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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니~ 작성시간13.09.13 소련이 한국으로 내려오면서 일본이 일제시대 때 만들어 놓았던 수풍댐의 발전기 일부도 뜯어가고 각종 산업시설의 기계들도 같이 가져갔다고 합니다. 식근론이 무색해지지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011800209204003&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2-01-18&officeId=00020&pageNo=4&printNo=15472&publishType=00020 -
답댓글 작성자 세니~ 작성시간13.09.14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70000000600/3/70070000000600/20041128/8133035/1
"조선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는 1945년 10월 3일자 사설에서 ‘(소련이) 중공업 부문에 속한 기계를 뜯어간다느니, 고주파공장의 기구를 가져간다느니 하는 얘기는 허무맹랑한 소리이며 계급적으로 반동을 획책하려는 모략’이라며 소련을 감쌌다.
그렇지만 소련도 북한 주민들의 반소 정서를 더 이상 방치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1946년 6월 12일 스티코프는 스탈린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조선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산업시설을 조선 인민에게 넘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
답댓글 작성자 세니~ 작성시간13.09.14 그리고 그해 7월 27일 소련 각료회의는 스티코프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제가 만든 산업시설을 북조선인민위원회로 이관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그해 8월 10일 ‘산업·교통·운수·체신·은행 등의 국유화에 관한 법령’이 공포되고, 그해 10월 이들 산업시설의 이관이 완료된다. 그러나 121개의 광산을 포함해 상당수 산업시설과 북한에서 송환된 일본인들의 소유재산은 아직 소련군 관할 하에 있었다. 어쨌든 산업국유화 이전까지 북한은 일제강점 때와 다름없이 소련의 경제적 수탈에 무방비상태로 놓여 있었다. 다만 수탈의 주체만 바뀌었을 뿐이다"
으헝 돌려주긴 돌려줬었네요 타메를랑님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9.13 그리고 어떤 전투가 유명세를 얻으려면 전투 기간도 좀 있어야 되고 약간 드라마틱한 극적 요소가 있어야 되는데 8월 폭풍 작전은 그런 게 부족하죠. 시작하자 마자 어린애 팔비틀기처럼 관동군이 녹아내렸으니까요. 비슷한 예로 북태평양의 아쓰 섬이나 키스카 섬 전투가 역시 그렇습니다. 작전의 중요성이나 규모에 비해 별로 알려진 바가 없죠. 반대의 경우엔 안지오 전투가 대표적입니다. 연합군이 안지오에 상륙해서 교두보 구축하는 동안 독일군은 방어선 다 완성하고 서로 대치만 하고 있었죠. 그런데도 안지오 전투는 전투 기간이 좀 길다보니 기자들이 모여들어서 화제가 되고 결국 로마의 함락으로 이어져서 더욱 유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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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9.13 이 전투로 당시 미군 지휘관 마크 클라크 중장이 유명세를 타게되고 훗날 그가 한국전쟁에서 유엔군 사령관까지 출세하는데 영향을 주게 되죠. 근데 알고 보면 클라크 중장은 별로 한 일도 없습니다. 실제로 안지오에서 독일군이 물러나게 된것은 남쪽의 몬테카시노 전선이 뚫려서 포위를 피하기 위해 독일군이 후퇴한 거죠. 당시 전선 사령관인 영국의 알렉산더 대장이 클라크에게 독일군을 추격하라고 명령했지만 클라크는 가볍게 이 명령을 씹어버리고 로마로 입성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할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