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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수신(水神) 정성공(9) ─ 기적?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6.02|조회수917 목록 댓글 12

 

 
정성공의 맞수, 코예트.



코예트는 정성공이 프로빈샤 요새를 점령하고 주민들을 포로로 삼는 동안, 곧이어 닥쳐올 재앙을 최선을 다해 막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코예트의 생각으로는 정성공의 군대가 곧바로 닥쳐올 듯 했기에 차라리 군대를 일부 매복시켜 놓고, 12명의 기병을 동원해서 적군을 유인하려 안간힘을 써보았습니다. 보잘것없는 기병 전력이었지만 그 당시의 코예트에게는 소중한 병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별개로 정성공의 부대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매복하던 소총부대는 하룻동안 사서 고생만 한 셈입니다. 코예트로서는 예상을 못한 일이지만, 정성공 부대에 상당한 위기가 닥쳐오고 있었습니다.


물자 부족이었습니다.


코예트의 사신들이 정성공을 만날 무렵, 정성공은 상당히 호화로운 식사를 네덜란드 사신들에게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형적인 허장성세로, 정성공 부대는 사실 매우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었던 것입니다. 이 부대가 당초 출발할 시 많은 물자를 가지고 떠나지 않았다는것은 미리 말한 바 있습니다. 본거지인 하문과 대만이 가까우니 보급에 별 무리는 없으리라 여긴것인데, 정작 본토에서 물자가 도착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성공은 그러나 특유의 거드름 섞인 태도를 보이며 이런 상황에서도 호기롭게 연회를 성대한 스케일로 벌였고, 그러는 한편 현지 원주민들과 (그들의 우정이든, 정성공 부대의 협박이든) 협조를 맺어 도움을 구하는 한편 섬 전체를 이잡듯이 뒤지고 다녔습니다. 다행이 금광과도 같은 곳간을 발견하여 일시적인 식량난은 해결 할 수 있었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침략군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코예트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요새 밖에 있는 소규모 정착촌에 있는 네덜란드 상인들을 데려오고 마을을 불태웠던 것입니다(다만 정성공 부대가 금세 등장하여 불을 꺼버립니다.) 사실 그는 이전에 정착촌에 방어 시설을 건설할것을 계획하고 예산을 부탁했지만, 주위에서는 그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비웃을 뿐이었습니다. 코예트로서는 너무나 짜증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양군이 서로 내키지 않는 대치를 계속하는 동안, 정성공은 또 하나의 서한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프로빈샤 요새에서 항복한 발렌틴을 데려와 서한을 네덜란드 어로 번역하게 하고, 대만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 네덜란드 인 선교사 안토니우스 함브룩(Anthonius Hambroek)을 데려왔습니다. 함브룩의 아내와 두 명의 딸은 현재 정성공의 수중에 있었고, 또 다른 딸 두명은 제란디아 요새에 있는 형편이니, 가족이 평화롭게 재결합하길 원하고 있을 이 신부야 말로 조속한 타결을 위한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서한의 요지는 대략 이러했습니다.


─ 너희 네덜란드인들은 겨우 100여명 밖에 되지 않는데, 어찌 우리에게 대적하여 싸우려고 하는가. 그렇게도 강하다는 말이더냐? 너희는 정신을 어디다 두고 온 자들임이 틀림없는 게로구나.


요새 안의 병력이 적기야 하지만은, 사람들이 고작 100여명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정성공은 상대방을 굉장히 가소롭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정성공은 너희들이 있는 하느님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는데 힘쓰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고 말하면서 조롱을 하기까지했습니다. 그리고 프로빈샤 요새에 많은 인질들이 잡혀 있다는것을 넌지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때 정성공의 제안은 자못 매력적인 면이 VOC의 입장에서는 있었는데, 요새야 물로 몰수되겠지만 VOC가 무역을 목적으로 대만에 거주하는거은 '범죄' 도, '합법'도 아니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정성공의 목적은 단지 대만을 중국인들의 땅으로 회복시키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세상은 나를 믿으며, 내가 한 말을 반드시 지킨다는것을 안다. 나는 거짓말을 하거나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아마 이 말이 거짓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능성도 있다는것은 그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전령이 되리라 예상했던 선교사 함브룩은 반대로 전혀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제란디아 요새에 도착한 그는 자신의 임무는 정성공에게 돌아가는것이고, 제란디아 요새가 항복을 거부하면 자신, 아내, 딸과 프로빈샤 요새에 있는 인질들이 죽을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뒷말이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그 자(정성공)에게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네덜란드 인들은 폭군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법이 없다는 뜻을 단호히 전하겠습니다!" 
 
 제란디아 요새의 사람들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질 못했습니다. 함브룩은 계속 말했습니다.
 
 
 "절대로 구조의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저들은 이미 내분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최정예 병력을 상실헀으며, 선박들은 뿔뿔히 흩어졌고 원주민들은 외부의 자극만 있다면 정성공에게 봉기를 일으킬 겁니다. 물론, 내가 돌아간다면야 사망 진단서에 서명하는 셈이겠지요. 피에 굶주린 악마 숭배자(정성공을 말하는것)는 네덜란드인들이 항복하자 마자 모조리 학살할 계획입니다. 그 자의 서한은 믿음이나 도리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이교도가 파 놓은 함정입니다."
 
 
 "이곳에 남으시죠. 어차피 죽는다면, 돌아가서 죽는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코예트는 함브룩에게 이곳에 남을것을 청했습니다. 어차피 인질들이 죽는다면, 함브룩이 돌아가서 희생하는것도 별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함브룩은 반대했습니다.
 
 
 "내가 돌아가야 아내와 자식들이 살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렇지 않으면 가족들은 온갖 고문에 시달리다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요새에 머물고 있는 다른 두 딸을 만나서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당당하던 그도 딸을을 보자 머뭇거렸습니다. 딸들은 아버지가 죽으러 가는것을 깨닫고 울면서 제발 가지 말라고 빌었지만, 함브룩은 가만히 서 있기만 했을 뿐입니다. 마침내 다른 한 딸은 혼절해버렸고, 또 다른 딸은 팔로 아버지의 목을 껴안고 못 떠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함브룩은 딸을 떼어놓고 울고 있는 다른 모든 네덜란드 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인질로 잡혀 있는 동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죽으러 갑니다. 주님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용기를 잃지 않고, 전쟁의 고통을 꿋꿋이 이겨낸다면, 여러분의 소망대로 주님께서 마지막 해결책을 주시리라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란디아 성의 주민들은 함브룩이 당당히 성을 떠나, 누군가의 앞에 멈춰서 머리를 숙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곧이어 깃발이 한번 펄럭거리자 함브룩의 모습은 사라졌고, 요새 내의 주민들은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네덜란드 인들은 항복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함브룩의 말을 들은 정성공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엄청나게 분노하여, 함브룩과 더불어 40여명의 남자 포로를 모조리 학살했습니다. 그리고 발렌틴은 그 가족과 더불어 중국 본토로 압송했으며, 네덜란드인들의 딸들은 휘하 장수들에게 성노예로 각각 분배가 되었습니다. 정성공도 예쁘장하고 호감이 가는 소녀 한명을 골랐는데, 공고롭게도 그녀는 함브룩의 딸이었습니다.
 
 
 과중한 부담감 속에 잠에 든 코예트는 5월 26일 아챔, 천둥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그는 이 소리가 천둥이 아니라, 대포 소리라는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란히 배치된 대포들이 요새 성벽을 가해 가차없는 타격을 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코예트는 당황하지 않고 성루에서 정성공의 대포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습니다. 대포들은 무방비상태였습니다. 발포병, 포탄 장전병, 관측병들은 자리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고, 수백명의 병사들은 환호성을 질러대며 구경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화포를 모두 적의 눈에 보이지 않게 장전하라! 어서!"
 
 
 정성공 부대의 포격이 계속되는 동안, 네덜란드 인들은 조심스레 대포를 성 가퀴에 배치하고 소구경 소총 탄알과 철제 못을 대량으로 장전했습니다. 코예트의 지시에 따라 포격 각도는 모두 각기 다르게 설정되었고, 요새 밖의 모든 목표를 사정권으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정해놓은 시각이 되자, 코예트는 일제히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벼락같은 굉음이 울렸습니다.
 
 
 정성공의 대포들은 그 즉시 잠잠해졌습니다. 네덜란드 요새에서 날아온 우박 같은 포탄의 파편에 정성공 군사 수백명은 눈깜짝할 사이에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많은 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화포들을 버려놓고 달아났습니다. 땅바닥에는 죽었거나 죽어가는 자들로 가득했습니다.
 
 
 코예트와 네덜란드인들은 이 공격에 환호하며, 죽은 페델 대위가 중국인들을 무시한것은 그럴만 했다고 조롱했지만, 그 즉시 다른 부대가 튀어나와 포탄을 장전하는것을 보곤 어이없어 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포격을 가했습니다.
 
 
 양측의 포격이 한바탕 지나가자, 정성공 부대의 타격은 마침내 천단위까지 오르게 되었고 결국 중국 부대는 뒤로 물러났습니다. 코예트는 자신의 표현대로 "환영하는 마음"을 담아 응사했습니다. 그리고 적들이 물러간 사이 일단의 병력을 보내 버려져 있는 중국 대포로 달려가, 포신에 긴 쇠못을 끼어넣고 대포를 사용 불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중국인들은 그들을 추격했지만, 이 일단의 특공대는 대포를 망가뜨리고 정성공의 깃발을 찢어버리고, 심지어 근처에 있던 당나귀 등도 몇개 챙겨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 일로 제란디아 성의 사기는 크게 오르게 됩니다. 정성공 부대가 막대한 타격을 입은것에 비하여, 피해라고는 특공대가 입은 두세명 정도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정성공 부대는 겁쟁이들이며, 소총수 몇 명 정도로 모두 물리칠수 있는 정도라면, 아예 수비대를 공격부대로 전환해야 하는것이 아니냐고 코예트에게 따졌습니다.
 
 
 하지만 코예트는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중국인들의 대포 공격은 무모하기 짝이 없었지만, 최소한 그 퇴각만큼은 질서정연했고 그것은 그들이 오합지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무엇보다, 정성공은 아직 얼마든지 소모전이 가능했지만 코예트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정성공은 제란디아 요새의 방어력에 대해 좀 더 달리 보게 되었습니다. 들이붙으면 피해가 어마어마할것은 자명했고, 그는 부관 양영의 조언에 따라 굳이 무모한 공격에 나서지 않고 말려죽이는 쪽으로 계획을 변경하게 됩니다.
 
 
 그렇게 2개월 동안,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란디아 요새는 이미 예전에 배급제로 변경하여 근근히 버티고 있는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식수가 고갈되지 않는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정성공은 여유있게 현지의 중국인들과 식사했지만, 제란디아 요새를 가두고 있는 그도 낭패에 처해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본토에 있는 2개 부대는 당초에 지원을 하기로 되어있었지만, 반대로 머뭇거리다가 만주족에 투항해버렸습니다. 식량 부족 문제는 다시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고, 이 기간동안 본토에서 보급을 담당하는 정태는 단 한 척의 미곡선도 출발시키지 않았습니다. 정성공 부대는 현지 원주민들에게 전적으로 의논하는 한편, 병사들을 풀어 먹을것을 찾았습니다. 뜨거운 날씨, 풍토병, 적은 식사량등이 겹쳐 정성공 부대에 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정씨 가문은 전혀 도움이 안되었는데, 정성공이 고생하는 꼴을 보고는 오히려 자신들은 더욱더 그곳에 발을 들이면 안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만 줄 뿐이었습니다.
 
 
 정성공은 이런 사정이 제란디아 요새에 흘러가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하면서, 오히려 서한을 보내 저항은 부질없고 구조 함대의 희망도 물거품이 되지 않았느냐 하면서 그들을 떠보았습니다. 그러나 코예트는 이를 거부하면서, 기적만을 기다렸습니다.
 
 
 3개월이 되던 날, 마침내 기적이 일어나는듯 했습니다. 요새 성루의 네덜란드인들은, 수평선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습니다. 돛대가 떠오르고 있었고, 선박은 네덜란드의 선박이었습니다. 그 선박들은 대만으로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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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게오르기우스 | 작성시간 12.06.02 뭐랄까 ;; 좀 깨는군요. 남경 공략 실패 이후 굉장히 냉혹하게 변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정성공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존경 받는 인물인만큼 제갈량 같이 어떤 상황에 닥쳐도 대의와 인의를 지키는 참된 선비같은 인물 상으로 생각했는데, 역시 대부분의 영웅들은 현실의 벽 앞에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군요. 처음엔 진정으로 대의를 위했을지 몰라도 점차 자신의 야망과 집착을 위해서로 변해가는 것 같네요. 이런 거보면 죽는 최후의 순간까지 명예로웠던 인물들이 참 얼마나 대단한 노력을 하면서 산 건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답댓글 작성자centurion | 작성시간 12.06.02 그래서 사람을 판단하려거든 늘그막을 보라는 말도있죠. 오만불손 안하무인의 화신이랄수 있는 관우가 죽어서 충절의 대명사로 군신으로까지 추앙받는것도 당당하게 죽음을 맞아들였기 때문일듯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Highsis | 작성시간 12.06.20 저도 똑같이 느꼈습니다. 선교사 건과 스스로 항복한 포로를 남자는 학살하고 여자는 노예로 줘버리는 행태는 참 야만인 소리 나게 만드는군요. 간디도 카스트 제도의 철폐에 찬성하지 않았던 것도 있고 마틴 루터 킹도 볼륜 문제와 논문 무단도용 같은 문제가 있는 거 보면 성공한 사람 중에서도 이상적인 영웅상은 찾기 힘든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제갈량 같은 사람은 점점 더 위대하게 보이더군요.
  • 작성자▶◀ 치우승천 | 작성시간 12.06.02 정말 깨네요. 정성공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 모조리 깨지는 느낌입니다.
  • 작성자Τιταυιζ | 작성시간 12.06.07 솔직히 정성공보단 저 선교사가 훨씬 영웅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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