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루치아노가 강제로 미국에서 출국되던 1946년을 전후하여 세력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 브루클린의 빈센트 망가노 패밀리였다. 빈센트 망가노의 언더보스인 알버트 아나스타샤는 한때 루이스 부챌터의 오른팔로 활동하며 살인주식회사를 함께 이끌었기 때문에 과거에 회사에 고용되어 있던 히트맨들은 모두 그의 명령이라면 듣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따라서 아나스타샤에게 밉보인다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 당시 그 쪽과 관련된 사람들이 한결 같이 가지고 있던 속마음이었다.
빈센트 망가노
앨버트 아나스타샤
그러나 폭력은 필요조건일 뿐, 그것만으로 조직의 위엄이 서는 것은 아니다. 조직의 세력을 진실로 말해주는 것은 돈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라면 망가노 패밀리에게는 브루클린 부두의 항만노조가 있었다. 알버트 아나스타샤의 동생인 안토니 아나스타시오는 전미 항만 노동자 조합의 부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노조를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파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항만노조로부터 어떻게 돈이 만들어져 나오는지는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망가노 패밀리가 강력하게 떠오른 데에는 또 한 사람, 패밀리의 카포레짐인 카를로 갬비노의 활약이 있었다.
후일 패밀리의 보스가 되는 카를로 갬비노는 돈을 버는 데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사람으로,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배급표의 위력을 일찌감치 깨달아 그에 대한 사업에 제일 먼저 착수한 것도 그였다고 한다.
카를로 갬비노
거의 전 세계를 휩쓸고, 유럽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게 만든 서글픈 큰 전쟁이었지만 그것도 마피아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용하였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미국은 물가관리국(Office of Price Administration)이라는 행정부서를 새로 만들어 식료품과 가솔린 등 여러 생필품을 배급 제도를 통하여 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생필품과 교환할 수 있는 배급표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배포하도록 했다. 갬비노는 이 배급표의 위력을 눈치 채고 그것을 매점하여 거기에다 약간의 이익을 붙여서 다시 팔아넘기는 사업을 한 것이다. 얼마간의 시일이 지난 뒤에는 아예 물가관리국의 담당자들을 매수하여 처음부터 거의 전량의 배급표를 그들에게 넘기도록 하여 배급표에 관한한 망가노 패밀리가 독점적인 사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가관리국의 가격표
아울러 전쟁과 함께 필연적으로 생겨난 사업으로 암시장의 거래가 있었다고 하고, 또한 징집대상이 되는 청년들을 전쟁터에 나가지 않도록 손을 써주면서 그에 대한 수수료를 챙기는 사업도 할 수가 있었다. 평소에 뇌물로 다져놓은 연줄로 인하여 이러한 사업들이 가능하게 되었을 것이다. 마피아는 2차 대전 기간 동안 한 가지 종류의 배급표에서만 1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고 하며, 암시장과 그 밖의 다른 전쟁 사업을 다 합친다면 얼마만큼의 규모가 될지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금주법이 끝날 무렵에 갬비노는 다른 조직들이 처분하려고 내놓은 양조시설을 싼 값에 매입하여 오히려 밀주 설비를 증설하였다고 한다. 이는 밀주 수요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 보고 투자를 한 때문이었다. 1933년이 되어 금주법의 시대가 끝나고 술의 제조가 합법화되었지만 갬비노가 예측한대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는 밀주에 대한 수요는 그 후로도 계속되었고, 망가노 패밀리는 1930년 중반 경 뉴욕 시를 중심으로 100마일 근방에서 밀주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엄청난 수입을 올린 것은 물론이다. 카를로 갬비노의 뛰어난 사업 감각을 한 번에 알 수 있는 일례라고 생각된다.
미국 마피아 조직의 역사상 가장 거친 킬러로 알려졌던 알버트 아나스타샤는 시카고의 자코모 콜로시모와 지하세계의 수상, 프랭크 코스텔로의 고향인 이탈리아 남부의 칼라브리아에서 1903년에 태어났다. 1917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16살에 동생 안토니 아나스타시오와 함께 부두 노동자로 취직하여 집안일을 돕게 되었는데, 이때 이미 그는 갱단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얼마 후 그는 조 아도니스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17살이 되기 전에 벌써 5건의 살인을 경력에 올리는 등, 밀주사업의 영역 다툼 전쟁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수년간 뉴욕 밤거리의 보스였던 귀세뻬 마세리아를 처치할 때 마지막 확인 사살을 하기도 했던 그는 살인주식회사의 영업 시작과 함께 뉴욕의 지하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되었고 1940년대를 거쳐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갱들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로부터 가장 두려움의 대상으로 손꼽히는 보스가 된다.
그는 보스의 반열에 들게 된 다음에도 직접, 친히 나서서 사람 죽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그가 좋아했던 살인의 방법은 칼이나 총 등의 무기를 쓰지 않고 맨손으로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튼튼한 줄 등을 사용하여 목을 졸라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시실리에서는 대대로 내려오는 복수의 살인 방법이라고 한다. 또한 아나스타샤는 그의 불같은 급한 성미로 매우 유명하였으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1953년 4월 어느 날, 알버트 아나스타샤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였다. 뉴스 시간에 앵커맨은 은행 강도를 신고하여 체포되게 함으로써 하루아침에 영웅으로 추켜세워진 아놀드 슈스터(Arnold Schuster)란 사람에 대하여 보도를 하고 있었다. 슈스터가 경찰의 축하를 받으며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아나스타샤는 갑자기 흥분하여 일어서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이 바로 저런 밀고자들”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옆에 있던 그의 부하 프레데릭 테누토(Frederick Tenuto, 닉네임은 ‘채피’)에게 그를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보스의 명령이었으니 따르지 않을 도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놀드 슈스터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자 아나스탸샤는 그 사건과 자신을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고리인 테누토를 없애버리고 만다. 그의 이러한 즉흥적이고도 난폭한 성격이 결과적으로 그의 명을 재촉하는 큰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놀드 슈스터
프레데릭 테누토
살해당한 아놀드 슈스터
알버트 아나스타샤에게는 9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카톨릭의 신부가 된 형제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바로 아래 동생인 항만노조의 부회장 안토니 아나스타시오는 영화 <워터프론트>의 갱 두목, 자니 프렌들리의 실제 모델이며 루치아노를 석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허드슨 강 노르망디 호 폭발사건의 실무를 맡았던 배후 인물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성을 쓰고 있었으나 그들은 확실히 친형제간이며 아나스타샤가 자신의 성을 바꾼 것이다.
영화 <워터프론트>
알버트 아나스탸샤는 그의 보스인 빈센트 망가노보다는 루치아노 패밀리의 조 아도니스, 프랭크 코스텔로와 더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루이스 부챌터의 처형 이후 회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이 커지자 더욱 보스인 빈센트 망가노에 대한 존경심이 약해져 갔다. 그런데 빈센트 망가노도 그의 건방진 언더보스에 대하여 상당히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어 둘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있을 때에는 때로 몸싸움까지도 벌이곤 해서 부하들을 민망하게 만들고는 하였다고 한다.
8년간의 도피생활을 끝내고 1947년이 되어 비토 제노베제가 돌아오자 제노베제의 탐욕을 견제하기 위하여 알버트 아나스타샤는 더욱 코스텔로와 가까워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그의 보스인 망가노는 더욱더 아나스타샤와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계속 깊어지자 드디어 빈센트 망가노가 아나스타샤를 제거하려 한다는 소문이 뉴욕의 거리에 나돌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코스텔로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노베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알버트 아나스타샤의 난폭성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51년 4월 19일, 빈센트 망가노의 동생이며 살인주식회사에서도 일했던 필립 망가노(Philip Mangano)의 시체가 쉽스헤드 만 근처의 습지에서 발견되었다. 시신에는 세 군데의 총상이 있었는데 하나는 뒤통수, 나머지 둘은 양쪽 뺨이었다. 경찰은 필립 망가노의 살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 참고인으로 그의 형인 빈센트 망가노를 찾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며칠 뒤에 필립 망가노의 장례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으나 여기에도 형은 나타나지 않았다. 망가노 패밀리의 보스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데에 대하여 패밀리의 부하들 중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필립 망가노
얼마 후 뉴욕의 보스들은 망가노 형제의 일에 대한 알버트 아나스타샤의 설명을 듣기 위하여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아나스타샤는 필립 망가노를 누가 죽였는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며 빈센트 망가노의 실종에 대해서도 역시 자기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하였고, 이 변명에 대하여 프랭크 코스텔로가 강력하게 두둔하고 나서서 이번 사건은 조용히 수습된다. 그리고 이 날의 모임은 망가노가 이끌던 가문을 앞으로는 알버트 아나스타샤가 보스가 되어 맡도록 하며, 그 언더보스로 카를로 갬비노를 임명하는 것으로써 대략 마무리되었다.
모두들 진실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입 밖에 낼 필요는 없었고,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대세임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알버트 아나스타샤는 뉴욕에서 가장 강력한 보스가 되었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았다.
빈센트 망가노의 실종은 이들 사이의 암호로 커뮤니온(Communion)이라고 하는 일처리였다. 마피아가 일을 처리하는 데, 즉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크게 두 종류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컨포메이션(Confirmation)이라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커뮤니온이라 한다. 컨포메이션은 시체를 현장에 그대로 남기는 방식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일 때에 주로 선호되는 처리법으로써 경우에 따라서는 우발적인 사고로 위장하기도 한다. 특히 상대가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여서 그냥 사라지는 것으로는 여러 가지 억측이 난무할 가능성이 높을 때에 이 방법이 선택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방식으로 히트되었다. 컨포메이션은 카톨릭교에서 견진성사를 뜻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은 커뮤니온으로 처리되는 작전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다. 커뮤니온 역시 카톨릭교에서 쓰는 용어이며 성체성사를 뜻하는 말이다. 커뮤니온, 즉 성체성사가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 빵을 먹음으로써 예수와 하나가 되는 의식이라고 할 때, 히트된 사람이 그의 고향인 대자연으로 돌아가 다시 그것과 하나가 된 것이라고 해석하면 될 것 같다. 그 옛날 살인주식회사의 희생자들 대부분이 이렇게 처리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커뮤니온을 선호하는 이유는 시체가 없으면 범죄도 없었던 것이 되고, 범죄가 없다면 경찰의 수사도 시작될 수가 없는 것이 사법 관리들이 신봉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커뮤니온의 구체적인 방법이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밝혀져 있는데, 그 하나로는 쇠창살로 작은 감옥을 만들어 시체를 여기에 넣은 다음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감옥 채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방법이 있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플로리다 등지의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쓰는 방법이다. 사막에 둘러싸인 라스베가스에서는 바다까지 나가기가 힘들고, 또 라스베가스 시내에서는 관광 사업을 위하여 살인, 강도 등의 강력범죄를 금하는 것이 그들 마피아의 규율이었으므로, 주변의 사막에 깊은 구덩이를 파서 여기에 시신을 던져 넣고 다시 그것을 덮는 방법이 애용된다. 모래 바람이 한번 쓸고 지나가면 처음에 어디에 구덩이를 만들었는지 그것을 만든 사람도 전혀 알 수가 없게 된다고 한다. 시체를 덜 마른 콘크리트에 파묻는 수도 있고, 뉴저지 조직의 안젤로 데카를로(Angelo DeCarlo, 닉네임은 ‘사기꾼’)처럼 잘게 썰어 가루로 만드는 방법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안젤로 데카를로
뉴욕의 조셉 보나노는 젊었던 시절, 더블 코핀이라는 방법을 즐겨 애용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관 하나에 두 구의 시신을 넣는 방법이다. 합법적으로 매장의 허가를 받은 어떤 시신이 들어갈 관의 아래에 다른 사람의 시체를 먼저 넣어 숨기는 방법이다. 그가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을 이 더블 코핀으로 처리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1983년에 자신의 동료에 의해서 처형된 갬비노 패밀리의 카포레짐, 로이 드메오(Roy DeMeo)는 시신을 조각내서 개별 포장한 뒤 쓰레기 소각장에서 최종 처리하는 방법을 가장 좋아하였다고 한다.
로이 드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