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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의 황혼]중화 제국의 마지막 황혼, 강건성세의 여명(39) ─ 황실 풍운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9.19|조회수565 목록 댓글 4

이제는 몇이나 남았나

 늙은 강관(講官)들
 세월이 흘러 군주도 신하도 늙어 약해지는데
 짐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슬퍼하는 것뿐
 한때는 큰 야망도 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 시들어 버렸네
 모든 환상 깨어졌으니
 진리를 찾노라며 스스로 괴롭히지 않으리
 간단한 해답만 찾겠노라 물러났건만
 모든 것은 여전히 흐릿하기만 해
 복잡한 것들 짐을 막아서서
 기력을 소진시키네
 몇 년 전부터는
 게을러져 시도 짓지 않았지
 이제 적당한 시구를 찾으려 하다
 붓에 쌓인 먼지 부끄러워지네

 강희제, 1720년경. 늙은 신하에게 주는 시




 강희는 평소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식습관도 검소하게 하였습니다. 병이 나면 차고 거친 음식을 멀리하고 생선도 오리고기도 먹지 않았습니다. 닭고기 양고기 등도 왠만하면 삶아 먹었고 구워 먹진 않았습니다. 강희는 순행하는 동안 여러곳의 채소를 먹어보았는데, 간혹 농부들이 주는 과일을 일부러 먹는 시늉만 내고 안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황제에게 주는 과일들은, 백성들은 처음 딴 과일을 주는데, 강희는 잘 익지 않은 과일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강희는 의학에도 약간의 소양이 있었고, 여러 의원들이 집마다 내려오는 '만병통치'의 전혀 다른 비방으로 마구잡이 식으로 약을 조제하는것에 대해서 마뜩찮게 여겼습니다. 그 약을 조제하는 의원 자신들조차도 효능을 믿지 못하는데, 이것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희는 의원들을 잡아다 법정에 세우려는 식으로는 하지 않았는데, 일거리도 없고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며 간신히 생계를 꾸려가는 의사들이 불쌍해서 였습니다.


 강희는 도사등의 엉터리같은 소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만물을 창조하는 우주의 힘과 경쟁할 정도로, 사물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라거나, "오행에 순응하고 팔괘와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라거나, "결코 늙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소리들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도사들을 강희는 유심히 보았는데, 그런 도사 중에 한명인 왕자잉이라는 사람의 경우에, 강희는 왕자잉이 다른 노인들과 별반 다를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눈은 흐릿하고, 이는 빠지고, 머리는 희었고, 다리는 희청거렸으며, 기력은 쇠하였습니다. 잠시동안만 말을 해도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는 것입니다.


 "짐이 너희들의 도(道)를 터득하려고 갖은 애를 쓰더라도 그게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거짓이 없는 알맹이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대도이다. 대도는 감히 누구도 속이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세월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고, '물이 빠지고 바위가 드러나는것' 을 바라보는 것이다. 짐은, 장생불사에 대한 증언을 믿지 않으나 진짜로 그런 존재가 있다는게 확인되면 마음속으로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너희들이 이처럼 급하게 서두르는 의도는 무엇인가?"


 장난 지방의 한 백성이, 장생불사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는 책을 주었을때, 강희는 보지도 않고 돌려주면서 가져다 버리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강희도, 할머니 효장태후가 천천히 죽어가자, 하늘에 기도를 올리면서 빌었습니다. 강희가 할머니의 입맛을 되살리기 위해 서른 가지 쌀죽을 준비시키자, 할머니는 강희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강희는 신하에게 부탁하여, 벼루에 "고요하게 지내는 습관을 들이면 수명을 연장 할 수 있다." 는 글귀를 새기고, 매일매일 연습을 통해 오랫동안 조용히 앉아 정신을 집중하는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정의 대신들도 대부분 나이가 들었고, 대부분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놀기를 원했습니다. 강희는 그들을 곁에 두고자 했고, 일을 안하더라도 가끔식 조정에 출석만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나이 많은 대신들을 탄핵하는 일에 대해서는 점점 짜증스러워했습니다.


 물론 정말 게으르고 횡설수설하는 지경에 이르면야 당연히 은퇴시켰습니다. 하지만, 강희는 푸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관료들은 늙고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는 점을 언제나 은퇴의 이유로 내세울 수 있지만, 황제는 그럴 수조차 없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정신이 가물가물해진다. 행복도 지나가 버리며, 골칫거리만 쌓인다."


 1684년 남순 하였을때, 난징을 배를 타고 동쪽의 양쯔강 하류로 내려갈때, 돌풍이 불자 모두 돛을 걷자고 했지만 강희는 그대로 두게 했습니다. 자연히 돛이 바람을 받아 팽팽해져 배는 쏜살같이 내달렸는데, 강희는 그런 상황에도 떨어질까 걱정도 하지 않고 뱃머리에서 물고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양쯔 강을 다시 건널 때가 되자 가슴이 조마조마해졌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양쯔강을 건너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떨리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자 참을성도 약해졌습니다. 젊었을 때는 노인들이 왜 더위를 참지 못하겠다고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던 강희였지만, 사십이 넘자 자신이 여름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름에는 무척 노곤하고 감각도 무뎌졌습니다.


 너무 장시간 과로하면, 정신력을 예전처럼 지탱할수가 없어졌습니다. 눈은 더 이상 작은 글씨를 쓸 수 없을 만큼 침침해졌고, 쉰넷이 넘자 가끔씩 현기증이 일어났으며, 나중에는 수척해졌습니다. 40년전의 일도 기억하던 강희였지만, 기억렫도 점점 약해졌고, 이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을 잊어버렸으며, 찾아야할 문장이 몇번째 권에 있는지, 또는 그 책이 어디 있는지도 가물가물했습니다. 한 달 정도가 지나 버리면, 읽은 내용의 일부만을 기억했습니다.


 늙고 병이 드는것은 모든 사람의 자연한 이치입니다. 강희에게 다른 걱정거리는, 이제 제국을 이끌어갈 다음 세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파일


 강희의 아들들 중에, 맏 아들 윤시(胤禔)는 내무부 총관 가루의 집에서 키워졌고, 셋째 아들 윤지(胤祉)는 내대신 춰얼지의 집에서 키워졌습니다. 다섯째 아들 윤기(胤祺)는 황태후의 처소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둘째이자 황태자인 윤잉(胤礽) ─ 곧 황후에게서 태어난 유일한 아들은 달랐습니다. 윤잉은 동궁에서 강희가 직접 키웠습니다. 윤잉이 네살때, 천연두에 걸리자 강희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직접 간호했습니다. 그리고 글읽기도 직접 가르쳤고, 장영 등 제국의 이름난 학자들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했습니다. 물론 윤잉만 그렇게 가르친건 아니지만, 윤잉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적잖은 귀족 집안의 자식들이 과도하게 귀염만 받고 자라기 때문에 커서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나 제멋대로 구는 망나니가 된다. 게다가 그런 자들은 능력도 없으면서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줄로 착각한다. 그렇게 키우는 것은 곧 자손을 망치는 일이다. 그러니 집안의 어른인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자손이 어렸을 때부터 반드시 엄하게 훈육해야 한다."


 강희는 여러 자식들을 상서방에서 가르쳤습니다. 상서방(上書房)은 이런 황자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는데, 이곳에선 만주어, 몽골어, 한어등 세가지의 언어를 배우게 했고 역사책과 여러 경사들을 배우게 함과 동시에 말타기, 활쏘기, 심지어 수영까지 가르쳤습니다. 예수회 선교사 부베는 이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황자들의 교육은 한림원에서 가장 학식이 넒은 사람들이 맡았는데, 그들은 모두 청년 시절부터 궁정에서 특별히 양성된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황자들의 모든 활동과 학습을 친히 관리하고 점검했다. 그는 황자들이 쓴 글을 직접 읽고 평가했을 뿐 아니라, 얼굴을 맞대고 공부한 내용을 구술하게 했다.

황제는 특히 황자들의 도덕성 함양과 신체 단련을 중시했다. 그래서 황자들이 철이 들 무렵부터 말 타기와 활 쏘기, 각종 무기를 다루는 법을 익히게 하여 그런 기예들을 오락 겸 취미로 삼게 했다.

그는 황자들이 너무 귀하게만 자라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고생을 해 봄으로서 강해지고, 검소한 생활 습관을 들이기를 바랐다. 앞서 말한 것들은 제르비용 신부가 6년 전 황제를 수행하여 달단산에 여행을 다녀온 후 전해준 이야기다.

군왕은 처음에는 맏아들과 셋째, 넷째 황자만을 자신의 곁에 두었다. 그러나 사냥을 갈 때면, 그 밖의 황자 네 명도 동행하게 했는데, 어린 황자는 아홉 살이었다. 사냥을 하는 한 달 동안 어린 황자들은 황제와 함께 하루 종일 말 위에서 바람과 따가운 햇볕을 견뎌야 했다. 어깨에 화살통을 메고, 손에는 활과 쇠뇌를 들고 사냥하는 황자들은 민첩하고 용감했다. 그들 가운데 사냥을 못해 빈 손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처음 사냥을 나온 가장 어린 황자도 작은 화살로 사슴 두 마리를 잡았다.

황자들은 모두 한어와 만주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어렵고 복잡한 한자도 단기간에 익혀나갔다. 그 즈음 막내 황자도 이미 사서 중 세 권을 떼고 마지막 권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황제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신경을 썻다. 그는 황자들이 유럽인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에서 자라게 만들었다.

황자들 주위의 신하들은 그 어느 누구도(황자들의) 아주 작은 실수조차 감춰 줄 수 없었다. 그들이 만약 그렇게 한다면 끔찍한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희는 윤잉과 반란문제에 대해서도 토의했으며, 산수화 그리는 법, 정사를 돌보는 원리, 활쏘기와 말타기 등 온갖 분야에서 어느정도 수위에 오르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런데, 가르단 정벌을 마치고 돌아온 황제의 눈 앞에 전혀 다른 모습이 모였습니다.


 윤잉의 궁궐에서 네 명의 인물들, 즉 궁정 요리사나 찻집에서 온 소년 등이 무언가 '부정한 행위'를 저질렀고, 강희는 이들을 바로 사형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윤잉과 그 일당은 갑자기(강희의 표현으로는) 사악하고 짐승 같은 행위를 반복했습니다. 강희에게 올라온 조공품을 가로채고, 강희의 말을 허락도 없이 타 몽골인들의 분노를 사고, 사치를 좋아하여 내무부에서 물건을 도둑질하고, 형제들이나, 그리고 강희 본인이 아파도 전혀 동정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강희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갑작스러운 사태였지만, 윤잉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강희의 너무나 과도한 기대에 시달린지 수십여년. 강희가 전쟁터에서 보내온 수많은 편지들도, 아무렇게나 여길 수 있는것이 아닌, 게중에는 폐부를 찌르는듯이 자신을 시험하는 말들도 있었을 정도니, 얼마나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는지 알법합니다. 이렇게 혹독한 시간을 버티는것은, 훗날 황제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윤잉이 나이가 이제 상당히 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황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강희가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윤잉은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40년간 태자로만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가?"


 빨리 등극하고 싶다. 이는 황제가 죽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불만에 차고, 주위에 완고한 노학자들밖에 없는 황태자의 옆으로, 한명 두명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놀이 패거리에 가까웠던 무리가 규모가 커지자 밀실 정치의 한 모습이 되었고, 황태자는 어느새 대단한 정치 보스가 되어 있었습니다. 강희는 파당이 생기지 않기 위하여 상당히 주의하였는데, 이전에 명주가 파당을 만들었다가 실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자신의 아들이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태자당입니다.


 이 파당에 연류된 자는, 다름아닌 색액도 였습니다. 만주족 명문 출신인데다가, 세상을 떠난 황태자의 숙부가 되니, 정치 보스가 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신분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권한이 막강한 사람이, 황태자를 옆에 두고 위세를 부리자 그 힘이 보통이 아닌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강희보다야, 앞날이 창창한 황태자 쪽이 투자 가치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태양이 있는데 또 다른 태양이 존재하는것은, 전제정치에서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고, 중국은 이 전제 정치가 수천년에 걸쳐 고도로 발달한 곳입니다. 황태자도 결국은 일개 신하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강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박살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 시점에서 강희는, 만악의 근원을 색액도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색액도가 황태자를 망쳤다. 색액도만 없어지면 정신을 차릴 것이다. 이리하여, 1702년, 말을 탄 채로 황태자 행궁에 다다르는 방자한 행위등을 한 색액도를 1703년 갑작스레 처형시켜버렸습니다. 


 하지만, 색액도가 죽었어도 황태자는 전혀 강희의 예측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황태자 중심의 당파는 해체되기는 커녕, 더욱 악질이 되어갔습니다. 더구나, 이제 색액도의 처형으로 강희는 황태자의 직접적인 원한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랬을지, 악랄한 자들의 중상모략일지 짐작도 하기 두려우나 강희의 귀로, 윤잉이 색액도의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색액도의 복수. 그렇다면 색액도를 죽인 사람에게 복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강희 본인입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강희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날 밤에 독살을 당할지, 다음날 아침에 죽임을 당할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었고,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1708년 10월. 강희는 갑작스레 황태자를 온갖 대신, 시위, 문무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무릎을 꿇게 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짐은 태조와 태종, 세조의 대업을 계승하여 38년간 통치해 왔노라. 그간 온 마음을 쏙아서 신하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백성들을 보살피면서 천하를 편안하게 다스리는것을 사명으로 여겨 왔노라. 이제 짐이 살펴보니, 윤잉은 조상의 덕을 본받지 아니하고, 짐의 가르침도 따르지 않고 있다. 입에 담기조차 수치스럽지만, 그는 사악하고 뭇 사람을 학대하며 난폭하고 음란하였다. 짐은 20년 동안이나 그를 포용해 왔지만, 그 사악함은 점점 더 심해져 조정의 여러 왕, 버일러, 대신, 관원들을 욕보이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또한 파당을 만들고 짐의 일상생활 하나하나를 엿보고 엿듣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라에는 오직 한 사람의 군주만이 존재할 뿐인데, 윤잉은 어찌하여 감히 여러 왕들과 버일러와 대신과 관원들을 마음대로 능욕하며 매질하였는가? 평군왕 네르수, 버일러 하이샨, 푸치 공 등은 모두 윤잉에게 구타를 당했다. 고위관료에서부터 말단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그에게서 해를 당하지 않은 자가 없다. 짐은 이런 실상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행동에 대해서 관료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 가운데 누구라도 그의 행동에 대해 말을 꺼낼 것 같으면, 윤잉이 그를 원수로 여겨 제멋대로 채찍질하고 태형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결심하였노라. 윤잉을 황태자의 자리에서 폐하고, 색액도의 여섯 아들을 처형시키도록 하라."


 강희는 이 사건에 대해서 더 이상의 처형은 없을 것이며, 어떠한 고발도 더 받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분하고, 당황하고, 애통하여 자신도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었습니다.


 강희가 보기에, 윤잉의 심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좋은 교육을 받았고, 또 세심한 보살핌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보면, 강희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순치제는 강희에게 그다지 인상적으로 남은 기억은 아니었고, 강희는 남들이 아직 남들이 글자도 다 깨우치지 못했을 무렵부터 제국의 황제가 되어, 어린아이가 아니라 대청제국의 군주로서 살기를 강요받았고, 그게 당연한 일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아들의 미묘한 심리는 자세히 알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강희가 윤잉의 행동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낮에는 자고, 밤에는 음식을 먹었는데 수십잔의 술을 마셔도 전혀 취하지 않았고, 일고여덞 그릇의 밥을 먹어도 배불러 하지를 않았습니다. 또, 귀신이 보인다고 안절부절하거나, 거처를 끊임없이 옮기고 비가 오고 뇌성벽력이 치면 어쩔줄을 몰라했고, 천지신명께 제사지낼때는 두려워서 예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아예 이런식으로 보게 되니 그런 면만 보이는지, 강희의 눈에 윤잉의 행동은 그야말로 귀신에 홀린듯 했습니다. 강희는 점점, 윤잉에게 사악한 귀신이 들었고, 그렇다면 이게 납득이 될법하다고 여겼습니다. 사실 강희는 귀신들림은 전혀 믿지 않았지만, 아들 문제가 되자 이성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11월 26일, 셋째아들 윤지가, '전임' 황태자가 진짜로 귀신에 들었다는 보고를 올렸습니다. 첫째아들 윤시가, 궁궐에 요사스런 물건을 숨겨 주술을 부렸다는 식입니다. 강희가 놀라 수색해보자, 진짜로 괴이한 물건이 있었고, 물어보니 주문을 외우면 윤잉이 가위에 눌려 꿈속에서 요괴를 만나도록 고안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물건을 땅에서 파내자, 윤잉이 갑자기 간질병 환자처럼 발악하더니 자살하려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제정신이 들자,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하였으며, 멀쩍히 떨어져 조용히 앉아만 있었습니다.


 무엇이 무엇인지 전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귀신에 홀렸다고 하는건 윤잉이었지만, 어쩌면 지금의 강희야 말로 귀신에 홀릴듯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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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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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일 | 작성시간 12.09.20 윤잉이는 자식이기는 부모없다는 말을 너무 믿은듯
  • 작성자남극대왕 | 작성시간 12.09.21 호랑이에게 개새끼 없다던데...
  • 작성자centurion | 작성시간 12.09.21 왠지 영조와 사도세자를 보는듯. 너무 잘난 아버지도 아들에겐 짐이 되는법.
  • 작성자리헨 | 작성시간 12.09.21 잘 읽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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