으나 문제는 전투력이었다. 지방군과 민병대는 항상 베트콩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 경계 초소가 점령당하고 무기와 탄약이 피탈되었다. 무전기가 정규군과 상이하여 적의 기습을 받아도 정규군이 지원할 수가 없었다. 지방군과 민병대는 마을 단위, 군(郡) 단위로 편성되어 적의 기습에 즉각 반응이 가능하고 이 부대가 효과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면 정규군을 적 지역의 공세작전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부대이다. 그러나 미군이나 남베트남군은 지방군과 민병대의 육성을 소홀히 하였고 자원배분도 5%에 불과하였다.

미군의 그린베레들은 1957년부터 남베트남에 투입되어 남베트남군의 게릴라전 훈련과 유격부대의 훈련을 담당하였다. 1961년도부터는 중부 고원지대에 산재되어 있는 소수민족들의 거주 지역에 투입되어 이들을 무장시키고 훈련을 시켜 자체방어와 적의 침투를 차단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였고 그 병력은 10만 명까지 증가되었다.

차별받고 소외되어 직업이 없던 산악부족에게 미군은 복무대가로 급여을 지급했다. 봉급날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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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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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배달민족 | 작성시간 13.02.08 흠..... 미군이 중공군과 싸웠어도 전술에 있어서 크게 변한건 없었던 모양이군요;;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2.08 원래 군인들이 보수적입니다. 꽉 막힌 사고방식이죠.
  • 답댓글 작성자카이사르 마그누스 | 작성시간 13.02.08 어떻게보면 남베트남군이 둔해져가는듯...
  • 작성자베트남청춘 | 작성시간 14.11.26 Thuong tuong Don.상장. 방침이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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