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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마카오를 놓고 벌어진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의 대격전(3)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5.10|조회수903 목록 댓글 1

(1) 글에 대한 간략한 설명

동남아시아에 동인도회사를 차린 네덜란드지만, 제대로 장사를 하기 위해선 중국 내에 있는 항구가 필요.
그런데 포르투갈이 이를 장악하고 있고, 마침 포르투갈의 수비가 약한 틈을 타서 800명에 가까운 네덜란드 군대가 마카오를 습격, 해안을 장악


(2) 글에 대한 간략한 설명

네덜란드의 마카오 공격은 대실패로 끝나고, 우선 대만 앞의 팽호 제도에 근거지를 마련한 네덜란드 인들.
이단이라는 중국 해적이 자기가 중국 정부를 대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말에 네덜란드 인들은 전부 속아 버리고
때마침 신임 복건 순무 남거익은 네덜란드 인들을 몰아내려 계획함.





그 당시의 남중국해 해안은 무법 천지였습니다. 사방에 해상 무역업자들의 조직이 있고, 커다란 해적이 없는대신 잡다핸 해적 조직들이 사방에 있어 네덜란드 병사들을 이끄는 레이예르센은 도저히 누구와 협상을 해야 좋을지 감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단의 사기에 더 매달릴 수 밖에 없었죠.

푸젠 성 지도

중국 복건성(福建省 : 푸젠 성)의 위치

파일:ChinaFujianXiamen.png

그리고 복건 성에 있는 하문(厦门)의 위치.



이 시점에서 네덜란드 인들이 원하는건 중국 정부와의 교섭이었고, 공식적으로 무역 관계를 하던지 아니면 중국에 있는 항구를 하나 얻던지 하는것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이 점거하고 있는 마카오는 이 조건에 부합되어 노렸던 것인데, 대실패했죠. 싸워서 안되었으니 이제 협상으로 중국과 직접 해결을 해보려고 한것입니다.


그래서 네덜란드 인들은 하문 해안을 봉쇄했습니다. 그리고 지역 유지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이단에게 기대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단은 아무런 교섭권도 없는 그냥 해적일 뿐이고, 목적은 이 절실한 네덜란드 인들에게 사기를 쳐서 많은 선물과 자금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단은 그것에 성공합니다.


그렇게 1년 넘게 이 황당한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었을 무렵, 복건성의 순무 남거익은 마침내 움직임을 취했습니다. 그전가지는 날파리들 떼로 여겼던 네덜란드 인들의 움직임이 영 껄끄러웠고, 단번에 이를 진압해버리기 위하여 무려 10,000만명이나 되는 수군 병력을 복건으로 집결시켰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고 있는데도 네덜란드 인들은 자신들이 이단을 통해서 명나라와 "평회적인 협상" 을 벌이고 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명나라와 남거익의 눈에는 네덜란드 인들은 그저 하문을 무력으로 봉쇄하고 있는 사악하고 교활한 서양 오랑캐 무리에 지나지 않았고, 1623년 11월 18일 처음으로 군사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이날 하문 해안의 외곽에서 에라스무스 호와 무이덴(Muyden) 호 등을 이끌던 네덜란드의 지휘관 프란츠(Franszoon)는 무력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프란츠는 최대한 공손하게 자신들은 "평화적인 교역을 원하" 며, 또한 "그것은 23년 전부터 자신들의 목표" 였다고 말하며 절대로 중국인들을 강탈하러 오지 않았다고 설득했습니다. 중국 측에서는 답신으로 지역 특산 주를 보냈는데, 네덜란드 인들은 이것을 받긴 했지만 독이 들었다고 생각해서 마시지 않았습니다.


이러는 도중에, 중국의 소형 선박들이 프란츠의 선단으로 접근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호는 중국 선박 3척을 격침시키고 달아나버렸지만, 무이덴 호는 중국 선박들의 공격으로 문자 그대로 대폭발을 해버렸습니다. 화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는 명나라 측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을 뿐, 진정한 공격은 1624년 5월에 일어났습니다.



남거익은 네덜란드 인들을 아예 "일소" 해 버릴 요량으로 관할 현청에 부대와 전함의 증강을 통보하고, 5월 28일에는 수군을 이끌고 팽호 열도까지 진격했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인들을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요새 한 곳으로 몰아넣어 버렸습니다. 네덜란드 인들은 곧 공포에 잠겼습니다. 그들은 7월 2일 항복 협상을 하려고 했지만, 명나라 측은 오히려 협상에 응하지 않으며 압박의 수위만 높일 뿐이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레이예르센에게 마르틴 송크(Martin Sonk)라는 네덜란드인이 이임을 하기 위해 8월 1일 지원을 왔지만, 별 도움은 못 되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의 총 전투 병력은 837명에 118명의 소년들이 있었을 뿐이지만, 명나라의 수군은 무려 10,000의 병력에 선박은 200여척이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인들이 조그만 팽호 제도 ─ 토양은 척박하며, 1년내내 비가 내리지 않다가 여름철에만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면서, 동시에 여름이면 수질이 악화되는 ─ 에서, 도저히 이길 수 있는 가망이 없는 명나라의 대군에 포위되어 말라죽어가던 그 시점, 8월 17일에 이단이 도착했습니다. 그는 명나라 측과 네덜란드 측 사이에서 "네덜란드 인들이 대만으로 옮겨 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시점에선 이게 최선의 방안이었습니다.



팽호 제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공격을 감행했던 명나라 사람들이지만, 전통적인 중국 관리들의 시각에서는 팽호 제도 너머 50km 떨어진 대만은 전혀 생소한 세계였습니다. 네덜란드 인들이 대만으로 떠나가려 하자, 명의 수군도 대만까지 가서 그들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오랑캐의 공격을 물리쳤다" 고 보고하면서 본토로 돌아갔습니다. 이단도 그들을 따라갔는데, 사실 명나라 군대와 그는 같이 행동할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이단은 명나라 군대와 행동을 같이 함으로서 네덜란드 인들에게 자기가 명나라와 어떻게든 연결되어있다고 허세를 부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네덜란드 인들에게 그나마 도움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일전에 대만에 한번 온적이 있는 네덜란드 인들이지만, 당시와 지금은 또 달랐던 것입니다.

파일:Jianqi Emperor.jpeg

당시 명의 황제는 일자무식의 천계제(天啓帝)였고, 권력은 위충현(魏忠賢)을 비롯한 환관들의 손에 넘어가 중국의 정세는 갈수록 악화되었습니다. 유민들이 많이 생겼고, 도망을 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배를 타고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단은 이들을 배로 실어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던 대만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네덜란드 인들이 이때 대만에 올 무렵에는, 이미 전보다 훨씬 많은 수천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중국 정부와의 소득도 없는 협상에 매달리던 그들에게 상당한 숫자의 상인들과 소비자들이 생겼던 것입니다. 대만을 거점으로 하면 중국은 서쪽으로 150km를 가면 됩니다. 동남해의 바타비아에서 어슬렁거리며 올라오는것과 비교한다면 이는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사실 복건 순무 남거익은 네덜란드 인들이나 이단을 전혀 믿지 않았고, 혹시 이들이 일본과 연합하여 명을 치려할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했었습니다. 남거익은 끝까지 네덜란드 세력의 일소를 노렸지만, 당시 상황과 다른 관리들때문에 이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해적 이단이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보이는 네덜란드 사람들을 동맹으로 삼게 되었고, 중국 정부로부터도 네덜란드 사람들을 팽호 제도에서 ─ 그 당시 중국 관리들 기준으로 ─ 볼모지나 다름없는 대만으로 이주시킨 공로를 치하받았습니다. 그리고 대만은 그 당시 이단의 손아귀에 있었기에 그는 부지런히 중국과 대만을 오가며 비단을 팔아치웠습니다. 대만에서 바타비아로 이어지는 위험한 항로는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네덜란드 인들은 되찾은 자신감으로 어떤 난관도 극복할것이라는 신념을 담아서 요새를 만들고, 이를 제란디아 요새라고 명명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은 뒤의 일이지만, 이 제란디아 요새는 정성공(鄭成功)를 상대로 상당한 수비력을 보여줍니다.



이단의 이 작은 상업 제국은 이단이 죽고 10여명의 부두목들이 각자 자기몫을 챙기려 들면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 정지룡(鄭芝龍)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에 대해서는 따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광저우 시 지도

시간은 흘러흘러, 명은 몰락하고 청이 중화 제국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에게 있어, 명나라는 정말 재미없고 까다로운 상대였는데 이런 혼란이 있자 남중국해는 들썩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청나라가 광저우(廣州)를 자유무역항으로 지정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럽인들, 특히 네덜란드 인들은 몹시 흥분해 있었습니다.
 
 
당시 광저우를 지배하던것은 삼번 중 하나인 상가희(尙可喜) 였습니다. 한편 마카오의 포르투갈 인들은 네덜란드가 혹시나 중국 내에서 세력을 얻을 수 있지나 않을까 두려워 하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음해 공작을 폈습니다. 가톨릭을 믿지 않는 저 유럽인들의 실상은 해적일 뿐이며, 또한 당시 청나라의 가장 큰 골칫거리이던 정성공의 동맹 세력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던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잡은 기회 ─ 자기들의 착각일 지라도 ─ 를 놓칠순 없었습니다. 중국 내에 무역항을 가지는건 그들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그들은 포르투갈의 방해 공작에 대해 항의하기 위하여 사람을 뽑아 북경의 순치제에게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문제는, 통역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는것입니다.
 
 
네덜란드 인들은 그 문제에 대해선 별로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듣자하니 청나라가 북경 내에서 자신들을 위한 통역을 대기 시켜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북경에 도착하자 대기실에서 마중 나온 통역은 중국인이 아니라 청나라의 관복을 입고 흰 머리를 변발한, 눈이 파란 유럽인이었습니다. 그 유럽인은 독일어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 사람은 아담 샬이었습니다.
 
 

 
과거, 네덜란드 인들이 뼈아프게 기억하는 마카오 전투에서 그들을 상대했던 인물이자 신교도인 자신들과는 전혀 반대인 예수회의 사제인 아담 샬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담 샬은 네덜란드 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기까지 합니다.
 
"제가 암스테르담에서 가톨릭 집안의 몇몇을 알고 있는데, 혹시 그분들의 안부를 아십니까?"
 
 
당연히 네덜란드 인들은 크게 분개했는데, 문제는 이 아담 샬이 자신들의 통역이라는 것입니다. 신교도인 자신들의 말을, 가톨릭 신부이자 적대하는 포르투갈과 결탁한 이 예수회 사제에게 맡겨야 한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당시 아댬 살은 청나라 조정 내에서 굉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 순치 황제는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를 정도였고 아담 샬은 순치제를 만나기 위해서 일일히 절을 하거나 번거로운 절차를 받을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황제는 종종 아담 샬의 집에 들러 허울없이 그와 앉아 이야기 하며 같이 소박한 과자을 집어 먹을 정도였습니다. 아담 샬은 미리 네덜란드 인들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이들" 이며 "모반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말을 해놓았던 바입니다.
 
 
결국 네덜란드 인들의 우려대로 되었습니다. 그들은 순치제를 잠시 만나긴 했으나, 네덜란드 인들은 이 중국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절차대로 30보를 질질 뒤로 기어가며 아무 말도 하지를 못했고, 15분 동안 그들을 원숭이 보는듯 마냥 지켜보던 순치제는 결국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나가기 직전에 네덜란드 인들을 힐끗 바라보고 그냥 가버린 순치제의 뒤에 이어서 아담 샬은 "알현이 끝났다" 고 말했고, 그들을 배웅하면서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저 남쪽 1,500여 킬로미터에 있는 포르투갈의 우리 예수회 형제들은 말이외다, 네덜란드 인들의 광저우 공격에는 별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걸로 알고 있소."
 
 
 
이 구교도에게 실컷 조롱당한 신교도들은 아무런 소득도 거두지 못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비슷한 시기에 움직이던 남자가 한명 있었습니다.
 
바로 정성공이었죠. 남경 공략에 실패하고 절치부심하던 그가, 네덜란드 인들의 대만을 노리던 것입니다.
 
 
이 다음의 이야기는 남중국해의 네덜란드 인들과 동시에 정성공의 이야기 지만, 그 이야기를 하려면 정성공의 아버지 정지룡의 이야기부터 해야합니다. 정지룡의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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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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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ilmonde | 작성시간 12.05.11 위에 오타가 있네요. 10000만명 1억명 동원이라니 -_-;;
    그나저나 아직 옛날이긴 하지만 저 당시 유럽 함선들이 중국선박에 비하면 체급이 높았을텐데 전력차가 너무 커서 그런가요? 별 활약을 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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