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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군벌]최강의 군벌, 만주의 패왕 장작림(24) ─ 장작림, 절체 절명의 위기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7.10|조회수530 목록 댓글 3



 

 곽송령과 그의 부인



 반정을 시작하면서 곽송령은 여러 전문을 보냈는데, 내전을 중단하며 전쟁을 멈추자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가혹한 정치를 중단하고 동삼성의 부흥을 일으키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장학량을 추대하고 장작림의 하야를 주장했습니다. 


 "해마다 전란이 일어나고 국고는 비었다. 세금은 날로 더해 가 인민들의 가정이 빈곤해졌다. 한경(장학량의 자) 군장은 한참 나이에 의욕이 있고 넒고 깊게 아는것도 많아 나라의 보배다. 비바람이나 뇌성병력에도 흔들림 없이 곽송령과 함께해 온 동지이며, 오랫동안 갈고 닦은 풍모가 있다. 받들어 성의를 다해 보좌하여 정치를 개혁하고 변경을 튼튼히 하자. 남발된 화폐를 거두어들이고 가혹한 세금을 줄이고 간교한 도적을 제거하여 사병을 튼튼히 기르고 문치에 힘쓰고 변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 노동을 장려하고 과격한 무리들을 없애도록 하자."


 만약 곽송령이 무조건적으로 장작림을 반대하면, 봉군 장교들의 신임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장학량을 내세우면 또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데, 우선 장학량을 내세우면 곽송령 본인이 정권 야욕을 보이는 모습보단 훨씬 자연스럽고, 무엇보다 둘이 친하기도 친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장작림을 직접 공격하기보단 대다수의 쿠데타가 그러듯이 "측근"을 공격했습니다. 그 측근이란 물론 양우정입니다.


 "이번 봉군에서 싸울 상대는 오직 한 사람, 양우정이다. 곽송령은 국가를 위하고 동삼성의 안전을 위한 대책으로 평화를 위해 출관하여 봉천으로 들어가 양우정을 몰아내고 장학량 장군을 추대하고자 함이다."


 그러면서 양우정의 죄목을 낱낱히 폭로하며, 그를 집중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장작림은 곽송령의 반봉 거사 소식을 듣고 기절초풍했으나, 그 답게 빠르고 기민하게 움직였습니다. 우선 양우정을 불러 곽송령의 전문을 보여주었는데, 의도를 깨닫은 양우정은 두 말 하지 않고 사직 인사도 없이 대련으로 떠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곽송령이 내세운 명분 중 하나가 사라지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신경 쓸 대상이 곽송령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11월 25일, 그토록 걱정거리이던 풍옥상이 기어코 장작림 토벌 전문을 발송했습니다. 



 와신상담하던 풍옥상


 "장작림은 국가 안위와 인민이 죽고 사는 것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전쟁만 좋아하여 직예와 산동에 화를 끼쳤고, 여러 지역을 핍박하였다. 상해사건을 일으켜 앞잡이가 되어 온갖 못된 지을 하여 참을 수가 없다. 군대로 학생과 노동자를 탄압하여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고 있다. 동삼성 정권을 완전히 인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마땅히 적절한 시기에 장작림은 용퇴해야 한다."


 곽송령, 풍옥상이 움직이자 자연히 삼각 합작의 한 축인 이경림도 반봉 전문을 발표했습니다. 곽송령은 여전히 측근 소탕의 구호를 내세우며, 장작림은 작은 장군(장학량)에게 일을 넘기고 조용히 노년을 편안하게 즐기라고 협박했습니다.


 거대한 흐름이 번지면서, 광동 국민 정부와 혁명 단체들 역시 단기서 정부 반대, 봉계 군벌 타도와 곽송령에 대한 지지를 차례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공산당의 이대조는 11월 29일 '중국 국민당 정치위원회' 명의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좌파를 대표하여 혁명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단기서와 봉계 군벌 타도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이대조


 12월 1일에 이르면 중국 공산당과 중국 공산주의 청년 연합회등은 "전국 혁명의 민중, 국민당원, 군인은 속히 북경의 거사에 함께께 일어나 전국 통일의 국민정부를 수립하여 정권을 인민들에게 되돌리자." 라고 호소했습니다. 공산당은 완전히 곽송령에게 지지의 뜻을 보낸 것입니다.


 곽송령은 이러한 분위기를 이용해서 마치 전성기의 오패부와 같이 온갖 정치 선언을 진행했습니다. 노래를 지어 병사들의 사기를 고양시키기도 했는데, 내용이 이랬습니다.


 곽 군단장은 정말로 대단하다네.
 대군을 몰고 봉천으로 가 장작림을 몰아내고
 간적들을 없애 백성의 고통을 해방시켜 준다네.

 백성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새 세상을 만든다네.
 싸늘한 하늘도 두렵지 않고 땅도 두렵지 않네.
 장작림을 몰아내지 못하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네.


 
 그리고 병사들에게는 "애민" 혹은 "구국" 같은 글자의 녹생 완장을 달게 했습니다. 행군 도중엔 군율을 엄히 지켜 결코 약탈등을 하지 못하게 하니, 여러 사람들은 반봉군을 환영했고 물을 떠나 주거나 죽을 끓여 주기도 했습니다. "양우정 축출, 장작림 하야, 장학량 추대" 등의 요구 조건은 계속해서 내세우고 장작림의 악행을 널리 선전하는것도 멈추지않았습니다.


 분명히 곽송령군의 초기 형세는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나 덕분에 우쭐대는 모습도 보였고,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강등선


 
 문제가 생긴건 곽송령이 강등선을 살해한 것입니다. 11월 24일, 란주에 도착한 강등선은 곽송령이 감기로 아주 몸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곽송령의 참모장 팽진국이 건넨 말이었습니다.


 "무신(곽송령의 자)이 병이 났다니 내가 그리고 가서 만나봐야지요."


 강등선은 팽진국이 마련한 자동차를 탔는데, 자동차는 성냥공장 건문을의 지하 계단으로 향했고 강등선은 그곳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 경호원이 나타나더니, 그를 자동차에 태워 이상한 백사장 근처로 향했습니다.


 "백사장 모래가 심하니 차가 못갑니다. 내려서 갑시다."


 강등선은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두 발자국도 못 걸은 상태에서 경호원의 총에 맞아 비명횡사였습니다. 경호원이 곽송령에게 보고하자 곽송령은 짤막하게 특별 전문을 날렸습니다.


 "강등선을 란주에서 총살에 처했다. 함부로 병력을 남용하여 전쟁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이때 강등선의 나이는 44세였습니다. 곽송령이 강등선을 이렇게 죽인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둘은 개인적인 원한이 조금 있었고, 2차 직봉전쟁 기간 중에 서로 의견이 갈려 싸웠으며, 양우정이 강소성을 먹겠다고 나서면서 강등선이 안휘성의 지배자가 되었고, 그러면서 곽송령의 위치가 붕 뜬 것도 원인이었습니다. 나중에 곽송령은 강등선을 왜 죽였냐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강등선은 안휘 독군이 되었다가 사람들에게 쫒겨났지만, 여전히 자기의 위치가 확고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동북으로 돌아와 장작림을 뵙고 새로운 부서로 가는것을 도모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평소 내가 역겨워하던 행위였다. 내가 오늘날 동북군을 동북으로 철수시켜 새로운 동북을 건설하려고 하는 즈음 그는 여전히 안휘 독군을 맡을 생각만 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란주에서 구금하여 죽인 것이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강등선은 동맹회 회원이었고 광동정부에서 봉천군벌까지 인맥이 상당히 넒었습니다. 그리고 성격도 평화적이라 친구도 많았습니다. 그와 사이가 안 좋던 곽송령 조차도 "강등선이 좀 평화적이라 같이 일을 할 수 있다." 라고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강등선이 법정도 가지 못하고 총살을 당한것은 곽송령이 사람 목숨을 초개같이 여긴다는 인식을 주었고, 곽송령 군단의 내부나 외부에서 그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습니다. 내부에서는 언제 자기들도 당할지 모른다고 불안해했고, 외부에서는 봉군의 장령들이 강등선의 모습을 보고 지지를 하는것을 포기한 것입니다.


 또한 거병 당시 곽송령은 매우 자만해 있었습니다. 사실 봉군 내에서 곽송령에게 지지를 표시하려는 사람들은 꽤 있었습니다. 감조새, 탕옥린 등 장작림을 꽤 오래 모신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흑룡강성이나 길림성의 지배자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곽송령은 그들에게 "일이 성사되면 총참의와 참의 자리를 줄것" 이라고만 말하고 지지 기반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측근들이 이 점을 지적했으나 곽송령은 듣지 않았고, 오히려 감조새와 탕옥린을 공격해버립니다. 어이가 없어진 감조새 등은 다시 봉군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감조새

 마적 출신 장작림은 혁명 투사 곽송령에 비해서 이런 점에서 훨씬 융통성이 있었는데, 감조새 등은 분명히 모반 질을 하다가 희망이 없자 돌아온 일이지만, 장작림은 그들에게 아무런 죄도 묻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오히려 급여를 더 높여주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곽송령과 장작림은 차이가 아주 심하게 났습니다. 곽송령의 참모였던 위익삼은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곽송령은 위인이 잘난 체를 잘하며, 혼자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너무 성급하게 서둘러 대사를 그르치고 말았다."


 당시 곽송령의 수중에는 막강한 군대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완전히 쥐고 있는 대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장작림은 군벌을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대중들의 지지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을 보이자 내부에서도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곽송령 보다는 장작림을 더 모실만하다고 여겼습니다. 곽송령이 임명한 본부 참모장이 장작림을 몰래 지원해주는가 하면, 터지지 않는 포탄을 사용해서 싸우는 척만 했고, 어떤 사람들은 정보를 빼돌려서 주기도 했습니다. 부대를 이끌고 양껏 싸워보는 재주라면 모를까, 부하의 신임을 사고 내부를 다스리는 부분에서 장작림은 곽송령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있었던 것입니다.


 즉 곽송령은 장작림이 봉천에서 가지고 있는 위상을 상당히 과소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봉천과 봉천군벌의 마음에서 장작림이라는 "큰 형님" 의 위치는 훨씬 공고한 존재입니다.


 한편, 장작림은 당초에 처음 곽송령이 보낸 전문을 보고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그 조차도 당황해서 어찌할 줄을 몰랐고, 불안해서 계속 방구석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담배만 피워댔습니다. 그리고 다시 벌떡 일어나서는 장학량의 욕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바탕 욕을 퍼붓고는 다시 또 주저 앉아서 담배만 피웠습니다. 잠도 자지 않았고 밥도 먹지도 않았으며 정신이 거의 황폐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노련한 그답게, 히스테릭 증상을 한껏 보인 후엔 다시 곽송령의 전문을 뚫어지게 살펴보며 틈을 찾아보았습니다. 우선 요구 조건에 양우정의 파면이 있자 즉시 양우정을 파면해서 적의 명분 하나를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전문에서 하나같이 장작림의 실책을 열거하면서 장학량을 올릴 것을 말하고 있자, 그 장학량을 즉시 불러 들였습니다. 아들을 본 장작림은 한바탕 욕을 퍼붓은 후에 그를 곽송령에게 보내 대화를 하도록 했습니다. 장학량을 옹립한다는게 곽송령의 목표니 그들은 장학량에게 손 끝하나도 댈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받은 장학량은 군함 진해호를 타고 도착해 곽송령을 만나려 했습니다. 하지만 곽송령은 아프다는 이유로 만나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장학량이 곽송령의 일본인 의사 모리다 라는 사람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하자, 모리다는 장학량의 서신을 곽송령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곽송령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모리다에게 말했습니다.


 "이번의 거사는 여러 번 심사숙고 후에 결정한 것이므로 절대 지금 중지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미 42세가 되었고 이렇게 병든 몸이 되어 아마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상장군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야한다면 나는 장학량 군에게 말하여 일본에 한 3~4년 유학을 가려고 합니다. 이 기간 중 나의 뜻과 포부가 일부분 실현되면 원래 가지고 있던 모든 자리를 장학량에게 넘겨주고 저도 하야하여 한가로이 구름을 떠도는 들판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학처럼 남은 여생을 보내고자 합니다. 나의 이 뜻을 상장군에게 전달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장학량은 이 말을 전달받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물어보겠다고 하면서 5일 휴전을 제의했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의 후의를 입어 이 학량,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되어 그 투더운 정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직 학량에게 친우의 의리로 대해주지만 개인의 욕심에 앞서 아직 아버지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고로 형이 동삼성을 통치하고 경영하는 일에 대하여 저는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학량은 비록 만 번 죽더라도 천추에 오명을 남기는 명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장학량이 보기에도 말로 사태가 해결될 시점은 지났습니다. 장학량은 별 소득을 못 거두고 돌아왔고, 눈가리기로 잠깐 내려갔던 양우정도 곧 장작림을 돕기 위해 봉천으로 돌아옵니다. 30일 장작림은 정식으로 토벌령을 내려 봉군에게 요서 지역에서 곽송령군을 격퇴하도록 명령했습니다.


 12월 5일, 곽송령은 연산을 공격해서 점령했습니다. 그 기세가 대단해서 장작림은 싸워서는 이기기 힘들다고 여겼습니다.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곽송령을 막으려면 흑룡강성의 오준승 부대가 와야 했는데, 흑룡강성은 멀리 떨어져 있어 도저히 시간 내에 오긴 무리였습니다. 장작림은 5일 밤 군정회의를 열고 사람들 앞에서 하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물러나진 않았습니다.


 12월 7일, 곽송령 군은 금주까지 점령했습니다. 곽송령군은 저항 다운 저항도 경험하지 못하며 그야말로 승리의 진격을 이어나갔습니다. 이제 심양은 바로 코앞입니다. 장작림은 전용 자동차를 장군부 앞에 대기해 놓고 도망칠 준비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이때 장작림은 자신의 재물들을 모아서 군용 트럭에 실어 일본 조계로 보내기까지 했는데, 이는 장작림이 이제 다 끝났다고 여겼던 것을 의미합니다. 그 정도로 그는 의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곽송령이 지휘하는 제 3군은 다름아닌 봉군이 자랑하는 최정예 병력입니다. 제 3군의 숫자는 6만이나 되었고, 장작림은 막을 병력이 부족했습니다. 장작상의 길림군이 일시적으로 막아내려 했으나 최강 3군의 상대는 결코 아니었고, 오준승의 흑룡강성 부대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장작림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병력도 부족한데다, 그는 내부의 반란까지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는 위관급 장교110여명을 장군부로 부르고 직접 훈화를 했습니다. 그는 성난 눈으로 장교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오라고 한 것은,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잘 알겠지! 곽가 놈이 반역을 했다! 이놈을 어떻게 할 것인가! 너희들 젊은 장교들은 모두 나를 따르라!"


 1개 여단을 이끌던 왕서화라는 인물이 나와서 경례를 했습니다. 장작림은 사실 왕서화가 곽송령과 몰래 결탁하고 있지 않나 의심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경례! 상장군께 보고 드립니다. 교도대 군관과 학생 대부분은 가버렸고 남은 인원은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남은 인원은 왜 안 간 거야! 안에서 내통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야?"


 "아닙니다, 아닙니다!"


 "총을 주겠다! 대포를 내주겠다! 용감히 싸우라! 내가 무기를 내주면 너희들은 곽과 놈과 안팎에서 호응해 서로 잘 놀아도 나 장작림이 이곳을 떠난다면 내가 사내자식이 아니다! 나는 너희들이 곽가 놈하고 내통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서 곽가 놈에게 알려 어서 이곳으로 오라고 해라. 내가 그놈을 기다릴 것이다. 내가 그놈하고 한판 겨루어 보겠다! 칼을 내 가슴 한복판에 꽂아 봐라. 내가 눈 하나 깜박할것 같은가!"


 장작림은 계속해서 제 분을 못이겨 소리쳤습니다.


 "모두 날 보고 마적 출신이라고 하는데, 제기랄! 내가 누구의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출세한 줄 아는가? 옛날에 나는 청조의 간섭도 받지 않았다. 후일 러일전쟁에서 외국 놈들이 날 이용 했는데 내가 무기 좀 얻으려고 그 놈들을 이용했다. 뺏기도 하고 편취도 했지만 모두 우리를 무장시키기 위함이었다. 후에 관하고 불화하면 큰일을 못하기 때문에 내가 청조 정부에 순순히 따랐다. 내 뒤에 배경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심양에 온 후 어떤 사람이 케케묵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해서 강무당을 만들었다. 내가 학량이를 보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 땅을 지키라고 했다. 후에 곽가 놈이 와서 강무당 교관 노릇을 했고 그 빌어먹을 놈이 군단장까지 됬어! 내가 뭐 그놈에게 잘못 한 것이 있느냐? 그 놈은 자기가 공이 있음에도 자기 지지 기반을 얻지 못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내가 색시 혼숫감 해 주듯이 하나하나 해 주어야 하는가! 나중에 자기가 한 지방을 책임지는 독군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딨어! 어디서 의리도 없이 인면수심의 생각을 하여 양심에 털도 안 난 짓거리를 한단 말이야!"


 "좋아, 내가 이번에 심양을 넘겨줄 테니 기다려 봐라. 왕서화! 너희들은 그놈을 도와 오랫동안 잘 해 봐라!"


 왕서화는 경례를 또 붙이며 대답했습니다.


 "곽가의 신임은 이미 떠나 버렸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상장군과 작은 장군님의 사람들입니다. 저희들 양심에도 피가 있으므로 우리에게 무기를 주면 인심을 잃은 반도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습니다!'


 장작림은 이때야 얼굴을 펴면서 자못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너희들 모두 할 수 있겠느냐?"


 "예,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대답하자 장작림은 매우 기뻐서 파급적인 진급을 내렸습니다.


 "너희들은 모두 곽가의 심복이 아니다! 알겠다, 왕서화! 내가 너를 혼성 여단장에 임명하고 소장으로 진급시킨다! 여기 있는 모든 살마들도 한 계급씩 진급시킨다. 우리에겐 무기가 있다. 은화도 있다. 곧 병사를 모집하면 숫자야 확 많아질 테야. 밤낮으로 훈련을 시켜 전선으로 내보내자! 좋아, 이제 모두 돌아가라!"


 "책임을 맡겨 주어 감사합니다. 상장군! 꼭 상장군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아니라 국가에 충성해야지."


 그는 의리를 계속 강조했고, 곽송령의 의리 없음을 비판했습니다. 군관들의 사회에서 의리란 매우 중요했고, 모시던 장군을 배신하고 동료였던 인물을 속여 살해한 곽송령은 의리가 없는 인물로 각인되었습니다. 장작림은 마지막을 각오하고 일전을 벌이려 했습니다.


 그때, 제3의 세력이 움직입니다. 


 일본 관동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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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惡賭鬼 | 작성시간 12.07.10 흠... 관동군이 움직인다.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네요...
    아무튼 인간적인 매력은 장작림이 곽송령보다 앞섰다는건데.. 쩝..
  • 작성자Roiche | 작성시간 12.07.10 장학량 인생은 꼬이고꼬이고꼬이고의 연속 ㅋ
  • 작성자배달민족 | 작성시간 12.07.10 걍 비교하자면 곽송령은 한신이고 장작림은 유방이었다는 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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