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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중국 역사상 손에 꼽을 임팩트인 이세민의 천하 통일 과정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12.30|조회수1,864 목록 댓글 15



TangTaizong


당태종 이세민은 중국 역사상에서도 매우 유명한 군주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게도 고구려 원정의 결과로 아주 유명하구요. 


이세민을 욕할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형제 죽이고" "아버지 감금한" 양반 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물론 그냥 형제 죽이기만 해서 황제가 된 것은 아니었고, 장자가 아니면서도 황위 계승 문제로 다툼이 벌어질 정도로 공훈이 막대해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이, 태자가 되기전, 정확히 말하면 당나라가 건국될 당시, 이세민의 공훈은 그야말로 지대합니다. 이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616년, 태원의 이연은 독립적인 세력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연은 돌궐에게 굽신거리는 제스처를 취해서 후방의 위협을 막고, 근거지인 태원을 버리고 장안이 있는 관중 지역으로 이주하는 선택을 합니다. 이게 가능했던것은, 당시 수양제가 수나라 최후의 정예군을 모두 이끌고 남쪽으로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시 군웅중에 최강의 세력은 이밀이라는 사나이였습니다. 이밀은 또다른 최강 군웅인 낙양의 왕세충과 격돌 중이었고, 이연은 적당히 이밀에게 굽신거리면서 눈치를 보고 관중으로 진입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군을 이끌었던 인물이 이세민입니다. 이세민은 이주를 성공적으로 시키면서, 이연의 세력은 순식간에 20만이 넘는 전력으로 급부상합니다.



이세민의 공으로 이연은 617년 11월 무렵에 성공적으로 장안을 차지하고, 당왕(唐王)을 자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도전을 받게 되죠.




삼국지 게임을 하셨으면, 천수의 위치는 아실 겁니다. 천수는 장안을 노려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당시 천수에는 설거(薛擧)라는 군웅이 있었습니다. 설거는 돌궐등을 막아내고 있던 인물로, 이 무렵 관중에 욕심이 나서 군사를 이끌고 진군합니다. 당나라 쪽에서는 이세민과 은개산(殷開山) 등이 이를 막으러 나섰지만, 뜻밖에도 패배하고 맙니다. 이는 안시성 전투 이전까지, 당태종 유일의 패배입니다.


그러나...설거는 정말 갑자기 급사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설인고가 설거의 뒤를 이었지만, 이세민은 설인고는 손쉽게 격파하고 그 세력을 복속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이세민 전설의 시작입니다.



이세민이 설인고를 무찔렀을 무렵이 육백십팔년 입니다. 그런데, 619년 산서 일대의 군웅이었던 유무주(劉武周), 송금강(宋金剛)이 부하 위지경덕(尉遲敬德) 등과 함께 이전 이연의 본거지였던 태연을 비롯한 산서 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당나라 쪽에서는 배적이라는 인물이 이를 막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런데....유무주, 송금강은 돌궐의 도움도 받고 있어서 그야말로 탈탈 털립니다. 급기야 이세민의 동생인 이원길의 주장으로, 당나라 군대는 태원까지 버리고 달아나서 산서성 전 지역을 유무주, 송금강의 손아귀에 내주는 최악의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후, 유 - 송은 하동까지 진군했고, 겁을 집어먹은 이연은 하동도 버리겠다고 했지만, 바로 이 시점에서 이세민이 다시 나타납니다.





이때 이세민은 3만의 군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선언하고, 619년 11월 적을 막기 위해 나서게 됩니다.



이세민이 유 - 송을 막은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 - 송은 엄청난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며 진군하고 있긴 하나, 그때문에 보급로가 지나치게 길어지게 됩니다. 이에 이세민은 우주방어만 하면서 직접적인 교전은 피하고, 송금강의 보급로만 집요하게 공격했습니다. 


결국 이런식으로 6개월 이상이 흐르자, 송금강 등은 견디지 못하고 후퇴하고 맙니다. 바로 이때, 그동안 우주방어만 하고 있던 이세민은 폭풍같은 기세로 한방 러쉬를 시도했고, 순식간에 유무주 - 송금강의 세력을 모조리 분쇄하는데 성공합니다.



처음 이세민이 싸우러 나갔을때는, 단순히 하동의 방어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세민은 하동을 방어함은 물론, 잃어버렸던 태원등을 되찾고, 산서 거의 전지역을 병합하는데 성공한 겁니다. 


당연히 당나라에서는 요시 그란도 시즌을 외치며 환호하고 난리가 아닌데....여기서 이세민은 본거지인 장안으로 귀환하지 않습니다. 620년 7월, 그러니까 이세민이 619년 11월에 유 - 송을 막기 위해 나섰고, 반년을 기다렸으니, 즉 적을 물리친 바로 그 직후, 중원으로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낙양을 노린 움직임이었습니다.




당시 낙양은 왕세충의 세력권이었고, 그는 이밀을 격파하고 최강의 군웅이 되었지만, 워낙 격렬하게 싸워 피해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세민은 바로 이 순간을 노린 것입니다.



엄청나게 치열한 싸움 끝에, 이세민은 왕세충의 군대를 모두 격파하고 낙양성을 포위하는데 성공합니다. 이제 적의 항복만 기다리면 되는 그 순간에, 갑자기 하북의 두건덕이 왕세충을 구하기 위해 왔다는 보고를 듣게 됩니다.



두건덕은 농민 봉기군 출신이고, 왕세충과 별로 친하지도 않았지만, 왕세충이 무너지면 당나라가 힘이 엄청나게 쎄지며, 자신도 끝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세충을 도우러 온 것인데, 그 병력이 무려 10만이나 되었습니다.



10만의 군대와는 정면으로 싸워도 승산이 없습니다. 하물며 지금 왕세충을 포위하고 있는 상태인데, 이렇다면 앞뒤로 적과 포위될 우려도 있습니다.


여기서, 이세민은 병력을 둘로 나누는 모험수를 취합니다. 일부는 동생에게 맡겨 낙양을 포위하게 하고, 다시 일부의 병력으로 두건덕을 막기로 한 것입니다. 



이세민은 우선 요충지인 무뢰관에 들어가 꾹 참고 버티기만 했습니다. 거진 한달은 꼭 참고만 있던 이세민은, 또 적이 동요하고 방심을 하자, 그 사이에 폭풍같이 밀고 나가면서 10만 대군 중 거의 절반을 무너뜨리고, 무엇보다 적의 대장인 두건덕을 사로잡는 대공을 세웁니다. 그리고 곧바로 왕세충을 항복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이 시점에서, 남부의 소선같은 군웅도 있지만, 당나라의 중국 통일은 거의 완수되었습니다. 





617년 이세민의 아버지 이연 거병(이세민 599년생 당시 18살)

618년 천수 일대의 설인고 격파(19살)

620년 유무주, 송금강을 격파, 하동을 지키고 산서 탈환(당시 21살)

620년 7월 바로 남하, 낙양의 왕세충을 격파하고 낙양에 가둠

그 상황에서 621년, 하북의 두건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

왕세충을 낙양에 가둬둔 채 두건덕과 싸워 두건덕 격파(당시 22살)





이렇게 보면, 당태종 이세민은 619년 11월에서 621년의 순간에, 한번 군을 이끌고 나가 단 한번도 귀환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적을 격파하고 중국을 거진 통일 시킨게 됩니다. 게다가, 이세민이 출발했을 무렵인 619년 11월의 경우에는 당나라가 산서를 모두 잃은 풍전등화 같은 상태였다는걸 고려해야 합니다. 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멸망만 피하라고 보냈던 장수가, 돌아올때 보니까 중국을 거진 통일 시키고 돌아왔습니다.



이에 대해서, 조정에서 내린 칭호가 천책상장(天策上將)입니다. 하늘이 책봉한 장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여 중국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이세민의 왕자 시절 정복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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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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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옥수수빵 | 작성시간 12.12.31 근데 고구려 원정이 그리 큰 실패였을까요. 일단 안시성 전투 전까진 고구려는 싸우는 족족 패했고 주필산에선 진짜 대차게 말아먹었죠.(동원할수 있는 최대 규모의 야전군이 박살...)

    그리고 요하 늪지대를 통해 후퇴해서 쫓기는거 아니냐는 이야기도있던데 그렇다기엔 수만명의 고구려군 포로를 끌고 간것을 보면 여유도 좀 있었던듯 싶고.

    당 태종의 원정이 고구려에 준 피해는 어마어마 했고 반면 당태종은 설연타가 침공해오니 막기위해 퇴각했지 피해가 그리 컷는지도 의문인데 혹시 잘 아시는분 계시면 의견 좀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데스사이즈 | 작성시간 12.12.31 수나라가 대박 피해봤지 당태종의 고구려 원정은 그다지 국가에 끼친 영향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거기에 무리하게 여러 번 원정을 단행한 수나라와 달리 당태종은 한번 실패하자 깔끔하게 포기했죠.
  • 답댓글 작성자담쟁이 | 작성시간 13.01.02 역시 포기도 깔끔하게 할 줄 알아야 현군이 되는거겠죠.
  • 답댓글 작성자델카이저 | 작성시간 13.01.08 작전을 바꿨지 포기하진 않았죠..ㅡㅅㅡ;;;

    고구려 방어선을 한 방에 깰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휘하의 유능한 사령관들을 보내서 난전을 시도합니다. 효과는 상당히 컸죠.. 말년에 전황이 유리해지자 다시 한 방 러쉬를 준비하다가 사망한 거죠..
  • 작성자퇴계지부 | 작성시간 13.01.08 저렇게 새파란 나이에(어떤 제국연대기의 애송이를 보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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