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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사]중일 양군이 사용했던 무기들 5.중국군 함선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12.21|조회수960 목록 댓글 2

개전 당시 중국 해군은 5개 함대 120척의 군함, 총 배수량 6만톤에 병력은 약 12000명(해군 육전대 3800명 포함)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1932년 일본을 통해 건조한 영해(寧海)호와 이를 국산화시켜 1936년 상해의 강남조선소에서 건조한 평해(平海)호를 제외하고는 청말에 건조한 수척의 낡은 방호 순양함과 연안 경비용의 소형함이 전부였습니다. 전형적인 약소해군으로 海防은 커녕 연안 순찰조차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웠고 주력 함대는 상해전역 초반 상해 북서쪽 100km떨어진 양자강 하류의 요충지이자 중국 해군의 군항인 강음(江陰)항에서  일본 지나파견함대와 벌어진 해전에서 항공모함과 대만에서 출격한 일본 폭격기들의 대규모 공습을 받아 격침당하거나 자침 또는 나포당했습니다. 남은 소수는 양자강 중류에서 기뢰를 살포하고 치고 빠지기식의 유격전술로 일본군의 정크선단에 큰 피해를 입히고 병참선을 위협하였습니다.

 

비록 전쟁기간 막강한 일본 해군을 상대로 제대로 된 해전 한번 치루지 못했으나 청일전쟁 당시 청국함대나 1차대전때 카이저의 값비싼 장식품들과 달리 이들은 전투를 회피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매우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또한 중국의 조선능력이 열악한 환경에서 1920년대말부터 급성장하여 연안용 포함은 물론 3천톤급의 군함을 건조할 정도의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죠. 수상정찰기를 자체 설계 제작하는 한편, 함포와 탄약 또한 어느 정도 국산화에 성공하였습니다. 

 

사실, 현재까지도 중국 교과서에서는 모택동의 말을 빌려 “첫째로 가난하였고 둘째로 결핍되어 있었으며(一窮二白) 중국의 공업은 모두 소련이 대신 만들어 주었다”라면서 “洋火洋釘”이라 하여 성냥과 못조차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기 이전의 중국은 단지 낙후된 봉건 사회일 뿐, 공산당이 내전에 승리하고 1950년 중소원조조약이 체결되어 소련의 원조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산업화가 시작되었다는 식이죠.

 

그러나 이런 보수적인 접근은 전적으로 왜곡이며 중국 근대의 자생적 역량을 지나치게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성냥과 못은 고사하고 트럭과 대포, 항공기에 군함까지 국산화하고 있었던 것이 당시의 모습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구한말의 모습을 막연히 부정적으로만 폄하해 왔던 것이 근래에 와서 강력하게 비판받고 있듯, 중국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해천급(海天) 방호순양함 해기(海圻). 청일전쟁에서 대부분의 군함을 상실한 청나라는 해군 재건 계획을 추진하여 정원급을 대체할 함으로 1896년에 영국의 암스트롱사에 2척을 주문하여 1899년에 인도받습니다. 1번함인 해천은 1904년에 좌초당해 침몰했으나 2번함인 해기는 신해혁명 이후 손문의 혁명군에 가담하여 북벌전쟁 등에 참여하였습니다. 1930년에 현대화 개장을 하여 다수의 대공 기관총을 설치하였습니다. 해기호는 제1함대에 편입되었으며 비록 1차대전 이전의 구형함이기는 했지만 중국이 보유한 가장 큰 군함이자 세계 일주를 한 첫번째 군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일전쟁 초반 다른 함들과 함께 일본 해군의 양자강 진입을 저지하다 9월 15일 일본 해군 폭격기들의 공습을 받아 좌초당합니다. 함선은 자침시키고 주포와 부포는 해체한 후 무한의 강방요새 건설에 사용합니다.

 

○ 제원 : 배수량 4300톤, 길이 129.3m, 폭 14.3m 속도 24노트 승무원 476명 엔진 17000마력, 항속거리 4800km 주포 : 20.3cm/45구경 속사포 2문 부포 12cm/40구경 속사포 10문 47mm/43구경 16문 어뢰발사기 5문 37mm 대공기관총 4기 등     ※ 사진출처 : http://ww2db.com/ship_spec.php?ship_id=815

 

해용급(海容) 방호순양함. 1897년 독일의 AG 불칸(Vulcan)사에 3척을 주문하여 1898년에 인도받았습니다. 해용, 해주(海筹), 해침(海琛) 세 자매는 신해혁명 이후 장작림의 동북해군에 편입되었으나 만주사변 이후 탈출하여 국민정부측으로 전향하였고 해용과 해주는 제1함대에, 해침은 제3함대에 편입되었습니다. 1930년대 초반 현대화 개수를 받아 몇개의 부포를 제외하고 다수의 대공기관총을 설치하였습니다. 이들 역시 중일전쟁 초반 해기함과 함께 일본 해군에 맞서 양자강 진입을 저지하다가 일본 폭격기들의 폭격으로 3척 모두 침몰하였습니다.

 

○ 제원 : 배수량 2950톤, 길이 100m, 폭 12.4m 속도 19.5노트 승무원 244명 엔진 7500마력, 항속거리 4000km 주포 : 15cm/40구경 속사포 3문 부포 10.5cm/40구경 속사포 8문 47mm/43구경 6문 기관총 6정, 어뢰발사기 3문       ※ 사진출처 : http://navalhistory.flixco.info/H/303222/8330/a0.htm

 

영해급 경순양함 영해(寧海)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이전인 1931년 2월 해군력과 강화와 일본과의 친선 차원에서 건조를 주문하였고 구레 군항에서 건조됩니다. 건조 비용은 432만원으로 해군 연간 예산의 2배가 넘는 돈이었습니다. 꽤나 큰 맘 먹고 산 것이죠. 만주사변과 뒤이어 벌어진 제1차 상해사변으로 중일 양국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음에도 1932년 8월 중국에 정상적으로 인도되어 9월 1일 정식으로 제1함대에 배속되었습니다. 말이 경순양함이지 실상 대형 구축함에 가까운 것이었고 화력은 꽤 강력했지만 속도는 고작 22노트에 출력도 9500마력에 나 불과하였습니다. 날림으로 만든 인스턴트 군함이었지만 1930년대 이후 중국이 보유한 최초의 현대식 군함이었습니다.

 

또한 중국은 자체적인 군함 건조 능력을 갖추기 위해 상해 강남 조선소에서 1500톤급 포함 일선(逸仙)을 건조한 직후 이어서 영해의 건조와 병행하여 일본의 기술 지원을 받아 1931년 6월부터 2번함의 건조를 시작하였고 1936년 6월 18일 평해(平海)를 진수하였습니다. 이는 남경정부 시절에 건조된 최대급 군함이었습니다. 평해는 대공기관총 등 대공방어력을 좀 더 강화하였고 부분적으로 개량되었습니다.

 

한편, 중국은 수상 정찰정을 자체 기술로 개발하여 영해에 탑재시켰습니다. 속도는 200km/h대에 세계적으로 우수한 성능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나 중국이 국산 수상기를 설계 생산했다는 것 자체가 주목할 만한 사실이죠. 그동안 중국은 항공기 생산은 커녕 개발 기술조차 전무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미지이니까요.

 

중국 해군의 기함으로서 양자강과 중국 연해의 순찰 임무를 주로 수행했으며 중일전쟁과 함께 양자강 차단 임무를 수행하다 9월 23일 두 자매 모두 일본기의 폭격을 받아 대파된채 일본군에게 노획당하여 일본 사세보 항으로 끌려가 각각 로시마, 야소시마로 이름을 바꾼채 일본 연안을 경비하는 해방함으로 사용되다 영해는 1944년 9월에, 평해는 11월 25일에 미군의 공습을 받아 격침당하여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합니다.

 

○ 제원 : 배수량 2500톤, 길이 109m, 폭 11.89m 속도 23노트 승무원 361명 엔진 9500마력, 항속거리 9300km 주포 : 14cm/50구경 2연장포 3문 부포 7.62cm/40구경 고각포 6문(평해 88mm 고각포 3기, 57mm 단장포 4문) 4cm/39구경 기관포 8문, 8mm 기총 10정, 어뢰발사기 2문, 수상정찰기 1대  

※ 사진출처 : http://zh.wikipedia.org/wiki/%E5%AF%A7%E6%B5%B7%E7%B4%9A%E8%BC%95%E5%B7%A1%E6%B4%8B%E8%89%A6

 

독일제 고속어뢰정(Schnellboot, S-boat). 1930년대 초반 개발되어 2차대전중 독일 해군의 주력 어뢰정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탈리아, 불가리아, 스페인 등에도 수출되었습니다. 선체가 나무로 만들어져 기뢰로부터 안전했으며 40노트 이상의 빠른 속도와 1000km가 넘는 긴 항행거리 덕분에 장거리 외양작전도 가능하여 영국을 상대로 U-보트와 함께 통상파괴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중국은 1933년에 3척의 어뢰정을 구입하였는데 중일전쟁중 2척이 격침당하고 1척은 끝까지 살아남았으나 국공내전중 인민해방군으로 넘어갑니다. 이 이외에도 1930년대 초반 광동해군이 영국으로부터 수입한 배수량 15톤에 정원 5명의 연안용 초소형 어뢰정 8정이 있어 무한을 중심으로 양자강 상류와 중류에서 일본군 수송선들을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 제원 : 배수량 100톤, 길이 32m, 폭 5m 속도 43.8노트 승무원 30명 엔진 3960마력, 항속거리 1400km 20cm/30구경 2연장포 1문 20cm/30구경 단장포 1문 37mm/42구경 1문, 어뢰발사기 2문

※ 사진출처 : http://zh.wikipedia.org/wiki/File:Germaneboa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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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일 | 작성시간 13.12.21 부분적인 역량은 대단한면도 있었으니 군벌들이 난립하지않고 통일됬으면 거대한 힘을 발휘했겠네
  • 작성자프리드리히대공 | 작성시간 13.12.21 경순양함도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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