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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군벌]최강의 군벌, 만주의 패왕 장작림(9) ─ 제 1차 직봉대전 : 전초전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6.19|조회수530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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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패부는 공개적으로 양사이 내각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양사이 내각을 세운 장작림을 비난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보를 이용해서 여론을 흔드는것은 지난번 직환전쟁 때도 그렇고, 오패부가 즐겨 쓰던 수법입니다. 양사이 내각의 친일적 모습이 오패부로 인해 대중들에게 낱낱히 공개가 되어버렸고, 온 나라 사람들이 분노하면서 양사이를 타도하자고 소리쳤습니다. 양사이는 정말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패부를 공개적으로 적으로 선포하기에는, 양사이 내각이 그리 튼튼하지 못합니다. 양사이는 일부러 질질 끌면서 대답을 늦추었고, 나중에 자기들도 발표를 했지만 그 내용은 근본적으로 오패부의 전보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마치 오패부의 전보를 보지 못한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패부에게 오히려 철도 건설비 준비 문제로 정부에 의견이 없으니, 의견 발표를 해주길 바란다는 배째라의 태도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미 각지의 직계 군벌들은 오패부의 전보에 곧바로 호응을 한 뒤였습니다. 강소 도독 제섭원(齊爕元), 호북 도독 풍옥상(馮玉祥), 산동 도독 전중옥, 강서 도독 진강원 등은 차례대로 오패부 지지의 전문을 보냈습니다. 양사이는 차관은 일본에서만 얻는것이 아니며, 여러가지 오해가 있다고 자신을 변호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여런몰이에 있어서 완전히 오패부가 장악한 것입니다. 오패부는 쉴새없이 전보를 날려 양사이 내각을 공격했습니다.


 ─ 오늘 아침 양사이가 특명 전권 대사에게 전문을 보냈는데, 일본의 차관을 접수하고 중일이 공동 관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북경정부를 더욱 애석히 여기는 것은 일본의 차관을 더욱 많이 얻었고 이것을 각국의 신문들이 당당히 보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경은 그 요구를 이미 접수했다고 일본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이의 저지를 위한 우리들의 노력은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마치 양사이가 무언가를 숨기는듯것이 더 있다는듯한 전보였습니다. 하지만 공격은 양사이만을 향해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 무릇 그 나라에서 나는 음식을 먹고 그 나라에서 사는 자라면 마땅히 조국을 위해 같이 살고 같이 죽어야 할 것이며 악당의 괴수들과는 한 하늘 아래 머리를 이고 살 수 없다. 만약 양사이가 일본 차관을 끌어오고 철도를 공동 관리하도록 옹호자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기끼어 양사이의 주모자일 것이다. 즉, 나라의 공적이므로 우리 인미들이 당연히 공동으로 쳐 없애야 한다. 오패부는 인민을 위해 명을 받들어 반드시 적을 몰아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위 '주모자' 혹은 '공적' 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마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일 오패부는 또다시 전보를 보내, 양사이 내각과 단절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분명하게 했습니다.


─ 제비가 황손을 쏘고 있으니 한(漢)의 운명도 다했다. 이 사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가 안정을 찾지 못할 것이다. 만일 부끄럽게도 자리에 연연한다면 얼굴 가죽이 두껍다고 할 것이다. 인민들에게 묻노니 누가 매국 내각인지를 알 것이다.


 드러내놓고 양사이 내각을 "매국 내각" 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니, 이제 완전히 그쪽과는 선을 긋는다는 의사 표현에 다름 아닙니다. 제비가 황손을 쏜다는 표현은 실로 교묘한 것인데, 예전 당나라 초당사걸 시인 낙빈왕(駱賓王) 측천무후를 토벌하자는 격문의 문구를 이용한 것입니다. 원문은 후한 시대의 황후인 조비연을 무측전에 비유하여 무측전이 조비연처럼 조정을 망하게 할 것이라는 내용인데, 지금 여기서는 양사이가 조비연처럼 나라를 말아먹을 것이란 말이었습니다.


 ─ 양사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은 낯가죽 두꺼운 일이므로 빨리 끌언애ㅑ 한다!



 


 장작림은 대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만 북경정부에 전문을 보내 태도를 표시했습니다.


 ─ 지난번 북경에 가서 조곤 각하를 수행하며 내각을 빨리 구성토록 했습니다. 내각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국본은 하루아침에 안정되는 게 아니므로 힘써 도와야 합니다. 양사이 내각이 이제 진행을 선포했는데 최근의 전문은 정황에 대한 진술을 하지 않아 오패부는 이해도 없이 마음대로 비방을 하고 있습니다. 전문 내용의 언어들은 적합하지 않은 말들이며 오로지 옳고 그름을 불문하고 계속 공격만 하고 있습니다. 묻노니 당국자는 어찌해야 하는지, 나라 일은 어떻게 될 것인지 마땅히 정론을 모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알려야 할 것입니다.


 장작림은 공공연하게 양사이 내각을 비호했습니다. 이제 오패부와 장작림의 갈등은 전중국 천하에 완전히 표면화 되어, 모든 사람들이 똑똑이 알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1922년 5월 31일 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식민지 조선에까지 이 대립이 알려진것을 알 수가 있는데, 오패부가 장작림의 죄상을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오패부는 마치 전보 중독에라도 걸린듯이 끊임없이 전문을 공표했습니다. 그기야 신문에까지 글을 발표하여 온갖 방향으로 양사이을 욕했습니다. 어제는 '구악어문(못된 악어가 가축과 사람을 잡아먹고 있으니 이를 없애자는 격문. 당나라 시기 한유의 명문)'을 발표하는가 하면, 내일은 '무측천토벌'을 발표하여 양사이에게 욕을 퍼붓었습니다. 동시에 각지의 군벌들이 자신을 지지하도록 권유했습니다. 조곤은 특별한 태도 표시를 하지 않고 사태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오패부의 맹렬한 팔극권에 대항해서 양사이는 부드러운 태극권을 펼쳤습니다. 온갖 욕을 다 먹으면서도, 오히려 오패부에게 "우리나라의 걸출한 인물이다." 라고 하며 칭찬하면서 자기를 변명했고, 이야기를 돌리려 애를 썻습니다. 하지만 오패부는 '7일 내로 내각이 물러날 것' 을 요구했습니다. 


 마침내 직계 군벌이 한데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19일 오패부를 중심으로 6개 성의 군벌들이 서세창 대총통에게 양사이의 즉각 파면을 요청했습니다. 직계의 이런 움직임에 봉계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었는데, 20일 오패부의 명령에 따라 호북 도독 소요남이 마침내 북상하면서 무력 행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총통 서세창이 가만히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장작림이 단호하게 나오지를 않고 있기에 양사이에게 기회를 봐서 하야할 것을 권했씁니다. 20일 양사이는 우선 천진으로 몸을 피했고, 25일 서세창은 외교총장 안혜경을 내각총리 대리로 임명했습니다.  양사이 내각이 출범한지 고작 28일 만입니다. 그 28일 만에 직계 군벌이 몸을 일으켰고 상해에서는 노동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며 북경 40여개 단체가 연합하여 양사이 내각을 비난하는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밀어준 양사이가 저 꼴이 되자, 체면이 바닥에 떨어진 것은 물론 장작림입니다. 하지만 장작림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는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직계의 군사력이 상상 이상으로 대단해서 아직 봉군만으로 이길 수 있을지 감이 잘 안 왔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세를 호전 시킬 지도 모르는 두 세력의 협조를 얻어내게 되었는데, 첫번째는 몰락한 환계의 단기서입니다. 그들은 장작림과 손을 잡고 부활을 꿈꿨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전혀 다른 성격의 군대였는데, 쑨원입니다. 쑨원의 북벌군이 일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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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2Pac | 작성시간 12.06.20 드디어 북벌군 등장인가요! 어떻게 보면 북벌의 움직임으로 초조해진 직계가 선빵을 날린 걸 수도 있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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