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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피아]미국 마피아 - 22. 알 카포네의 계승자 폴 리카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4.01.27|조회수1,142 목록 댓글 0

알 카포네가 구속되어 수감된 것으로 인하여 시카고 마피아가 크나큰 타격을 입고 괴멸되다시피 하였을까? 한때 미국의 시카고에는 알 카포네라고 하는 흉악한 갱이 있었다. 그가 한참 잘 나가던 때에는 시카고의 밤거리를 온통 지배하다시피 하였지만, 엘리엇 네스와 그가 이끄는 특별수사팀이 활약하여 카포네를 감옥에 집어넣은 다음에는 시카고에도 드디어 평화가 돌아왔다 - 고 하는 동화와 같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시카고 마피아에 대한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물론 어떤 조직이든지 그 조직의 보스, 또는 대표가 되는 사람의 역할을 막중한 것이다. 그 사람의 역량이 어떠한가에 따라 그가 이끄는 조직의 위상은 크게 달라진다. 시카고 마피아의 경우에도, 그간의 보스였던 알 카포네의 능력으로 아일랜드 갱이 그 위력을 잃고, 이탈리아계 갱이 시카고 지하세계에서 완전한 우위를 장악하게 되었다는 점은 누차 언급하였다. 그러나 카포네가 사라진 뒤에도 시카고 조직은 결코 위축되지 않았으며 카포네에 못지않은 보스들이 그것을 이끔으로써 그들의 사업은 계속되었다.

카포네 이후 시카고 조직의 보스를 바로 누가 이어받았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약간의 이견이 있다. 외부인들에게는 프랭크 니티가 후임 보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지만 그는 외부에 내보이기 위한 커버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보스는 폴 리카였다고 하는 설이 그것으로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 주장이다. 그것이 설득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첫째, 폴 리카는 전국 위원회의 멤버로서 위원회에 출석한 적이 몇 차례 있었지만 프랭크 니티는 한 번도 위원회에 참석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 그것이고, 둘째는 연구가들이 두 사람의 과거 경력을 비교해본 데에서 비롯된 것이며, 마지막은 프랭크 니티가 자살로 생을 마감할 만큼 유약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니티 이외에 자살로 일생을 마친 마피아의 보스는 미국과 이탈리아를 통틀어 단 한 명도 없다.

폴 리카

 

 

프랭크 니티

 

 

알 카포네는 기자들을 불러다 놓고 회견을 가지며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만큼 언론의 떠들썩함을 좋아했고, 대공황이 시작되자 길거리에 구호소를 차려놓고 실직자들에게 점심식사를 무료로 제공하였을 정도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했는데, 아마도 그의 그러한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부하들에게는 반대로 작용을 하였는지 카포네 이후의 보스들은 앞에 나서지 않는 저자세를 유지하며 조직을 이끌었고, 이를 위해서 외부에 보이기 위한 가짜의 보스를 따로 두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프랭크 니티 자신은 자기가 정말로 카포네의 뒤를 이어 시카고의 보스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카포네가 투옥된 후 각 언론들은 카포네의 지하 제국을 이어받아 다스릴 다음 황제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 기사를 쓰기 시작했고, 어느 신문인가 프랭크 니티가 유력하다는 글을 싣자 다른 언론들도 앞을 다투어 니티에 대한 기사를 올렸으며 어느덧 니티 자신도 그것을 믿게 된 것이다.

프랭크 니티는 집행자라는 닉네임을 얻고 있었는데 이 별명은 차라리 폴 리카에게 더욱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겠나 싶다. 니티는 토리오-카포네 조직의 정회원이 되기 전에는 시카고에서 이발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이발소를 가지고 있으며 손님의 이발을 직접 하기도 하는 보통 사람의 겉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나 뒤로는 좀도둑들이 가져오는 장물을 처리해주고 있었는데, 그의 장물 처리 솜씨가 소문이 나자 조직에 스카웃되어 함께 사업을 학된 것이다. 그 후 니티는 캐나다산 진품 위스키를 수입하는 길을 개척하여 조직에 큰 수익을 가져다 주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고, 1920년대 중반 경에는 조직 내에서 고위 보스로 승진된다.

폴 리카는 카포네가 태어나기 2년 전인 1897년에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태어났다. 18세가 되던 1915년에 처음으로 그의 뼈를 만들게 되는데 상대는 여동생의 전 남자 친구였다. ‘뼈를 만들다라는 표현은 어떤 사람의 첫 번째 살인이라는 뜻으로 마피아의 세계에서는 이때부터를 정말 그 사람의 경력으로 친다고 한다. 리카의 여동생인 아멜리아(Amelia DeLucia)와 사귀고 있던 이웃 청년 에밀리오 페릴로(Emilio Perilo)가 자기 부모의 반대로 동생과 헤어지게 되자 리카는 이를 자기 집안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 페릴로에게 교훈을 가르쳤던 것이다.

2년 후 교도소에서 나온 리카는 재판에 유일한 증인으로 나와 자신을 감옥에 가도록 결정적인 증언을 했던 빈센초 카파소(Vincenzo Capasso)를 찾아 죽인 후 도피 생활을 하다가 1920년에 미국으로 도망쳐 온다. 시카고로 온 리카는 이름을 바꾼 후 술집의 웨이터로 생업을 시작하나 곧 그의 경력이 알려지면서 조직 생활을 하게 된다. 리카는 같은 나폴리 출신의 카포네와 아주 가깝게 되어 1927년에 있었던 그의 결혼식 때에는 카포네가 그의 들러리를 설 정도였다. 그의 닉네임인 웨이터는 이러한 그의 초기 이민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하간 프랭크 니티가 자살한 1943319일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시카고 조직에서는 폴 리카로부터 내려지는 명령이 더 무게가 있었던 것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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