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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군벌]최강의 군벌, 만주의 패왕 장작림(4) ─ 봉천의 패자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6.13|조회수929 목록 댓글 5



 

천단에서 제천 의식을 거행하는 원세개



 장작림이 원세개를 "알현" 하기전 상황에 대해서는 몇가지 이해가 필요합니다. 1912년 9월 원새개는 장삭란(張錫欒)이라는 사람을 동삼성 서변 선무사라는 자리로 발령을 냈습니다. 그리고 11월에는 장석란을 봉천 도독 겸 봉천 민정장에 임명했고, 1914년에는 봉천 장군 겸 진안 상장군의 자리에도 올렸습니다. 봉천, 길림, 흑룡강 모든 군무를 장석란에 통괄시킨 것입니다.


 그럼 이 장석란이라는 인물이 무슨 사람이고 하면, 원세개와는 형제와도 다름없는 사이고 서로 의지하는 친구였습니다. 원세개가 장석란을 그 자리에 보낸건 자기 사람을 보냄과 동시에, 장석란이 봉천성 전로 순방영 총판이라는 자리를 지낸적이 있다는 이유때문이었습니다. 장석란이 그 자리에 있었을때 장작림이 전로 순방영 통령이었는데 장석란이 상사였죠. 예전 상사를 붙여주면 장작림이라는, 새로 떠오르는 건방진 녀석을 견제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장작림 역시 이런 쪽으로는 도가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장석란을 맹탕으로 여기며 면전에서 기세등등했고, 74세나 되던 장석란은 힘에 부쳐서 이런 장작림을 제어 할수가 없었습니다.


 1914년 6월 6일, 육군 27사 사단장 장작림이 20여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북경으로 원세개를 알현하려고 한 때는, 바로 이런 시기였습니다. 원세개가 부의를 밀어내고 대총통이 되었는데, 전국의 장군들을 순번으로 북경으로 불러 보고를 받고, 이들을 관찰해 기량을 재보자는것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장은 고민을 좀 했습니다. 이번 북경 행에서, 원세개 앞에서 자신은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


 현재 자신은 원세개가 파견한 장석란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형편에 원세개 앞에서 대단한 모습이라도 보여준다고 치면, 저 노회한 정치 괴물은 즉시 자신을 견제할 것입니다. 그렇게 여긴 장은 북경에 도착하자 마자 수행원들과 함께 홍등가에 죽치고 앉아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여자들을 끼고 신나게 즐기고 놀았습니다. 물론 이런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원세개에게 보고 되었습니다.


 드디어 원세개를 만나는 날, 궁에 들어간 장은 매우 긴장된 표정과 함께 어벙한 느낌으로 심하게 쫄아있다는 식으로 행동했고, 화려한 궁궐 건물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좌우를 두리번 거리면서 찬탄하는 꼴이 꼭 시골 영감이 처음 서울 나들이를 한것과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원세개가 나타나자 황송해하며 어쩔줄을 모르고 무릎을 꿇고 절했습니다.


 신해혁명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선 뒤로 무릎을 꿇는 국궁 배례는 폐지되었는데 장은 원세개에게 큰 절을 올린 것입니다. 마침 원세개는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보고 있었는데, 시계를 본 장은 매우 호김이 난 것처럼 목을 빼고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야! 이런 물건이 또 있구나!"


 '아니, 이런 촌놈도 있나?'


 원세개는 아마도, 이 작자가 참으로 촌놈이구나 하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는 기분이 한껏 좋아 그 회중시계를 장에게 건내주었습니다. 원세개는 입을 열었습니다.


 "누가 당신을 안내했소이까?"


 "아이고, 대총통! 뇌진춘입니다. 이 분이 저를 안내하셨는데, 저의 영원한 상사였습니다."


 그런식으로 마구 상소리를 하며 큰 소리로 거침없이 말했는데, 원세개는 이 촌놈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풀어버림과 동시에 오히려 그를 좋아하며 호감을 보였습니다. 바야흐로 산전수전 다 겪은 원세개가 지방 군벌 장작림에게 속아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동삼성의 형세가 위험하나 군사적 위력으로 눌러 다행이도 오늘의 안녕을 기할 수 있었소. 계속 분발하여 동삼성 인민들의 행복에 힘써 주시오. 나는 그대에게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소."


 원세개는 그런식으로 장에게 승진할 수 있다, 는 느낌을 넌지시 주었습니다. 장은 당연히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겠다는듯이 굴었고, 이로서 장의 정치적 위상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이제 봉천에 돌아온 그는 장석란은 안중에도 없었고, 직위는 일개 사단장에 불과 했지만 그동안의 술수로 모든 병권을 사실상 손에 쥐고 있어 장병들은 장작림 한 사람의 말만 들었습니다. 장작림은 봉천성의 중심 인물이 되어 그의 주변에 매일같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모든 일을 상의했습니다.


 심지어 상관인 조이손 조차, 누구를 추천하면서 장작림의 눈치를 보면서 장이 고개를 갸욱하면 얼른 철회해 버리는것입니다. 1915년 무렵 장은 봉천 장군이 되기 위하여 북경에 정치 공작을 벌였고, 이건 당시 신문에도 나올 정도로 비밀도 아니었습니다. 장은 그런식으로 여론이 자기쪽으로 불기를 원했습니다. 요즘의 정치권에서 나오는 용어로 따지면 '대세론' 입니다. 그 사이에 끼여서 입장만 불쌍하게 된것이 늙은 장석란이었고 말입니다. 장석란은 결국 못 견디고 사퇴합니다.


 당연히 장은 이제 봉천 장군 자리가 자기에게 굴러 떨어지겠거니, 하면서 좋아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봉천 장군이 된 사람은 단지귀(段芝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너무 세세하게 경력을 하나하나씩 이야기하면 길어질테고, 단지귀는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원세개 라인임과 동시에, 여러 곳에서 화려한 경력을 지녔고 직함도 여러 개였던 인물입니다. 나이도 늙은 장석란과는 다르게 46세 밖에 안되어서 기력도 팔팔했습니다. 장은 장석란 앞에서 무례하게 굴때와는 다르게, 이 단지귀는 함부로 건드리면 큰일 나겠구나 싶어 살살 기면서 잘해주었습니다. 적극적으로 모시고, 진귀한 골동품도 선물해서 환심을 샀죠.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원세개



원세개가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는것은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습니다. 그러자 장작림은 원세개 파인 단지귀 앞에서 원세개가 없으면 죽고 못사는 시늉을 하고, 봉천 국민 대표회의를 열어 주민들의 의사를 물어보았습니다. 말이 물어보는거지 투표장에 무장한 군인들을 쫙 깔아놓고 한것이라 결과야 말할 필요도 없었죠. 전원 군주제 찬성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전문을 보내 어서 제위에 오를것을 재촉하는데 원세개의 엉덩이라도 햚을듯이 정말 두 눈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어서 빨리 제제(帝制)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작림은 죽고 싶을 뿐입니다!"


 이것은 정말 추한 일입니다.


 원세개는 1915년 12월 12일 시대의 흐름을 온 몸으로 거스르고 자칭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즉시 전국민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국민들은 이미 개화가 될 대로 되었던 것입니다. '서장' 에서도 말했다시피, 운남성에서 채악의 호국군이 들고 일어났고 전국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황제 제도 철폐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전중국을 흔들었습니다. 기세등등하던 원세개는 사면초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럴때 생각난것이 장작림입니다. 지난날 똥오줌이라도 받아먹을 기세이던 장작림에게 원세개는 중국 내륙의 호남성 출병을 요구하면서 이후 잘되면 공후백작의 벼슬을 주겠다고 급전을 날렸습니다. 최후의 발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장작림은 원세개가 상상하던 이상으로 더 뻔뻔스럽고, 더 교활한 인간이었습니다. 이미 원세개가 끝장났다는것을 깨달은 장작림은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꾸었습니다. 

 
 "봉천은 봉천 사람이 다스릴 뿐이다! 황제가 다 무어냐!"


 장작림이나 당시 중국에 대해서는 식민지 조선에서도 상황 설명에 대한 기사가 꽤 자주 나왔습니다. 급변하는 형세의 주변국이니 당연한데, 당시 동아일보 기사 중에 하나를 보면, "원세개가 망하자 손뼉 치고 좋아라 한것은 손일선(쑨원) 보다도 27사 사단장 장작림이었다." 라고 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원세개를 두려워할 필요 없이 단지귀를 쫒아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7사 사단장인 장작림에게 28사 사단장 풍덕린(馮德麟)이 찾아옵니다. 풍덕린 또한 단지귀에 대해서는 불만이 크던 처지라, 이렇게 제의 하는것입니다.


 "단지귀는 청조의 마지막 남은 관리입니다. 그가 탐관오리인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동삼성에서 황제 제도를 옹호하는 무리들의 괴수입니다. 여전히 봉천인의 머리 위에 앉아 있으니 마땅히 몰아내야 합니다."


 과거 황제 제도를 옹호하며 혁명당원들을 죽인 바 있던 장작림은 천연덕스럽게 좋은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28사에서 악역을 맡고, 그와 정면으로 부딫히겠습니다. 그러면 27사는 도와주는 척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가 은근히 그의 죄상을 들춰내어 그가 스스로 놀라 도망가도록 하면 됩니다. 이런 연극은 병사 하나 다치는 것 없으니 얼마나 멋진 꾀입니까?"


 장작림은 박수를 치며 좋아라 했습니다.


 "이 기회에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봉천인들이 만만찮다는것을 보여주어야지요!"


 세부 계획이 모두 수립된 어느날 밤, 장작림은 멀쩡한 하늘에 공포탄을 쏘아대더니 단지귀를 만나 말했습니다.


 "지금 풍덕린이 28사의 장병들을 움직여 시내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황제 제도를 옹호하는 단지귀를 처단하자고 아수성입니다. 제가 이들을 막지 못해서 아주 큰일이 나버렸습니다."


 "뭐, 뭐라고!"


 "어서 피신하시지요."


 대책이 없었기에 단지귀는 달아났습니다. 달아나면서도 수탈해 놓은 공금과 거액의 군 장비를 가지고 열차를 타고 도망쳤는데, 원할한 연극을 위해서 장작림은 자기 측근인 손열신에게 시켜 1개 부대로 단지귀를 호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몰래 퐁덕린의 28사의 병력을 시켜 열차를 세우게 했습니다.


 "황실에서 임명한 단지귀는 황제 체제 옹호의 원흉이다. 봉천 인민은 응당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단지귀는 공금 200만 원의 거액과 군 장비를 들고 처벌이 두려워 잠적 중에 있다. 이에 봉천 인민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급 여단장에게 병력을 요청하여 단지귀를 봉천으로 압송해 봉천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하고자 한다."


 단지귀는 호위 중이던 손열신에게 28사가 건내준 전문을 보여주었습니다.


 "상의 좀 하고 오겠습니다."


 손열신은 한참 뒤에 돌아왔습니다.


 "지금 봉천 전 지역 민심이 아주 흉흉하답니다. 반드시 열차를 막고 봉천으로 압송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라더군요. 장작림이 대독이 몇시간 동안 그들을 설득하여 열차를 건드리지 말자는 약속을 얻었는데, 대신 공금과 군 장비는 남겨놓고 중앙에 보고해서 검열을 받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뭘 어쩌겠습니까. 그냥 가야죠. 단지귀는 빈털터리로 몸만 살아서 북경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장작림에게 놀아난 줄은 꿈에도 모르고 원세개 앞에 와서도 풍덕린의 욕만 해대었습니다. 200만원의 공금과 군 장비는, 물론 장작림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원세개는 반대에 못이겨 황제 자리에서 물러났고 곧 죽을 몸이긴 했으나, 어쨌든 총통이었습니다. 단지귀가 이리 되었으니 새로운 인물을 뽑아서 동삼성에 보내야 하는데, 지금 봉천성은 봉천 사람 만이 봉천을 다스릴 수 있다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후보는 장작림과 풍덕린 뿐인데, 단지귀에게 의견을 물어보자 당연히 단지귀가 풍덕린의 욕만 했기에 원세개는 장작림을 봉천 성무 장군 겸 봉천 순안사로 임명했습니다. 1916년 4월 22일의 일이었습니다. 이로서 장작림은 동삼성에서 가장 큰 봉천성을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원세개가 물러난뒤 임시약법에 따라 대총통이 된 여원홍(黎元洪). 비교적 최근 영화인 신해혁명에서도 등장해서 활약합니다. 대총통이 되긴 하나 실권은 어디까지나 단기서의 손에 있었습니다.




 염원하던 봉천의 지배자가 된 장작림이었지만, 모든 실권이 그에게 있는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를테면 풍덕린도 꽤 권한이 있었죠. 그는 러시아가 의화단의 난을 진압한다는 구실로 들어오고 난리가 벌어질때, 장작림처럼 대단을 조직해서 백성을 지켜 명성을 쌓아 그것을 바탕으로 출세했던 인물입니다. 비슷한 인물인데 장작림이 갑자기 치고 나가자 당연히 대립이 격렬해졌습니다.

 
 당시 풍덕린은 나이가 50세였고 장작림은 41세였습니다. 하지만 계급은 장이 대장이라면 풍은 부대장에 지나지 않았으니, 장 앞에서 "녹림 선배" 로 자처하던 풍은 크게 자존심이 상해 이를 갈았던 것입니다.


 "이럴 수가 있느냐! 장작림, 이 자식이 이럴수가!"


 풍덕린이 한개 사단의 병력을 가지고 있고 선배이기도 했기에 장은 그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어르고 달랬습니다. 하지만 풍덕린의 요구가 갈수록 터무니 없어져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는데, 마침 뜬금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복벽파의 우두머리, 장훈(張勳).


이 사람은 신해혁명이 이제는 벌써 6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변발을 자르지 않은, 극도의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거기다 뒤에 있는 세력이 독일이었던 독일파였는데, 마침 대총통 여원홍이 독일과 단교를 하자 독일의 지원을 등에 엎고 여원홍을 내쫒아 버립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개혁파였지만 급변한 시대에서는 골수 반동분자가 된 강유위(康有爲)와 연합하여 폐위된 황제 부의를 끌어내어 청조 복벽 운동을 시도합니다.


 실권을 쥔 단기서는 가만히 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여원홍은 단기서를 제압해볼 작정으로 여기저기 찔러보았지만 힘에 부치던 판국이었는데, 마침 이런 일이 발생을 합니다. 하지만 독일은 유럽에서 전쟁하느라 바빠 지원을 못해주었고, 이 일은 12일만에 끝장이 납니다. 공화국 대총통이 청조 복벽 운동에, 본의가 아니라지만 연관이 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 일을 구실삼아 단기서는 여원홍을 쫒아내었습니다.


 그 12일 동안, 장훈은 전보를 쳐서 풍덕린은 북경으로 불렀습니다. 장작림과 달리 미래에 대한 식견이 없는 그는 좋아서 장병 200명을 이끌고 북경으로 가 복벽을 적극 지지한다고 설쳐댔고, 부의를 만나 칭찬까지 들어 득의양양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망해버렸죠. 봉천으로 도망치던 그는 단기서에게 붙잡혀서 삭탈 관직을 당했습니다. 


 장작림은 장훈의 사건이 일어났을때 가만히 사태를 지켜보는 쪽을 택했습니다. 어차피 보황이든 공화든 그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일입니다. 그는 단기서가 유리할 성 싶어 그쪽에 붙었고, 이는 성공이었습니다. 그때, 딱한 상황에 놓인 풍덕린이 장작림에게 구원을 손길을 요청합니다.


 충분히 무시해버릴 수도 있었으나, 장은 의외로 풍을 구하기 위해서 움직였습니다. 에전 녹림 시절의 의리 때문일 수도 있고, 어차피 이제 풍이 자신에게 도전해올 입장도 못 되니 그런것도 있지만은, 기본적으로는 풍의 부하들을 잘 다독여 자신의 부하로 삼기 위해서 였습니다. 장은 열심히 단기서에게 빌어 풍이 감옥에서 나오는 한편 다시 관직 생활을 하게 했는데, 장작림의 요청에 따라 풍은 청 태종 홍타이지와 태조 누르하치의 묘소가 있는 근처에서 공직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힘없는 한직이었지만 관할 범위는 넒었고 어차피 나이도 이제는 많은 처치라, 더는 헛꿈꾸지 않고 조용히 살다가 1926년 8워 사망합니다.


 이제 풍덕린도 요리한 장작림은 봉천성의 대권을 한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흑룡강성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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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惡賭鬼 | 작성시간 12.06.13 정말 흥미로운 인물이네요.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비열함과 약삭빠름, 거기에 권력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까지 있으니...
    난세라서 더욱 그런 면모가 극명하겠지만, 현대에 태어났어도 한 자리 꿰찼을 인물일듯... 저같은 사람에겐 증오의 대상이겠지만...ㅋㅋㅋ
  • 작성자찰목합 | 작성시간 12.06.14 영웅호걸이 천하를 쥐는게 아니고 천하의 비열한 인물이 세상을 장악해 가는 과정이군요 ㅎㅎ
  • 작성자kingrapter21 | 작성시간 12.06.14 야 이거 재밌네 ㅋㅋㅋㅋㅋ
  • 작성자차로아침을 | 작성시간 12.06.14 기본적으로 김두한같은 인간인데 시대가 군벌시대라서 아예 높은 자리까지 꿰찼네
  • 작성자2Pac | 작성시간 12.06.14 권력에 대한 감각이랄까... 정말 수많은 갈림길에서 승자의 선택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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