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력의 결정적인 운용을 위해서는 지휘통일이 필수적이다. 지휘통일은 전 부대의 활동을 공동목적에 지향할 수 있게 협조시킴으로써 노력의 통합을 가져온다. 그러나 협조는 협동에 의해 달성시킬 수 있지만 필요한 권한을 가진 단일 지휘관에게 필요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가장 잘 성취된다.
그러나 남베트남군, 미군, 우방 연합군 간의 지휘체제는 물론 미군 내에서의 지휘체제 조차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북베트남은 정치와 군사가 통합되어 일사분란하게 한 체제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북베트남 최고 군사 지도자 보 구엔 지압은 전쟁기간동안 북베트남 정치국원이며 부수상, 국방장관 및 북베트남군 총사령관이었다.
보 구엔 지압
미 지상군이 본격적으로 증파되고 한국군, 오스트레일리아 군을 비롯한 우방 연합군도 파병되어 연합 지휘체제의 필요성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전쟁의 선례도 있었다.
남베트남군과 미군 간의 연합 지휘체제는 한국전쟁시와 같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전쟁에서는 국제적인 대의명분이 뚜렷한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기 때문에 한국군을 비롯하여 연합군들이 자연스럽게 UN군 사령부 지휘 하에 지휘의 통일을 기할 수 있었다.
베트남전에서는 그러한 명분은 없었으나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을 연합사령관으로 하여 미군이 지휘하는 연합 지휘체제를 편성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었다. 남베트남 장군을 연합사령관으로 하는 것은 미군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서는 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군과 남베트남군 간의 연합 지휘체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각각 독자적인 지휘권을 보유하고 상호 긴밀한 협조에 의해서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웨스트모얼랜드 대장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다음과 같은 명분과 이유가 있었다.
1) 남베트남군의 취약한 정통성과 이러한 약점을 파고드는 북베트남의 선전 때문이다. 즉 남베트남군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 지배 시부터 1954년까지의 항쟁기간까지 프랑스의 괴뢰 군대였으며 이제는 베트남의 통일을 방해하는 미군의 괴뢰라고 북베트남이 선전하고 있는 시점에서 남베트남군이 미군의 작전지휘를 받는다면 북베트남의 선전 명분을 더욱 강화해 주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2)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은 주1회 남베트남군 참모총장과, 월1회 정도 남베트남 국방장관과의 정례 회동으로 작전과 제반 현안문제에 관한 협의를 통하여 자기의 의도대로 작전을 통제할 수 있었으며 예하 사령부 및 부대, 행정관서까지 미 고문관이 파견되어 작전통제, 조정, 협조가 가능하여 연합 지휘체제를 별도로 갖추지 않아도 미군 의도대로 작전이 가능하였다.
3) 베트남인은 오랜 기간 동안 외국인의 지배를 받은 민족으로 외국인 혐오감정이 있고 특히 백인에 대한 혐오감이 강하므로 연합 지휘체제를 구성하여 베트남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4) 남베트남군을 미군 통제하에 두어 작전을 계속하면 그들의 자주적인 국토방위 능력을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지휘능력, 자주적인 전략, 전술 발전, 책임감 배양 등에 저해가 되어 언젠가는 추진되어야 할 베트남화에 위배된다.
5) 미국은 현재 투입된 막강한 전력으로 앞으로 2~3년 내에 전쟁 종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무리를 하여 연합 지휘체제를 구성할 필요가 없었다.
미군은 별도의 연합 지휘체제는 구성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군의 의도대로 모든 군사작전이나 평정 작전이 수행되었고 남베트남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연합작전 계획도 미군이 주도하여 작성하였으나 웨스트모얼랜드는 남베트남군의 독자적인 전쟁수행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1968년도부터는 연합작전 계획을 남베트남군이 주도하여 작성토록 배려했다.
남베트남에 한국의 전투사단이 파병되기 전에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서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주장하였고 특히 미군은 남베트남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은 고집하지 않은 반면에 한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은 가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한국군도 뚜렷한 명분으로 미군을 설득하여 독자적인 지휘권을 행사하였다. 한국군의 명분은 정치적인 견지에서 미군이 한국군을 작전지휘한다면 베트남 평화를 위해서 자진 파병한 한국민의 자긍심에 먹칠을 하고 한국은 미국을 위한 청부전쟁을 한다는 국제적인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며 군사적인 견지에서도 공고한 한미 유대와 지금까지의 연합작전 경험은 남베트남군이나 다른 연합군보다 긴밀한 협조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주베트남 한국군 사령부 지휘관들
따라서 미군, 남베트남군, 우방 연합군은 자국군에 대한 독자 지휘권을 가지고 작전을 수행하였다. 연합군 간의 공식적인 협조기구는 자유우방 군사원조 정책협의회(FWMAPC)로서 이 협의회는 남베트남 참모총장, 주베트남 미군사령관, 각국 주베트남군 사령관이 참가하여 연합작전을 협의하였으며 상설기구에는 각 국가의 실무대표가 파견되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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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ZEALOT 작성시간 13.03.12 한국군지휘권이 지하철손잡인가? 웃기는 놈들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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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카이사르 마그누스 작성시간 13.03.12 한국군이 당시에 그만큼 유능했다는건가 아니면 그냥 밑에두고싶어서 그랬던건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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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3.12 둘다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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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Royal Eyelander 작성시간 13.03.12 한국전쟁으로 그나마 전투경험이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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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달민족 작성시간 13.03.12 흠. 남베트남에는 유재흥은 없었나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