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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피아]미국 마피아 - 30. 토니 아카르도의 후계자 샘 잔카나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4.03.15|조회수1,207 목록 댓글 2

1944년에 시카고 아우트피트의 보스가 되어 지난 10년간의 철권통치로 조직의 위상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놓은 토니 아카르도는 1954, 숙고 끝에 매우 중대한 결정을 내린 뒤 아우트피트의 회의에서 그것을 공표하기로 한다. 이때의 발표를 위해서 아카르도는 시카고 조직의 모든 카포레짐과 유력한 솔다티들을 소집하였는데 이때에 모인 멤버들을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노조전문가 머레이 험프리와 제이크 구직, 아카르도의 언더보스인 샘 잔카나, 아카르도의 개인 비서 겸 운전사인 도미닉 블라지(Dominic Blasi, 닉네임은 백정)를 비롯하여 시카고의 서쪽 거리를 맡고 있던 피요레 부치에리(Fiore Buccieeri, 닉네임은 피피’), 시카고의 중심가인 루프 지역을 담당한 구스 알렉스와 프랭크 페라로(Frank Ferraro), 남쪽 거리의 보스인 랠프 피어스(Ralph Pierce), 남쪽 교외지역을 담당한 프랭크 라포르테(Frank LaPorte), 북쪽 거리의 중심가쪽을 담당한 세자르 디바르코(Caesar DiVarco), 시카고의 북쪽에 있는 유태인 거리와 로저스 공원을 맡고 있는 레니 패트릭(Leonard Patrick), 로저스 공원을 제외한 나머지 북쪽 교외지역을 맡고 있는 로스 프리오(Ross Prio) 이상이 각 지역을 담당한 카포레짐이다.

샘 잔카나

  

 

도미닉 블라지

 

 

랠프 피어스

 

 

세자르 디바르코

 

 

그리고 직능별로는 도박업 전문인 찰리 지오(Charley Gioe, 닉네임은 딸기코’), 슬롯머신 전문인 에디 보겔(Eddy Vogel), 고리대금업이 전문인 샘 바탈리아(Samuel Battaglia), 히트가 전문인 펠릭스 알데리지오(Felix Alderisio, 닉네임은 밀워키 교향악단’)와 찰스 니콜레티(Charles Nicoletti, 닉네임은 ’), 그밖에도 알 카포네와 인척관계인 피셰티 형제들(Charley, Rocco & Joe Fischetti), 재키 체로네(Jackie Cerone), 조셉 아유파(Joseph Aiuppa), 터크 토렐로(Turk Torello), 도날드 안젤리니(Donald Angelini), 도미닉 코르티나(Dominic Cortina), 로키 디그라지아(Rocky DeGrazia) 등이 그들로 거의 대부분의 아우트피트의 멤버들이 보스의 부름을 받고 소집되었다.(이때 시카고 아우트피트에는 켄 이토라는 일본명으로 통하는 한국인 멤버도 한 명 있었다고 한다.)

찰리 지오

 

 

샘 바탈리아

 

 

펠릭스 알데리지오

 

 

찰스 니콜레티

 

 

재키 체로네

 

 

조셉 아유파

 

 

터크 토렐로

 

 

아카르도의 공표는 다음과 같았다. , 지금 이 시간부터 합법적이지 않은 일로 수입을 얻고 있는 시카고와 그 인근 지역의 모든 사람들은 시카고 아우트피트에 그들 수입의 50%를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규칙에는 예외가 없다고 하였다. 도박꾼, 마권업자, 장물아비들은 물론 무장 강도와 절도범, 심지어는 소매치기와 사기꾼들까지, 여하간 약간이라도 비합법적인 사업으로 이익을 얻는 모든 자들이 그 대상이었다.

원래부터도 그렇게 해왔던 것이 시카고에서의 원칙이었으나 알 카포네가 감옥에 가고, 헐리우드 갈취사건 등으로 조직의 상층부가 혼란스러워진 동안 기강이 많이 해이해졌다고 느낀 아카르도가 드디어 칼을 빼든 것이다.

아카르도의 고위 카포레짐 중 헐리우드 갈취 사건으로 폴 리카와 함께 감옥에도 갔다 온 찰리 지오는 자신만은 아카르도의 명령에 있어서 예외라고 생각을 하고 수입의 반을 아카르도에게 상납하지 않고 있었는데, 1954818, 몸에 다섯 발의 총알이 박힌 채 자신의 차 앞좌석에서 시체로 발견되자 더 이상 아무도 아카르도의 진지함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의 결단으로 시카고 아우트피트는 금주법 시대 이후 감소해가던 조직의 수입을 다시 당시의 수준으로 이끌어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히트당한 찰리 지오

 

 

아카르도는 이제 시카고에서 10,000군데가 넘는 마권 영업소와 도박장을 관리하고 있었고, 뉴욕의 마이어 랜스키, 프랭크 코스텔로와 플로리다 주의 탬파 패밀리,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즈 패밀리 등이 주축이 된 쿠바 오퍼레이션에도 이미 지분을 투자하고 있었으며, 1955년부터는 클리블랜드의 모리스 달릿츠와 손잡고 호텔과 카지노를 인수하여 라스베가스 오퍼레이션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1957, 이제 네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던 토니 아카르도는 제일 맏이인 안토니 로스 아카르도(Anthony Ross Accardo)를 과거에 토마스 멀로이가 회장으로 있었던 로컬 110, 영화기사 노동조합의 간부로 앉혀주어 그 자신의 밥벌이를 보장해주는 등 아버지로서의 할 일도 웬만큼 하였고, 또한 아우트피트의 보스로서도 그간 놀라울 만큼 경영을 잘해와 조직의 세력을 크게 확장시켰기 때문에 이제는 좀 쉬면서 그의 취미인 바다낚시나 하면서 여가를 즐기고자 하였다. 그의 별명 중 하나인 큰 참치는 그의 바다낚시 취미로부터 비롯되었을 만큼 그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가서 하는 낚시를 매우 좋아했다.

안토니 로스 아카르도

 

 

이에 대하여 아카르도는 폴 리카와 회담을 한다. 그러나 리카는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가진 보스가 조직의 일에서 손을 뗀다는 것은 조직 전체로 볼 때 너무나 크나큰 손실이라 생각하여 아카르도가 계속 보스의 자리에 있도록 그를 설득하였다. 그래도 그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자 할 수 없이 절충안으로써 아카르도가 보스의 지위에서 물러나기는 하되, 필요한 때에는 언제든지 그의 조언을 얻을 수 있도록 그를 조직의 콘실리에리 자리에 앉도록 안배했다. 그 다음에 두 사람은 오랜 토의 끝에 시카고 아우트피트의 새 보스로는 1946년 이래 조직의 언더보스였던 샘 잔카나를 선택했다.

1908년 생으로 아카르도보다 겨우 두 살이 적은 샘 잔카나는 몇 년 전 시카고 시내 28번가에서 조직의 허락 없이 숫자 도박을 벌여 큰 수입을 올리고 있던 짐 마틴(Jim Martin)과 조지 켈스(George Kells)를 손보아 조직에 큰 수입을 더해 주었던 경력도 있는 사람이었고, 그때 그가 보였던 수완은 거의 완벽한 것이었다. 잔카나는 뉴욕의 강력한 보스인 프랭크 코스텔로와도 아주 가까운 친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많은 후보자들 중에서 샘 잔카나야말로 토니 아카르도 다음의 시카고 아우트피트의 보스로 가장 적당한 인선으로 생각되었다.

잔카나는 보스의 인준을 위하여 19571114, 토니 아카르도와 함께 뉴욕 주의 아팔라친에서 열린 전국 위원회의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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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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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한량도령 | 작성시간 14.03.17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ㅎㅎ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1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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