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8월 8일, 대단히 끔찍한 살인이 발생했다. 휴스톤 주 패서디나 교외의 경찰서에 이른 아침에 급박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17세의 앨머 웨인 헨리였는데, 딘 코얼이라는 남자의 아파트로 빨리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코얼이 벌거벗은 채로 총알 여섯 발을 맞은 채 침실바닥에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끔찍한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불길해 보이는 물건들, 총검, 커다란 딜도(모형으로 만든 남자의 성기), 도관 테이프, 바셀린, 가는 유리 피펫(스포이드처럼 액체의 일정량을 꺼내거나 주입하는 기구) 한 뭉치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사람을 묶을 수 있게 장비를 갖춘 나무로 만든 고문대였다.
아파트에는 헨리 외에도 팀 컬리와 론다라는 10대 남녀도 있었다. 그 뒤 경찰에 신고를 한 헨리는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코얼은 가업을 이어받아 과자점에서 일을 하며 ‘캔디맨’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는 34세의 동성애자였고, 자신보다 어린 남자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그런 코얼과 헨리는 친구 사이였다.(어떤 종류의 친구인지는 알아서 상상하기 바람) 전날 밤 헨리는 팀과 론다를 코얼의 집에 초대했으며, 함께 본드를 흡입하고 파티를 열 예정이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10대 세 명은 정신을 잃었다. 헨리가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고문대에 묶여 있는 것을 알았다. 코얼은 헨리가 여자아이를 데려온 것 때문에 노발대발해 있었고, 총을 휘두르며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헨리는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겁에 질린 상태에서 자신이 론다를 강간하겠으니, 코얼에게 팀을 ‘손보라’고 구슬렸다. 코얼이 마침내 화를 가라앉히고 헨리를 풀어주었을 때 그는 가까스로 총을 쥐고 코얼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끔찍한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헨리의 자백에 따르면, 수년 전 코얼은 나이 어린 남자들을 구해오는 조건으로 자신과 데이비드 브룩스라는 한 청년에게 돈을 줬다고도 했다. 범행 대상이 된 소년들은 대부분 10대였고, 9세 소년도 한 명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마약과 술 파티에 유혹되어 코얼의 집에 초대되었다. 그리고 자신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체격도 좋은 ‘캔디맨’의 힘에 억눌렸고, 고문대에 묶여 소름끼치는 고문을 당했다. 일부는 거세를 당했고, 일부는 요도에 도뇨관(강제로 소변을 배출하게 하는 관) 크기의 피펫을 집어넣어야 했으며, 적어도 한 명 이상은 성기를 잘렸다. 결국 그들은 살해되었고, 시체는 휴스턴에서 몇 마일 남쪽에 있는 보트 창고 등 여러 다양한 장소에 버려졌다고 헨리는 말했다.
헨리는 처음에 자신이 단지 코럴에게 먹잇감을 구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는데, 놀라운 점은 그런 먹잇감 중에 그의 친구와 이웃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헨리는 자극적인 고문, 살육에 자신이 적극 개입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끝으로 훼손된 사체 27구를 찾아냈는데, 그중 17구는 보트 창고에 묻혀 있었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한 건의 살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헨리는 소년 6명을 살해한 혐의가 인정되어 99년형을 연달아 여섯 차례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