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쇄살인 역사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인 채로 남은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1918년 5월 23일 새벽이 밝기도 전인 시각, 알 수 없는 미치광이가 조셉 마지오 부부의 집에 침입해 부부의 머리를 도끼로 깨고, 면도칼로 목을 딴 다음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범인은 또 6월 28일 한밤중에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루이스 베수머의 집에 침입했다. 베수머는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지만 8월 5일에 끝내 숨졌다.
바로 이날 밤에 슈나이더라는 남편을 둔 임신한 한 여성이 침대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미치광이에게 공격을 받았다. 슈나이더 부인과 뱃속의 아기는 살아남았는데, 그녀는 경찰에게 어둠 속의 침입자에 대해서 막연하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5일 뒤, 폴린과 메리 브루노라는 어린 두 자매는 바로 옆 침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서둘러 갔을 때 그들은 어떤 사악한 인물이 막 달아나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침대에는 그들의 삼촌 조셉 로마노가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고 상당히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그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소녀들이 본 범인은 ‘검고 키가 크고 몸집이 좋았으며,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챙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뉴올리언스의 도끼 사나이, 폴린과 메리 브루
이 무렵 뉴올리언스에 밀어닥친 공포는 50년이 지난 뒤 ‘샘의 아들’로 알려진 유령 총잡이가 뉴욕 시티를 돌아다닐 때와 맞먹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침대 밑에 장전된 총을 두고 잠자리에 들었고, 경찰에는 누군가 자신의 집에 침입을 시도했다든지, 버려진 살인 흉기가 자기 집 뜰에서 발견되었다든지 하는 신고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또 그들은 신경불안 증세로 범인을 목격했다는 신고에도 시달려야 했다.
7개월 동안 잠잠하던 범인은 다시 범행을 감행했는데, 이번에는 뉴올리언스 강 건너편 그래트나의 마을이었다. 범인은 일가족 세 명을 공격했다. 부모인 찰스와 로즈는 골절로도 살아났는데, 두 살 된 딸은 죽었다.
나흘 뒤인 1919년 3월 14일, <뉴올리언스 타임스>지 사무실에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 화이트채플의 괴물에게 영원한 별명을 붙여주었던 편지와 마찬가지로 이 편지 역시 분명 누군가의 장난이었다. 편지를 보낸 인물은 자신을 ‘가장 뜨거운 지옥에서 온 악마’로 묘사했고, 자신이 3월 19일 밤에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 테지만, 재즈 음악을 틀어놓은 집만은 남겨두겠다고 단언했다. 그는 편지 말미에 ‘도끼 사나이로부터’라는 서명을 남겼다.
일종의 방어 기제로 오늘날에는 흔한 현상이지만, 재앙이 닥칠 때면 소름끼치는 농담을 하기 일쑤다. 당시 뉴올리언스 시민들은 자신들의 불안을 덜어내기 위해 어느 특정한 날 밤에 ‘도끼 사나이의 파티’를 열 것이고, 최신 유앻의 피아노 곡 ‘불가사의한 도끼 사나이의 재즈’를 연주한다는 등 으스스한 농담을 즐기게 되었다.
몇몇 용의자들이 체포되고 유죄선고를 받았지만, 살인행각은 그치지 않았다. 8월 10일에서 10월 27일 사이에 세 건의 사건이 더 발생했고, 도끼 사나이에게 희생된 수는 사망 6명, 부상 6명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살인 행각은 처음 발생했을 때처럼 언제부턴가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범죄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유력한 용의자로 마피아 암살자인 조셉 멈프리를 범인으로 지목했는데, 그는 도끼 사나이가 가장 마지막에 죽인 남성의 아내에게 총을 맞아 죽었다. 이 경우 도끼 사나이의 살인행각이 멈춘 것을 그의 죽음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으며, 어쨌든 현재로서는 도끼 사나이 살인 사건은 공식적으로 미해결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