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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사]중일 양군이 사용했던 무기들 9. 일본군의 전차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12.30|조회수1,305 목록 댓글 3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솜전투에서 영국군의 MK.1 전차가 전장에 등장했을때 비록 덩치만 클 뿐 기계적인 문제점으로 인한 잦은 고장과 적의 야포에 쉽게 파괴되었으나 그 무한한 잠재력에 주목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열강들은 물론 가난한 약소국가들조차도 전차를 소량이나마 수입하여 전차부대를 편성하기 시작합니다. 일본 전차의 역사는 1918년 10월 24일 영국제 MK.4 전차 1대를 수입하여 요코하마 항을 통해 들어온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프랑스제 르노 FT-17 경전차와 영국제 휘펫(Whippet) 중전차를 몇대 들입니다.

 

1920년대 중반 육군 대신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의 주도로 군의 감축과 함께 장비의 근대화를 추진합니다. 이에 따라 1925년 치바현의 육군보병학교에서 2개 전차 대대(1개 대대마다 르노 FT-17 5대와 휘펫 전차 3대로 편성)를 구성하여 일본 최초의 전차부대가 편성됩니다. 또한 전차의 국산화에 도전하여 영국으로부터 비커스 경전차를 수입한후 이를 베껴 1929년(황기 2589년) 4월 최초의 일제 전차인 89식 중전차를 개발하게 됩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연합군에 맞서 다양한 전차와 장갑차량을 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세계 각국의 전차들이 모두 고만고만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강력한 重전차들이 속속 등장하여 전장을 지배하면서 일본의 경전차들은 한낱 "달리는 철관"에 불과한 신세로 전락합니다. 장갑도 매우 빈약했고 화력도 형편없었으며 강판제조기술의 낙후, 기계적 신뢰성도 낮아 전장에서 거의 쓸모가 없었죠. 따라서 이탈리아와 나란히 최악의 전차 국가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더욱이 일본 육군의 전차 교리는 적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한낱 보병을 위한 이동식 화력 지원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사실 중국 동부지역은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광활한 평야이고 험준한 산악이 없어 대규모 전차를 운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지형이었기에 만약 일본이 독일처럼 전차부대를 집중 운용할 능력이 있었다면 대전차 병기가 빈약한 중국군을 순식간에 유린하고 포위 섬멸하여 조기에 전쟁을 끝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본군에게 공세의 주력은 러일전쟁때와 다를바 없이 보병이었고 단지 차이가 있다면 항공기의 근접지원이 있다는 점이었죠. 반면, 전차는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전쟁기간 내내 전차의 존재 가치가 있으나 없으나 했던 이유는 기술력 때문도 있지만 군 수뇌부의 보수적인 사고때문이기도 했죠.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군의 대규모 전차부대 앞에서 호되게 당한 이후(사실 군 수뇌부는 값비싼 전차들을 잃을까봐 소수만 남기고 죄다 싸우지도 않고 후퇴시켰습니다. 덕분에 병사들만 죽어났죠. 병사들이야 값싼 소모품이니.) 태평양 전쟁 초반 오합지졸에 불과한 식민지 군대를 일방적으로 조질때 반짝 활약한 다음 미군이 본격적으로 반격하자 유럽전선에서는 정찰용으로나 사용하는 M3 스튜어트 경전차조차 제대로 상대하지 못할 만큼 일본 전차들은 무력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중국전선에서 일본이 유일하게 전차부대를 대거 운용한 것은 1944년 "이치고작전(대륙타통작전)"이었습니다. 중국군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전차부대는 중국군의 최일선을 단숨에 유린하였습니다. 그러나 버마전선에서 승리한 중미연합군이 미제 대전차 무기와 M3 경전차, 2.36인치 바주카포로 무장하면서 1945년 3월 일본군 최후의 공세였던 지강, 노하구 전투에서 제3기갑사단은 전멸당하고 맙니다. 일본군은 전쟁 끝날때까지 총 4개 기갑사단을 편성했으며 본격적인 기동부대로서 기갑군의 편성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전황이 악화되고 높은 소모율, 전차부대가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1939년 중국전선에서의 89식 중전차 치로. 일본은 영국 비커스사로부터 비커스 C형 경전차를 수입하여 이를 베이스로 1926년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 "시제 1호 전차"가 개발되었으나 중량은 18톤에 달하는데다 속도는 고작 20km/h도 안되는 등 문제점이 많아 이를 보다 개량하여 1929년 4월 "2호 전차"를 개발합니다. 그리고 1929년 12월 89식 경전차 치로라는 이름으로 제식화되어 본격적으로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935년부터 20톤이상은 重전차, 10톤~20톤은 中전차, 그 이하는 경전차로 구분하기로 정해지면서 12t인 89식은 중전차로 분류됩니다.(참고로 1930년대에 91식重전차와 95식重전차가 제작되었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정식 채택되지는 못했으며 전쟁말기에 와서야 비로소 30t의 4식 중전차가 제작되어 제식 배치되었으나 생산량은 극히 적었고 본토결전용으로 배치되어 막상 실전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엔진은 당초 독일 다임러사로부터 120마력 가솔린 엔진을 수입해 탑재했으나 비용 절감 및 엔진의 국산화를 명목으로 미쓰비시사 수냉식 100마력짜리 디젤엔진으로 교체합니다. 90식 57mm/18.4구경장 단포신을 탑재하였고 장갑은 전면이 17mm, 측면과 후방은 15mm로 기관총탄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전형적인 보병지원전차로 대전차 전투는 전혀 상정하지 않았는데 사실 89식 중전차가 등장하는 때만 해도 이런 사고는 딱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국산 엔진을 탑재한 것은 좋았으나 기술 부족으로 출력이 형편없고 고장이 잦았으며 현가장치의 문제로 진동이 매우 심할 뿐더러 무한궤도 역시 쉽게 파손되는 등 주행성능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최대속도 25km/h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보병의 행군 속도인 8~12km/h 정도였죠.

 

만주사변에서 관동군에 의해 데뷔한 89식 중전차는 르노 FT-17과 함께 북만주에서 마점산군을 손쉽게 유린했으며 상해사변과 열하사변, 장성전투에서 이렇다할 전차나 대전차 무기가 없는 중국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열하작전중 열하성의 성도인 승덕을 공략하면서 89식 중전차들은 이동중에 죄다 고장으로 퍼져버려 막상 전투에는 투입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1930년대 중반 장개석의 주도로 독일로부터 대전차포를 수입하면서 상해, 남경전투에서 여러대의 전차가 격파당했고 서주 회전, 무한 회전, 남녕전투 주요 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었습니다.  특히 노몬한 전투에서는 소련제 T-26, BT전차에게 일방적으로 격파당하죠. 태평양전쟁 초반 필리핀 전역에서 소량 투입되기도 했으나 주로 예비용이나 중국전선에서만 운용됩니다. 1930년부터 1939년까지 총 400여대가 생산되었습니다.

 

○ 제원 : 중량 12t, 최대 속도 25km/h, 엔진 100마력, 주포 90식 57mm/18.4구경장, 6.5mm 91식 경기관총 2정, 장갑 최대 17mm, 승무원 4명       ※ 사진출처 : http://blog.daum.net/pzkpfw3485/2242004

 

일본군의 새로운 군마 92식 중장갑차. 일본 육군 내부에서 전차 개발은 전적으로 보병과가 주도하고 있었는데 우가키 군축으로 기병이 대거 감축되고 참모본부 일각에서 기계화부대가 지배하는 미래의 전장에서는 더이상 기병이 필요없다는 기병 폐지론까지 나오면서 기병과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기병학교에서는 르노 FT-17 경전차나 "콩알전차"라 부르는 카텐로이드 탱케트 등을 샘플로 연구하여 군마를 대체할 장갑차 개발에 나섭니다. 그렇게 해서 1932년 2월 시제차량이 제작되었고 92식 중장갑차라고 이름이 붙어졌는데 굳이 "전차"라고 하지 않고 "장갑차"라고 한 이유는 전차 개발을 독점하고 있는 보병과와의 마찰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육군과 해군간의 극단적일 정도의 갈등은 아주 유명하지만 이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고 군 내부에서 조직 이기주의와 폐쇄주의, 배타주의는 일본군의 고질적인 병폐였습니다.

 

기병부대답게 화력이나 방어력보다는 오로지 기동성에만 집중하여 3.5톤의 무게에 45마력 엔진을 탑재해 최대 40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무기는 92식 13mm 기관포 1문과 91식 경기관총 1정을 탑재하였습니다. 당시 장갑차들은 장륜형 바퀴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전차처럼 장궤식이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전반적으로 볼때 이탈리아의 CV-33과 비슷하지만 말이 "重장갑차"이지 장갑은 고작 6mm에 불과해 방어력이 빈약하기로 이름난 CV-33보다도 못하여(차체장갑 13mm) 기관총은 물론이고 심지어 소총탄에도 관통되기 일쑤였고 어딘가에 충돌했다가 충격만으로 차체가 폭발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차체가 지나치게 길어 기동중 방향 전환이 어려웠고 13mm 기관포는 대인용으로 쓰기에는 발사속도가 너무 느리고 견고한 적진지나 장갑차량을 공격하기에는 화력이 빈약했습니다. 후기형 중에는 13mm 기관포 대신 94식 37mm 대전차포를 탑재한 것도 있었습니다.

 

관동군과 조선군의 기병여단 산하에 배치되어 만주사변에서 마점산군과의 전투에 투입되었고 열하작전에서는 승덕 공격때 이동중에 퍼져버린 89식 중전차들을 대신해 선봉에 서기도 했습니다. 주로 만주와 중국전선에 배치되었으나 빈약한 성능 덕분에 1937년부터 95식 경전차와 97식 경장갑차로 점차 대체되지만 노몬한전투에도 투입되어 악몽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단가는 89식 중전차의 1/3 정도였는데 대량생산되지는 않았으며 1933년부터 1939년까지 총 167대가 생산됩니다.

 

○ 제원 : 중량 3.5t, 최대 속도 40km/h, 엔진 46마력, 주포 92식 13mm 기관포, 6.5mm 91식 경기관총 1정, 장갑 최대 6mm, 승무원 3명       ※ 사진출처 : http://ja.wikipedia.org/wiki/%E4%B9%9D%E4%BA%8C%E5%BC%8F%E9%87%8D%E8%A3%85%E7%94%B2%E8%BB%8A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초반 일본의 실질적인 주력 전차였던 95식 경전차 하고(ハ号). 일본은 다수의 값싼 경전차에 소수의 고가의 중전차로 편성하여 경전차는 대전차전투의 주력을 맡고 중전차는 대구경 포를 탑재해 보병지원전차로 사용한다는 개념이었습니다. 이는 전쟁 초반 독일이 3호 전차가 대전차전을, 4호 전차를 화력지원에 사용했던 것과 유사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체급이 한단계 낮다는 것.

 

89식 중전차는 속도가 너무 느려 발로 움직이는 중국군을 추격하는 것도 무리였습니다. 보병을 탑승시킨 트럭들과 보조를 맞추어 기동전을 벌이는 것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죠. 12t의 무게는 타국의 기준에서는 경전차에 불과했지만 수송선의 탑재나 양륙, 하천을 도하하는데 많은 문제가 있었고 더욱이 가격이 비싸고 생산 효율이 낮아 월 2~3대를 생산하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일본의 능력으로는 그 절반인 6t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판단한 육군은 본격적인 기계화 부대를 편성하기 위해 값싸고 생산하기 쉬우며 적을 추격하기 좋은 기동성 좋은 신형전차의 개발에 나섭니다. 1935년 11월 시제차량이 완성되었고 12월에 95식 경전차 하고로 명명되어 1936년부터 생산이 시작됩니다.

 

당시로서는 표준 대전차포인 94식 37mm 대전차포를 탑재했는데 일본제 대전차포의 성능은 같은 구경이라도 독일이나 영국 등에 비해 뒤떨어졌습니다. 초속이 낮아 관통력이 떨어졌고 철갑탄 역시 주물 기술의 부족으로 위력이 낮았습니다. 또한 장갑은 전면이 12mm, 측면과 후면은 10mm에 불과해 위의 물건보다야 조금 낫다지만 여전히 소총탄에 관통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태평양전선에서는 미군의 중기관총 사격을 받자 철판이 슝슝 뚫립니다. 말이 경전차이지 장갑차만도 못했죠. 태국은 50대를 수입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공에 사용하기도 했는데 열대의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장갑이 쩍쩍 갈라져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태반이 고철이 됩니다.

 

대전 기간 97식 중전차와 함께 주력으로 사용되었으나 미군의 M3 경전차와 M4 중전차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기에 대부분 학살당하지만 그렇다고 연합군에 대적할 수 있는 후속 전차를 신속하게 개발하지 못해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다수가 중국군에 노획되어 공산군은 97식 중전차와 95식 경전차로 전차부대를 편성해 국부군과의 전투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총 2,378대가 생산되어 가장 많이 생산된 전차이기도 했으나 전쟁이 끝났을때까지 살아 남은 것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1938년에 95식 경전차를 부분 개량한 98식 경전차가 등장했으나 전면 장갑을 16mm 강화한 것과 130마력 엔진과 100식 37mm/45.9구경장 대전차포로 교체했다는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었으며 생산량 역시 113대에 불과했습니다.

 

○ 제원 : 중량 7.4t, 최대 속도 40km/h, 엔진 120마력, 주포 94식 37mm/36.7구경장 대전차포, 7.7mm 97식 중기관총 1정, 장갑 최대 12mm, 승무원 3명  ※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pzkpfw3485/2242318

 

 

1937년 12월 남경전투 당시 중화문으로 돌진하는 94식 경장갑차 중대. 이들은 중국군의 독일제 37mm Pak/36 대전차포의 사격으로 4대가 격파당하고 7명이 전사하죠.

 

94식 경장갑차는 92식 중장갑차와 마찬가지로 영국제 카텐로이드 경전차를 베이스로 한 탱케트인데 원래는 전장으로 연료와 탄약을 수송하기 위한 용도로 1933년에 개발됩니다. 따라서 개발될 때에는 "장갑견인차"로 분류되었으나 참모본부에서는 장갑차로도 쓸만하다고 판단하여 1934년에 94식 경장갑차로 개칭되어 생산을 시작합니다. 중일전쟁 초반 일본 기계화부대의 주력으로서 89식 중전차와 콤비를 이루어 화북과 상해, 남경 등 주요 전장에 투입됩니다. 성능은 92식 중장갑차보다는 조금 나았으나 여전히 화력과 방어력이 형편없었고 소총탄조차 막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남경전투에서 다수가 파괴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주로 정찰과 지휘, 후방 치안에 사용되었으며 일부가 중국군에게 노획되어 전차병의 훈련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1940년까지 총 843대가 생산됩니다.

 

○ 제원 : 중량 3.5t, 최대 속도 40km/h, 엔진 35마력, 주포 91식 6.5mm 경기관총 1정, 7.7mm 97식 중기관총 1정, 장갑 최대 12mm, 승무원 2명     ※ 사진출처 : http://ja.wikipedia.org/wiki/%E4%B9%9D%E5%9B%9B%E5%BC%8F%E8%BB%BD%E8%A3%85%E7%94%B2%E8%BB%8A

 

 

셔먼 전차의 등짝에 실린 94식 경장갑차. 엄마등에 탄 아들같군요. 이 사진도 꽤나 유명하죠.

※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mirejet?Redirect=Log&logNo=110072076041&from=postView 

 

 

1944년 임팔전선에서 영국군에게 노획당한 97식 경장갑차 테케. 94식 경장갑차의 빈약한 화력과 엔진 마력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1936년에 개발되어 1937년부터 제식 배치됩니다. 기관총 대신 95식 경전차에도 탑재된 94식 37mm 대전차포로 교체하였고 빈약한 35마력 가솔린엔진에서 65마력 디젤엔진으로 강화되었습니다. 또한 일부 차량에는 지휘와 작전 연략을 위해 무전기를 탑재하였습니다. 조종수의 차창에는 방탄유리를 붙여 조종수를 보호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개량되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대전차포가 달렸다는 것 외에는 큰 차이는 없지만요. 엔진 교체에도 불구하고 중량이 늘어나 속도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또한 승무원을 3명으로 늘리려고 했으나 중량이 늘어난다는 유로 반영되지 못합니다. 주로 사단 정찰대나 기병 여단에 배치되었습니다.

 

노몬한에서는 악몽을 겪었지만 대신 말레이 전역에서는 작은 차체와 신속한 기동력으로 전차가 울창한 삼림에서는 기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영국군의 허를 찔러 단숨에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나 미군의 반격이 본격화되자 더이상 활약할 기회 없이 각 섬의 방어전에서 야금야금 소모되었고 일부는 중국전선에서 중국군에게 노획되어 국공내전에서 국부군과 공산군 양진영에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1938년부터 1942년까지 총 557대가 생산되었습니다.

 

○ 제원 : 중량 4.25t, 최대 속도 40km/h, 엔진 65마력, 주포 94식 37mm/36.7구경장 대전차포, 7.7mm 97식 중기관총 1정, 장갑 최대 12mm, 승무원 2명     ※ 사진출처 : http://ja.wikipedia.org/wiki/%E4%B9%9D%E5%9B%9B%E5%BC%8F%E8%BB%BD%E8%A3%85%E7%94%B2%E8%BB%8A

 

 

제2차 세계대전중 일본의 주력中전차였던 97식 中전차 치하. 일본은 전쟁기간내내 95식 경전차와 97식 중전차를 전차부대의 주력으로 편성하여 사용하였습니다.

 

89식 중전차에서 발견된 각종 문제점을 개선하고 기동성과 방어력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1936년부터 신형전차의 개발이 시작되어 중일전쟁 직전인 1937년 6월 두종류의 시제차가 제작됩니다. 갑형(치하)은 13.5t으로 좀 더 대형이면서 포탑에 두정의 기관총을 탑재할 수 있는 반면 을형(치니)은 10t으로 포탑이 작아 한정의 기관총만 탑재할 수 있었습니다. 성능에서는 갑형이 우세하지만 가격과 생산력에서는 을형이 우세했습니다. 논란끝에 육군에서는 갑형을 채택하여 97식 중전차로서 채택됩니다.

 

150마력 공냉식 디젤엔진과 전면 장갑 25mm, 측면과 후면 장갑 20mm로 89식 중전차에 비해 엔진과 방어력을 강화한 반면, 화력은 89식과 동일한 57mm/18.4구경장 단포식 유탄포를 탑재했습니다. 개발 목적이 보병의 지원에 있었기 때문인데 동시기 타국에서는 이미 본격적인 대전차전을 목적으로 하는 중전차를 차례로 내놓고 있었으니 한 5년전이라면 몰라도 등장 시점에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전차였습니다. 57mm 단포식 유탄포는 비슷한 체급의 소련제 T-26이나 BT전차, 미제 M-3 스튜어트 경전차를 상대로 근거리에서조차 관통이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장갑에서도 매우 빈약했는데, 개발당시 일본의 주력 대전차포인 94식 37mm대전차포로 150m 거리에서 쏘았을때 막아내어 방어력이 충분하다고 착각하고 생산을 시작했더니 그 직후에 중국으로부터 노획한 독일제 37mm 대전차포로 300m에서 사격했는데도 간단하게 관통되어 그제서야 자기들의 무기가 조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노몬한 전투와 태평양전쟁 초반 연합군의 전차들 앞에서 97식 중전차의 취약성을 뒤늦게 깨닫고 1식 47mm 대전차포로 개조한 97식 改가 개발되어 M3 스튜어트 경전차와는 맞상대가 가능했으나 미국은 더 강력한 M4 셔먼을 배치하면서 무용지물이 됩니다. 전쟁 기간 총 2,123대가 생산되어 95식 경전차와 함께 가장 많이 생산된 전차였으며 만주와 중국전선, 남방전선 등 주요 전장에 투입되었으나 우세한 연합군의 공격 앞에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1945년 8월 일본 항복후 소련군은 관동군으로부터 노획한 97식 전차 100여대를 공산군에게 제공하여 인민해방군 최초의 전차부대로 편성됩니다.

 

○ 제원 : 중량 15t, 최대 속도 38km/h, 엔진 150마력, 주포 97식 57mm/18.4구경장 대전차포, 7.7mm 97식 중기관총 2정, 장갑 최대 25mm, 승무원 4명     ※ 사진출처 : http://ja.wikipedia.org/wiki/%E4%B9%9D%E5%9B%9B%E5%BC%8F%E8%BB%BD%E8%A3%85%E7%94%B2%E8%BB%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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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열혈청년 | 작성시간 13.12.30 왜(작은)놈들 답군요.
  • 작성자명일 | 작성시간 13.12.31 소총탄도 못막는 전차
  • 작성자신격카이사르 | 작성시간 14.01.03 WOT에서 일본트리 나온다고 할때 과연...이라고 생각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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