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영이 동거녀와 행복하게 살기 위해 10억 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 12일까지 10개월 동안 9명을 죽이고, 9명에게 중경상을 입히며, 총 3억 3,046만원 상당의 금품을 강탈한 사건이다. 정두영은 위 범행기간동안 총 16회에 걸쳐 부유층 주택에 침입하여 피해자들을 칼과 흉기로 위협한 뒤 양손을 결박하고 두개골과 얼굴부위가 거의 으스러질 정도로 잔혹하게 가격하여 사망케 하였다. 범행현장이 매우 잔혹하였고, 강도로 위장하였으며, 피 묻은 옷가지 등을 태워 증거를 인멸한 후 도주하였다.
1999년 6월 2일 오전 10시경 정두영은 부산 서구 부민동의 한 부유층 주택에 침입하여 혼자 집을 보던 가정부를 칼로 위협 살해한 후 집안을 뒤져 다이아반지 등 6,725만원 상당의 금품을 강취하였다.
1999년 9월 15일 오후 5시경에는 부산 서구 동대신2가의 한 고급빌라 베란다 창문으로 침입하여 가정부를 참혹하게 살해한 후 1,580만원 상당의 금품을 강취하였다.
1999년 10월 21일 밤 11시 55분경 울산 남구 옥동의 한 고급주택에 침입하여 여주인(53세)과 아들(24세, 대학원생)을 무참히 살해하고 1,290만원 상당의 금품을 강취하였다.
2000년 3월 11일 오전 10시 30분경 부산 서구 서대신3동의 고급주택가에 침입하여 피해자 K씨 자매를 칼로 위협하면서 야구방망이로 때려 살해하고,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던 P씨의 부인을 칼로 위협하고 때린 뒤 롤렉스시계와 자수정 등 7,055만원 상당의 금품을 강취했다.
2000년 4월 8일 부산 동래구 온천3동의 J씨 집에 침입하여 집안에 있던 J씨와 그의 부인 및 가정부를 칼로 찔러 살해한 후 현금 4,080만원을 강취하고 1억 1천만 원 상당의 벤츠를 절취하여 도주하였다.
2000년 4월 12일 오후 2시 30분경 충남 천안 원성동의 K씨 집에 침입하여 인질강도를 벌이고 1,300만원을 강취한 뒤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검거과정을 보면, K씨 집에 침입한 정두영은 K씨의 부인 L씨로부터 현금 300만원을 빼앗고, L씨로 하여금 남편 K씨에게 전화를 걸게 하고 만 원짜리 지폐로 현금 1천만 원을 만들어 집으로 갖고 오도록 했다. 남편 K씨는 부인이 강도에게 인질로 잡혀있음을 직감하고 천안경찰서로 신고했다. 천안경찰서는 형사 10명으로 하여금 K씨 집 주변을 에워싸게 한 후 미리 준비한 돈을 인상이 후덕한 한 형사로 하여금 정두영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돈을 건네받은 정두영은 현관문을 열고 나왔으며 잠복해있던 형사들이 가스총을 쏘며 검거하려하자 담을 넘어 도망쳤다. 하지만 정두영은 300m 쯤 도주하다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정두영은 주로 여성과 노인 등 노약자들을 칼로 마구 찌르거나 야구방망이, 망치 등으로 피해자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구 쳐 죽이는 이른바 ‘과잉공격살인(over-killing)’을 자행했다.
정두영의 잔혹한 범행이 연일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범인이 위의 여러 범행들을 자백하기 전까지는 위 사건들이 동일범의 소행인지도 짐작하지 못한 경찰에게 많은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더욱이 10개월 동안이나 비슷한 장소에서 연쇄적으로 살인과 강도가 이어졌는데도 사건 현장 감식결과 유사점이 없다는 점을 믿은 경찰이 오히려 가족과 친지를 잃고 비탄에 빠져있는 피해자 가족이나 주변의 지인 등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펼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비판에 자극을 받은 경찰청은 미국연방수사국(FBI)처럼 특수범죄자의 심리상태를 조사․분석한 뒤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범인상을 추출하는 프로파일링(profiling)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2000년 4월 24일 전문가 10명이 참여하는 ‘범죄심리자문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이어서 강력범죄분석팀(VICAT)을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