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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일본 극우 도야마 미쓰루의 김옥균에 대한 평가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8.31|조회수1,065 목록 댓글 0



 




대외론에서는 일본의 해외 진출을 호소해 구미 열강 제국과의 불평등 조약 개정 문제에 대해서는 대외의 입장에서 주장을 행하였고, 일찍부터 대 러시아 동지회에 참가해 러일전쟁 개전론을 주장했다.


1881년하코다 로쿠스케히라오카 고타로등과 겐요샤(현양사)를 설립했다



겐요샤 [ 玄洋社 ] 

일본의 극우단체이자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주범

일본의 극우단체이자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주범이다. 1881년 도야마 미치루(頭山滿) 등이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몰락한 무사계급 출신들을 규합해 조직했다. 처음에는 국회 개설운동에 참가하는 등 민족주의·민권주의를 내걸었으나 차츰 민권운동에서 이탈해 대외강경론을 주장하는 국권주의적 단체로 변모해 갔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에는 대외강경론을 주장하며 군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1895년 10월 8일 이 단체소속의 토우 카츠아키(藤勝顯)라는 낭인이 경복궁에 침입,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저질렀다. 그는 명성왕후를 시해한 48명의 낭인 중의 한명으로 명성왕후를 두번째로 베어 마지막 숨을 끊었노라고 스스로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당시 일본 공사였던 미우라 고로(山口縣)는 겐요사 회원 출신으로 명성황후 시해를 직접 계획한 인물이며 일본 정부가 직접 시해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사조직인 겐요사의 낭인들을 직접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48명은 일본사법당국에 의해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2년간의 복역 후 전원 석방됐다. 겐요사는 러일전쟁 때는 만주의군(滿洲義軍)을 조직해 게릴라 활동을 하는 등 정치·전쟁·테러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전 후인 1946년 위험단체로 지목돼 연합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과정만 보면 블랙 코미디 그 자체




진순신은 김옥균이 망명되서 개털 된후 이홍장 만나서 담판 지으려는것을 보고

아무것도 없는 개인의 영향력으로 그런 일을 하려는것 보고 이 사람 현실감각이 좀 부족한걸 보여주는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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