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존욱의 세력)과 거란이 치열하게 다투며 917년은 저물어갔다. 이 한해는 후량에게는 재정비의 해가 될 수도 있었지만 내부 분열때문에 금쪽같은 시간은 그냥 사라져 갔을 뿐이다. 다음 해에는 이변이 있었는데, 촉의 황제 왕건이 사망한 것이다.
청두시에 있는 왕건의 무덤
촉 지방은 어느 분열기든 그 지리적인 이점때문에(반면에 덕분에 그 안에서 진출을 못하고 갇혀버리기도 하지만)하나의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던 곳이다. 이미 서한 말기의 공손술, 후한 말기에는 유비라는 좋은 예가 있는데 오대 십국 시대도 마찬가지로, 당시 이곳에서 세력을 이끌던 사람은 왕건이었다. 고려 태조와 한자까지 동일하다고 한다.
왕건 또한 양행밀이나 전류 못지 않게 파란만잔한 군웅이다. 그의 삶을 보면 주전충 못지 않게 교활한데 황소의 난을 기회로 공을 세우며 자신의 힘을 키운 왕건은 당시 유력한 환관이던 전령자의 양자가 되었다. 당나라의 최후의 말기, 조정을 좌지우지 하는건 양복공과 전령자라는 두 명의 환관이었는데 이 둘은 서로 양자를 많이 받아들여 자신들의 힘을 키우려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왕건은 전령자가 컨트롤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는 점점 힘을 키우더니 성도를 장악, 자신이 양아버지로 모셨던 전령자를 살해하였다. 그 후엔 서천의 여러 번진들을 모조리 통합하여 마침내 사천성 전지역을 손아귀에 넣고, 그때 날리던 군벌인 이무정을 무찌르고 한중까지 손아귀에 넣었다. 난세에 제대로 된 세력을 일궈내었던 것이다.
이렇게 왕건이 강성해지게 되자, 당나라는 903년 왕건에게 촉왕의 자리를 허락해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량에 의해 당나라가 멸망 당해 더 이상 눈치 볼것도 없어지자 왕건은 황제가 되려는 마음을 먹는다. 그걸 눈치챈 신하들은 이 기회를 놓칠새라 아부를 하였다.
"대왕께선 당에 충성하였으나 이제 당이 망하였으니, 마땅히 황제가 되어야 하실 것입니다."
풍연이라는 신하만 반대를 했지만 왕건은 가볍게 씹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풍연은 그 후로 은거해버리고 마는데, 왕건은 글을 알지 못하였으나 말 잘하는 유자들과 대화하는건 좋아해서 대충 이치는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당나라가 변란에 휩싸이자 지식인들은 조용한 촉 땅으로 도망을 왔기 때문에 많은 지식인들이 있었고, 왕건은 이들을 우대해서 높이 대접했다. 곧 승려나 백성들도 많이 도망을 쳐왔고, 촉 지방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경제력을 과시하며 목판 인쇄 등 문화 사업에 매달려서 상당한 성과를 내는 좋은 일을 했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지형 때문에 안전하게 되자, 자연히 내부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여 비밀 경찰을 조직해 사람들을 처리해서,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쨌거나 왕건은 천성이 거친 사람이었다. 5대 시절 위장이라는 시인은 명성을 떨쳤는데, 위장에게는 아끼는 첩이 한명 있었다고 한다. 이 첩은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영특하여 시와 문장에 능해 둘은 사이가 아주 좋았다.
그런데 위장은 왕건의 수하였다. 그 첩을 본 왕건은 '시를 가르쳐주라' 며 추근대면서 자신의 궁으로 데려가 버렸다. 위장은 막을 수가 없어 속만 탔고, 우울해하면서 그녀를 그리는 노래를 했다.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저린 위장의 첩은 단식으로 목숨을 끊고 만다.
왕건의 죽음은 전촉의 쇠퇴를 가져왔다. 일전에 왕건은 자신의 궁성을 지나다가 시끄럽게 닭싸움과 격구 놀이를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알고보니 태자인 왕연이었다. 그때문에 왕건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 백번을 싸웠는데, 이 무리들이 과연 지켜낼 수 있을까?"
구백십팔년 8월 경, 두 개의 군단은 서로를 마주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하나는 후량의 장수 하괴와 사언장이 이끄는 군대요, 또 다른 하나는 진왕 이존욱이 직접 끌고 나온 병력이었다.
양군이 대치하고 있는 위치는 견성현의 서쪽이었는데, 이존욱은 이곳에 오기까지 여러 지역을 점령하고 온 길이었다. 양 군은 서로를 마주보며 약간의 다툼은 벌였지만 전면전은 벌이질 않았다.
이존욱은 그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변덕스러우며 나서는 성격 때문에, 이미 일전에 큰 낭패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바로 1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진을 살펴보다, 유심의 수천 군사에 포위되어 죽을 뻔한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러고도 이존욱은 전혀 자신의 행동을 바꾸질 않았다. 군왕이나 된 자면서 스스로 기병을 이끌고 적진에 돌격하기를 밥 먹듯이 했는데, 덕분에 죽을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때마다 옆에서 이소영이라는 맹장이 미친듯이 싸워 진왕을 구해내었다. 이소영의 본래 이름은 원행음인데, 하북을 지배하던 유수광의 가장 뛰어난 무장이었고 대단히 용맹했다. 후에 명종이 되는 이사원이 하북을 공격하던 중에 사로 잡아 자신의 양아들로 만든것을, 그 뛰어남을 보고 이존욱이 애가 타서 넘겨 주라고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건 별로 보기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쩌다가 큰 일이라도 당하면 군대는 무슨 꼴이 된단 말인가? 왕용과 왕처직은 후량을 배반하고 이존욱의 편이 된 절도사들로, 이존욱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둘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각자 편지를 보내 말했다.
"아이고, 우리 대왕님 어깨에 백성들하고 당나라 증흥도 걸려있는데 왜 이리 위험하게 구심?"
"허허, 돌아가서 너희들 주인에게 말해라. 천하를 평정하는 사람이 어찌 백번을 싸우질 않고 그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고선 여전히 위험하게 출정하는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존심이 와서 그를 말렸다. 이존심은 지난번에 살펴보았듯 위박 번진 획득에 공을 세운 노장이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천하를 위해 자중하셔야 합니다! 먼저 올라가서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장수와 사졸들의 직분, 저 이존심 같은 무리가 해야 할 것이지 대왕께서 할 일이 아닙니다."
별 수 없이 이존욱은 출정을 포기하고 돌아와서 잠이나 자야 했다. 다음날, 이존심이 주위에 있는지 눈치를 보던 이존욱은 부리나케 말 위에 올라타고는 기병 수백기를 불러 출격하면서 소리쳤다.
"늙은이가 다른 사람의 놀이를 방해하는구나!"
이런 개념상실한 행태를 후량군도 정보를 통해 미리 알고 있어, 후량의 장수 사언장은 5천여명을 매복시켰다가 후량 진영에 가까이 온 이존욱의 기병대를 기습 했다. 개털릴뻔한 이존욱이었지만 때마침 이존심의 지원군이 도착하여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이때가 되서야 정신을 차린 이존욱은 이존심의 말을 충성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훈훈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렇게 떠먹으라고 주어도 이존욱을 잡질 못하는 후량군은 그저 안습.....
이런 일이 있기도 하였지만 전선은 비교적 조용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8월에 시작된 대치 상태는 12월이 되도 별다른 조짐없이 이어져 오고 있었는데, 이변이 생긴것은 후량 군에서부터 였다.
후량 군을 이끄는 두 장군, 북면행영초토사 하괴와 배진사 사언장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하괴는 보병을 잘 다룬다는 말을 들었고 사언장은 기병을 뛰어나게 인솔하여 싸움을 하는것이라는 문제가 없었는데, 둘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뭔가 잘 안 맞았다.
하괴의 입장은 이러했다.
'현재의 병력은 나라의 명운을 건 병력. 마땅히 싸워서 결판을 내어야 할것'
사언장의 입장은 이런 식이었다.
'중요한 병력인만큼 함부로 위험한 교전은 삼가야.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세워 지구전으로 끌고 가면 아군의 유리는 필연'
이렇게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는데, 더구나 이런 일까지 있었다. 두 명은 함께 나와 군사를 훈련시켰는데, 하괴는 괜찮은 고지를 발견하고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저 곳에 목책을 세운다면 적을 막을만 하겠군요."
그런데 며칠 지나질 않아 아군이 목책을 세우기도 전에 이존욱의 군사가 그곳에 목책을 세우는 것이 아닌가. 이러자 하괴는 사언장이 적과 내통하여 아군의 기밀을 유출하고, 일부러 싸움을 피하려고 한다고 믿게 되어버렸다. 결국 하괴는 병사를 매복시켰다가 사언장을 죽이고는 조정에는 사언장이 모반을 꾸며서 제거했다고 보고했다. 이존욱도 이 이야기를 들었는데, 때가 되었다는 듯이 박장대소했다.
"저들의 장수가 스스로 도마 위에 올라온 생선이 되었으니, 망하는 때는 몇 날이 안 남았다! 하괴는 잔인하고 포악한 인사임으로 이미 사졸들의 마음을 잃었으니, 우리가 어서 대량으로 공격한다면 저들이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스스로 다시 1만 기병을 인솔하고 적의 수도를 바로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자 주덕위가 말렸다.
"양나라의 장수는 죽었으나 군대는 온전합니다. 경솔히 행동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허나 이존욱이 언제 다른 사람들 말을 들었던가? 그냥 또다시 무시하고 군영을 박살난 후 군대를 움직여 대량으로 공격해들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하괴는 깜짝 놀라며 자신들도 군영을 박살 내고 이존욱의 뒤를 추격했다. 하괴의 군대가 가까이 다가오자 주덕위는 또다시 간언했다.
"적은 급하게 와서 아직 거처할 곳이 없고, 아군은 이미 진영을 단단하게 구축했습니다. 이곳은 적의 깊숙한 영토이니 행동에는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대왕께서는 일단 군사를 싸우게 하지 마시고, 저 주덕위에게 기병을 주어 적을 교란하여 휴식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들이 피곤하고 지칠 때 단번에 공격을 한다면 반드시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존욱은 오히려 비웃을 뿐이었다.
"공은 무슨 겁을 그렇게 내는가? 이존심, 그대는 치중을 먼저 출발 시키고, 주덕위 그대도 군대를 출발 시키시오. 나는 후위를 맡아 적을 깨뜨리고 가겠소."
그러자 주덕위는 한숨을 쉬며 아들에게 "내가 어디서 죽을지 모르겠다." 고 푸념했다.
주덕위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는 본래 황소군의 수하 였으나, 이극용에게 발탁되어 그의 무장이 되었다. 경극이나 소설을 보면 주덕위는 이극용과 100여 차례 합을 겨루어 승부가 나질 않자, 이극용이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하늘을 날아가는 독수리를 쏘아 떨어뜨리자 주덕위는 놀라서 항복했다고 한다.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극용 전사비조(李克用箭射飛雕)라고 한다. 이존욱이 후계자가 될 무렵 주덕위는 외부에 있어 모반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주덕위는 군대는 내버려두고 혼자 진양으로 돌아와 이극용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무용은 대단해서 적장을 철퇴로 사로잡은 일도 있었고, 지휘관으로 능력도 뛰어나 하북 평정에는 가장 큰 공을 세운 노장이다.
아무튼 이리하여 펼쳐진 전투는 그야말로 난장판의 연속이었다. 이존욱의 군대가 하괴를 공격하자 후량군은 순식간에 밀리기 시작했는데, 후량 장수 왕언장은 상황이 글렀음을 알고 우선 군대를 인솔해 복양으로 도주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서로 군사들이 얽히고 섥히며 누가 누군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그리하여 전법이고 뭐고 없는 난전이 되어 싸우다가 주덕위 부자는 어이없이 비명횡사 하고 만다.
시간이 지나자 후량군은 점차 대오를 회복하기 시작했지만, 이존욱의 군대는 여전히 우왕자왕 하기만 할 뿐 이었다. 이존욱은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온 힘을 다해 병사들을 수습하였다. 좀 더 유리한 위치를 빼았고 부대를 전열하기 위한 사투가 하루동안 계속되다가 밤이 되자 간신히 수습이 되어 양군은 서로 물러났다. 이존욱은 제장들을 소집해서 난국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물어보았다. 다만 속으로는 일이 어렵게 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었다.
일전에 후량군에 있다가 이존욱에게 항복한 염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왕언장이 이끄는 기병대는 이미 물러났습니다. 이제 저 곳에 남은 자들은 보병뿐입니다. 우리는 산위를 점거하고 있으니, 높은곳에서 아래로 공격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대왕의 성패가 이 한번의 전투에 달려있습니다."
이사소 역시 말하였다.
"적에게는 군영과 보루가 없습니다. 정예 기병으로 적이 쉬면서 밥을 먹지 못하게 훼방을 놓으며, 그들이 물러나는 즉시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물러난다면, 적은 전열을 정비할 것입니다."
은창 대장, 즉 금위 대장인 왕건급 역시 말하였다.
"왕언장은 이미 숨은데 반해, 대왕의 기병대는 멀쩡합니다. 왕께서는 우리가 적들을 무찌르는것을 관망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하여 이존욱은 싸울 마음을 먹고 이사소와 왕건급에게 기병을 맡겨 돌격시켰다. 이에 후량군은 우왕자왕 하였고, 기세를 탄 진군이 밀어닥치면서 후량군은 대패하고 만다. 이때서야 이존욱은 주덕위가 죽은것을 알고 슬퍼하였다.
"훌륭한 장수를 잃었으니, 이는 내 죄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을 남주 자사로 삼고, 주덕위의 자리에는 이존심을 임명했다. 이때쯤 이사원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가 '진이 패배하고 이존욱은 황하를 건너 도망갔다' 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리하여 자신도 달아나다가 이존욱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자 돌아왔다. 헌데 이존욱의 기색이 이상했다.
"황하를 건너서 어디서 가시려던 것이오? 허, 공은 내가 죽은 것으로 생각했나 보오."
이사원이 안절부절하며 머리를 숙이며 빌자, 이존욱은 벌주를 하나 마시는 것으로 웃고 끝냈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보는 데서 였을뿐, 이 일을 기점으로 이존욱과 이사원 사이에 무언가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하간 이 일이 있은 후 이존욱은 잠시간의 정비에 나섰다. 이존욱의 사촌 여동생의 남편으로 맹지상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후촉의 개국군주다. 맹지상은 곽숭도라는 인물을 천거했다. 곽숭도...는 기개 있는 선비로서 지략이 있었고 과감했다고 한다. 이존욱은 그를 매우 신임해 모든 기밀을 맡기게 된다. 또다른 능력있는 인물인 풍도는 장서기에 임명되었다.
후량의 수도 대량의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이미 세기말 분위기가 나면서 사람들은 전부 다른곳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이존욱이 쳐들어올것만 같았다. 주우정은 안감힘을 쓰며 다시 한번 군사를 모아보려고 했지만 한달이 넘어도 쉽지가 않았다. 유심, 하괴 등 파견된 장수들과 이존욱의 군대 사이에 싸움은 계속 벌어졌지만 이 정도로 커다란 싸움은 한동안은 없었다. 하지만 복양성 또한 함락당했고 하괴는 병들어 죽었다.
이존욱은 또다시 무리하게 소규모 군대를 이끌고 적의 군량미를 끊으려다가 매복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되었지만, 이번에도 이소영 등의 활약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정도면 뭐 -_- 그냥 하늘이 후량을 싫어하는듯
그 후, 일전에 이존욱에 항복하고 후량에게 양다리를 걸쳤던 주우겸은 이때쯤 대놓고 이존욱의 편을 들었다. 그러자 후량 장수 유심은 황제의 명을 받고 공격에 나섰고, 사태가 위급해지자 부하들은 주우겸에게 후량에게 다시 투항할것을 권했지만 주우겸은 거절한다.
"일전에 진왕이 나를 위하여 싸우고 양식을 대줬는데 어찌 배반한다는 것이냐?"
이리하여 진에 구원을 청하자 이존심 - 이사원 - 왕건급 등 기라성 같은 장수들이 몰려와 유심을 박살냈다. 이번에도 깨지는 유심....
싸울때마다 이기고, 이길때마다 땅이 늘어났다. 이렇게 되자 이존욱에게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었겟는가? 그가 황제가 되려고 해도 누가 막을 수 있었겠는가? 이때쯤 촉의 황제 왕연이 넌지시 이존욱에게 황제를 칭할것을 권했다. 그러자 이존욱은 이 편지를 장수들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일찍이 돌아가신 왕 태사(촉 1대 황제 왕건)도 이런 소리를 했소. 우리 아버지(이극용)이 말씀하시기를 "만일 내가 스스로 구석을 하려했다고 해도 누가 막았겠는가? 다만 우리 집안이 충성스러워서 그러지 않았을 뿐이다" 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런 논의는 없던것으로 하겠소이다."
그러면서 울면서 그만두었는데, 이상스런 일이다.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는데, 왜 편지를 다 보여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장수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의도는 다 알고 있었다. 더구나 이존욱이 황제가 되면 자신들도 그 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답을 받고, 개국 공신이 되는 것인데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이존욱은 장수들이 모두 부탁하자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이때 이존욱은 위주에 있었는데, 진양에 있던 장승업은 부리나케 달려와서 말렸다.
그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 능력을 나라를 위하여 불살랐다. 이존욱은 그를 몹시 신임해 태원 방면의 군사 문제 모두를 장승업에게 맡겼다. 그는 부지런히 사람들을 모으고 말을 사 모으고, 농경지를 개간하여 군량미를 보급하고 갈곳없는 유랑민을 정착시키는등 많은 공을 세웠다. 이 장승업의 도움 떄문에 이존욱은 아무런 걱정없이 후량과의 전쟁에 힘을 쏟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장승업은 뛰어난 참모임과 동시에, 이존욱의 정신적인 스승이기도 했다. 이존욱이 휘장을 치고 자고 있자 언제는 휘장을 거두고 그를 깨우면서 닥달한적도 있었습니다.
"주덕위는 노장인데도 저리 열심인데, 휘장 속에서 잠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헌데 장승업은 아첨할줄 모르는 사람이라 이존욱은 살짝 불만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어느날 연회 자리가 벌어지고 이존욱의 아들이 나와서 춤을 추자, 장승업은 그에게 한주머니의 재물과 말을 건넸다. 당나라 시대에는 그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헌데 술에 취해 정신이 오락가락한 이존욱은 자기 아들에게 재물을 너무 적게 준다고 장승업을 나무랐다.
"이보게, 내 아들이 쓸 돈이 없는데 자네는 어찌 그리 인색한가? 적어도 한 상자는 주어야지! 금고를 열게"
"재물과 말은 신의 봉록으로 산것이니 문제가 없습니다. 허나 금고는 대왕님의 병사들에게 보급하는데 쓸 중요한것이니, 어찌 공금으로 개인의 사정으 살피겠습니까?"
"이 늙은것이 나를 무시하는것이냐?"
이존욱은 대노해서 장승업을 몰아부치지만, 장승업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충언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제가 늙긴 했으나 자손을 위한 재물 따윈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재물을 아낌은 대업을 위한것이니, 재물이 모두 흩어져 버린다면 어찌 대업을 이룩하겠습니까?"
이존욱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칼을 꺼내서 그를 겨누었다. 하지만 장승업은 계속 '차라리 죽는다면 내가 죽어서 선왕인 이극용을 만나도 부끄럽지 않다' 며 뻣대었는데, 보다못한 염보라는 신하가 장승업을 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장승업은 오히려 그를 걷어차면서 소리쳤다.
"네 놈은 본래 주온과 한 패거리가 아니냐? 어찌 대왕에게 아첨을 하며 그분의 판단을 흐리게 하느냐?"
한편 이존욱의 어머니이자 죽은 이극용의 부인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달려와 이존욱을 나무랐다. 다음날이 되서 술이 꺤 이존욱은 그때서야 잘못을 깨닫고 장승업에게 사죄했다.
이러한 장승업은 이존욱이 황제가 되려고 하는것에 대해 극렬하게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왕께선 대대로 당실에 충설을 하셨습니다. 이 늙은이가 30년 동안 군사와 군마를 보충하고, 재화와 보물을 주워서 모은것엔 역적을 멸하고 종묘사직을 회복하려 했을 뿐입니다. 지금 하북은 평정되었지만 역적 주씨는 건재하는데, 폐하께서 재위에 오르시면 천하사람들 가운데 누가 흩어지지 않겠습니까? 왕께서는 먼저 주시를 먼저 멸망시켜 망국의 원수를 보복하고, 그 후에 당의 후예를 찾아다 그를 모시고 세워 서쪽으로는 촉을 정벌하지 않으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고조와 당태종이 살아난다해도 누가 감히 왕의 위에 계시겠습니까?"
장승업의 공이 그동안에 하도 큰지라 이존욱은 대놓고 싫은 소리는 못하고 빙빙 돌려서 거절했다.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여러 신하들의 생각이니, 나도 글쎄 어찌하겠소이까."
"제후들이 피나는 싸움을 한것은 본래 당가를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 왕께서 이를 빼았으시다니, 아! 아!"
장승업은 울면서 물러났다. 그리고 병에 걸려 다시는 일어나질 못했다. 이존욱은 등극 준비를 서둘렀지만, 후당이 탄생하게 된것은 2년 뒤인 923년 부터였다. 다시 한번 시작된 거란군, 야율아보기의 공격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