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초 런던의 노팅힐 구역 릴링턴 거리 10번가에 한 가족이 이사를 와서 새로 살게 되었다. 집 주인은 부엌을 고치려 했으며, 어느 한쪽의 벽지를 뜯었다. 그런데 벽지 뒤에는 찬장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찬장 속에는 담요에 말아 둔 여자 시체 3구가 있었다. 경찰이 도착해 조사를 벌인 결과, 벽장 속의 시체는 빙산의 일각임이 드러났다. 거실의 마룻바닥 아래에도 시체 1구가, 또 바깥 정원에서 시체 2구가 추가로 발굴되었다.
앞서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은 존 레지날드 크리스티라는 남자였고,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레지로 불렸다. 조용한 성격에 약간 대머리며 안경을 쓴 크리스티는 3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살인사건이 있었을 당시 세상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티모시 에반스라는 좀 덜떨어진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죽였다고 자백했다가 이후 자백을 부인했고, 아래층에 사는 남자 레지 크리스티를 범인으로 지목했던 것이다.
온순한 인상의 크리스티는 법정에서 티모시 에반스가 범인이라고 주장했고, 배심원단은 그의 말을 믿었다. 그 후 티모시 에반스는 교수형을 당했다. 이제 6구의 시체를 새로 발견한 뒤에야 경찰은 다소 늦었지만, 에반스 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했다. 그 후 11일이 지나서 체포된 크리스티는 모든 사실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크리스티는 노동자계급 출신으로 가게 점원 같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왔다. 겉보기에 평범해 보인 크리스티의 삶의 이면에는 병적인 징후들이 감춰져 있었다. 그중 하나는 지나친 건강염려증으로 유년기에 발병해 청년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또 그는 3년 동안이나 말을 하지 않는 히스테리 증상을 나타내기도 했다. 크리스티는 또 다른 사람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으며, 고용주의 물건을 자주 훔쳐서 말썽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1938년에 크리스티는 아내 에델과 함께 릴링턴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으며, 2년뒤 그가 42세가 되던 때부터 여자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크리스티는 아내가 친척을 방문하러 멀리 떠났을 때 몰래 살인을 저질렀다. 호흡기질환을 앓고 있는 루스 푸어스트에게 훈증 치료를 해주겠다며 집으로 유인해, 가스로 질식시키고 목 졸라 죽인 다음 강간했다. 그 후 3년간 그는 다음 희생자를 찾아 헤맸다. 두 번째 희생자는 자기 아내의 친구인 뮤리엘 에디였다. 푸어스트와 에디는 모두 정원에 암매장되었다.
1949년 크리스티는 티모시 에반스의 아내를 비슷한 방식으로 유인했다. 이번에는 낙태 시술을 해줄 수 있다는 말로 꾀었다. 크리스티는 여자의 목을 조른 뒤 강간했으며, 어린 아기까지 죽였다. 경찰은 이들의 시체를 아파트 건물 창고에서 찾아냈다. 크리스티는 어떤 식으로 마음 약한 에반스에게 거짓 자백을 하게 속인 것이 분명했다.
또다시 3년이 흐른 뒤, 한동안 살인을 하지 않던 크리스티는 어느 날 아내 에델을 공격했다. 크리스티는 아내를 살해한 뒤 시체를 마루 바닥 아래에 숨겼다. 그 후 더 이상 아내가 집을 비울 때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는 석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여자 세 명을 더 죽였다. 그리고 시체를 부엌 찬장에 방치했으며,1953년 3월 말에 이사를 떠나기 전 벽지를 바르는 것으로 시체를 대충 감추고 말았다.
크리스티가 체포되자 언론은 이 온순한 인상의 남자에게 ‘릴링턴 거리의 괴물’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의 범행에 경악한 것은 언론과 시민들만이 아니었다. 놀란 사법부는 크리스티를 체포한 지 불과 석 달만에 그를 교수형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