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최강의 군벌]최강의 군벌, 만주의 패왕 장작림(21)─ 봉군, 남으로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7.04|조회수737 목록 댓글 1



가운데 남자로부터 왼편은 한린춘, 오른쪽의 젊은이는 장학량.



 오패부를 깨부수고 북경 정부를 장악한 장작림의 다음 목표야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중국의 동남 지역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곳은 상업이 아주 발달해 있고 교통이 편리한 곳이라 탐을 낼 만했습니다. 적당한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이제 때가 왔습니다.


 우선 출정 전에, 이제 단기서에 붙어 안휘파의 일원인 노영상과 장작림의 수하이던 이경림간에 직예성을 누구에게 주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졌는데, 까딱하면 안휘파와 봉천파가 대립할 가능성도 있었기에 장작림은 회의를 열어서 직예성은 이경림에게 주고, 안휘와 강소성의 기반은 노영상에게 주는 식으로 내부를 추스린 후에 남하하는 군대를 조직하기 시작합니다. 현재 강소성은 장작림을 적대하는 제섭원등이 장악하고 있으니, 그들을 깨부순 다음에 그 지역을 준다는 이야기였죠. 더구나 강소 지역의 군벌 제섭원이 강절 전쟁에서 노영상을 쫒아낸 사람이니 분풀이도 될 테고 말입니다.


 12월 10일 무렵, 이미 남경에서는 봉군의 남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고, 강소 독군 제섭원은 병력을 이동 배치하고 방어 태세에 들어갔습니다. 12월 11일, 단기서는 제섭원을 공식적으로 파면시켰고 그 자리에 노영상을 임령했습니다. 12월 12일 장작림은 군사 회의를 벌였고 노영상이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며, 선봉은 장종창이 서는것으로 결정했습니다.


 1924년의 겨울, 장종창은 진포선의 화물 열차를 철갑차로 개조해서 진포선을 타고 남하했습니다. 가는 도중에는 진조원(陳調元)이라는 사람이 1개 사단을 이끌고 서주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장종창은 이 사람과 면식이 있었습니다. 둘은 꽤나 의기투합하는 사이였고 같이 먹고 마시고 도박하고 유흥가도 들락거리며 질펀하게 주색에 빠져 놀았습니다. 장종창은 나름 자신의 통을 과시하면서 모든 비용을 내주었고, 상해의 유명한 기생을 돈 주고 사서 진조원에게 첩으로 주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진조원은 막아내기 어렵다는 소리를 하면서 슬쩍 길을 비켜 주었고, 장종창은 총 한발 쏘지 않고 서주를 장악했습니다. 서주에서 곧바로 남경을 노릴 수 있게 되었으니 상황이 아주 좋아습니다.


 장종창의 군대가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는데, 제섭원은 한판 일전을 벌이려고 했지만 아무리 말을 해도 밑에 부하들은 모조리 투기가 빠져 전혀 싸울 의지가 없었습니다. 장종창은 별 어려움도 없이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상해를 장악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황금영(黃金榮), 두월생(杜月笙) 같은 무리들을 친구로 사귀었는데 이 사람들은 중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암흑 조직의 초거물들입니다.


 중국 흑사회의 세명의 괴물 두월생, 장소림, 황금영


 황금영은 그 조직이 전성기에는 1,000여명이 넘었고 두월생과 장소림은 그 유명한 조직, 청방(靑暾)의 거두들입니다. 아편 밀매, 매춘 장사등 손을 대지 않은것이 없었고 돈만 주면 사람을 암살하는것도 얼마든지 해냈습니다. 전성기의 그들은 대도시의 한복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쏘고 다녔습니다.


 장종창은 이런 인물들을 끌어들였습니다. 한편, 노영상은 이제 자기가 이 지역의 주인이 되었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상황을 보니 돈도 없고 아무런 지원도 없어서 자기 군대를 만들수가 없어서, 오히려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이 지역은 봉군의 땅이 되었습니다. 장작림은 심지어 이런것까지 계산하고 일부러 이경림에게 직예를 주고, 노영상에게 이 지역을 준다고 하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단기서가 화가 났습니다. 현재 별다른 기반이 없는 단기서는 노영상을 이 지역에 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력을 한번 키워보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장작림에 비해 실력이 뒤지는지라 어쩔수없이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상해는 장종창이 머물고 있는데, 장작림은 장종창이 상해에 있는것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워낙 노는걸 좋아해서 유흥비로 돈을 물쓰듯이 써대는데다, 장종창의 성격이 너무 거칠고 급해 외국 조계들이 상당수 있는 상해에 두면 문제를 일으킬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장종창을 불러 대신 산동을 맡게 했습니다. 내심 불만이 있는 장종창이었으나 감히 장작림의 말을 거역 할 수 없었으므로 복종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자리에 누구를 올리느냐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장작림은 강등선을 강소에, 곽송령을 안휘에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양우정이 스스로 강소에 가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양우정이 한번 부자 동네에서 임금 노릇을 해보고 싶었던 겁니다.


 장작림은 양우정을 아주 신뢰했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강등선을 안휘에 보냈는데, 이렇게 되자 바보가 된건 곽송령입니다. 그의 위치는 자연스럽게 붕 뜨게 됬는데, 이는 곽송령의 마음에 불을 지펴버렸습니다. 그는 큰 사고를 치게 됩니다.


 어찌되었건 일단 이 시점에서 장작림과 봉천파는 동삼성, 직예, 산동, 강소, 안휘와 열하 특구를 장악했고 북쪽으로는 흑룡강성, 남쪽에서는 장강까지 중국 전체의 무려 3분의 1을 손에 넣은 명실상부한 최강 세력이 되었습니다. 수하 몇십명을 이끌던 마적 대단에서 시작한 장작림의 사업이 마침내 여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장작림과 봉천파의 최고 판도. 당장 내몽고, 티베트, 청해성, 신강을 빼고 생각해본다면 그 영역은 엄청납니다. 그리고 섬서 등은 풍군의 영향력에 있는데, 지금 풍군도 장작림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영역은 더 커집니다. 장작림은 내몽고 쪽에도 영향력이 좀 있습니다. 


 그러나 봉군 병사들은 품행이 좋지 못했고, 또한 봉군의 통치 기구에서는 수많은 폐단이 있어 민간의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큰 세력을 이루고도 물러난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양우정


 양우정의 원래 이름은 옥정(玉亭)이라는 이름인데, 호는 능각(凌閣)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인갈이라는 호로 바꾸었는데, 제갈량에 가깝다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은 양우정을 "작은 제갈량" 이라고 불렀습니다. 1885년 생이고 봉천 사람이며 청 말 수재 출신입니다. 1911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1916년 장작림 사단의 봉군 제27사 참모처장을 지냈습니다. 정치와 군사, 외교 방면에서 장작림을 위한 많은 꾀를 짜내어 장작림의 눈에 들었던 인물입니다. 장작림은 양우정을 아주 신임했습니다.


 양우정은 장작림에게 부탁해서 강소 독판에 임명되었습니다. 양우정은 지혜가 많고 머리 회전이 명석한데다 수중에 많은 꽤를 지녔는데, 단점이 있다면 자신이 잘난 맛에 다른 사람들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강등선은 양우정의 강소 독판 임명 소식을 듣고 걱정스러워서 장작림에게 말했습니다.


 "강남의 정세야 매우 복잡한 일입니다. '작은 제갈량'은 융통성이 부족한데다 콧대가 너무 세어 강남의 국면을 대처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강남을 저에게 맡기면 '작은 제갈량' 보다 훨씬 유리하겠지요."


 강등선 본인이 욕심을 내본 수작일수도 있으나, 최소한 훗날의 일로 양우정이 부적합한 인물임은 금세 증명이 되었습니다.


 강소성의 성도는 남경입니다. 양우정은 부임하면서 병사 한명 없이 내려갔는데, 강소성의 군무이자 앞서 말한 장종창의 친구 진조원과, 강소군 제10사 사단장 정준언이라는 인물이 반갑게 마중하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양우정은 이 두명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냉담했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열차 위로 마중 나온 두 사람을 제치고 자기가 직접 역을 걸어 나와 대놓고 면박을 주어 난감하게 했는데, 진조원은 이때의 기분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양우정이 남경에 부임 차 왔을 때 우리들은 강소성 유지들과 강을 건너 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양우정은 우리를 보고 차갑게 대하며 남을 멸시하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아울러 그의 말에는 화난 투가 잔뜩 묻어 있었다.


 "강소는 하는 것들이 마땅치가 않아. 군이 군 같지가 않고 정치가 정치 같지 않고, 여하간 모두가 봉천 같지가 않아! 나는 남경으로 오고 싶지 않았지만은 우정 장군이 강력히 권하는데 어쩌겠나?"


 자기가 우정(장작림)을 칭하면 되겠는가? 독판서 입구에서 그의 차는 당장 들어올 수 있었고 우리들은 문밖에서 하차해야 했다. 우리들은 방판이 아닌가? 이러한 태도를 대체 누가 참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들은 각 방면의 사람들과 연계하여 공동으로 양우정을 몰아내려고 하였다. 이렇게 강소 군벌들은 양우정을 남경에서 몰아내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양우정은 취임 후 사단장을 새로 위임했는데, 진조원 등은 부임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양우정은 높은 데 앉아 거만스러운 태도로 오만하게 말을 했습니다. 장작림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입니다.


 "자네들, 잘 좀 해봐!"


 "자네들 수준이 영 형편구만? 정리 좀 잘 해봐!"


 사단장들은 크게 화가 나서 문밖으로 나가면 서로 욕을 해댔습니다.


 "빌어먹을 놈!"


 양우정의 강소 독판, 강등성의 안휘 독판 자리는 두 달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절강의 군벌 손전방이 이러한 불만을 이용, 장작림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차로아침을 | 작성시간 12.07.05 지도보니까 잘하면 마적나부랑이가 중국통일 할뻔 했네.이념도 없이 힘과 돈으로 세워진 군벌이지만 나중에 진짜 통일이라도 했으면 손문이나 모택동처럼 뭔가 그럴듯한걸 만들어냈겠지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