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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사]베트남 전쟁사 - 64. B-52의 전술적 지원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03.22|조회수904 목록 댓글 3

웨스트모얼랜드의 B-52 전략폭격기의 운용 건의에 따라 1964년 초에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미 전략공군 사령부에 B-52의 전술적 지원능력을 개선하도록 지시하였다.

당시 B-52는 500파운드와 700파운드의 재래식 폭탄 27발을 적재할 수 있었다. 미 전략공군 사령부는 51발(27,000파운드)까지 적재할 수 있도록 개선하여 괌에 있는 미 앤더슨 공군기지에 배치하였다. 작전 명칭은 ‘아크 라이트(Arc Light)'였다.

폭탄을 주렁주렁 매달은 B-52

 

기상에 관계없이 주야 폭격이 가능한 이 폭격기는 적의 기지지역 폭격, 적의 밀집부대 폭격으로 적의 공격 기도를 무산시키고 적의 침투를 차단하는 등의 지상군 작전을 지원하는 전술적인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F-4팬텀, F-105D 썬더치프 등의 전투기, 폭격기들이 전략적 폭격이라고 할 수 있는 북폭에 운용되었다.

B-52 폭격의 모습

 

1965년 6월 18일 사이공 북서쪽 빈 두옹(Binh Douong) 성의 적 기지를 폭격하는 최초의 임무를 받고 30대의 B-52가 출격하였다. 12시간 비행에 8,850㎞를 왕복하여야 했고 중도에 KC-135로 공중 재급유를 해야만 하였다. 최초 폭격의 성과는 미미하였다. 더구나 재급유 중 B-52 2대가 충돌하여 12명의 승무원 중 8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였다.

1965년 11월 이아 드랑(Ia Drang) 전투 시에 B-52가 지상군 작전 지원을 최초로 실시하였다. 지원소요가 증가하자 폭탄 적재량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B-52를 개조하였다. 개조된 B-52D는 항공기 내부에 500파운드 폭탄 84발, 날개 밑에 500파운드와 700파운드 폭탄 24발을 장착하여 총 108발을 적재할 수 있었다.

B-52의 지원 소요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태국 사타히프(Sattahip)에 있는 공군기지에 B-52기지를 설치하여 괌에서 12시간 걸리는 시간을 2~5시간 내에 지원할 수 있게 하였다. 1976년에는 월 800쇼티가 지원되었으나 1968년 2월에는 월 1,200쇼티까지 지원되었다.

B52F형..베트남전 초기 모습

 

지상군 지원은 안전거리가 3㎞였으나 비엔 호아(Bien Hoa)에 지상통제 레이다를 설치함으로써 융통성과 정확성이 증대되어 비행 중에도 표적 지시가 가능하였고 1.5㎞까지 지원이 가능하였다.

1966년 4월부터는 일부 북폭에도 운용되었고 구정공세 이후에는 라오스 영내의 호치민 통로에 집중 운용되었다. B-52의 폭격은 베트콩에게 공포와 전율의 대상이었다. 고공에서 폭격하기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고 육안으로 식별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 공습을 사전 경보해주는 소련의 역할이 있었다고 트롱 누 탕(Truong Nhu Tang)은 그의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다.

트룽 누 탕

 

“괌을 떠난 B-52는 남중국해를 왕복하는 트롤선으로 위장한 소련의 전자정보 수집선에 의해 포착된다. 편대의 비행방향과 속도가 계산되어 북베트남 노동당 남부위원회(COSVN) 본부에 연락되면 남부위원회는 즉시 목표지역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전개하고 있는 민족해방전선의 요원과 북베트남군에 대하여 공격 진입방향과 직각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한다. 태국의 기지를 떠나는 B-52에 대해서는 레이다와 태국에 잠입해 있는 우리 정보망이 감시를 계속하고 정보는 같은 방법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온갖 고통과 신고를 참고 견디었으나 B-52의 폭격에 의한 소름이 끼치는 공포보다 더 심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폭격 중심지에서 1㎞ 떨어진 곳에 있어도 고막이 찢어져서 정글 거주자의 대부분은 영원히 청각을 잃었던 것이다. 중심지에서 반경 1㎞ 이내에서는 보강공사가 되어 있지 않은 엄폐호의 벽은 모두 무너져서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면 생매장이 된다. 가까이 가서 폭탄이 떨어진 곳을 살펴보면 직경 10m, 길이도 그 정도 될 성싶은 구덩이가 패어져 있다…… 폭격 후 몇 시간 만에 돌아와 보면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식량, 의류, 보급품, 서류 등 본부시설에 있는 모든 것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다… 소련의 파견단이 찾아왔을 때의 일인데 그때 공습직전에 경보가 내렸다… 그들은 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는데 경련이 일어난 증거임이 틀림없었다.”

죽음의 비... 실제로 북베트남군이 가장 무서워한 것은 b-52의 폭격이다. 이 폭격은 케산의 해병을 구했고 75년 베트남의 함락시 북베트남군이 수도 사이공의 진입을 스스로 늦출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미국은 1967년까지 적어도 100만 톤 이상의 폭탄을 지상에 투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 사용했던 양을 초과하였고 한국전쟁시의 2배를 소모한 셈이다. 이 엄청난 비용을 소모했는데도 특별히 달성된 성과는 눈에 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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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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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ZEALOT | 작성시간 13.03.22 더더더더더!!!
    폭탄을 끼얹으란말야!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centurion | 작성시간 13.03.22 북한도 그렇고 콩들도 그렇고 융단폭격의 공포에 몸서리 치는군요 ㄷㄷㄷ
  • 작성자베트남청춘 | 작성시간 14.11.28 Binh Douong성====>Binh Duong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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