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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당태종 이세민(5) - 후계자 문제, 고구려 공격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4.21|조회수758 목록 댓글 1

 

치세가 어느정도 접어들 무렵, 당태종도 이제는 후계자 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당시의 계승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만한 아이들은 이러했습니다.


장남 이승건(李承乾)
차남 이태(李泰)
삼남 이치(李治)


그리고 이승건이 태자였습니다. 아무런 문제는 없는듯했죠. 이를테면 이연이 죽은 정관 9년부터 정관 10년까지, 당태종은 정사에서 손을 놓아버립니다. 물론 이정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만류했지만 듣지를 않았습니다. 이건 아버지를 추모하는 동시에 태자에게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었습니다. 이 기간동안 정무는 태자가 맡아보았지요. 그리고 무난하게 처리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도 이승건은 몇차례 아버지 대신 정사를 처리해서 썩 그럴듯하게 처리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무난했는데,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선 태자가 다리를 저는 불구를 가지고 있었다는것. 국왕의 위신과도 연결되는 일이라 문제가 있었지요. 그리고 너무 황당하여 과연 믿을 수 있느냐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 이승건은 당나라의 황태자이면서 돌궐 빠돌이였다고 합니다. 변발을 하고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고, 죽은 사람처럼 누운 다음 다른 사람들이 말을 타고 자기 주변을 돌게 했는데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죽은 가한이라고 생각하거라." 였다고 합니다. 아주 큰 의미를 줄 수 없는 그저 단순한 우스개 소리라고 해도, 이건 그냥 넘아가긴 힘들었습니다.


거기다 점점 사치에 젖은 이승건은 동생애적 기질을 보였는데, 칭심(稱心)이라는 미남 악사와 더불어 같이 눕고 잤습니다. 이것 또한 태종의 심기를 거슬리는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둘째 이태는 점점 태종의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매우 비만이었다고 하지만, 이태는 뚱뚱한것과 그런것은 관련이 없다는듯이 총명하고 호기심 강하고 글 솜씨가 빼어나는등 다방면에 재주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주위사람들과 넒게 친교를 맺고 있었고, 태종도 이런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학문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따로 문학관을 설치해주고, 비만인 이태가 걷기 힘들어하자 가마를 타고 조정에 들어올 수 있게 허락합니다. 괄지지(括地志) 편찬을 이태를 중심으로 맡기고, 이태에게 무례하게 구는 신하들을 욕하기도 합니다.



태자인 이승건이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한다. 황제는 이태를 시간이 갈 수록 눈에 뛰게 편애하고 있다. 이러자 다시 조정의 기류가 묘해지면서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또다시 후계자 다툼이 시작된 것이죠.



사정이 이렇자, 과거 이건성과 이세민이 했던 것처럼 이승건도 자기에 도움이 될만한 인재들을 모아 세력을 강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승건의 동궁에는 여러 명망 깊은 대신인 우지녕과 두정륜등이 있었으나, 이승건은 이들을 자기 패거리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승건이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은 두여회의 아들 두하(杜荷), 한왕 이원창, 그리고 무엇보다 후군집이 있었지요.


후군집은 그 유명한 능연각 24공신 중에 하나이며, 전쟁터에서도 여러 공을 세운 명장이자 원로였습니다. 비교적 거물이 적었던 이승건에게는 매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후군집 수준의 원로가 이런 위험한 정치 싸움에 끼어들게 된것은 고창 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고창 정벌을 하고 큰 상을 받을 것이 확실했던 후군집은 고창 정벌과정에서 사사롭게 재물을 취한것이 들어나, 오히려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러자 앙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둘째 이태 역시 자기편을 끌어모았습니다. 위정, 두초객, 최인사, 금문본, 방현령의 아들 방유애도 이쪽에 발을 담구었기에 자연히 방현령도 어느정도는 이태의 편을 들어주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방현령을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당태종의 신하이자 감히 당태종을 거스를수 없는 사람이기에, 근본적으로는 당태종이 이태를 편애하자 자연스레 그쪽에 발을 담군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이승건은 몇가지 수를 부려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이태를 무고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당태종은 그것이 허무맹랑한것을 깨닫고 상소를 올린 사람을 찾으려고 했지만 아무도 찾을수가 없었지요. 그렇지만 배후에 이승건이 있다는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이 대립은 격해지고, 당태종은 점점 태자에게 실망만 늘어나 대신들에게 대놓고 "태자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바꿀 수밖에 없구나." 라고 말하는 단계까지 흘렀습니다. 고심하던 당태종이 취한 방법은 위징을 태자 이승건의 스승으로 삼는 일입니다. 자기가 가장 믿는 신하를 이승건에게 주어 그의 영향력을 높여주는 동시에 정신 좀 차리게 하라는 것이었는데, 위징은 처음부터 몸이 아프다고 거절하더니 이 일을 맡고서도 얼마 되지 않아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던 와중, 일대사건이 일어납니다. 당태종과 그의 하녀 사이에서 나온 아들 이우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사실 반란 자체는 손쉽게 진압되었는데, 뒤처리르 위해 조사하던 과정에서 이상한 사람이 연루되었습니다. ㅗ흘간승기(紇干承基)라는 사람이었지요.



꼼짝없이 죽게된 흘간승기는 살기 위해서 사실을 줄줄 불었는데, 하나같이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자기는 이승건의 사람이며, 이태를 암살하려 했고, 태자는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태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우가 반란을 일으킨 제주는 장안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동궁은 태극전과 가까우니 담만 넘으면 일이 손쉽게 되지 않겠느냐!'"

당태종은 그 즉시 장손무기와 방현령을 파견해 조사를 벌였고, 결과는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엄청난 충격이 조정을 휩쓸었고, 당태종은 직접 후군집을 심문하러 가서 그를 만났습니다.


"이보게, 관리들이 그대를 모욕할까 겁이 나 내가 직접 심문을 맡겠다고 한 것이네. 자네를 살려주고 싶지만 아무도 동의하질 않아. 앞으로 다시는 그대를 위해 능연각에 오르지 않겠네."

"제 가족들만은 살려주십시오."

당태종은 후군집의 자식들은 살려두고 유배를 보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태자였습니다. 당태종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 말했습니다.

"법률로 따지면 태자는 처형해야 하고, 나는 친아들을 죽일 수가 없네. 어찌해야 하는가?"

아무도 대답을 안하고 답답한 시간만 흘러갔을때, 내제라는 하급 관리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태자를 살려주시지요."

그게 가장 당태종이 원하는 대답이었기에 이승건은 폐서인 되는 대신에 목숨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대신 두하, 후군집, 이원창 등은 모두 사형당했습니다. 내제는 얼마뒤에 승진이 되었구요.



태자가 처리되자 모두들 이태가 황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변수가 생겼습니다. 어느날 태종은 신하인 저수량에게 말했습니다.

"이태가 말한적이 있지. 자기가 태자가 된다면, 자기 아들을 죽여서라도 아우인 이치에게 보위를 물려줄 것이라고 말이야!"

다른 신하들은 형제간의 사이가 참 좋다, 이런 식으로 입에 발린 말을 했지만 저수량만은 다르게 말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폐하께서 승건을 태자로 삼으시고도 이태를 편애하여 지금의 일에 이른 것입니다. 어찌 폐하가 붕어하시고 난 뒤에 이태가 이치에게 보위를 넘겨주겠습니까? 만약 이태를 태자로 세우시려하신다면, 이치를 처리해야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에 당태종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자기가 형제들을 죽이고 황제가 되었는데, 이제 아들들까지 이러는 모습을 보자 어이가 탁 막혀버린 것이죠. 바로 작년인 정관 16년에 당태종은 죽은 이건성을 태자로 추인했는데, 나이가 들 수록 심경이 복잡해진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당태종이 이렇게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있었을때, 이태가 조급증으로 일을 망치고 맙니다. 너무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이치에게 가서 이런 말을 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숙부인 한왕 이원창이 어떻게 죽었느냐?"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너는 그와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더냐?"

나름대로 겁을 주려는 드립이었는데 문제는 이치가 뱃속에 능구러미를 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치는 그 말을 듣고 난 후에는 모두다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기운없고 한숨만 쉬며 처소에서 나오지를 않았고, 당연히 태종은 이상하게 생각해서 이치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

"아닙니다."

"말해보거라!"

"....."

"괜찮으니 말해보거라."

이런식으로 몇차례나 재촉한끝에 이치는 내키지 않는듯 이태와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순간 당태종은 이태의 행태에 눈이 핑돌게 된것이고, 반면에 이치는 형에게 협박을 당했으면서도 형을 지켜주기 위해 입을 다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죠. 나이 들고 이제 바램이라고는 아들들이 제발 서로 죽이지 않고 지냈으면 하는 생각밖에 없던 당태종에게는, 아주 완벽한 전략이었습니다.


생각을 하던 당태종은 폐태자가 된 이승건에게 찾아가서 몇가지를 물었습니다. 이승건은 당연히 이태가 황제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치가 나았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태자였는데, 무슨 다툼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이태의 술수로 이리 되었는데, 폐하께서 이태를 태자로 삼으면 그의 계략이 모두 완성되는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치는 주목을 받지 않는 사이에 든든한 지원군을 준비했는데, 바로 장손무기였습니다. 공신이자 당태종의 가장 친한 친구인 그가 대놓고 이치를 밀어버렸고, 두각을 나타내는 저수량까지 이치의 편을 들었습니다. 뛰어난 정치가인 마수와 명장 이세적마저 이치를 지지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런 거물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동안, 이치 본인은 조용히 있으면서 특별히 흠을 잡힐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느날 당태종은 장손무기, 방현령, 이세적, 저수량, 이치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나의 세 아들과 형제들이 모두 이렇게 죽고 죽이는데, 내가 살어서 무엇하겠느냐?" 

그러면서 마치 칼을 뽑아 자결이라도 할 듯한 퍼포먼스를 보였는데 신하들은 당태종을 제지했고, 저수량은 재빨리 칼을 뺏어 이치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장손무기가 물었습니다.

"폐하. 누구를 태자로 삼으시겠습니까?"

"이치, 이치다."

"들으셨소? 황제꼐서 명령을 내리셨으니 더 이상 이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 마시오!"

저수량, 아세적 다 이치의 편인데 다른 말을 할리는 없었고, 방현령이 다르지만 애초에 당태종에게 거스르는것은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이라 일은 쉽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당태종은 다시 신하들을 모아 태자를 누구로 정할지 물었지만 이미 결정이 난것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이치를 지지해 후계자가 확정되게 된 것입니다.


힘겨웠던 후계자 정리가 이렇게 끝나고, 당태종은 다시 이태의 일파, 이승건의 일파, 이치의 일파를 화합시켜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고, 장손무기와 저수량의 일파가 조정을 점점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반대파들은 숙청을 당하고 있었지요. 나이는 들고 모든게 뜻 처럼 되지 않는 당태종은 자기 신하를 늘리기 위해 심지어 인도에서 돌아온 현장법사에게 환속을 권유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현장법사는 거부하구요.




고구려 공격


고구려 공격에 관한 전후사정은 아주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하구요. 여하간에 연개소문의 버릇을 고쳐주러 가겠다는 당나라 군대는 645년 출발하기 시작합니다. 10만, 17만, 30만, 50만 여하튼 말하는 사람들마다 천차만별인 숫자의 병력을 끌고 간 당태종의 군대는 우선 처음의 목표를 요동 방어선을 붕괴시키는것에 두었습니다. 배후가 든든해야 싸움하기도 편하고 물러날때도 편하고 보급에서도 편했죠.


우선 이세적을 보내 신성을 공격했지만 끝까지 함락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세적은 개모성으로 방향을 돌렸고 이를 함락시킵니다. 다시 영주 도독 장검이 건안성을 공격해 수천명을 죽였지만 함락에는 실패했습니다.


전역의 초기에서 가장 큰 성과는 요동성 함락이었습니다. 수나라와의 전투에서 철벽이던 요동성이 이렇게 함락되어버렸고 당나라 군은 백암성을 포위했습니다. 고구려 군대는 당나라 장수 계필하력을 부상시키기도 하나 백암성 성주가 당군의 기세에 눌린 나머지 항복을 결정하고 맙니다. 그때, 바다에서 온 4만의 군대가 비사성을 공격해 함락시켰구요.



일단 어느정도 목표가 성취되자 다음 공격 목표를 정해야 했는데, 이세적은 안시성을 함락해야만 여러가지로 편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다른 신하들도 그렇게 말하자 당태종은 안시성을 공격하였죠. 여기만 무너지면 사실상 방어선은 완전히 무너지는 수준이었습니다.


연개소문이라고 당연히 좌시할수는 없기에 고정의, 고연수, 고혜진등등에게 무려 15만(이것도 말하는 사람마다 엿가락 처럼 늘어났다 줄어났다 함)이나 되는 대군을 주어 이를 막게 했습니다. 고정의는 고연수에게 말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중국이 어지롭자 여러 영웅들이 들고 일어났는데, 이세민은 무예가 뛰어나 천하를 평정하고 사방을 평정하였고, 고구려에 국력을 기울여 쳐들어왔으니 용맹한 장수와 날쌘 병졸들이 모여 기세가 대단합니다. 차라리 싸우질 않고 오랫동안 지켜 버티면서 적의 군량을 끊어버리면 적은 열흘도 못되어 군량이 바닥날 것인즉, 싸울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을테니 수월하게 이길 것입니다."


하지만 고연수는 이를 무시했다고 합니다. 고구려군을 본 당태종은 우선 겁을 먹은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화친을 하자는 의견을 보냈고, 고연수와 고혜진은 이를 받아들여 어물쩡 거렸습니다. 그 사이에 당군은 싸울 채비를 갖추었죠. 결국 대판 싸움이 일어나고 15만 고구려군은 분쇄되어서 이 시점에서 고구려의 야전 능력이 거의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이리하여 안시성을 여유롭게 포위했으나 모두가 아는 바대로 그런 결과가 나왔고

안시성 블러드 의 대실패 끝에 겨울이 다가오고 설연타의 침공 소식이 있자 결국 후퇴하고 맙니다. 이 와중에 요택으로 후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버리고, 당태종은 살면서 가장 큰 실패를 맛보고 말았습니다.


이 와중에 고연수는 홧병으로 죽어버립니다.


 
당태종은 본래 화살을 잘 쏘고(이건성도 직접 화살로 죽였죠) 사냥중에 멧돼지가 달려들자 침착하게 죽일만큼 무예도 강건한 사람이었으나 이 시점에서는 노환에 풍질에 추운날 요택을 건너오면서 병이 도지는등 건강 상태가 최악이 되어버렸고, 결국 649년 7월 10일에 죽어버리고 맙니다. 죽으면서 남긴 이 말이 유명하죠.


"다시는 요하를 건너지 말아라."


그런데 빛나는 무공을 세운 당태종이 못한일을 유약하다고 소문난 이치가 했으니 이것 또한 묘한 일이라고...말하는 사람도 있는듯 합니다.



여하간에 당태종은 당나라가 건국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고,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뛰어난 정치를 펼침으로서 당나라가 찬란한 전성기를 가는데 길을 터주어, 매우 평가가 높습니다. 관련된 책들도 많구요.당태종 관련된 책이야 언급이라도 된것은 엄청나게 많고 관련된 내용을 배울 수 있는것도 매우 많지만 그냥 가볍게 볼수 있을만한 책은 다음같은 책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작가가 중국인인데 당연히 당태종에게 있어서 매우 호의적이지만은 이연이나 이건성 관련된 부분에서 어느정도 중립을 잡으려는 모습도 있습니다.



그냥 한번 볼만은 한듯...




쓴 사람이 역사를 전공하진 않았지만 정리가 잘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두책은 중국에서 나온지라 아무래고 고구려 관련된 부분이 그냥 어물쩡 거리며 넘어가는 면모가 있는데....그런 부분에선 이 책이 좋은것 같습니다. 



마무리로 간략한 토막일화인데 어느날 당태종은 태자를 데리고 가다 굽은 나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태자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이 나무가 굽었다고 얕보지는 말거라. 그 길이만 본다면 충분히 길어질 수 있단다. 날 때부터 완벽한 황제라는 것은 없어. 누구나 반드시 실 수가 있기 마련인 게지. 하지만 신하들의 올바른 의견을 수렴하고 그것을 교훈 삼아야 잘못을 고칠 수 있다. 나는 네가 반드시 이렇게 나라를 다스리길 바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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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기러기 | 작성시간 12.10.13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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