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학살의 역사]학살의 역사 7. 태즈메이니아 인(1) – 절멸의 과정 : 동화 정책에서 섬멸 정책으로(혐)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4.08.05|조회수1,501 목록 댓글 0

태즈메이니아의 위치

 

유럽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본격적으로 식민지화하기 시작한 것은 1788년이었다. 독립전쟁에서 패해 북아메리카의 식민지를 잃게 된 영국은 바로 이때부터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에 범죄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대규모 정착촌을 세우기 시작했다. 태즈메이니아에 영국인들이 처음 상륙한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지 개척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뒤인 1803년이었다. 군인, 기결수, 자유민으로 구성된 초기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이곳 태즈메이니아에 농업 중심적인 정착촌을 건설했다.

1840년 영국인과 태즈메이니아인의 첫만남

 

1859년에 묘사된 태즈메이니아 부족

 

백인들의 정주가 시작되면서 백인 정착민과 원주민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문제의 발단을 제공한 것은 백인 측이었다. 정착민의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영국과 인도로부터 식량과 생활 필수품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고, 그나마 어렵게 공급된 육류와 생필품도 벌레가 먹거나 침수가 되어 쓸 수 없는 경우가 빈번했다. 특히 정착 첫해인 1803년 겨울에는 괴혈병과 설사, 점막 질환까지 창궐했다. 기근과 질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백인들은 에뮤(타조처럼 몸집이 크고 날지 못하는 새)와 백조, 캥거루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생존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인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은 182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1817년에 2,000명에 지나지 않았던 백인들의 수가 1820년에는 5,400명이 되었고, 1830년에는 다시 2만 3,500명으로 늘어났다. 동시에 방목하는 양의 수도 늘어났다. 1816년에 5만 4,600마리였던 양이 1830년에는 이미 100만 마리를 넘어서 있었다. 식민지 정부는 정착촌 건설과 방목지 확보를 위해 태즈메이니아의 땅 가운데 30%를 개척민들에게 분배했다. 이는 곧 원주민들의 생업인 사냥을 위한 땅이 크게 줄어드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이 조치는 영국의 식민지법에서 보면 적법한 행위였지만,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삶의 근간을 흔드는 약탈 행위였다. 크게 분노한 원주민들이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식민지 정부와 백인 개척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은 원주민과 공생하는 길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을 선택했다. 이로써 백인과 원주민 집단 사이에는 생존을 위한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에뮤. 현재 가장 빨리 달리는 새이다.

 

원주민들이 격분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개척민들은 처음부터 원주민들을 자신들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원주민들에 대한 가혹 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원주민 여성들에 대한 강간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더구나 강간은 일회적인 사고로 그치지 않고, 원주민 여성들을 노예로 만든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자행되었다. 험난한 여정과 척박한 생활환경 때문에 백인 여성들을 동반할 수 없었던 개척민들은 원주민 여성들을 성욕의 배출구로 삼았던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백인들은 원주민 어린이들까지 납치해서 하인이나 ‘애완동물’로 삼았다. 분노한 원주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식민지 정부의 냉담한 태도와 개척민들의 노골적인 인종주의적 행태에 분개한 원주민들은 마침내 항거에 나섰다.

태즈메이니아인을 사고파는 영국인들

 

태즈메이니아 여성들이 노예로 팔리기전 신체검사를 받는 모습

 

1826년부터 태즈메이니아인들은 필사적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싸움은 3년 동안 계속되었다. 원주민들이 백인들을 공격하거나 그들의 재산에 피해를 입히면, 식민지 군대는 곧바로 보복 행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식민지 군대는 원주민들을 완전히 제압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1826년과 1827년에는 원주민들의 소규모 공격이 100차례 이상 이루어져서, 42명의 백인 개척민이 목숨을 잃었다. 1828년에 접어들면서 원주민들의 기습은 두 배로 늘어났다.

영국 정착민들을 공격하는 태즈메이니아인들

고작 450명으로 구성된 식민지 정부의 군대는 원주민들의 게릴라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병사의 수도 부족했지만, 더 큰 문제는 훈련이 충분치 못한 것이었다. 원주민들은 무기와 화력에서는 절대적으로 열세였지만, 이런 세의 불리를 지리적 이점으로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진압은커녕, 방어조차 힘겨울 때도 있었다. 군대의 규모는 작았고, 정착민들은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3년 동안 고생한 끝에 백인 정착민들과 식민지 정부 사이에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제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된 것이었다.

태즈메이니아인 추장 '빌리 왕'

 

수세적인 상황에서 가장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은 식민지 총독 아서(George Arthur)였다. 카리브 해 일대에서 근무하다가 1824년 이곳에 부임한 이후 그는 줄곧 원주민과의 화해 정책을 표방했다. 그의 목표는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을 유럽 문명에 완전히 동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원주민들에게 유럽의 농작물 재배 방식을 보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많은 갈등이 백인들의 선제공격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도 대대적인 보복 조치를 취하는데 소극적이었다. 그의 생각은 식민지 모국의 정책 기조와도 일치했다. 인도주의자들의 거센 노예제 반대 운동에 직면해 있었던 런던의 식민청(Colonial Office)은 식민지의 원주민들을 유럽 문명에 동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방하고 있었다.

식민지 총독 조지 아서

 

식민청 건물

 

그러나 개척민들의 피해가 크게 늘어나면서 총독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수년 동안 목숨을 잃은 개척민이 176명에 이르게 되자, 총독은 완전히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백인의 피해보다는 원주민의 피해가 훨씬 더 컸다. 원주민 희생자는 이미 700명을 넘어서 있었다. 그러나 백인 개척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같은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의 목숨이지, 원주민들의 목숨이 아니었다. 개척민들과 원주민의 희생자 비율은 1대 4정도였다. 같은 시기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백인 정착민과 원주민 집단 사이에 일어난 충돌로 희생된 사람의 비율이 1대 10이었음을 생각해볼 때, 태즈메이니아에 정착해 살고 있는 백인들의 불안감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객관적’ 수치를 제시하면서, 백인 정착민들 가운데 강경파는 ‘절멸 전쟁’을 요구했다. 이에 반해, 더 많은 피를 흘리기를 원하지 않는 온건파는 원주민들을 외딴 지역의 보호구역으로 추방할 것을 총독에게 요구했다.

참수된 태즈메이니아인의 머리

 

숙고를 거듭한 끝에 총독은 1828년 11월, 3년 시한의 군법(Martial Law)을 선포했다. 이 법은 앞으로 벌어질 학살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이 법은 태즈메이니아 섬의 백인 정착 지역에서 모든 원주민이 축출될 때까지 원주민 살해를 합법으로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백인 개척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불안감과 식민지 정부의 절망감이 뿌리 깊은 인종주의와 결합되어 만들어진 이 법을 근거로, 1829년 1월부터는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원주민 색출과 학살을 전담하는 조직이 구성되었다.

당시의 군법을 나타낸 그림

 

그런데 이 법이 시행된 지 2년 후인 1830년에 43명의 백인 정착민이 원주민에게 살해되었다. 크게 당황한 총독은 런던으로부터 지침을 받은 뒤에 대대적인 군사작전에 돌입했다. 이 작전에 따라 1830년 10월 태즈메이니아 섬에는 2,000명의 자유 정착민과 500명의 군인, 700명의 기결수가 동원된 거대한 인간 사슬이 만들어졌다. ‘검은 줄(Black Line)’이라고 명명된 이 거대한 사슬을 만들기 위해 소총으로 무장한 백인들이 3.5미터 간격으로 늘어섰다. 이들은 6주에 걸쳐 백인 정착 지역 일대를 이 잡듯이 훑었다. 생포된 원주민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이것으로 더 이상의 절멸 작전은 필요 없게 되었다.

붙잡힌 태즈메이니아인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