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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군벌]최강의 군벌, 만주의 패왕 장작림(5) ─ 일본의 암살 흉계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6.14|조회수630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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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훈의 복벽 운동 이후 1917년 8월 북경에서 대리 대총통에 임명된 풍국장. 바이두에서 찾아도 사진이 이런 사진밖에 못 찾겠군요. 국무총리는 단기서가 되었습니다.
 
 
 
헤이룽장 성 지도
 
 
 봉천을 완전 장악하게 된 장작림이지만, 그의 목표는 봉천이 아닌 동삼성, 곧 봉천 ─ 길림 ─ 흑룡강성의 완전 장악이었습니다. 만주를 손아귀에 쥐겠다, 이 말입니다. 장작림은 우선 바로 옆인 길림성이 아니라, 약간 더 옆의 흑룡강성을 찔러 보기로 했습니다. 흑룡강성의 장군은 주경란(朱慶瀾)이었습니다. 절강성 출신인데 이곳까지 왔습니다. 승진을 거듭해서 흑룡강성의 사실상의 지배자였지요.
 
 
 두 사람은 안면이 있었는데 서로 업신여기는 처지라 사이는 좋을게 못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경란이 원세개의 신임을 받고 있음으로 상대하기가 좀 껄끄러웠습니다.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고 곧 목숨을 달리할 원세개였지만, 어찌되었건 아직은 대총통이었습니다. 장은 사태가 이리하자, 허란주(許蘭洲)를 이용해 두 명을 모두 물먹일 꾀를 세웁니다. 허란주는 흑룡강성에 주둔하고 있는 육군 제1사단 사단장이었습니다.
 
 
 허란주는 원세개가 천진에서 병사 훈련을 할때 무술을 잘 해 경호원까지 했던 인물로 야심이 크고 전형적인 원세개 라인이었습니다. 장이 가만히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허란주는 본인이 흑룡강성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보였습니다. 장작림은 슬며시 손뼉을 치며 허란주에게 연락해 자신은 허란주가 주경란을 몰아내고자 하는 뜻을 다 알고 있으며, 일이 성사되면 허란주가 그 자리를 맡을 수 있도록 적극 지지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는 불난집에 부채질 하는 격이었고, 과연 허란주는 즉시 움직였습니다.
 
 
 1916년 3월 17일 야밤, 허란주는 난대없이 흑룡강성의 만주 기인들을 부추겨 도처에 전단을 뿌리도록 했습니다. 그 내용인즉 모든 기인들은 한데 모여 기인의 생계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법률로는 회의를 하려면 해당 경찰국에 이 사실을 알리고 집회를 승인 받아야 하지만 승인 요청 따윈 하지 않았습니다. 경찰들은 전단을 보고 무슨 일인가 아연실색하며 사람을 보내 집합 장소인 공장을 감시하도록 했습니다.
 
 
 회의 당일, 기인들은 경찰을 보자 이들이 방해를 할 줄 알고 모두 허란주의 부대로 숨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허란주가 세운 책략으로, 허란주는 중재를 꾀하는 척하며서 기인들을 충돌질해 대표들 연맹으로 전보를 쳐 북경정부에 주경란 측근들을 공격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들의 죄상은 낱낱히 폭로되었고, 이는 실질적으로 주경란을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주경란도 대응해서 북경 정부에 허란주가 음모를 꾸며 기인들을 선동해 요란하게 군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귀찮고 허망한 원세개는 전문 접수 후 곧바로 허란주에게 난동을 부리지 못하도록 하고 주경란에게도 의외의 사태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쉬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주경란을 광동성으로 보내 그곳에서 일을 하게 하고, 허란주가 임시로 주경란의 자리를 맡아보도록 했습니다. 허란주는 만사가 자기 뜻대로 된 줄 알고 좋아라 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일 뿐이었고 원세개는 곧 다른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바로 이때, 가만히 사태를 보고 있던 장이 움직였습니다.
 
 
 장은 넌지시 포귀경(鮑貴卿)을 추천했습니다. 그런데 이 포귀경은 다름 아닌 장의 사돈지간이니 사실상 제 세력이나 진배없었습니다. 결국 장의 추천에 따라 포귀경이 흑룡강성의 지배자가 되었고, 허란주의 제1사단 마저 봉천성 소속으로 변경되어 장작림의 밑에 오게 되었습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실리는 여우가 챙긴 셈입니다.
 
 
 
 동삼성 순열사 시절의 장작림.
 
 
 
 이제 다음 목표는 당연히 길림성입니다. 길림성의 장군은 맹은원(孟恩遠) 이었습니다. 직계 군벌의 핵심과 가족 사위 관계 등으로 있어 건드리기가 껄끄러웠지만, 장은 북경정부에 맹은원이 복벽 운동의 괴수 장훈으로부터 순무에 임명받았으며, 복벽의 구정물에 오염된 사람이 순무를 맡고 있다니 이것이 말인가 당나귀인가 하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환계 군벌인 단기서는 직계 군벌 세력을 또 하나 날려 버릴 수 있음으로 장의 제안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려버렸습니다.
 
 
 
 이제 총통 자리는, 일전에 장작림의 상관이었던 서세창이 맡았습니다. 그 이전엔 이 글의 맨 앞에 사진을 걸었다시피 직계 군벌 풍국장이 총통이었는데, 이 사람이 죽어버렸던 것입니다. 다만 서세창도 실제적인 힘은 별로 없고 단기서 등이 파워가 강했습니다. 서세창은 장작림을 동삼성 순열사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는 청나라 시절 동삼성 총독과 똑같고, 실권은 더 강했던 자리입니다. 이제 동삼성의 인사권은 모두 장에게 있었습니다.
 
 
 장은 1919년 6월 서세창에게 전문을 보내, 길림 독군 맹은원의 자리를 자기 사돈인 흑룡강성의 독군 포귀경으로 임명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비어있는 흑룡강성 자리는 오랜 부하였던 손열신을 추천했습니다. 이 모든게 서세창의 허락을 맡으면서 장의 계산대로 다 되었습니다.
 
 
 맹은원은 당시 60세의 노인이고, 길림성에 오래 근무하여 이것저것 챙겨먹어 배도 부른 상태라, 딱히 미련을 가지지 않고 길림성을 떠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부하들이 반발하여 어찌할까 생각중이었는데, 장작림이 손열신을 시켜 대병력을 이끌고 길림성을 치게 하자 깜짝 놀라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 장에게 전문을 보냈습니다.
 
 
 "길림 독군의 대권을 넘겨주는데 동의하겠습니다. 대신 자기와 부하들의 생명, 그리고 재산을 보호해 주십시오."
 
 
 "길림 독군의 대권을 넘겨주기만 하신다면은, 천진까지 무사히 돌아기는 길을 보장하겠습니다."
 
 
 일이 이렇게 해결되어 8월 5일 포귀경과 맹은원이 길림시에서 독군의 인장을 주고 받았고, 이제 장은 동삼성의 모든 영도권을 쥐게되어 명실공히 동북왕이 되고 만 것입니다.
 
 
 
 조선 백성들의 피눈물을 뽑아낸 데라우치 마사타케(てらうち まさたけ)
 
 
 제국주의 일본은 이제 엄청나게 크고 자원이 풍부한 중국을 집어삼키려고 군침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요동 반도를 얻을 뻔하다가 3국 간섭으로 실패한 일본은, 곧 러시아와 대립하여 전쟁을 벌여 승리했고, 동삼성의 남부는 사실상 자기네들이 장악을 했습니다. 장춘에서 대련까지 철로를 소유하고, 이 토지 내의 모든 광산은 일본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철도 부지 내의 행정, 사법, 공업, 상업, 교육, 위생 등 모든것은 일본의 남만 철도공사가 관리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사실상 이 지역은 일본 식민지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정황 아래서 돌아가는 형세를 살피던 장작림은, 일본 편에 서기로 했습니다. 말했다시피 장의 최대 장기는 세보이는 쪽에 붙고, 편을 갈아타는 능력입니다. 장의 예민한 정치 감각은 일본 세력의 범위 아래선 일본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것을 탐지한 것입니다. 그는 일본의 비위를 맞추는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사실 장이 일본에 관심을 가진것은 동삼성의 제왕이 되기 훨씬 전이었습니다. 벌써 1912년 1월 26일 봉천 주재 일본 총영사 오치아이 겐타로를 제발로 찾아가 자랑하듯이 떠벌린 것입니다.
 
 
 "현재 동삼성의 군사 실권이란 본인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지요!"
 
 
 "대단하군요."
 
 
 총영사를 비롯한 일본인들은 뭣도 모르고 장을 주요 인물로 보았습니다. 그러자 장은 비위를 맞추며 할 소리 못할 소리 다 해대는 것입니다.
 
 
 "일본국이 현재 남만주에서 이권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며 조금도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이 말은 총영사를 거쳐 일본 정부에까지 전달이 되었습니다. 2월 5일 장은 또 오치아이를 찾아가서 이런 소리를 해대었습니다.
 
 
 "만일 일본이 본인과 우리 동삼성 인민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본인과 본인을 따르는 사람들은 기꺼이 일본이 하는 일에 협력 할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세력 확장밖에 머릿 속에 없던 장은 이렇게 매국적 소리를 끝도없이 해대었습니다. 일본 당국은 장의 당시 직급이 비교적 낮은데다, 너무 대놓고 이렇게 머리를 숙이는게 더 의심스러워서 좀 더 두고보기로 했습니다. 일본 외상은 오치아이 총영상에게, 일단 장은 사귀어 놓고 관계를 주고 받는 대신에 너무 깊게 사귀지는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정도 눈동자를 찍은 뒤였습니다. 그 후로도 장은 일본측 인사들을 자주 만났습니다.
 
 
 1915년 10월, 제대로 된 기회가 왔습니다. 당시 장은 단지귀의 눈치를 보고 있던 시기였는데, 단지귀의 지시로 일본의 보호국이던 조선 서울에서 열리는 농업 박람회에 중국 대표로 참석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조선 총독 데라우치를 만난 장작림은 온갖 재롱과 아양을 떨어가며 데라우치의 환심을 샀습니다. 데라우치가 나중에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이 되니, 관계를 제대로 연 것입니다.
 
 
 장작림이 점점 권모술수를 부려가며 잘 나가니, 일본에서도 장을 달리 보며 과연 이 사람을 어찌 대해야 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일본 내의 의견은 두 가지였는데, 저렇게 재롱 부리는 장을 끌어들이자는 쪽과 그 반대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추진하던 계획이 만몽독립(滿蒙獨立) 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만주와 몽고를 묶어서 독립 국가를 만드려고 하는것이고, 당연히 그 나라는 괴뢰국이고 배후에 일본이 있겠죠. 일제는 무서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종사당(宗社黨 : 신해혁명 후에 혁명정부가 들어서는것을 반대하고 청 황제가 다시 나라를 다스리게 하려는 무리) 내몽고 세력을 끌어들였습니다. 과격파들은 이 만몽 왕국을 만드는데 장작림이 방해가 될 것이라고 여겨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장을 이용하자는 의견이 대세가 되었는데, 그러는 가운데서도 왕을 잡으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본 낭인 무리였죠. 그들은 장작림 살해 후 그 혼란을 틈타 일본이 조종하는 종사당을 그곳으로 끌어들여 동북을 일제의 천하로 만드려는 가공할 계획을 세우던 것이었습니다.
 
 
 1916년 5월 27일. 일본 덴노의 동생 한원궁 재인친왕(閑院宮載仁親王)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봉천을 들렀습니다. 장은 이 기회에 눈도장이나 찍어 놓으려고 영접을 위해 기차역으로 가면서, 경의를 표하기 위해 5대의 호화스런 러시아식 마차를 몰고 갔습니다. 기병들이 호위하고 있었고, 영접 행사는 요란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성공적으로 일을 마친 장이 돌아가는 즈음 갑자기 총탄이 날아들었습니다. 총탄은 1층 건물 창문에서 날아온 것이었습니다. 자객은 일본 육군 소좌 미무라 등이었습니다.
 
 
 "장은 죽었나?"
 
 
 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목표를 잘못 잡았는데, 장작림의 부하 탕옥린의 마차가 화려해서 그곳을 쏘았던 것입니다.
 
 

 
 탕옥린
 
 
 사격 후 일대 혼란이 일어나자 일본 범인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쏘면서도 조준을 제대로 못했고, 호위병 대 여섯명이 죽고 탕옥린이 경상을 입었지만 장은 무사했습니다. 그는 맨 뒤에 있는 마차를 타고 있었는데, 총소리가 들리자 마자 마차에서 비호같이 뛰어내려 말 뒤로 숨었습니다. 그리고 신속히 호위병과 옷을 바꾸어 입은 뒤 도로를 돌아 골목길을 빠져나가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흉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장작림이 봉천 도서관 옆을 지나는데, 도서관에서 갑자기 괴한이 튀어나오더니, 장에게 폭탄을 던져대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녹림 마적 출신 장작림의 무술 실력이 드러나는데, 그는 놀라지도 않고 비호같이 말에 올라타 달아나 폭탄은 장의 뒤에서 터져 그는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모자만 땅바닥에 떨어졌는데, 폭탄을 던진 사람만 오히려 파편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두 번의 암살 시도가 모두 장작림의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우선 폭탄 테러를 피한 장은 급히 장군본부로 돌아왔습니다. 보초는 장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 문 입구에 기관총을 소집했고, 장은 그것을 보고 경호원을 긴급히 소집하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습니다. 그때서야 알았지만, 말의 온 몸뚱이가 땀에 흠뻑 젖어 있고 뒷발에 피가 흐르면서 말의 뱃가죽에 상처가 생겨 있었던 것입니다. 병사들은 긴급히 출동했고 탕옥린도 헐레벌떡 뛰어왔습니다.
 
 
 "장군은? 부상 입지 않았는가?"
 
 
 "방금 돌아오셨습니다. 큰 부상은 다행히 입지 않았습니다."
 
 
 탕옥린이 들어서자 장작림이 욕을 해대었습니다.
 
 
 "빌어먹을! 어떤 놈이야? 잡았나?"
 
 
 "놈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경호원이 들어와서 보고를 올렸습니다.
 
 
 "일본 철도 수비대 대장, 봉천 주재 일본 총영사가 위문을 왔습니다."
 
 
 이건 기실 사태가 어찌 됬는지 염탐을 해보려던 수작이었습니다. 장작림은 옷을 갈아입고는 그들을 불렀습니다.
 
 
 "잘됬군. 들어오라고 해!"
 
 
 일본인들은 겉으로 웃으면서 들어왔습니다. 장작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굴었습니다.
 
 
 "장군,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아무 일도 아닌데 이렇게 여러분이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참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장작림은 갑자기 얼굴 색을 바꾸면서 한자, 한자 또박 또박 힘줘서 말했습니다.
 
 
 "빌어먹을! 흥! 나 장작림을 쓰러뜨리기가 그렇게 쉽진 않을 게요!"
 
 
 일본인들이 다시 장작림을 봤지만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라 뜨악했습니다. 범인의 옷은 중국인 옷이었지만, 발을 보니 나막신을 입고 다닌 자국이 뚜렷했습니다. 일본 낭인이었음에 분명하지만, 일본인들은 종사당의 짓이라고 바람을 넣었고, 장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흐지부지 이 사건을 끝내버렸습니다.
 
 
 "됐다. 됐어. 단순히 발 모양만 가지고 범인을 판단하면 무언가 증거가 불충분하지 않은가!"
 
 
 몇년 후 사이온지(西園寺) 공작의 비서 하라다 구마오는 구술 기록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이 범인은 일본인이다. 이 음모는 일본인의 체면을 말 할 수 없이 떨어뜨렸다.
 
 
 이 때는 기지와 배포를 통해 사건을 피한 장작림이지만, 훗날의 그는 그렇게 운이 좋지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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