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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사]베트남 전쟁사 - 67. 군수지원 체제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03.30|조회수800 목록 댓글 1

제1군수 사령부는 주베트남 미 육군사령부의 예하부대로서 지원할 지역별로 사이공 지원 사령부(남베트남 3군단 지역지원), 캄란(Cam Ranh) 지원 사령부, 퀴논(Qui Nhon) 지원 사령부(남베트남 2군단 지역지원), 다낭(Da Nang) 지원 사령부(남베트남 1군단 지역지원, 이 지역에 대한 군수지원은 미 해병대 작전지역으로 미 태평양 사령부 지침에 따라 해군에서 지원 사령부를 운영토록 하였다가 1968년도부터 육군에 통합되었음)의 4개 지역 지원 사령부를 창설하여 통합적인 군수지원을 담당토록 하였다. 남베트남도 4개의 군구에 군수지원 사령부를 창설하였다. 한국군도 100군수 사령부(십자성 부대)를 창설하였다.

100군수지원사령부의 정문과 현재의 모습

 

미 육군은 남베트남 제4군구에는 지원 사령부를 두지 않았다. 이 지역은 남베트남군의 작전지역으로 필요시 미군이 지원하였기 때문에 별도의 지원 사령부 없이 사이공 지원 사령부가 지원토록 하였다.

미 군수 사령부는 창설된 후 전 분야를 망라한 통합지원 사령부로서 기능을 수행하였으나 지상군의 규모가 증가되면서 항공, 건설공병, 의무지원 기능은 별도의 지원단이 편성되어 주베트남 미 육군사령부의 예하로 독립되어 군수 사령부의 과중한 임무를 감소시켰다.

항공지원은 1966년 1월에 제34일반 지원단을 창설하여 항공분야 보급 및 정비기능을 수행하였고 1965년 7월에 건설공병단이 창설되어 시급한 항구개설, 보급창 등의 시설공사에 전념토록 하였다. 의무지원도 지원 규모가 방대해짐에 따라 1966년 5월에 이를 지휘 통제할 제44의무여단이 창설되었고 1967년 8월에는 군수 사령부에서 분리되어 임무를 수행하다가 1970년에는 군 병원의 지휘감독 기능까지 수행하는 의무 사령부로 증편되었다.

각 지역지원 사령부는 피지원부대의 병력, 장비 등을 고려하여 수개지역에 보급 및 근무대대, 직접지원 정비대대 등의 부대로 구성된 군수 지원단을 두어 미군 및 우방 연합군에게 보급, 정비, 근무지원 등을 제공하였다. 전방 지원단이 작전기간동안 직접 지원을 제공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지원개념은 야전 지휘관이 요구하는 시기와 장소에 필요한 지원을 가능하게 하였고 미군은 군수지원이 뒤따르지 못하여 작전을 수행하지 못한 예는 없었다고 지금까지 자부하고 있다.

미군의 군수지원 규모는 방대한 양이었다. 남베트남 경제원조까지 포함하여 1967년도 기준으로 매월 76만 톤의 보급물자가 수송되었다. 매월 레이션(야전식량) 1,000만개 이상, 탄약 70,000톤, 240만 드럼의 유류가 소모된 것이다.

1960년대의 C-레이션. 공식명칭은 MCI로 바뀌었지만, 이전과 거의 비슷해서, 미군들은 계속 C-레이션으로 불렀다.

 

연 93만평의 비행장, 헬기장이 포장되었으며, 562,000평 규모의 저장창고 및 야적시설, 4,300평 규모의 냉동 저장시설, 2,740㎞의 도로, 4,600m의 교량이 건설되었다.

이와 같은 방대한 규모의 군수지원을 수행하기 위한 지원 병력 규모는 1965년도까지는 총 병력의 25%이하였으나, 1966년도에는 45%, 병력이 최고 수준이었던 1969년도는 39%였다. 미군 철수가 계속되었던 1971년도에는 47%로 증가되었다(전투부대와 지원부대의 구분은 판단기준에 따라 차이가 많으나 위의 분류기준은 전 사단병력, 기타 보병, 기갑, 포병부대,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항공, 공병, 통신부대는 전투부대로, 이 외의 병력은 지원부대로 분류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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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리야스필 | 작성시간 13.03.30 보급량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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