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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사]베트남 전쟁사 - 131. 북베트남의 결단과 최후의 일격 준비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06.27|조회수1,912 목록 댓글 3

3월 19일까지 북베트남군은 중부 고원지대로부터 철수하는 남베트남군 제2군단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가하였고 북부에서도 공격을 개시하여 쾅트리(Quang Tri) 시를 점령하였었다. 3월 20일 북베트남의 전쟁 지도부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분석하고 자기들의 최초 공격계획을 앞당길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즉 현재 남베트남군은 그들의 부대를 재배치하여 사이공과 델타 지역을 중점방어하려 하고 있고 다낭(Da Nang)과 캄란(Cam Ranh) 지역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이 지역을 확보하면서 남베트남은 어떤 정치적인 해결이나 연립정권 또는 영토의 분할을 시도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북베트남군은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여 적의 이러한 기도를 분쇄할 수 있도록 시간, 장소, 병력 규모 면에서 기습을 달성하여야 하며 과감히 공세를 취한다면 사이공 정권은 예상보다 쉽게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 중앙군사위는 최초 공세계획을 앞당기도록 방침을 정하고 남베트남 내 각 군구 사령관들을 3월 28일 중부 고원지대에 있는 둥(Dung)의 전선사령부에 소집하여 지침을 하달하도록 하였다.

1975년 호치민 전역을 논의하는 보 구엔 지압

 

그러나 남베트남의 붕괴속도는 그러한 절차까지도 필요 없게 만들었다. 북베트남 전쟁지도부는 3월 25일 우기 이전에 사이공을 점령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둥에게 전 병력을 사이공 지역으로 이동시켜 사이공 공격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추가 투입부대는 북베트남에 있는 제1군단(공세 전에 편성. 제330, 350사단)이였고 3월 28일 작전회의 소집은 취소시키고 추후 사이공 지역으로 이동 후에 정치국의 대표로 레둑토(Le Duc Tho)가 내려가기로 하였다.

레둑토

 

사이공 지역 공격준비를 지시받은 둥은 전황을 판단하고 현재 남베트남군 1, 2군단 지역에서 공격을 계속 중인 부대는 그대로 목표를 탈취한 이후에 사이공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건의하여 승인을 받았다.

3월 25일부터 북베트남군 1군단의 이동은 개시되었다. 이동로는 DMZ 남방에 있는 동하(Dong Ha)로부터 9번 도로를 거쳐 라오스에 있는 호치민 통로를 따라 다시 플레이쿠(Pleiku)-반메투오(Ban Me Tuot)-사이공 북방까지의 14번 도로로서 그 거리는 1,700㎞나 되었다.

둥은 반메투오 전투에 참가하였던 제10, 316, 320사단으로 제3군단을 편성하고 4월 2일부터 반메투오를 경유하여 사이공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제968, 3사단은 그대로 공격을 계속하여 캄란, 판랑(Phan Rang)을 점령하여 1번 도로를 개통시키고 북베트남군 2군단과 341사단은 다낭을 점령한 후에 1번 도로를 따라 사이공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하였다. 제341사단은 제6, 7사단과 함께 제4군단으로 편성될 예정이었다.

북베트남 정규군들이 작전 명령을 하달받고 있다.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모든 차량은 다 동원되었다. 남베트남군이 버리고 도주한 차량, 민간 버스, 트럭, 승용차 모두 동원되었고 부족한 운전병은 포로로 충당하였다. 차량선두는 공병과 전차부대로 공병은 파괴된 교량, 도로를 보수하고 전차는 잔적을 소탕하였다. 수만 대의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동하였고 대낮에도 먼지 때문에 앞이 안 보여 헤드라이트를 켜고 이동하여야만 했다. 북베트남군 병사들도 자기들이 이렇게 엄청난 차량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고 놀랐다.

둥 자신도 4월 3일 사이공 북방 록닌(Loc Ninh) 근처의 북베트남 노동당 남부 위원회(COSVN)에 도착하여 예하 지휘관들과 사이공 공략계획에 골몰하였다. 4월 7일에 레둑토도 도착하였고 4월 8일에는 전 참모들을 소집하여 사이공 지역 공격계획을 토의하였다. 이미 북베트남의 총참모부에서 추가 요원과 포병, 기갑, 방공, 정보 등의 기능 사령부 사령관이나 부사령관이 파견되어 있었다. 반메투오 공격 때와는 작전규모나 그 중요성이 비교될 수 없는 이제 마지막 대결전이었기 때문이다.

레둑토가 북베트남 정치국의 결의를 전달하였고 새로운 전선 사령부가 편성되었다. 총사령관 반 티엔 둥 대장, 정치 장교 팜 훙(Pham Hung), 부사령관에 트란 반 트라(Tran Van Tra, 북베트남 노동당 사이공 특별지부 군사총책), 레둑안(Le Duc Anh, 사이공 서남방 작전지휘 담당), 레 트롱 탄(Le Trong Tan, 사이공 동부지역 작전지휘 담당), 딘 둑 티엔(Dinh Duc Tien, 군수지원 담당), 참모장에 레 곡 히엔(Le Ngoc Hien)이었다. 사이공 공략의 작전 명칭은 ‘호치민 전역’으로 결정되었다.

팜 훙

 

트란 반 트라

 

레둑안

 

레 트롱 탄

 

레 곡 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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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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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Vv아마게돈vV | 작성시간 13.06.27 만약에 6.25도 un이 모이고 도착하기 전에 부산까지 점령 당했다면 un이 한국을 포기 했을까요? 갑작히 이런 의문이 드네요.
  • 답댓글 작성자율무차 | 작성시간 13.06.27 미국에서 그럴경우를 상정해서 이승만과 몇몇 관료들 사모아에 드랍해놓고 망명정부 세우려고 계획했엇죠.
  • 답댓글 작성자지옥괭이 | 작성시간 13.06.28 그당시면 미국 입장에서 볼때 북한군 정도야 껌으로 밖에 안보일 텐데 포기 안할겁니다.
    거기다 일본과 대만의 안보가 걸려있는 상황이라 결코 그냥 넘길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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