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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피아]미국 마피아 - 54. 마피아 입단의 과정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4.05.25|조회수1,771 목록 댓글 1

영화 <도니 브래스코>는 실존 인물인 FBI 요원 조셉 피스토네(Joseph D. Pistone)가 실제로 6년간에 걸쳐 받았던 언더커버 오퍼레이션을 바탕으로, 헐리우드에서 그것을 축약하여 영화로 만든 것이다. FBI 요원 조셉 피스토네는 1975년부터 1981년까지 뉴욕의 5대 마피아 패밀리의 하나인 보나노 패밀리에 침투하여 활동하며 그들의 은밀한 여러 사업에 접근하였는데, 시실리 인의 피를 이어받은 그의 연기가 얼마나 훌륭하였던지 조직 내에서 피스토네의 위치는 보나노 패밀리의 정회원이 되기 직전에 이르기까지도 한다. 작전에 사용된 조셉 피스토네의 가짜 이름이 바로 도니 브래스코(Donald Brasco, 닉네임은 Donnie)였다. 피스토네 요원의 대 마피아 언더커버 오퍼레이션은 미국 FBI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전으로 손꼽히는 것으로, 에드거 후버 시대 이후 변화된 FBI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전이다.

영화 <도니 브래스코>

 

 

FBI 요원 조셉 피스토네

 

 

마피아의 정회원이 된다 함은 그들의 세계에서는 매우 멋진 일이다. 마피아 조직의 정회원 중 가장 아래 서열인 솔다티라 하더라도 그가 일반 무법자들로부터 받는 존경은 대단하다. 이탈리아 인의 피를 타고난 범죄자라면 그의 일생 최고의 소원은 바로 마피아의 멤버가 되는 일인 것이다. 한번 마피아의 정회원이 되면 그에게는 그의 상관으로부터의 문책만이 있을 뿐, 다른 범죄조직 등으로부터 핍박받는 일 따위는 있을 수가 없게 된다. 조직의 일을 맡아 열심히 해내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여 자신이 조직에 큰 도움이 되는 사람임을 다른 이들에게 내세울 수 있게 되면, 보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어 감옥에 가는 경우에도 특별한 조치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존 고티가 아직 카르미네 파티코의 레짐에 속하여 하이재킹 등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직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아일랜드 갱단의 일원이 감히 보스인 카를로 갬비노의 조카, 엠마누엘 갬비노(Emmanuel Gambino, 닉네임은 보모’)를 납치하여 갬비노에게 그 몸값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1972년경의 일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원래 아일랜드 갱단의 미친 짓은 옛날부터 다른 갱단들이 한 수 접고 대하는 것이었다.

몸값의 협상은 몇 달을 끌어 35만 달러에서 시작된 밀고 당기기기는 10만 달러로 최종 결정되고 그것은 범인들의 두목인 제임스 맥브래트니(James McBratney)에게 지불되었으나, 엠마누엘 갬비노는 결국 시체가 되어 뉴저지의 한 건설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분노한 갬비노는 맥브래트니에 대한 처리를 명령했고 그것은 아니엘로 델라크로체, 카르미네 파티코의 라인을 거쳐 존 고티에게로 내려왔다. 그리하여 작전은 고티와 안젤로 루지에로, 랠프 갈리오네(Ralph Galione) 3인이 맡아 해치워 맥브래트니를 보내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결국 존 고티는 197463, 당국에 체포되게 된다. 그러나 이때 보스의 조카에 대한 복수를 멋지게 해낸 고티는 보스의 배려로 유력한 변호사인 로이 콘(Roy M. Cohn, 법무차관을 역임)을 선임하게 되고, 보석금 석방이 되었다가 다시 수감되어 겨우 2년 가까운 옥살이를 한 뒤, 1977728일에는 완전 석방이 된다. 출옥 후 고티는 소년시절 때부터 자신의 꿈이었던 마피아의 정회원으로 드디어 선발된다.

랠프 갈리오네

 

 

살해된 제임스 맥브래트니

 

 

살인 혐의로 체포되는 존 고티

 

 

로이 콘

 

 

카스텔라마레세 전쟁이 끝나고 1931년에 라 코사 노스트라가 결성되어 평화가 찾아온 뒤 일정 기간 동안은 신입 회원을 받아들이는 것이 금지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5대 가문의 대전쟁이 지나가고 난 후에는 신입 회원을 만드는 것이 각 패밀리 보스의 재량에 맡겨지게 된 것 같다. 한때 망가노 패밀리의 보스, 알버트 아나스타샤는 그들의 회원 자격을 돈을 받고 팔기도 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것도 1957년 전쟁 당시 비토 제노베제가 아나스타샤를 대적하는 데에 도움이 된 요인 중의 하나였다.

마피아의 정회원이 되는 것은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그가 가져야 할 조건은 이탈리아인의 피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수 시실리 혈통이라면 더욱 훌륭한 조건이다. 그 다음 그는 기존 마피아 멤버의 눈에 띄어 적당한 소질을 가진 것으로 판정을 받아야 한다. 합당한 사람으로 판단이 되면 그 후 그는 여러 테스트를 거치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상부의 지시에 의한 히트, 즉 살인을 한번 해내야 한다. 이 마지막 테스트를 무난히 거치면 그는 자신의 뼈를 만든 것으로 인정되고 정회원이 될 최종 자격을 획득한 것으로 인정된다. 그 후 끝으로 패밀리의 회합에서 보스 이하 모든 카포레짐들로부터 단 한건의 반대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들의 정회원으로 가입될 수가 있는 것이다. , 정회원의 가입 조건은 만장일치이다.

살인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마지막 테스트가 생략될 수도 있는 것이 보통의 경우였으나, 조직에 몰래 잠입해 들어온 사법 요원인 도니 브래스코가 그들의 정회원이 될 뻔했던 이후로는 다시 그 규칙이 강화되어 그 뒤로는 반드시 기존 멤버가 보는 앞에서 확실한 히트를 한 건 이상 해치워야 자격이 인정되도록 바뀌었다고 한다.

육체적으로 힘이 센 것이나 잔인한 성격만을 가지고 그들 조직의 정회원이 될 수는 없다. 육체적인 것은 무기로써 얼마든지 보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클리블랜드 출신으로 주로 로스앤젤리스 패밀리와 함께 활동하였던 지미 프라티아노(Aladena Frattiano, 닉네임은 족제비 지미’)와 같은 멤버는 매우 빈약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총을 잘 다루는 솜씨 하나로 그들 세계에서 유명한 직업 킬러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잔인한 성격은 물론 꼭 필요한 것이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마피아의 정회원으로 입단하는 그들의 입단식의 모습은 초기에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비교적 자세하게 밝혀져 있다.

지미 프라티아노

 

 

1931년에 라 코사 노스트라의 결성이 있은 후에 처음 몇 년간은,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처음의 대략 30년간은 그들의 오멜타의 규율이 정말로 엄격하게 지켜졌다. 그러다가 1963, 보나노 패밀리의 솔다티였고, 일찍이 마란자노가 마세리아를 제거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1930115일의 히트시 그 작전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던 조셉 발라키(Joseph Valachi)가 상원 맥클랜 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라 코사 노스트라의 존재를 증언함으로써 처음으로 그 존재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노출된다.

조셉 발라키

 

 

상원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조셉 발라키

 

 

오늘날 일컬어지고 있는 뉴욕의 5대 마피아 가문의 이름들도 당시의 조셉 발라키의 진술에 따라 언론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발라키가 당국자들에게 마피아의 내막에 대해 털어놓고 있을 당시의 5대 가문의 보스들의 이름이 제노베제, 갬비노, 루케제, 보나노 등이었던 것이다. 물론 비토 제노베제는 감옥에 있을 때였지만 말이다. 프로파치 패밀리는 발라키의 진술에 따라 처음에는 프로파치 패밀리로 불려지다가 조셉 콜롬보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공민권 운동이 언론의 시선을 끌면서부터는 콜롬보 패밀리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상원 맥클랜 위원회에서 조셉 발라키는 그들의 입단식의 형식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하게 증언한 바 있었다. 새로 입단하게 될 단원들이 보스 앞에 도열한 다음, 콘실리에리의 주도로 마피아의 입단식은 진행된다고 한다. 먼저 순서대로 돌아가며 칼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어, 그 칼을 어떤 카톨릭 성자의 그림에 대고 그어 피를 묻힌 다음, 그 그림을 불에 태우면서 조직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만일 배반했을 경우에는 그 성자의 그림과 같이 배반자의 영혼이 불에 타버릴 것을 믿는다고 다시 맹세를 한다고 했다.

조셉 발라키는 1959년에 마약에 관련된 혐의로 기소, 수감되어 보나노 패밀리의 히트맨으로서의 그의 경력이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하였다. 아틀랜타 연방 교도소에서 그는 뉴욕의 보스 비토 제노베제와 한 방을 쓰게 되었는데, 발라키는 제노베제가 자기를 변절자로 의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은 자기가 피살되고야 말 것이라는 피해망상에 빠지게 된다.

얼마 후 발라키는 감옥 안에서 만난 예전의 자기 동료 한 사람을 암살자로 오인하여 그를 살해한다. 그가 자기를 해치우도록 조직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히트맨인 것으로 착각을 하였떤 것이다. 그리하여 1급 살인 혐의가 추가되어 사형의 선고를 피할 수 없게 되자 발라키의 앞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고, 이로부터 약 1년이 지난 후 발라키는 정보 제공을 수락하게 된다. 19639, 조셉 발라키는 상원 맥클랜 위원회에 직접 출석하여 조직범죄의 내막에 대하여 심도있는 증언을 하여 미국인들을 경악케 하였다. 그의 증언 내용은 후에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도 <바라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발라키는 1971년에 그의 거처이던 교도소의 방에서 죽었다.

영화 <바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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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우라 | 작성시간 21.06.05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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