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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수신(水神) 정성공(10) ─ 바보들의 행진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6.04|조회수861 목록 댓글 9

 
 코예트가 2척의 VOC 선박을 보고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려던 사이.
 
 바타비아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VOC 본사가 결단 비스무리한 것을 내리기는 했습니다. 그 결단이라는게, "코예트의 과대망상" 과 불만에 찬 서한과 보고서들에 대한 결단이었던것이 희극입니다. 코예트에게는 안쓰럽게도, 대만 해안에 나타난 두 척의 선박은 구조선도 아니었고, 증원병 소식을 알리는 연락선도 아니었습니다. 다름 아닌 코예트를 해임하기 위하여 VOC 본사에서 보낸 선박이었던 것입니다.
 
 
 호헬란데(Hoogelande) 호, 뢰넨(Loenen) 호. 두 척의 함선을 인솔하는 사람은 회계사 출신으로, "현실 감각" 을 인정받아 신임 대만 총독이 되기 위하여 돌아온 헤르만 클렌크(Herman Clenk)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VOC 이사회가 코예트의 사임을 공식적으로 요구한다는 서한을 들고 왔습니다. 내용인 즉슨, 마카오 공격을 거부하고 중국인들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헛소문" 으로 예산의 낭비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 정성공이 무슨 의도를 품은것이 확실하다면, 그 자는 오래 전에 실행에 옮겻을 것입니다……각하께서 철저하게 항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성공이 계획하던 공격을 연기하고, 보다 적당한 시기를 엿보게 되었다는 말은 나중에 입증되었다시피 대단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 자는 충분히 그럴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악의를 품고 우리 해변에 나타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같이 '한가한 위협' 에 대해 경계를 남발한다면, 그곳에서 평화롭게 우리의 재산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마당이니, 헤르만이 대만 해안에 처음 도착하여 정성공의 수만 부대와, 바다에 가득찬 정성공의 전함, 제란디아 요새에서 펄럭이는 붉은 기를 보고 얼마나 당황했을지 짐작도 갈 것입니다. 클렌크는 대체 이걸 어찌해야하나 고민하다가 소수의 부하를 해안에 보내 가지고 온 서한을 코예트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코예트는 서한을 받아보았습니다. 코예트는 어리석은 바보이며, 중국인들은 절대로 공격해 오지 않을 것이고, 대만은 "관리들의 병사들과 민간인들의 커다른 불만을 야기시킬" 침공에 대해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하는 내용의 서한이었습니다. 엄청난 숫자의 정성공 부대에 고립되어 있는 상태에서 코예트는 이런 서한을 담담하게 읽었습니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코예트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온갖 화려한 깃발로 장식한 헤르만의 선박 두척이었습니다. 그 밖에 다른 원군도 오고 있지 않다는것으로 코예트는 이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코예트는 이런 상황에서 나름 대로의 유머 감각을 발휘해보았습니다. 바다 위에서 어쩔 줄을 모르는 헤르만에게, 어서 와서 총독 직을 인수해가라고 거듭 초청했던 것입니다. 물론 헤르만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고, 폭풍우가 나타나자 이를 핑계로 일본으로 달아나버렸습니다. 공해상에서 헤르만은 전형적인 멘탈 붕괴 증세를 보이며 뜬금없이 중국 선박을 공격했습니다. 중국 선박은 황당해하며 바타비아에서 받은 무역 허가증을 보여주었고, 헤르만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해적질임을 꺠닫고 허가증을 찢은뒤 선원들을 무인도에 던져버리고 자신은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일본에 도착한 헤르만은 대만 총독 행세를 하며 어슬렁 거리다 VOC 본사에서 뭐라고 말이 나오기도 전에 네덜란드 본국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무인도에 떨어진 중국 선원들은 지나가던 다른 중국인들에게 구출되고 바타비아로가서 이 일을 따지기도 합니다. 더 뒤의 일을 이야기하자면, 코예트는 나중에 헤르만이 상륙하지 못하게 하고 바다에 머물게 했다는 누명으로 공격당하게 됩니다. 여하간, 이런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고, 바타비아 이사회도 드디어 정성공의 침공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적이란 마리아 호의 도착이었습니다.
 
 
 
 정성공이 처음 대만에 상륙할때, 헥토르 호등을 공격하고 상륙했는데 그때 빠져나간 배 중 하나가 마리아 호였습니다. 마리아 호는 일본으로 달아나는 대신, 반파 상태의 배를 몰아 폭풍우를 뚫고 남중국해에서 동남아시아 연안으로 이동하여 필리핀을 경유해 2000km를 지나 53일만에 바타비아에 도착했습니다. 기적적인 일이었고, 선원들은 이사회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리게 됩니다.
 
 
 낯이 뜨거워진 이사회에서는 얼른 쾌속선을 타고 먼저 출항한 헤르만을 따라잡게 했지만, 너무 늦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사회는 쭈삣거리면서도 일단 지원군을 마련해보기로 했습니다. 보급품과 화약을 잔뜩 실은 10척의 선박이 곧 출항 준비를 마쳤고, 선원들 외에 전문 병사들도 700여명이 준비되었습니다. 중국인들과 정성공을 우습게 보는건 바타비아 이사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은 700여명의 소총수 정도면 정성공의 수만 대군을 무찌를 수 있다고 확신 했습니다. 문제는 이들을 이끌 지휘관이었습니다.
 
 
 
 겁을 먹은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한대로 이사회나 일반적인 네덜란드인들은(코예트 정도를 빼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자신감에 넘쳐 있었기에 누가 가도 정성공을 격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바타비아에 있는 네덜란드 인들은 모두 코예트를 바보로 여기며 조롱했는데, 이제와서 그의 얼굴을 보는것은 아무래도 좀 그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선택된 사람이 야콥 캐우(Jacob Caeuw) 입니다. 군사 경험이 전무한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는 본래 변호사 출신입니다. 코예트는 야콥 캐우에 대해 "말하기에 심각한 장애가 있는 사람이다. 마치 코로 말을 하는듯해서 통역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조롱했습니다. 여하간 캐우의 함대는 느즈막히 대만으로 출항하게 됩니다.
 
 
 
 다행이도 도착하고 보니, 그 시간은 헤르만이 일본으로 달아난지 얼마 안된 시기였습니다. 만약 헤르만이 떠나고 한참동안 아무런 지원군도 안 왔다면, 희망을 완전히 잃은 제란디아 요새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케우 함대가 해안에 등장함으로서 제란디아 요새의 네덜란드인들은 희망을 잃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날씨였습니다. 기상 상태는 어지러웠고, 항만은 정성공의 선박들이 바글바글했기에 제란디아 요새 옆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캐우는 좀 더 버텨봤지만, 날씨가 시간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자 위험을 무릎쓰고 프로빈샤 요새 옆 수로에 2,200 파운드의 화약과 병력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파도에 치여 배들은 위험할 지경이었고, 결국 포기하고 다시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정성공 역시 캐우 함대의 출현에 동요했습니다.
 
 
 
 
 
 
 정성공과 그의 부하 장수들 계산으로는, VOC 본사가 벌써 이 소식을 듣고 지원군을 보낸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물길이라면 이골이 난 정씨 집안이지만, 그들 조차도 마리아 호가 계절풍을 뚫고 벌인 위업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정성공은 이 10여척의 선박이, 바타비아에 소식이 전해져서 온 지원군이 아니라, 본래 오기로 했던 병력이 이제와서 도착한것이 아닐까 염려했습니다.
 
 
 그 말은, 만약 바타비아에 소식이 전해진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병력이 추가 지원을 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정성공은 마음이 급해져 40여척의 선박을 보내 캐우 함대를 공격했고, 150여명의 병사들을 보내 캐우 함대의 하역 작업을 저지했습니다. 때마침 캐우는 날씨가 안 좋아져서 물러난 뒤였습니다.
 
 
 정성공 부대의 사기는 눈에 보이게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제란디아 요새로 투항자들이 몰려든 것입니다. 투항자들은 지금 정성공 부대는 심각한 보급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병사들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성공은 이미 본국의 정태의 보급 활동에는 기대를 모두 버렸고 직접 일본으로 보내 비상 식량을 구했습니다. 중국으로 선박을 보내는것은, 대만과 본토 사이에 있을지도 모르는 네덜란드 함대에 대한 걱정과 우려때문에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내분이 벌어집니다. 정성공 부대는 보급 물자를 둘러싸고 다툼이 벌어졌고, 여기에 현지 원주민 부족들이 얽히게 되면서 소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정성공은 이때 네덜란드 인을 잡아 고문하여 캐우 함대가 바로 바타비아의 지원군이며, 최소 몇개월간 앞으로 더 지원군은 없을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제야 안심을 하게 됩니다. 그는 병사들에게 곧 제란디아 요새를 함락시킬 것이라며 분발을 요구했습니다. 동시에 모든 책임을 정태에게 묻고 돌아가면 그를 엄벌에 처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한달 가까이 캐우 함대가 대만 해안에서 어슬렁 거릴 무렵, 날씨가 드디어 좋아지기 시작해 나머지 하역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긍정적이었지만, 앞서 말했다 시피 이 네덜란드인들은 정성공과 중국인들에 대해 무례할 정도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몇번의 실패를 거치면서도 상대방을 전혀 위협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코예트는 캐우에게 "정성공은 평범한 적수가 아니다" 라고 신중론을 보였지만, 변호사 출신의 캐우는 오히려 호전적인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캐우의 부하들이 전시 평의회에서 득세했기에 코예트의 목소리는 더 쪼그라들었습니다.
 
 
 
캐우로 인해 반격이 결정되었고, 요새 주변에서 중국인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위해서 기만책이 결정되었습니다. 쿠케르켄(Koukerken) 호와 안크케벤(Anckeveen) 호 두척의 배를 곶 주변으로 보내 정성공 부대에 함포 사격을 가해 주의를 끌고, 정성공의 포병부대가 그쪽에 신경을 쓸 무렵 젤란디아 요새의 지상 병력이 기습하여 중국인들을 공격하여 얼을 빼놓고, 3척의 대형 전함과 15척의 소형 보트로 이루어진 해군 함대가 제란디아 요새 주변에 바짝 붙어 초계하고 있는 정성공 함대는 제압한다는 계책이었습니다.
 
 
 
 코예트의 충고 따위는 완전히 무시되었습니다. 코예트는 9월 16일 요새 성루에서 아군의 공격을 지켜보았습니다. 
 
 
 네덜란드 전함들이 바다로 나간 직후, 갑자기 바람이 잠잠해졌습니다. 잠시 기다리자 바람이 불긴 불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반대 방향으로 바람이 불며 정성공 함대 쪽에서 바람이 부는것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전함들은 대형이라 이런 상황에서 정성공의 소함대를 따라잡는게 불가능해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일반적인 지휘관이라면 함대를 불러들이고 다음 기회를 노려겠지만, 코예트를 바보로 생각하는 코르텐회프(Cortenhoef) 호의 선장은 코예트에게 중국인 따위를 상대하는게 얼마나 간단한지 과시하기 위해 함대의 소형 보트들에게 전함의 엄호 없이 접근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 광경을 똑바로 보았던 코예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 지휘관들은 모든 동원 가능한 작은 돛단배들에 무장 병력을 태운 적들 향해 노를 저어가게 할 정도로 무모했다고만 말해두고자 한다.
 
 교전이 시작된지 한 시간이 지나면서 패색은 짙어졌다. 중국인들은 좋은 엄호 속에서 싸웠던것에 비해, 아군은 사방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끝내 아군 보트 3척이 나포되었고, 나머지 보트들은 혼란에 빠져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도 안전하지 못했다. 2척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바다에서 꼼짝도 못하게 되었고, 다른 한 척은 적의 대대적인 포탄 세례를 받고 산산조각 났으며, 그 밖의 다른 배들도 중국인들의 화공선 공격을 받고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네덜란드 측 병사는 128명이 죽었고, 정성공 부대는 150명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소모전으로 가면 물론 유리한것은 정성공으로서 그에게는 150명의 피해는 간지럽지도 않은 수준이었지만, 네덜란드 측에서는 막대한 손실로 최소한 10 배 이상의 교환비는 보여주어야 그들에게 승산이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캐우는 작전 판단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했지만, 책임을 질만한 사람들 ─ 이를테면 코르텐회프 호 선장 등 ─ 은 모두 전사한 뒤였습니다. 제란디아 요새의 수비병은 하루하루 줄어들고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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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블라디미르 대공 | 작성시간 12.06.05 정성공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네요.
  • 작성자jyni | 작성시간 12.06.05 정성공은 확실히 군사적 재능이 떨어지는 것 같고, 인재들을 포용해서 활용하는 능력도 조금 아쉬운 것 같네요.
    감휘나 시랑 같은 인재를 잘활용했다면 전토수복은 힘들지라도 최소한 남중국에서의 패업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따지고보면, 청은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네요. 명이 자중지란으로 망한데다가 남명의 황제나 권신들 대부분이 아둔해서 자멸했으니깐요.
  • 작성자gksmf | 작성시간 12.06.05 코예트가 불쌍해요 ㅋㅋ
  • 작성자BACCANO | 작성시간 12.06.05 코예트 헝헝 바타비아 이사회 녀석들은 전부 낙관주의자인듯 멍청한 녀석들
    천치 vs 천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작성자Revolution | 작성시간 12.06.05 집에 해적왕 정성공이라는 책이 있어서 읽어봤는데
    다 읽고 난 소감은 '정성공 신화 깨부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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