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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사]베트남 전쟁사 - 127. 중부 고원지대 철수작전(4) - 작전결과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06.23|조회수1,301 목록 댓글 1

전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남베트남군 2군단의 중부 고원지대로부터의 대패주로 제22사단을 제외하고 2군단의 정규군 부대는 와해되었다.

남베트남군의 실패 요인은 작전 경과에서 언급은 되었으나 이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주도면밀한 계획과 사전준비의 결여

3월 14일 야간에 철수명령을 하달하여 3월 16일 주간에 철수를 개시하였다. 1개의 단위부대도 아닌 군단 규모의 부대가 이와 같은 짧은 기간에 철수를 준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최소한 철수로를 정찰하고, 도로 주변지역에 대한 경계 대책, 부교가설 등의 사전준비 정도는 완료하고 철수를 시작했어야 했다. 이와 같은 준비는 적에게 의도가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기만방책을 강구하면서 철수를 하였다면 성공할 수도 있는 철수였다.

 

• 기만방책 미 강구

북베트남군도 7번 도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차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도로의 사용은 북베트남군에게는 기습이었다. 그러나 일단 철수가 개시되면 적도 알게 되는 것은 대부대이기 때문에 피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적이 이를 알았을 때는 대응하기에 너무 늦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반메투오(Ban Me Thout)를 재탈환하기 위하여 준비한다는 사실을 유포시킨 후 14번 도로를 따라 견제공격을 실시하고, 역습을 가장한 견제공격으로 적을 방어에 고착시키고 철수를 단행하였다면 반메투오를 점령하고 환희에 빠진 북베트남군을 충분히 기만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 온 북베트남군의 광범위한 기만대책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오직 적이 모르도록 하는데 급급하여 황급히 철수를 개시한다고 기습을 달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 군인가족 및 피난민 대책 결여

남베트남군 작전능력을 근본적으로 저해하는 문제로서 이에 대한 어떤 대책도 없었다.

 

• 정찰 및 경계방책 결여

도로 주변지역이나 적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지도 않고 최소한 행군 간에 측면 호위 정도는 운용하였어야 했다. 지방군의 능력이 도로경계를 할 수 없다면 그 능력은 보강되었어야 하는 것이다.

 

• 지휘통제 및 사기

남베트남군의 철수작전 지휘체제는 한마디로 부재였다. 초전의 성패가 달려있는 중요한 철수작전으로 당연히 군단장이 직접 현지에서 지휘했어야 했고 최소한 부군단장이라도 현지에서 직접 지휘를 했어야 했다. 철수제대 지휘관만을 임명한다고 지휘체제가 수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지휘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레인저 여단장이 그 긴박한 상황에서 지휘관에 임명되었다고 군단 참모부와 수많은 제 병과부대를 하루아침에 장악하여 일사불란한 작전을 수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푸(Phu) 소장이 단순한 차량이동이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여서인지, 아니면 실패를 예견하고 혼자서라도 살아남기 위하여 대신 타트(Tat) 준장을 마지막으로 장군으로 승진시켜 주고 지휘를 맡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지휘배치인 것이다.

작전에 대한 보안도 중요하나 철수 작전 시에는 특히 병사들에게 명확한 작전목적을 주지시켜 사기가 저하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반메투오의 실함으로 그렇지 않아도 사기가 저하된 병사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철수대열에 끼게 되었고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정신으로는 도로를 차단한 적에게 과감한 공격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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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리야스필 작성시간 13.06.23 철수가 아닌 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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