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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의 황혼]중화제국의 마지막 황혼, 강건성세의 여명(68) ─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12.23|조회수546 목록 댓글 2



Hosea Ballou Morse의 The International Relationships of the Chinese Empire에서는, 1800년 경 중국으로 운반된 아편은 4570 상자라고 합니다. 이는 모두 274톤 분량입니다. 이는 막대한 분량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위험한 물건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더 많아 지기만 하여, 1816년에는 32톤이 증가했고, 1824년에는 973만 달러의 아편이 수입되었으며, 1830년에는 1374만 달러의 아편이 들어왔습니다. 1838년에는 4만 상자가 넘는 아편이 중국으로 계속해서 드렁왔습니다.


 이 이국의 괴물은 중국이라는 거인을 주먹 한번 뻗지 않고도 그대로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면, 그리고 세상에 말세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아편은 사회 문제로 대두했는데, 영국 측에서는 간혹 '아편이 청나라에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일은 사실이나, 다만 경제적인 부분에서 논의가 많았고, 정부는 국민의 건강이나 인도적인 견지에서 아편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한 적은 적었다.'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찻잎 수입에 따른 은 유출을 해결한다고, 아편을 팔아치운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닙니다.


 물론 청나라가 아편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것은,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문제로 하는 다양한 논의가 벌어지면서, 인간을 무력화시키고, 최후에는 영혼없는 빈껍데기로 만들어버리는 이 악마에 대해, 인도적인 문제성이 무시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까닭은 아편에 대한 본격적인 처음 논의가 어느정도 그런 성격을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편으로 인한 은 유출의 대책에 관해, 논쟁의 시초를 마련한 사람은 허내제(許乃濟)입니다. 그는 아편의 본고장이나 다름없는 광동의 안찰사를 임했던 경력이 있었는데, 그는 광저우 등에서 아편의 실태에 대해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허내제는 2만이나 되는 아편이 끊임없이 중국으로 들어오고, 모든 계층에서 아편을 피우며 바보가 되어가는 절망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끔찍한 현실을 목격한 그는, 사실상 아편의 수입을 완전히 차단하는건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고 맙니다.


 하여, 그는 당시 황제인 도광제에게 자신의 주장인 이금론(弛禁論)을 담은 상소를 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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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편 수입은)근년에는 2만여 상자에 이르렀습니다. 아편 대금은 매년 1천 수백만 원이지만, 이것을 환산하면 은 1천만 냥 이상에 이릅니다. 종래에 외국 상인은 양은을 가져와서 중국의 물자를 샀지만, 아편을 밀수하게 되면서부터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며, 마침내 은이 유출되는 일은 있으되 유입되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은값이 오르기만 하고 내지리 않는데, 이것이 아편 구입에 따른 은의 유출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소금은 동전으로 사는데, 과세는 은으로 합니다. 그리하여 소금 상인들은 크나큰 타격을 받아, 각 성의 소금 업무가 피폐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주나 현의 전량 세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중원의 바닥나기 쉬운 공간으로 해외의 바닥 모를 골짜기를 메우는 것과 같으니,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인과 무역을 단절하여, 발본색원 하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천조가 물론 100만 냥의 무역 세수를 아까워하겠습니까만은, 서양 여러 나라의 상선을 받아들인 것이 1천여 년이나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편을 파는 곳은 오직 영국뿐인데, 영국 하나 때문에 무역을 단절할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해안 지방의 백성 수십만 명이 통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니, 이는 또 어찌해야 합니까."


 "외국 선박은 대양 밖에 있어 마음대로 섬을 고를 수 있고, 내양의 상선도 모두 거기에 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근년에는 외국 선박도 복건, 절강, 강남, 산동, 천진 등 여러 항구를 돌아다닙니다. 이는 아편을 팔기 위한 것으로 지방관이 때마다 쫓아내고는 있지만, 들리는 말에 따르면, 밀수하는 아편의 양의 적지 않다고 합니다. 광저우에서 무역을 단절해도 밀수품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엄하게 금지하면 할수록 밀수 방법은 교묘해지고, 탐관오리의 호주머니만 뇌물로 풍족해집다."


 "아편을 피우는 자는 모두 게으르고 방탕한 자로, 경중을 매길 가치도 없습니다. 우리 중국의 인구는 날마다 늘고 있으므로, (아편을 피우는 자가 죽어도) 인구가 줄 우려는 결코 없습니다. 차라리 아편에 약재로서 세금을 매기어 외국 상인에게 납부하게 하고, 통관 후에는 물물교환으로 은을 쓰지 않고 교역하게 함이 어떻습니까? 외국 상인측으로서도 수입세가 지금까지 쓴 뇌물보다 부담이 적으므로,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양은이든, 문은이든, 일률적으로 유출을 금지해야 합니다."


 "이에따라 매년 중원의 은 1천여만 냥을 아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득이고, 어느 쪽이 실인지 자명합니다."



 요지를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어차피 아편을 금지하지 못하면, 제대로 수입세를 징수하고, 이왕이면 나라 안에서 아편을 재배하는 이야기입니다. 생략했지만, 중국 땅의 성질이 외국보다 온화해서, 중국에서 아편을 만들면 독성이 적을것이라는 식의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왕모라는 한 사람도 비슷한 이금론을 주장했는데, 어차피 아편을 피우는 자는 한가하고 방탕한 자이므로 몸을 망치는것은 자기 자업 자득이고, 다만 문무 관료와 그 자제, 병정, 또는 공직에 있고 군대만은 아편을 엄금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지도층만 돌보면 그만이고, 그외의 무리는 내팽겨치면 그만이라는 식의 시각입니다. 이에 대해 격노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엄금론(嚴禁論)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부시랑 주준, 급사중 허구(許) 등은 이금론을 논박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게중에 허구의 상소문 중 일부를 보면,


 "(이금론자들은 백성에게는 허용하고)관과 군에는 금한다고 말한다. 관과 군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관원이나 병사도 모두 백성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독물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이 시중에 나도는 것을 허가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정치는, 떳떳해야만 할 천조에서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주준이 쓴 상소문의 경우, 아편이 재화문제일 뿐이라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백성에게 해를 끼친다면 이는 가장 우려스러우며, 이는 백성이야말로 나라의 근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여 이금론과 완전히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금론의 바탕에 깔린 기본적인 생각은, 아편을 피우는 사람은 어리석은 백성일 뿐이므로, 자업자득인 일에 정부가 애석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빈다. 하지만, 원옥린(袁玉麟) 등의 엄금론자들은 비열한 소리라면서 이를 비난했습니다.


 사람을 포기하고 돈의 가치를 쫒는가. 혹은 사람의 가치를 지키느라, 현실적인 경제 문제를 등한시 하는가. 


 도광제는 사람의 가치를 살리는 쪽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문제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국 국왕에게 직접 친서를 보내는 것이 어떤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 역시 막막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극히 비인도적인 이금론은 거의 논파되어버렸습니다. 이금론의 주장은 아편을 국내에서 생산하자는것이 가장 큰 요지인데, 이미 그런 말 없이 아편 재배는 중국 내에서도 음성적으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아편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금론을 찬성하는 일은 역사에 죄인이 되는 일이며, 도둑질을 금한들 도둑이 없어지지 않으므로, 도둑을 허가하자는 소리가 아냐니고 반대하여 이금론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엄금론 역시 이상주의적 면모 외에는 대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광제에게 올려온 상소가 황작자(黃爵滋)의 상소문입니다. 그는 선남시사(宣南詩社)라는 친목 모임의 회원이었는데, 이 단체에는 청나라 역사에 길이남는 대시인 공자진(龔自珍), 그리고 임칙서(林則徐) 등이 있었습니다. 황작자는 적극적인 대책을 주장하며, 아편문제를 완전히 해결시킬 수 있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 제안의 핵심은 아편을 피우는 자에게 1년의 재활 기간을 주고, 그 후에도 아편을 피우면 중형으로 처벌하자는 것입니다. 항구를 단속한다 해도 1만리가 넘는 중국의 해안선을 모조리 봉쇄할 수는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아편은 이미 금제품이므로, 통상을 금지한다 하더라도 불법적인 경로로 아편이 들어올 것은 뻔한 일입니다. 


 왜 중국의 은이 유출되는가? 아편을 사기 때문입니다. 왜 아편을 사는가? 피우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우는 사람이 없어지면 아편을 사는 사람도 없고, 아편을 사는 사람이 없어지면 중국의 은이 유출될 일도 없습니다. 간단한 이야기지만, 핵심이었습니다.


 이렇게 초강경한 조치를 취할 경우, 억울한 사람들이 죽어나갈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는 어떻게 보면 꽤 자유로웠는데, 아편을 1년 넘게 장기 복용하는 사람은 누가 보더라도 그 사람이 중독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폐혜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도광제는 중국 전역의 총독, 순무 20여명에게 의견을 구했고, 이중 20여명이 제안에 동의했으며, 나머지도 '단지 사형은 너무 가혹한 처벌' 이라는 의견이었을뿐, 전면적인 반대는 아니었습니다. 도광제는 이제 황작자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필요한 적임자를 물색했습니다.




 그런 도광제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임칙서였습니다. 그는 지방 근무를 오랫동안 해서 실적도 있었고, 실무에도 능했습니다. 임칙서는 황작자의 의견에 대해, 좀 더 세밀한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단순히 1년간의 유예 기간을 주는것이 아닌, 1년을 4기로 나누어서 감독을 하고, 아편을 피우는 자, 아편굴을 여는 자, 아편을 판매하는 자, 도구를 제조하는 자까지 모두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더 이상 꾸물대며 이를 방관한다면, 수십 년이 지난 중원에서는 적을 막아야할 병사도 없을 것입니다. 또는 군비를 채워 줄 은도 없을 것입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면, 실로 두려워 온몸이 떨릴 뿐입니다."


 1838년 음력 11월 11일, 임칙서는 도광제의 명령에 따라 무창에서 상경하여 베이징에 도착했고, 건청궁에서 황제를 만나 주위의 모든 사람을 물리치고 1시간 동안 황제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틀 정도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고, 15일에 임칙서는 정식으로 황제의 흠차대신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또한, 광동으로 떠나 사건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도광제는 광동성의 해군까지 임칙서의 지휘 아래 있게 하였습니다. 


 흠차대신 임칙서는 지방으로 내려가기 전, 준비를 위해 7일동안 베이징에 머물렀습니다. 그 시간 동안, 선남시사의 동호인들도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시인 공자진은 자신 역시 임칙서를 따라가, 그를 도와주겠다고 하였지만, 임칙서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임칙서 자신의 문집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바가 있다." 


 고 짤막하게 남겼을 뿐입니다. 임칙서는 글이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 구두로서 그 이유를 설명하게 했습니다. 


 황제의 신임을 얻은 임칙서이지만, 현실적으로 보아 아편은 이미 중국의 골수를 병들게 하였고, 광동의 관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서로 뇌물을 듬뿍 먹어가며 아편 밀수에 눈을 감아버리고 있었습니다. 때때로 밀수꾼을 잡을때도, 뇌물을 바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의미를 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베이징에서조차도 아편이 성행하여, 황족 중에서도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아편에 취해 혼탁해져있었습니다. 아편을 금지하려는 생각을 광동의 관리들이 달갑게 여길리 만무합니다. 초강경한 조치에 대해 반발하는 보수주의자들도 있었습니다. 임칙서에 대한 총애를 고깝게 여기는 존재들도 있었습니다.


 중앙에도, 현지에도 모두가 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실패한다면, 임칙서 본인에게도 재앙이 닥칠 것은 자명했고, 따라서 그가 친구들을 위험에 얽히게 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임칙서는 베이징을 떠나기 전에 동지를 만나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생(死生)은 운명에 달려 있고, 성패(成敗)는 하늘에 달려 있다."


 임칙서는 그런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색빛 시대, 임칙서는 그 시대를 구하기 위해, 결연한 마음을 먹고 남으로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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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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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유럽제패 | 작성시간 12.12.24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죠. 불법으로 취급하느냐 합법화해서 정부에서 관리하느냐의 문제
    뭐 어떻게 하든 확실한 해결책이 아닌거라는 것
  • 작성자열혈청년 | 작성시간 12.12.24 마약 같은 문제에는 매우 단호한 태도가 요구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털어내기 어려운 것이
    이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마약. 인육. 장기매매. 인신매매 등 이런 범죄에 대해서는 인명을 아까워할 것이 아니라
    중형으로 다스려서 초기에 근절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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