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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피아]미국 마피아 - 52. 갬비노 패밀리의 전성기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4.05.21|조회수1,288 목록 댓글 3

갬비노의 후임 보스인 폴 카스텔라노는 스스로를 여느 사업가와 마찬가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물론 몇 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마피아의 한 패밀리를 이끈다는 것은 대기업의 최고경영자와도 같은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이상의 기질이 반드시 필요했다. 보스의 사촌이며 가까운 심복으로서 평생에 걸쳐 그리 심각한 문제를 겪지 않고 지내온 카스텔라노는 감히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부하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특히 그가 유일한 라이벌로 생각한 자신의 언더보스, 아니엘로 델라크로체가 암으로 앓아 눕게 된 이후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폴 카스텔라노는 19761015일에 보스의 자리를 이어받은 후 9년간 그 자리를 지키다, 이미 서술한 대로 19851216일에 부하 존 고티의 플롯에 의해 피살된다. 존 고티의 플롯이라고 해야 사실 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보스의 스케줄을 미리 파악하여 부하들을 매복시켜 두었다가 예정된 시각에 보스가 나타나자 그를 저격하였을 뿐, 그밖에 다른 것은 없었다. 기라성 같은 선임자들의 치밀했던 플롯들에 비하면 고티의 그것은 아이들의 장난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더구나 후에 존 고티가 폴 카스텔라노에 대한 살인교사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로 판결받게 되는 결과를 생각하면 존 고티는 천치, 바보라고도 말할 수가 있다.

바로 이것이 후임 보스로 폴 카스텔라노를 택한 갬비노의 유언이 크나큰 실수였다고 지적한 이유이다. 폴 카스텔라노는 존 고티의 무모함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90, 존 고티가 수감된 이후 갬비노 패밀리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적어도 그때까지는 카를로 갬비노가 키워놓은 그 가문의 힘은 대단하였으며, 그에 대해서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폴 카스텔라노에서 존 고티에 이르기까지 약 10년간은 그래도 갬비노 패밀리의 최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였다. 존 고티가 카스텔라노로부터 가문의 지휘권을 물려받았을 무렵 갬비노 패밀리의 사업은 총 5억 달러 정도의 규모인 것으로 미국의 사법기관은 밝히고 있으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였을 것이다. 그들의 사업은 합법적인 것만 하더라도 맨해튼 가먼트 디스트릭트의 트럭운송업을 비롯하여 건설업, 정육업, 정육 포장 배급업, 뉴욕 시의 폐기물 처리업 등 수많은 분야에 걸쳐 있었다.

1955년의 가먼트 디스트릭트

 

 

또한 그들의 사업은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었는데, 존 고티가 보스로 올라선 1985년경의 갬비노 패밀리의 사업 규모를 보다 자세하게 직능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토마스 갬비노의 의류노조 사업과 트럭 운송업이다. 토마스 갬비노는 카를로 갬비노의 맏아들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다음은 안토니 스코토의 브루클린과 뉴저지 부두 관리사업이 있었다. 안토니 스코토는 항만노조의 부회장이며 알버트 아나스타샤의 친동생인 안토니 아나스타시오가 죽었을 때에 31세의 젊은 나이로 노조원 16,000명의 항만노조의 부회장직을 새로이 맡았던 사람으로 브루클린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신세대 마피아였다.

토마스 갬비노

 

 

안토니 스코토(왼쪽)

 

 

그 다음은 로버트 디베르나르도(Robert DiBenardo)의 증권 관련 사업, 제임스 파일라의 폐기물 처리업이다. 로버트 디베르나르도는 포르노 잡지와 포르노 비디오를 제작, 배포하는 등 포르노 관련 사업을 하고 있었으며, 카르미네 롬바르도지(Carmine Lombardozzi, 닉네임은 박사’)는 주식시장 교란, 즉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작전이 전문이었고, 이와 함께 도난당한 증권의 처리도 맡고 있었다. 또한 제임스 파일라의 회사는 합법적인 뉴욕 시의 쓰레기 처리업을 독점하고 있었으며 독성 폐기물의 불법적인 처리 사업도 함께 하고 있었다.

로버트 디베르나르도

 

 

카르미네 롬바르도지

 

 

파스칼레 콘테(Pasquale Conte)는 키 푸드 슈퍼마켓의 합법적인 이사였으며 카르미네 파티코(Carmine Fatico)는 존 F 케네디 공항을 주 대상으로 하는 화물 하이재킹이 전문이었다. 니노 가지(Nino Gaggi)와 로이 드메오(Roy DeMeo)는 자동차 절도가 전문이었는데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의 최고급 자동차를 훔쳐다가 쿠웨이트 등 중동의 국가들에 조직적으로 팔아 넘기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파스칼레 콘테

 

 

카르미네 파티코

 

 

니노 가지

 

 

로이 드메오

 

 

그밖에 갬비노 패밀리가 강세를 보이고 있었던 사업은 건설 관련 사업이었다. 보스인 폴 카스텔라노 자신이 스카라믹스 콘크리트 회사라는 건설 회사를 가지고 있었고, 새미 그라바노는 JJS 건설 회사의 사장, 알퐁스 모스카(Alphonse Mosca)는 글렌우드 콘크리트 플로어링 회사의 사장으로 각각 재임하고 있었다. 존 고티 아래에서 첫 번째 언더보스를 지낸 프랭크 데치코는 레온 드매티스 회사라는 한 유력한 뉴욕의 건설 호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사원으로 올라가 있었다.

기술된 사람들은 모두 갬비노 패밀리의 카포레짐들이다. 위에서는 아주 간략하게 그들의 대표적인 사업만을 언급하였을 뿐, 이외에도 갬비노 가문이 맡고 있으면서 수익을 올리고 있는 합법, 불법적인 사업은 도박사업과 보스가 직접 챙기는 마약사업을 비롯하여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존 고티는 카르미네 파티코의 레짐(Regime, 조직 또는 부대)에 소속되어 하이재킹을 주로 맡고 있던 중 카르미네 파티코가 기소되자 그의 레짐을 지휘하게 되었고 1980년부터는 정식으로 카포레짐으로 승진된 사람이었다.

보스인 폴 카스텔라노는 1930년대 이래로 육류 가공 사업과 관련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다이알 정육 회사와 랜바 정육 포장 회사를 움직일 수 있었고 브루클린에 자리한 두 곳의 대형 육류 소매점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밖에도 쿼렉스 산업이라는 정육 배급 회사와 키 푸드 슈퍼마켓, 왈드바움 슈퍼마켓 등, 두 곳의 대형 슈퍼 체인을 소유하고 있어 그의 회사에서 가공된 육류를 지속적으로 안정되게 소비시킬 수 있었다. 카스텔라노는 또한 정육업 노조와 도살업 노조에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모든 정육 관련 사업의 마피아 소유로 인한 파급 효과는 뉴욕의 시민들이 소비하는 육류 대금의 10내지 15%가 이들 갬비노 패밀리에게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엄청난 그들의 사업이 아닐 수 없다.

토마스 갬비노의 가먼트 디스트릭트 사업도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언급할 가치가 있다. 토마스 갬비노는 물류 회사인 콘솔리데이티드 캐리어(Consolidated Carrier Corporation)의 부사장 직함을 가지고 있었고 이 회사와 또 다른 토마스 갬비노 소유의 회사들은 가먼트 디스트릭트의 모든 의류 운송을 담당하고 있었다. 가먼트 센터 내의 모든 의류 회사들은 이들 갬비노의 운송 트럭에 일감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되도록 압력을 받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예외가 없어 캘빈 클라인, 랄프 로렌, 베르사체 등의 글로벌 브랜드라 할지라도 역시 마찬가지의 적용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보다 운임이 싼 다른 운송 라인에 일감을 맡기는 의류 회사에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는 일일이 자세한 말을 듣지 않아도 불을 보듯이 명약하였다.

어쨌든 소비자 가격 약 100달러짜리의 옷 한 벌마다 그 중에서 대략 10달러 정도가 갬비노 패밀리에게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의 갈취라고 할 수 있겠다.

당국의 집계에 의하면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콘솔리데이티드 캐리어 회사가 벌어들인 돈은 22백만 달러였다고 하며, 동 회사의 사장과 부사장을 맡고 있는 토마스 갬비노, 조셉 갬비노(Joseph Gambino) 형제는 각각 180만 달러의 연봉을 지급받고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갬비노 형제는 회사의 수익배당 명목으로 각각 280만 달러를 또 따로 받을 수가 있었다.

조셉 갬비노

 

 

또한 로버트 디베르나르도의 포르노 사업도 갬비노 패밀리에게 엄청난 수입을 올려주고 있는 분야였다. 디베르나르도의 레짐은 타임즈 스퀘어 주변의 포르노 상점과 포르노 쇼 공연장을 장악하여 그곳으로부터 보호비를 갈취하는 것 이외에 포르노 잡지, 비디오 등을 배포하는 사업도 하고 있었다. 바로 미국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포르노 배급 회사인 스타 배급 회사가 디베르나르도의 소유였던 것이다.

스타 배급 회사가 소재한 맨해튼의 빌딩은 이탈리아계 사업가 존 자카로(John Zaccaro)의 것이었는데, 존 자카로는 1984년에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로, 대통령 후보 월터 먼데일(Walter F. Mondale)과 함께 대선 레이스에 나섰던 제랄딘 페라로(Geraldine A. Ferraro)의 남편이다. 당시 페라로는 디베르나르도로부터 건물 임대료의 형식으로 35만 달러를 빌려 그녀의 선거 캠페인에 필요한 자금으로 썼다고 한다.

존 자카로와 제럴딘 페라로

 

 

그러면 갬비노 패밀리의 사업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은 이 정도로 하기로 하고 폴 카스텔라노에서 존 고티로 이어지게 되는 긴박했던 시기에 대하여 언급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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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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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소룡대마왕 | 작성시간 14.05.21 글 시리즈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
    다음 글이 기대되는군용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5.21 재가 감사하죠
    힘이 되는 댓글
  • 답댓글 작성자김밥천국불신지옥 | 작성시간 23.08.21 푸른 장미 마피아 에피소드는 많이 삭제된거 같네요
    아니면 내 기억이 잘못된건지?
    거의 다 삭제된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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