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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군벌]최강의 군벌, 만주의 패왕 장작림(20)─ 장작림 vs 쑨원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7.03|조회수739 목록 댓글 6





  1924년 10월 25일 풍옥상은 국가 대계를 위해 쑨원의 북상을 요청했고, 10월 27일 쑨원은 단기서와 풍옥상에게 즉각 북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풍옥상에게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의로운 깃발을 높이 들고, 숙적들을 없앴으니 제형들의 국가 공로는 크게 칭송할 만 합니다. 국가 건설 대계를 위해, 마땅히 북상하여 제형들과 협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단기서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 공께서 국가 경영에 노련하시고, 원대한 계획이 확실히 있으리라고 봅니다. 저 쑨원, 즉시 북상하여 일체 모든 것을 공과 의논하고자 합니다."


 쑨원은 바로 지금이, 자신이 평생동안 꿈꿔왔던 숭고한 목표 ─ 국가의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날 쑨원은 수차례나 자신의 목표를 실패했고, 권력에 배신당했으며 이러한 기회는 신해혁명 이후 13년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쑨원은 아직 군벌들의 야비한 본질에 대해서 잘 꿰뚫지 못하는 면이 있었고, 북방 형세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11월 10일 쑨원은 공식적으로 북상 선언을 했고, 반제국주의 ─ 봉건 군벌의 정치 입장에 반대한다는것을 거듭 밝혔습니다. 또한 대외의 불평등 조약을 폐지하고 안으로는 국민회의를 개최, 정치 입장을 확실히 확실히 밝히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국민혁명의 관건에 대해서는 (군벌이 아닌)인민의 무력이 장악해야 하며 첫째, 무력으로 국민이 서로 결합하고, 둘째로 무력은 국민의 무력이어야 한다는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국민혁명은 군벌 타도, 제국주의에 기생하는 무리들도 타도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또한 북상을 하면서도 다시 일본 고베로 가서, 국민당 회의에서 당원들 앞에 나서 진정한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제국주의와 결탁하는 군벌을 없애야 한다는 의지를 계속해서 표명했습니다. 쑨원은 확실하게 자신의 태도를 밝힌 것입니다.


 바로 그 "제국주의와 결탁하며" "제국주의에 기생하는" 구시대 군벌인 단기서, 장작림은 겉으로는 일단 쑨원의 북상을 환영했습니다. 신해혁명 이후 쑨원의 이름은 (비록 서양 제국주의 세력에서는 "몽상가" "반동분자" 등으로 욕을 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중국에선 이미 전설이 된지 오래이고, 무엇보다 여론이 쑨원의 북상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여론을 기만하여 속이기 위해 겉으로는 쑨원의 북상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면서, 물밑에서는 서둘러 쑨원이 오기 전에 권력 기반을 자신들의 겉으로 만드려고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쑨원이 북상하기도 전에 단기서가 풍옥상을 재촉해서 회의를 벌이던 것도 이런 사정이 있습니다.


 당초에 단기서는 "쑨원 선생의 북상을 기다리지 않고 국사를 논의할 순 없다." 는 태도를 겉으로 보였지만, 물밑에선 장작림, 노영상과 (어쩔 수 없이)풍옥상, 호경익, 손악등은 단기서를 서둘러 임시 집정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리고 11월 24일 임시 집정에 단기서가 자리에 오르고 각 성의 대표를 소집해서 사후 처리를 하자고 말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쑨원이 국민회의를 하자는 의견을 은근슬쩍 유야무야 시키는 술책이었던것입니다.


 단기서는 취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화정을 공고히 하고, 민의 뜻을 펼치며, 안으로 더욱 새롭게 하고, 밖으로는 국가의 신의를 숭상토록 한다."


 아무것도 아닌 말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밖으로는 국가의 신의를 숭상토록 한다는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쑨원이 불평등 조약을 일체 폐지한다는 말을 애둘러서 거부하는 말입니다. 쑨원은 아직 북경에 도착도 안했는데, 쑨원의 주장은 모조리 보이콧을 당했습니다. 


 쑨원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북상하는 도중 홍콩, 고배, 상해 등을 모두 한번씩 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끊임없이 되풀이 했습니다. 그리고 12월 4일, 천진에 도착했는데 그 유명한 쑨원을 환영하기 위하여 100여 개의 단체, 1만여명의 군중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쑨원을 환영해습니다. 단기서와 풍옥상이 보낸 대표가 웃는 낯으로 쑨원을 만났습니다. 왕정위 등이 쑨원을 보필하고 있었는데, 쑨원의 몸이 많이 불편해서 왕정위가 대신 환영객을 위한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천진에서 며칠 쉬며 몸을 추스리고는 북경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이때 단기서가 쑨원을 환영하기 위해 보낸 인물이던 허세영(許世英)이 이런 소리를 합니다.


 "외국과 맺은 일체의 조약은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쑨원은 대노했습니다.


 "나는 밖으로 불평등 조약을 폐지하려고 하는데, 당신들은 계급이 올라가거나 돈 버는 것만 생각하고 있군! 외국인을 두려워하고 있으면서 또 날 환영하다니!"


 하지만, (나중에 장작림도 비슷한 소리를 하고) 공산당원 주덕이 쑨원을 직접 보고 말했던것처럼, 쑨원은 대단히 예의가 바르고 예절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단기서에게 감사하다는 전문을 보냈습니다. 단기서 역시 문안 인사의 답문을 보냈습니다. 단기서는 그렇다치고, 문제는 장작림이었습니다. 장작림이 천진에 있었던 것입니다.


 쑨원은 장작림을 직접 만나기로 했습니다. 쑨원은 먼저 직접 편지를 쓰고, 이것을 왕정위에게 가져가게 해서 약속을 받아내었습니다. 쑨원의 측근 이열균(李烈钧)은 고사를 인용하며 말했습니다.


 이열균


 "그 옛날, 유방은 항우를 홍문에서 만나면서 장량과 번쾌 등을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대신 계략을 짜내어 평안 무사할 수 있었지요. 현재 장작림을 만나려고 하신다면, 당연히 수행원들을 데리고 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보내야 할진 잘 모르겠군요."


 쑨원은 고민한 끝에 손과, 이열균, 왕정위 등을 거느리고 장작림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이때가 12월 4일입니다. 천하의 장작림도 쑨원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자 긴장했는지 즉각 각 예하 부서에 경계 명령을 내려, 엄중히 경계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서한으로는 몇번 이야기를 한 적은 있는데, 직접 만나기는 처음입니다.


 쑨원 일행이 장작림이 머무는곳의 입구에 도착했지만, 장작림은 나서서 환영하진 않았습니다. 대신 장학량을 보내 쑨원 일행을 접견하여 안으로 모시게 했는데,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함이었지만 상대가 쑨원이다보니 오히려 옹졸함을 보인 꼴이 되었습니다. 회의장에서도 장작림은 모습을 보이질 않고 쑨원이 오래 기다리게 해놓고는 느즈막히 거들먹거리면서 나타났습니다. 그는 거만스럽게 상좌에 앉아 어디 한번 말 해보라는듯이, 유아독존 식으로 오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쑨원을 이렇게 대접하는 사람도 얼마 안되었을텐데, 당연히 쑨원도 기분이 팍 상했습니다. 쑨원은 화가 나서 입을 다물고, 장작림도 허세를 부리느라 입을 다물고, 회의장에서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정적만 흘러버리고 맙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주위를 감쌌습니다.


 "자,"


 어색함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쑨원입니다. 


 "내가 천진에 왔을때, 군경을 보내 영접해 주셔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자 특별히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귀하의 군사 역량에 의해 오패부를 몰아내고 조곤의 통치를 종식시켰으니, 진실로 봉군에게 기쁜 축하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그런데 장작림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마치 불쾌한듯이 말했습니다.


 "같은 집안 식구(북양 군벌) 끼리 싸운 것입니다. 뭐, 별 것 아닌 일인데. 그런것 가지고 축하하고 기쁘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쑨원을 곤란하게 만드는 대답이었습니다. 옆에서 수행하던 이열균이 더는 못 참겠다는듯,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말했습니다.


 "사정이야 어쨌든 됬습니다. 여하간에 국가의 장애물인 오패부와 같은 인간들을 제거하지 못했다면 비록 국가의 발전와 인민의 행복을 추구하려고 해도, 희망이 없는것 아닙니까. 오늘 쑨원 선생님이 우정 장군을 축하하는것은 정말로 축하드릴 가치가 있는 것이고, 오직 우정 장군만이 축하를 받을 만한 것입니다."


 쑨원은 천천히 말했습니다.


 "이열균의 말이 맞습니다. 회상해 보면 민국이 생긴 이래, 나의 축하 인사를 받은 사람은 오직 우정 한 사람 뿐입니다.":


 이런식으로 간신히 회담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는데, 느닷없이 장작림이 찻잔을 들어올리면서 말했습니다.


 "모두 차를 마시는것이 어떻습니까?"


 쑨원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분명 손님을 배웅하는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후, 장작림과 악수 하고 작별했습니다. 둘의 짦은 만남은 이런식으로 신경전만 벌이다가 끝난 것입니다.


 장작림은 이번 회담에서 시종일관 거드림만 보였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그가 쑨원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을 상대했지만 쑨원이나 그의 동지같은 사람들은 처음 상대했습니다.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니, 허세를 부리면서 두려움의 노출을 막았던 것입니다.


 12월 5일, 그러니까 다음 날. 이번에는 장작림이 쑨원을 찾아갔습니다. 답방 형식이었습니다. 그 날도 장작림은 허세를 있는대로 부렸는데, 20여대의 차량에 경호원만 100여명을 대동하며 위풍당당하게 걸어갔고 경계가 삼엄했습니다. 쑨원은 몸이 상당히 안 좋은 상태라 침상에서 고요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런 소란을 부린 것입니다. 쑨언의 아들 손과가 나와 완곡하게 제지했습니다.


 "아버님은 몸이 안 좋으셔서 쉬고 계십니다. 지금은 만나기가 어려우실 듯 합니다."


 "오늘 내가 온 것은 쑨원 선생께 말씀을 드릴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침상에 누워만 계시고 말씀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강짜를 부리며 문을 밀고 들어와, 쑨원과 밀담을 나누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나에게 쑨원 선생이 외국인을 반대하는 것을 하지 말아 달라고 권해 주길 부탁합니다. 외국인들은 모두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되지요! 각국 공사들은 러시아와 손잡과 공산당과 손잡는 정책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을 포기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쑨원을 대신해 외국인과 소통을 하는 데 동의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가슴을 치면서 보증하듯이 말했습니다.


 "이 일은 나 장작림에게 맡겨 주시면 분명 성공할 것입니다."


 쑨원은 그저 헛웃음만 보였습니다. 장작림과 쑨원. 마적 출신의 군벌과 혁명가. 둘의 사상적 차이는 너무나도 커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장작림은 쑨원이 아니라 왕정위에게 말을 하기도 합니다.


 

왕정위


 "북경의 각국 공사들은 쑨원 선생이 러시아와 손잡는 것을 찬성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선생에게 러시아와 연합하자는 주장을 포기할 수 있는지 여부를 청해 보십시오. 나는 각국 공사들에게 쑨원 선생이 나와 가깝게 지내고 있는걸 보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쑨원에게는 공공연하게 이렇게 말하기도 하는데, 실로 장작림이라는 사람의 본질을 분명하게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람을 아주 잘 모십니다. 오늘은 "단씨" 성을 가진 분을 모시고 있는데, "손씨" 성 역시 잘 모실 수 있지요. 내가 반대하는것은 오직 공산당 뿐입니다. 만일 공산화가 된다면……나는 비록 피를 뿌리는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작림은 다른건 다 좋으니까, 공산당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만을 표시했습니다. 당시 쑨원의 부관으로 있던 사람의 회고에 의하면 장작림은 열과 성을 다해 쑨원을 따르려고 했고, 심지어 쑨원의 경호대장이 되기를 원했다고 하는데, 물론 그 전제조건은 "쑨원이 공산당과의 연대만 끊어버린다면" 이라는 조건입니다. 만약 진짜로 쑨원이 공산당과 척을 진다면 장작림이 그렇게 했을지는 지금은 모를 일입니다. 최소한 쑨원은 이를 거짓으로 여겼습니다. 장작림이 회유 혹은 협박을 해도, 러시아와 손 잡고 공산당과 연계하고 농민과 노동자들을 부조한다는 정책을 바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의 거인은 그러나 이제 한계에 부딫혔습니다. 쑨원의 건강은 계속해서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12월 18일, 단기서의 대표와 접견한 자리에서 군벌 정권이 계속해서 외국과의 맺은 신의를 숭상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하자 너무나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나는 밖으로는 외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폐지하려고 하는데, 당신들은 북경에게 한사코 이 불평등 조약을 떠받들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당신들은 관직이 더 올라가 돈이나 벌려고 외국인들을 두려워 하면서 떠받는데, 또 내가 온 것은 환영하는 것은 대체 무슨 수작이지?"

 
 쑨원이 군벌들에게 기대를 걸었다가 배신당하는것은 평생에 걸쳐 벌어진 일입니다(쑨원을 존경하던 주덕도 쑨원의 이런 점은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때 너무나 화가 났는지 쑨원의 병은 이 날 이후로 크게 도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국가 대계를 위해서 건강을 무릎쓰고 12월 31일 천진을 떠나 북경으로 도착했고, 북경에서 각계 인사들, 그리고 무려 10만명이 넘는 군중들이 웅집하여 쑨원을 열렬하게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쑨원의 건강은 끝낸 회복되지 못했고, 1925년 3월 12일 쑨원은 북경에서 병환으로 서거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군벌 체제는 쑨원을 배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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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어하라 | 작성시간 12.07.03 신불해님 역개루 카페나 불펜에서 하는 역사 잡담도 여기에 많이 풀어주세용~~
  • 답댓글 작성자제대군인 | 작성시간 12.07.03 그런 까페가 있었나요? 혹시 주소좀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 한번 가서 글을 읽고 싶네요.
  • 답댓글 작성자어하라 | 작성시간 12.07.04 http://cafe.naver.com/historygall

    보시다시피 네이버 카페라서....근데 좀 보수적이랄까? 하여간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x흥(근데 이쪽하고 여기하고 사이가 회복됬는지 모르겠네요)과 더불어 세계사광이나 환빠가 활동하지 않는 곳중 하나죠. 여기 넴드 몇몇분들도 활동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참고로 카페 스텝 중에 여기랑 사이 안 좋은 분이 있어서....)
  • 답댓글 작성자제대군인 | 작성시간 12.07.04 부흥은 알고 있었는데, 여기는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
  • 작성자2Pac | 작성시간 12.07.04 역사의 거물이 이렇게 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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