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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사]베트남 전쟁사 - 137. 사이공 함락(2) - 북베트남군의 총공격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07.03|조회수3,848 목록 댓글 4

1975년 4월 14일 피난민들의 행렬

 

북베트남군 제2군단의 공격은 4월 26일 17:00에 12개 포병대대의 공격준비사격과 함께 개시되었다. 사이공에서는 대통령직을 고수하고 싶은 후옹(Huong)에게 사퇴하도록 한참 야단인 때다. 반정부 활동의 본거지로 유명한 안쾅(An Quang)사(寺)의 트리쾅(Tri Quang) 승려, 키(Ky), 노동 지도자 트란 쿠옥 부(Tran Quoc Buu) 등이 후옹 축출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국방장관인 돈(Don)과 참모총장도 후옹에게 사퇴를 권고하고 있었다.

트리 쾅 승려

 

트란 쿠옥 부

 

북베트남군 제304사단은 2시간 만에 롱탄(Long Thanh)의 기갑학교를 점령하였으나 보병학교에서는 남베트남군의 완강한 저항을 받았다. 당시 보병학교에는 달라트(Da Lat) 육사생도들이 철수하여 그곳에 있었고 기갑학교에서 철수한 장병들까지 합세하여 방어하였다. 그들은 방어선이 돌파당하면 계속 역습을 가하여 밀고 밀리는 전투가 4월 27일, 28일 내내 계속되었고 4월 29일 12:00까지 버티었다.

1975년 4월 28일 남베트남군이 사이공 시내에서 시가전을 벌이고 있다.

 

북베트남군 제325사단은 롱탄 외곽 지역을 점령한 후 공격을 계속하였고, 제3사단도 4월 27일 15:00까지는 푸옥레(Phuoc Le)를 점령하고 붕타우(Vung Tau) 방향으로 공격을 계속하였다.

북베트남군 제2, 4군단은 동나이(Dong Nai) 강과 사이공 강의 두 개의 강을 도하하여야 사이공 시내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공격을 서둘러야 했다. 제4군단은 비엔 호아(Bien Hoa) 공군기지를 공격하였으나 남베트남군 제18사단과 제3기갑여단도 만만치는 않았다. 남베트남군은 대전차호까지 구축하여 북베트남군 기계화 부대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4월 28일에는 북베트남군의 포격으로 비엔 호아 공군기지는 운용할 수 없게 되어 항공기를 탄손누트(Tan Son Nhut) 비행장과 제4군단 지역 트라녹(Tra Noc) 기지로 소개시켰다. 강상의 각 교량들을 뺏고 뺏기는 혈전이 계속되었다. 후방에 사전 침투한 적 특수부대들이 점령하면 증원부대가 이를 탈환하고, 증원부대가 돌아가면 다시 뺏는 식이었다. 이런 과정이 수차례 반복된 교량이 동나이 다리였다.

비엔 호아 공군기지를 공격하는 북베트남군

 

북베트남군 제1군단, 제3군단, 제232군의 진격도 신통치 않았다. 4월 28일까지 남베트남군이 설정한 주 방어선은 그런대로 지켜졌다.

남베트남군 레인저의 15세 소년병

 

4월 28일 오전 남베트남군 참모총장 카오 반 비엔(Cao Van Vien)은 연립정부의 구성은 곧 자신의 죽음을 뜻하기 때문에 북베트남과 타협이 가능한 것으로 믿고 사는 사람에 이 땅을 인계하고 떠나는 것이 현명하다는 구실로 미 대사관에 들어서면서 미 해병대 경계병에게 경례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가 별이 4개 달린 전투복을 벗어버리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테니스 코트장에서 헬기로 미 해군 함정으로 탈출하였다. 아직 전장에는 수만 명의 남베트남군이 북베트남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는데 군의 최고 선임자이며 티우가 사임한 이후 사실상의 군 총사령관이라는 사람이 모든 것을 팽개치고 혼자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일찍 도주를 한 것이다. 군은 제3군단장 토안(Toan) 중장과 사이공 방위사령관 구엔 반 민(Nguyen Van Minh) 소장이 지휘하고 있었고 총사령관은 없어진 것이다.

카오 반 비엔

 

사이공 방위사령관 구엔 반 민 소장

 

4월 28일 야간에 탄손누트 공항을 폭격하여 심리적인 충격을 준 후 4월 29일 05:00에 북베트남군 5개 사단은 일제히 치열한 공격준비사격을 실시한 후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1975년 공격받는 탄손누트 공항

 

북베트남군 제304사단은 오전 내내 혈전으로 보병학교를 3일 만에야 점령하고 롱빈(Long Binh) 기지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제325사단은 동나이 강 나루터에 도착하여 도하를 시작하였다. 제3사단은 오후에 붕타우를 점령하였다. 제324사단의 1개 연대는 1개 기갑연대와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여 15:00에 출발하였다. 그들은 남베트남군의 방어선이 무너지고 적이 와해될 때에 신속히 전과 확대하여 사이공 시내에 제일 먼저 진입할 부대로서 이미 새 군복을 착용하고 팔에는 붉은 완장을 차고 있었다.

북베트남군 제4군단은 비엔 호아 비행장을 3개 방향에서 계속 공격을 하였으나 탈취할 수가 없었다. 방어하고 있던 남베트남군 제18사단은 많은 손실을 입었고 제3기갑여단은 탄약이 부족하였으나 조치해 줄 만한 상급부대 지휘관이나 참모들은 탈출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북베트남군 제1군단이 공격하고 남베트남군 제5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빈두옹(Binh Duong) 전선은 4월 29일은 방어선이 지탱되었다. 북베트남군 제3군단의 공격을 받은 남베트남군 제25사단의 방어선은 무너졌다. 반메투오(Ban Me Tuot)를 점령하고 남베트남군의 중부 고원지대 철수 시 계속 공격하였던 북베트남군 제3군단의 공격을 받은 제25사단은 와해되었고 사단장 리톤바(Ly Ton Ba) 준장은 도주하였으나 후에 체포되었다. 북베트남군 제3군단은 쾅트룽(Quang Trung) 훈련소를 계속 공격하여 남베트남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리톤바 준장

 

북베트남군 232군의 공격을 방어하는 롱안(Long An) 전선의 남베트남군 제22사단도 전선을 확보하고 있었고 북베트남군의 일부가 4번 도로를 차단하자 피아 공방전이 벌어졌다. 제22사단도 많은 손실을 입었다.

총공격을 받은 남베트남군의 전선은 4월 29일 밤까지 사이공 외곽 10~20㎞ 지역에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5:1 이상의 전투력 차이와 높은 사기는 일거에 남베트남군을 압도할 수 있었는데도 공격은 사실 지지부진이었다. 남베트남군에 부족한 것은 예비부대였고 북베트남군에게 부족한 것은 훈련, 과감성, 독단능력 등이었다. 북베트남군의 신병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남베트남군 제4군단 지역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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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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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리블루 | 작성시간 13.07.03 게시판 생성 이후 새글 알림 기능을 쓰니 좋네요ㅎㅎ

    사이공 함락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역시 인간과 쥐를 구분하는 순간은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을때 인가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7.03 그나저나 게시판이 새로 생겼는데 이 연재가 거의 끝나가서 걱정입니다. 아직 후속 연재 준비가 안됐는데...
  • 답댓글 작성자리블루 | 작성시간 13.07.03 그동안 하셨던 연재를 다시 읽는데만도 꽤 시간이 걸리니 느긋하게 준비하셔도 될겁니다.
    이왕 게시판 생긴 김에 정주행하면 되니까요ㅎㅎ
  • 작성자2Pac | 작성시간 13.07.04 남베트남 지도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추적해도 잼날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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