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알프레도 가라비토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크고 가장 좋은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한편 현대에 들어와서도 가장 질 나쁜 연쇄살인범을 탄생시켰다는 점에 대해서까지 삐뚤어진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제아무리 극악무도한 미치광이 살인범이라도 콜롬비아의 살인광 루이스 알프레도 가라비토와 비교하면 금세 빛이 바래고 만다. 사실상 가라비토의 이름이 미국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문화적 배타주의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외국의 사이코패스들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다. 범행 숫자만 따지더라도 ‘20세기 최악의 연쇄살인범’을 꼽을 때 가라비토가 유력한 후보라는 점은 절대 의심할 수 없다.
1957년 페레이라의 커피재배 지역에서 태어난 가라비토는 7남매 중 막내였다. 그는 술주정뱅이인 아버지에게 빈번하게 모진 구타를 당했고, 또 이웃의 어른 두 명에게 강간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자살 성향을 지닌 우울증 환자에, 알코올 중독자로 자라났다. 학교는 5년밖에 다니지 못했고, 16세 때부터 유랑자로 가게 점원이나 종교 물품을 파는 노점상인으로 잠깐씩만 일을 했다.
1992년부터 7년 동안 가라비토는 8세에서 16세의 소년들을 140명이 넘게 죽였다. 그는 에콰도르뿐만 아니라 콜롬비아의 도시 50곳 이상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교사, 성직자, 사회사업가, 자선기관 대표 등 다양하게 자신의 상냥한 모습을 가정했고, 입심 좋은 부드러운 말로 아이들의 환심도 샀다. 그런 다음 아이들을 시골까지 멀리 데려갔다. 소년들이 지치면 이때 가라비토가 덤벼들었다. 그는 나일론 줄로 소년들을 묶고 강간했으며, 팔다리를 자르고, 또 목을 베거나 절단해버렸다.
이런 극악무도한 범행을 저지르고도 수년간 들키지 않은 것은 콜롬비아의 비참한 상황 때문이었다. 그의 희생자들은 가난하고, 주로 집도 없는 거리의 아이들이었고, 사회 붕괴의 혼란 속에서 방치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이 실종된 뒤에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결국 페레이라 서부 지역의 좁은 골짜기에서 27구의 해골이 발견되어서야 정부 당국은 수사에 착수했다. 최종적으로 발견된 해골 수는 거의 90여 구에 달했으며, 끝내 경찰은 가라비토를 의심하게 되었다.
가라비토가 25명의 시신을 암매장한곳에 세워진 비석
그렇지만 이때 이미 가라비토는 툰하에서 11세 소년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기나긴 심문이 이어지는 동안 가라비토는 140명을 죽였다고 털어놓았고, 자신의 범행들을 공책에 정성들여 기록했다고도 했다. 사형제도가 없는 콜롬비아에서 그는 툰하 살인 사건에 대해 52년형을 선고받았다.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잔인한 범행에 비추어보면 충격적일 만큼 가벼운 처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