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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사]베트남 전쟁사 - 61. 화력 만능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03.18|조회수929 목록 댓글 3

전장에서 적과 대치하여 전투력을 운용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전술도 정책과 전략적 고려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의 목표가 적을 패배시키는 것도 아니고 적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캄보디아, 라오스의 국경지대를 성역으로 인정함으로써 지상군의 발목을 묶어버린 장기 소모전 상황에서 미군의 장군들은 특이한 전술을 발전시키지도 못하였고 묘수가 나올 수도 없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등장된 현대무기, 장비는 모두 동원되었다. 겨우 소화기만을 장비한 베트콩들에 대하여 막강을 자랑하는 미 육, 해, 공군의 최신예 무기, 장비가 총동원된 것이다.

장갑차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여 막강한 화력과 심리적 충격을 줄 수 있는 전차부대의 파견을 웨스트모얼랜드는 계속 요청하여 1966년 9월에 육중한 M-48 패튼 전차를 장비한 미 제11기병연대가 파견되었다.

1966년 해병 3여단 2대대가 베트남에서 운용하고 있는 M48 전차

 

175㎜ 평사포를 포함한 막강한 포병화력과 최신예 전투기의 근접 항공지원도 부족하여 B-52 전략폭격기까지 전술적인 지원임무를 수행하였다. 여기에다 신속지원이 가능한 코브라 건쉽이라고 불리우는 공격헬기(AH-1G)까지 추가되었다. 야지에서는 적의 이동을 탐지하기 위한 각종 적외선 장비와 레이다가 운용되었다.

미군이 보유한 장거리 포병전력 중 최고.. 175미리 야포다.  트랙터에 실린 이 포는 미군이 가진 것들 중에서는 가장 장거리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AH-1G 코브라 건쉽

 

바다에서는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항공기와 함포의 지원이 있었고 강에서는 연안작전이 가능하도록 장갑 병력수송선, 포병 바지선 등의 장비가 지원되었다.

여기에 연합군의 병력규모는 1968년 이전에는 3:1로, 이후에는 6:1로 우세하였다. 컴퓨터에 입력된 전력으로 계산했을 때는 미국이 1964년에 승리하였다고 답이 나온 것은 수량적인 계산으로는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결과인 것이다.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현격한 차이가 나는 미군의 우세한 화력 때문에 새로운 전투방식이 생겨났다. 보병이 적을 발견하면 적을 고착시키고 사격과 기동으로 적에 접근하고 노출된 적의 측면으로 기동하여 적을 격멸하는 것이 아니라 적과 접촉이 이루어진 후 적이 회피하지 않고 교전이 이루어지면 일단 물러나 방어 형태를 취하고 즉각 포병지원이나 건쉽, 근접항공지원을 요청하여 적을 화력으로 공격하는 방식인 것이다. 즉 화력이 기동을 대신하여 보병은 수색대이고 화력이 적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투방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는 명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점점 정형화되면서 미군이나 남베트남군에게는 전투에서 기동, 추격 등은 점점 잊혀진 전투기술이 되어버렸다. 이와는 반대로 북베트남군은 물론 지방 베트콩까지도 화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미군의 화력공격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노출된 측면으로 기동하여 적을 교란하고 임의로 적과의 접촉을 유지하거나 단절시켜 전투의 주도권을 행사하였다.

베트남의 지형 자체가 효과적인 기동을 제한하고 자국의 사활이 걸린 전쟁도 아니고 미 국민들이 달갑게 생각하지도 않은 비인기 전쟁으로 불필요한 사상자를 감소시키는 차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전장에서 전술적인 주도권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 외에도 이 같은 화력에만 의존하는 전투는 베트남전쟁 밖에 경험이 없는 장병들에게는 장차의 전쟁까지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남베트남군도 미군의 일방적인 화력의 우세속에서 화력에 의존하는 습관에 젖어들어 안일한 전투를 계속해 나가는 나약한 군대로 점점 변모되어 가고 있었다.

작전 중에 소모되는 엄청난 양의 포병화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로 야간에 사격하였던 그 많은 교란 및 차단사격, 적의 대응사격도 없는 지역에 퍼부어대는 건쉽 사격, 근접 항공지원, 함포사격 등 낭비적인 사격도 엄청났다. B-52 전략폭격기의 전술적인 지원도 1966년도 월 평균 60쇼티였던 것이 1967년도에는 월 평균 800쇼티 이상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헬기가 등장하여 헬기는 베트남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전투수단이 되었다. 마치 미국인들이 인디언과의 전투에서 말이 없이는 전투를 못하였던 것과 같이 베트남전에서는 화력까지 지원할 수 있는 말이 등장한 셈이다.

초창기 남베트남과 미군의 항공력... 월남전의 상징 휴이가 서서히 배치되고 있었다.

 

헬기는 베트남전에서 만능이었다. 공중기동으로 원하는 장소에 병력을 기동시키고 각종 포를 이동시켜 포병 화력지원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각종 보급품을 어느 지역에나 공수할 수 있고 정글 속에서도 전상자의 신속한 후송, 각종 행정적 임무 수행은 물론 신속한 수색정찰, 강습, 습격작전, 대전차 공격까지 가능하고 편리한 지휘통제 수단을 제공하는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북베트남군은 헬기 수에 따라 작전의 중요성, 규모를 판단할 수 있었다.

헬기는 만능이었고 장차의 전쟁의 양상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으나 취약한 요소가 드러났다. 적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야간과 악천후에 제한을 받아 그 효과가 감소되었으며 적의 대공사격에 결정적으로 취약하였다. 또한 효과적인 공중지휘가 가능하여 대대장, 연대장까지도 헬기에서 직접 병력을 관측하면서 중대장, 소대장에게 일일이 전투지휘를 하여 중대장, 소대장이 자신의 의지대로 지휘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소부대 지휘관, 지휘자의 창의성을 박탈하는 치명적인 해악을 초래하였다. 상급 지휘관 또한 편리한 헬기를 이용하면서 정글에서 악조건을 극복하고 전투하는 병사들의 고통을 잊기 시작하였다.

또한 헬기는 고가의 장비이고 그 유지비가 엄청나며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하다는 것이다. 미국 같은 거대한 경제력과 고도의 기술수준을 가진 국가나 운용가능한 장비인데도 미군의 지원 덕분에 ‘부자의 전쟁방식’에 익숙해진 남베트남군도 헬기의 마력에 젖어 들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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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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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배달민족 | 작성시간 13.03.18 흠 하긴 위워 솔져스에서도 막판 돌격을 제외하고는 지역 방어전이었으니;;
  • 답댓글 작성자■무장질럿 | 작성시간 13.03.18 그마저도 건쉽으로 마무리...
  • 작성자카이사르 마그누스 | 작성시간 13.03.18 너무좋은것도 안좋은결과를 도출하는군요..그리고 코브라 건쉽이라 하면, 공격헬기군요 건쉽이라길레 ac-130건쉽을 생각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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