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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여자 끼고 술마시고 노는것보다 서양 학문 공부하는걸 더 좋아한 강희제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7.05|조회수1,270 목록 댓글 15



파일:Middle-aged Kangxi.jpg

성공에는 내재적인 요인이 필요하다. 강희제는 자신의 내면 수양을 위해 경전을 읽고, 천문지리를 공부했다. 강희제가 유학에 조예가 깊었음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 밖에도 그는 시와 서화, 천문, 음악, 수학, 의술 등 다른 많은 분야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7개 언어에 능통해 대학자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였다. 강희제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형 황제였으며, 놀라운 자기 통제력과 의지를 가진 영웅이었다. 


 ……(중략) 일강은 처음에는 이틀에 한 번씩 실시했으나, 2년 후부터는 매일 실시했다. 강희제는 이 경연일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거의 거른 적이 없다. 삼번의 난을 평정하던 중요한 시기에도 일강을 매일 실시하라고 명했고, 강희 12년(1673) 여름, 규정에 따라 일강을 잠시 중단하려 하자, "학문의 도는 중단이 없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일강을 계속 하자고 했다. 대서가 되어 강관이 무더위에 황제의 몸이 축날 것을 우려해 일강을 당분간 중단하자고 하자, "짐은 책은 읽으면 피로한 줄 모른다." 라고 말했다. 또 강관이 없을 때에는 혼자 궁에서 일강 때 배운것을 복습했다.


 ……(중략)강희제는 청대 황제들 가운데 유가 경전을 가장 열심히 공부한 황제 일 뿐만 아니라, 중국에 전파된 서양의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흥미를 가지고 공부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 점은 중국의 역대 어느 황제와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그만의 장점이었다.


 (서양의)자연과학에 대한 강희제의 관심과 흥미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자연과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강희제는 황제 즉위 초기 역법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면서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들은 짐이 산술에 흥미가 있다는것만 알고 짐이 산술에 흥미를 가지게 된 연고는 모르고 있다. 짐이 어린 시절 흠천감(역법 담당)이 서양인들과 반목하여 서로 탄핵을 일삼았는데, 하루는 양광선과 탕약망(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이 오문 밖에서 신하들을 모아 놓고 해를 관측하며 역법을 설명했는데, 신하들 가운데 그 이치를 아는 이가 하나도 없어 시비를 가릴 수가 없었다. 짐은 그때 매우 화가 나서 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강희제는 처음에 페르비스트에게 기하를 배웠고, 강희 27년(1688) 페르비스트가 세상을 떠난 후로는 북경에 얼마 되지 않은 프랑스 선교사 제르비용과 부베, 그리고 포르투갈 선교사 페레이라 등에게 수학을 배웠다. 강희제는 (중략) 마테오 리치가 중국어로 번역한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을 만주어로 번역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라틴어를 배웠다.유럽의 문자와 숫자를 알기 위해서는 라틴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희제는 하루도 빠짐없이 양심전에서 선교사들에게 수학을 배웠다. 양심전에는 수학 기구들이 많았는데, 일부는 선교사들이 선물한 것이고, 또 일부는 그가 직접 사람을 시켜 제작하거나 혹은 본떠 만든 것이었다. 


강희제는 매우 진지하게 수학을 공부했고, 잘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질문을 했다. 또 직접 기하 도형을 그리고 연산을 훈련하고 수학 기구 사용을 연습했다. 그는 또 바티칸의 "실용과 이론 기하학"을 공부하고 그것과 유클리드 기하학의 차이점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반년도 되지 않아 그는 기본적인 기하 지식을 갖추었음은 물론이고, 몇몇 기하 도형의 정리와 증명 과정은 술술 말 할수 있을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또 능숙하게 대수를 이용해 연산을 했고, 또 대수표를 이용해 삼각형을 분석할 수 있었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자신이 "기하학원본"을 적어도 스무 번은 읽었다고 말했으며, 두 세 시간 강의를 들은 후엔 혼자서 그것을 복습하는 열의까지 보였다. 강희 29년(1690) 강희제의 생일날, 선교사들이 만주족과 한족 대신들과 마찬가지로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는데, 강희제가 불쑥 기하와 관련된 문제를 꺼내 묻기도 했다.



(중략) 훗날 고국으로 돌아간 부베는 루이 14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강희제는 중국 과학은 물론이고 서양 과학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해서, 어려서 유럽의 과학지식을 조금 알게 된 후로 과학 학습에 강한 욕구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일을 처리하는 시간 외에 남은 시간에는 온통 수학 공부에 몰두했고, 수학 공부를 가장 큰 즐거움으로 생각했습니다."


 출처 : 수신제가 ─ 등예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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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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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차로아침을 | 작성시간 12.07.06 근데 성공했으면 지금쯤 한국인,일본인,동남아인등은 전부 중국어쓰면서 한족으로 살고 있을듯
  • 답댓글 작성자데스사이즈 | 작성시간 12.07.06 군주가 외국 문둘에 관심이 있는 거 하고 그걸 국가적으로 퍼뜨리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요. 저항이 장난이 아니죠.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했을 때 당시 양반들이 엄청나게 반대했던 걸 생각해보시면 다른 나라 문물을 퍼뜨리는게 만만찮은 일임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저 당시 청나라는 세계 최강대국에 딱히 주변에 대적할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산업도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었으니 굳이 외국문물을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죠.
  • 답댓글 작성자Revolution | 작성시간 12.07.07 강희제 개인의 학문적 소양은 역대 전세계 군주 중 최상위로 평가받는데요 -_-
  • 작성자거친숨소리 | 작성시간 12.07.06 그당시 황족의 아이들은 무려 4살정도부터 새벽에 일어나서 해뜰때까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을 스승으로 두고 한족과 만주족의 언어와 관련풍습부터 시작해서 활쏘기 마상무예까지 초인이 아니면 따라오지 못할정도의 학습량을 요구했습니다. 물론 환경이 좋다고(?) 다 천재들이 나오는냐? 물론 그건 아니지만서도...-_-
  • 작성자Royal Eyelander | 작성시간 12.07.08 이 양반은 단점이 도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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