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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피아]미국 마피아 - 68. 로버트 케네디 암살 사건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4.07.16|조회수3,490 목록 댓글 0

196865일 자정을 갓 넘긴 시각, 로스엔젤리스의 앰배서더 호텔에서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암살당했다. 그는 호텔에서 캘리포이나 주 예비선거를 승리로 이끈 것을 자축하는 연설을 마치고, 식당을 거치는 지름길을 통해 기자회견장으로 가기 위해 걸어 나오던 중이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민주장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위하여, 형인 존 F 케네디의 경우와 같이 예비선거의 길고도 긴 장정을 택했고, 이제 사우스 다코타 주에 이어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승리함으로써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에 또 한걸음 가까워진 참이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당시 여론 조사에서 대통령 후보들 중 수위를 달리고 있었고, 1968년의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유력한 리차드 닉슨과 맞붙을 경우, 무난히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 예상되고 있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형의 죽음 이후, 1964년에 법무장관 직을 사임하였고 뉴욕 주에서 출마하여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하던 중이었다.

로버트 케네디

 

 

1968년 총격을 받고 쓰러진 로버트 케네디

 

 

암살범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는데 젊은 나이의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이름은 서한 비슈하라 서한(Sirhan Bishara Sirhan)이라 하였다. 서한 서한은 경찰에서 진술하기를 로버트 케네디가 이스라엘을 원조하는 데에 찬성하므로 그를 죽였다고 말했으나,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서한 서한은 팔레스타인 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종교를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었으며 심지어는 아랍어도 거의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서한 서한은 경마도박에 중독되다시피 한 사람으로, 캘리포니아 주의 유명한 경마장인 산타 아니타 경마장과 델 마르 경마장에서 많은 돈을 잃었던 사람이었다.

체포되는 서한 서한

 

 

로버트 케네디의 사체 부검에 의하면 그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던 총상은 오른쪽 귀 바로 뒤의 약 1인치 거리에서 발사한 22구경 권총 총탄에 의한 것이었다. 22구경 권총은 파괴력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에 발사될 경우, 두개골을 뚫고 들어간 총알이 반대쪽 머리뼈를 관통해 나오지 못하고 두개골 내에서 여러 차례 반동되며 뇌를 휘저어 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신에는 그밖에도 몇 군데의 총상이 더 있었는데, 모두 하나같이 로버트 케네디의 우측 뒤편에서 발사된 것이었다.

총격을 받고 쓰러진 로버트 케네디

 

 

서한 서한이 가지고 있던 권총도 로버트 케네디의 몸에 총상을 입힌 권총과 똑같이 22구경의 것이었기는 하나 서한 서한이 자리잡은 위치는 로버트 케네디의 전면 방향이었다. 그리고 암살 현장에는 꽤 많은 수의 목격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저격 당시, 서한 서한과 로버트 케네디 사이의 거리는 아무리 가깝게 잡아도 족히 1미터는 되었다고 하였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서한 서한이 범행에 사용했다는 권총

 

 

2011년 가석방 심사장에서의 서한 서한

 

 

그리고 저격이 일어났던 방의 천장과 바닥, 모든 벽을 조사하고 목격자들의 목격담을 모두 취합해 본 결과 모두 13발의 권총탄이 그날 발사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서한 서한의 권총에는 최대 8발의 탄환만이 장전될 수 있을 뿐이었다. 로버트 케네디의 경호원들은 당일 저격에 맞서 발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공식발표되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5발의 탄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로버트 케네디는 캘리포니아 주에서의 자신의 경호를 에이스 경호 회사(Ace Guard Service)에 맡겼다. 196864, 에이스 경호 회사는 한 명의 임시직원을 고용하여 로스앤젤리스의 앰배서더 호텔로 보냈는데, 그 임시직원의 이름은 데인 유진 세자르(Thane Eugene Cesar)이다. 명망있는 경호 회사에서 중요 행사의 경호원을 임시직원으로 쓰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유진 세자르는 당일, 로버트 케네디가 볼룸에서 연설을 마치고 걸어 나올 때에 케네디의 바로 오른쪽 뒤편에서 그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한 서한이 발포하여 방이 온통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을 때에 유진 세자르는 로버트 케네디를 쓰러뜨려 눕혀 그를 보호하였다고 한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로버트 케네디의 모습을 담은 공식 사진에는 케네디의 오른손 바로 옆에 넥타이가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 넥타이가 바로 유진 세자르의 것이다.

데인 유진 세자르. 그는 이 사건 이후 필리핀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남은 인생을 보냈으며 어떠한 인터뷰나 조사도 거부하였다.

 

 

만에 하나 로버트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처지가 몹시 곤란해질 사람, 또는 조직, 또는 그룹이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그룹은 앞에서 기술한 그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서한 서한을 로버트 케네디의 살인범으로 몰아붙일 만한 영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로버트 케네디의 죽음 이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는 현직 부통령인 허버트 험프리(Hubert H. Humphrey)로 되었다. 공화당 후보인 리차드 닉슨은 험프리를 큰 표차로 물리치면서 무난히 제37대의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허버트 험프리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후, 197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앨라바마 주지사 조지 월러스가 돌풍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지난 1968년의 선거에서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제3, 아메리카 독립당의 후보로 나서서 전체 표의 13.5% 획득이라는 놀라운 선전을 해낸 바 있었는데, 이번의 선거에는 민주당 소속으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정치 평론가들은 현직 대통령인 닉슨이 공화당의 후보로 다시 나올 경우, 공화당이 승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점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19725, 조지 월러스는 아더 브레머(Arthur Bremer)라는 이름의 정신이 약간 이상한 청년이 쏜 총에 맞아 불구가 됨으로써 대통령 선거전에서 떨어져 나갔고, 민주당의 지명을 받은 조지 맥거번과 맞붙은 리차드 닉슨은 다시 한번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조지 월러스

 

 

총격을 받고 쓰러진 조지 월러스

 

 

체포되는 아더 브레머

 

 

병원에서 퇴원하는 조지 월러스를 엘비스 프레슬리가 위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미국의 역사는 PatriotsPirates의 대결 구도의 연속이라고 하였다. 이제 1963년의 존 F 케네디 암살, 1968년의 로버트 케네디 암살, 1972년의 조지 월러스 암살 미수 등의 일련의 사건은 오늘날 미국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그룹이 PatriotsPirates 중 과연 어느 쪽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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