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이후 남베트남군은 ‘표범무늬’ 형태의 현 전선을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를 확보하면서 각 지역별로 방어능력을 향상시키고 유사시 적이 병력을 집중하여 공격을 시도할 때 융통성있게 대처할 수 있도록 지역별 예비대와 중앙예비대를 증강시키는데 노력을 집중하였다.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지키려는 것이었다.
각 성(省)은 민병대(PF)와 지방군(RF)으로 지역을 방어하고 24개의 지방군 대대와 1개 포대(4문)를 차출하여 연대규모의 지역기동부대를 만들어 각 군단장이 이를 통제함으로써 정규사단의 지역책임을 감소시켜 융통성을 더욱 증가시키려고 하였다.
1975년 초까지 남베트남군은 4개 보병여단, 1개 해병여단, 1개 공수여단, 2개 기갑대대 등의 전투부대를 창설하여 중앙예비 전력을 증강시키도록 하였다.
1973년 후반 남베트남의 대륙붕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다고 낙관적인 분위기가 고조되어 110만의 병력을 100만으로 감축하였다가 1974년 말부터 다시 110만 명으로 증가하도록 환원되었다. 문제는 매월 총병력의 1.5~2%에 달하는 탈영병이었다. 일년 간 탈영한 병력은 전 병력의 1/4이 되는 것이다. 어떤 탈영병은 장기간 숨어 지내다가 개명하거나 신분을 위장하여 재입대하기도 하였다. 신병충원은 병역기피자가 많아 계획대로 보충되지 못하였다. 보병대대는 인가 약 800명에 500명의 병력 수준이면 양호한 편이었다.
남베트남군은 북베트남의 대공세가 있을 경우에는 미 해,공군의 항공지원이 있을 것으로 전제하여 미 국방무관실(당시 국방무관은 호머 스미스(Homer Smith) 육군소장)과 합동으로 지원요청 절차를 마련하고, B-52 전략폭격기의 표적들을 항상 최신의 것으로 유지하였다.
호머 스미스 육군소장
남베트남군의 편성에는 해, 공군 사령부가 별도로 편성되어 있으나, 육군사령부는 편성되지 않아 1970년 7월부터 참모본부가 명목상 4개 군단을 지휘하는 육군 사령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면서 해, 공군 사령부도 감독할 권한을 가지도록 하였다. 그러나 티우(Thieu) 대통령이 4개 군단을 직접 지휘하고 참모총장은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대통령의 결심사항에 대하여 세부 실시사항을 계획하고 감독하였다.
남베트남군 병력은 11개 보병사단, 해병사단, 공수사단 등의 정규군 470,000명, 지방군, 민병대 527,000명, 해군 40,000명, 공군 63,000명 등 총 110만여 명이었다.
주요장비로는 전차 600여 대, 장갑차 1,200여 대, 헬기 500여 대, 항공기 1,270대, 각종함정 1,500여척 등이다.
1975년 당시 세계 제4위의 공군력을 자랑하던 남베트남의 주력기 F-5A
북베트남군은 정규군 47만 명, 기타 53만여 명 등 총 100만여 명, 전차, 장갑차 600여 대, 항공기 342대, 각종함정 39척 등으로 추정되었다.
외형적인 전투력은 남베트남군이 북베트남군보다 우세하다. 병력면에서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나 장비 면에서는 남베트남군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어느 군대의 강약점은 평시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전쟁에서는 적나라하게 적에 의해서 노출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