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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사]베트남 전쟁사 - 59. 철의 삼각지(Iron Triangle) 전투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03.16|조회수2,134 목록 댓글 5

한국전쟁에서 평강(平康)을 정점으로 김화(金化), 철원(鐵原)을 저변으로 하는 지역을 철의 삼각지라고 명명했던 미군은 베트남 전쟁에서도 사이공 20마일 북방에 있는 3개 지점을 연결한 약 40평방마일의 정글이 우거진 지역을 철의 삼각지라고 불렀다.

한국전쟁 때 철의 삼각지- 철원,평강, 금화지구를 삼각형으로 이은 것으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지역은 전 지역에 지하 기지가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었다. 오래전부터 대외항쟁의 본거지로서 베트민이 대프랑스 항쟁 시 지하 기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였고 디엠 정권이 들어선 후 대남 투쟁의 기지로 활용하기 위하여 다시 수많은 노력을 동원하여 하나의 거대한 지하 요새를 만들었다.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고 지대내의 이동은 탐지가 곤란하며 병원, 인쇄소, 교실, 저장소, 사무실, 함정, 땅굴 등이 교묘하게 구축되어 탐지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1개 연대 병력은 적이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쉽게 격멸될 수 있어 남베트남군은 이 지역에서의 작전을 기피하였다. 따라서 이 철의 삼각지는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베트콩의 성역으로 사이공 지역과 그 일대에 대한 작전기지 겸 지휘소였다.

이 작전은 베트남 전쟁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투이며 1967년까지의 전쟁의 흐름과 전투의 성격을 알 수 있게 하는 전투인 것이다.

 

1) 제1차 : 남베트남군 작전

남베트남 정규군은 이 지역에 몇 차례 작전을 시도하려고 하였으나 작전 최초단계에 적의 저격, 부비트랩, 매복에 의해 피해를 입고 중단하였었다.

미군 병사가 베트콩을 찾아 가택을 수색하고 있다.

 

1964년 11월에는 1개 보병연대에 1개 기갑수색대를 배속하고 3개 포병대대의 화력지원하에 본격적인 작전을 시도하여 보았다. 10일간의 작전기간 동안 입구 일대에 있는 20~30개의 동굴을 파괴한 게 고작이었다.

 

2) 제2차 : 소이작전

남베트남군 작전에 고문관으로 참가한 바 있는 미군대위 부부를 초대하여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철의 삼각지 일대를 불로 태워 무력화시켜 버리는 아이디어를 얻은 웨스트모얼랜드는 건기가 시작되자 무성한 정글지대에 고엽제를 살포하였다. 몇 달 동안 내려쬐는 햇볕으로 일대가 황갈색으로 변해가자 전단과 방송을 통해 비전투원은 철의 삼각지대 내에서 철수하도록 종용하였다.

곧 이서 항공기가 기름을 살포하고 네이팜탄과 소이탄을 투하하였다. 불꽃이 하늘로 치솟아 작전은 성공하는듯 하였다. 그러나 기적은 하늘에서 일어났다. 억수같은 비가 내려버린 것이다. 다시 우기가 오고 우기가 끝날 무렵에는 정글은 옛 모습을 되찾았다.

 

3) 제3차 : 연합작전

미 지상군이 파병되자 웨스트모얼랜드는 1965년 12월 미 제173공정여단에 오스트레일리아군 보병 1개 대대, 뉴질랜드군 1개 포대를 증강시켜 철의 삼각지에 대하여 탐색 및 격파작전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여단장 윌리엄슨(Williamson) 준장은 철의 삼각지 서쪽을 1개 대대로 차단시키고 나머지 대대를 동쪽으로부터 공격을 하도록 하였다. 장병들에게 호두를 깨는 것 같이 철의 삼각지를 격파해 베트콩들에게 본때를 보이자고 독려하였다.

3일동안 작전 결과 44명 사살, 66명의 용의자 체포, 문서 노획, 보급품 노획, 군사 시설 파괴 등의 전과보고와 함께, 철의 삼각지대는 철저하게 탐색되어 적은 격멸되고 모든 군사시설은 파괴되었다고 여단장은 호언하였다.

그러나 이번 작전에 파괴된 시설물을 지상에 노출된 일부 시설물에 불과하였다. 참가했던 한 중대장은 지상 시설물과 야적된 보급품은 파괴하였으나 동굴은 너무 깊고 거대하여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고 실토하였다. 여단장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아직 베트남 전쟁의 본질을 다 모르고 있었을 때였다.

 

4) 제4차 : 시더 폴스(Cedar Falls) 작전

철의 삼각지가 여전히 적의 작전기지로 운용이 되자 웨스트모얼랜드는 이번에는 실패할래야 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 부대를 투입하기로 하였다.

2개 보병사단(제1 및 제25)에 173공정여단, 제11기병연대(기계화)를 증강한 막강한 기동부대와 포병화력, 헬기, 항공지원 등 입체적인 지원작전으로 이번에야말로 대섬멸전을 전개할 작정이었다.

작전은 1967년 1월 4일 B-52 폭격기의 아크 라이트(Arc Light, 고공에서의 융단폭격)로부터 개시되었다. 1월 8일 60대의 헬기로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 중령이 대대장인 26-1 보병대대는 1회의 기동으로 기습착륙하였다. 제25사단(사단장 프레드릭 웨이얀드(Frederick Weyand) 소장)은 사이공 강 서쪽에 차단진지를 점령하였다. 1월 9일 173공정여단을 배속받은 제1사단(사단장 윌리엄 듀피(William Depuy) 소장)은 6개 대대를 공중기동시켜 북쪽 지역을 차단하였다. 사단 수색대는 동남방을 차단하였다. 이제 포위망은 완전히 형성된 것이다.

B52의 아크라이트 폭격

 

알렉산더 헤이그 중령. 훗날 국무장관이 된다.

 

프레드릭 웨이얀드 장군. 후에 참모총장으로 승진

 

윌리엄 듀피 장군

 

제11기병연대가 서쪽으로 공격하여 철의 삼각지를 둘로 나누었다. 후속 기계화보병은 북쪽과 남쪽으로 공격하여 차단부대와 연결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적은 이미 도주한 후였다. 작전이 종료된 1월 26일까지는 공병대가 동원되어 지하동굴 등 대파괴작업이 진행되었다. 지표면을 바꾸는 작업이 계속된 것이다.

아무리 신속한 기동력으로 포위하여도 전투 여부의 결정은 적에게 있었다. 적이 언제 어떻게 도주했는지 알 수 없었다. 도처에서 활약한 적 정보원들에게 작전기도가 노출되었는지 아니면 대규모의 미군 이동, 엄청난 헬기를 보고 이번에는 대규모 부대가 작전한다고 판단한 후 야간을 이용하여 도주하였는지 추측만 있을 뿐이다.

미군이 발표한 전과는 적 사살 780명, 포로 280명, 귀순 540명, 적 용의자 체포 512명, 5,987명의 피난민 후송이었다. 피해는 전사 72명, 부상 33명, 탱크 4대, APC 12대, 헬기 2대가 파괴되었다.

적 공용화기 23정, 개인화기 590정, 실탄 6만 발, 지뢰, 수류탄, 박격포탄 2,000발 등을 노획하였고 2,000여 곳이 넘는 적의 지하동굴, 터널, 기타 시설물이 파괴되었으며 쌀 3,300톤(13,000명의 1년분 식량), 50여만 페이지의 문서도 노획하였다. 미군은 베트콩들이 이제 다시는 철의 삼각지를 작전기지로서 운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였으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베트콩들은 미군들이 철수하자 일주일 이내에 다시 이 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탐색 및 격파작전의 단면이다. 적의 본거지 파괴는 말로 하면 쉬운데 실상은 이렇게 어려운 작전이었다. 문제는 사이공에서 판단하는 것과 실상과의 차이이다. 사이공에서는 철의 삼각지가 이제는 적의 작전기지가 아니라고 컴퓨터에 입력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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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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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리야스필 | 작성시간 13.03.16 저그도 아니고....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3.16 레벨 최대치 업한 테란이 먼 거리에서 물량 최대로 뽑은 저그들과 싸우는 느낌이랄까요?
  • 작성자카이사르 마그누스 | 작성시간 13.03.16 뿌리를못뽑앗네요...뽑앗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심어버리는 ...
  • 작성자woo109 | 작성시간 13.03.25 모조리 불태우고 소금뿌렸으면.... ㅡ.ㅡ; 정리 되었을 텐데.......미군애들이 하는게 그렇지....
  • 작성자베트남청춘 | 작성시간 14.11.30 베트남. 살아봐서 느끼는건데...
    완전 정리는 어렵다고 피부적으로 느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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