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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군벌]최강의 군벌, 만주의 패왕 장작림(26) ─곽송령 부부의 비명횡사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7.11|조회수949 목록 댓글 4





 장작림의 기적같은 한판 승이 벌어지고 있을때.

 12월 24일, 아침이 오자 곽송령은 고급 장령회의를 긴급 소집했습니다. 퇴각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곽송령은 일부 부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겠다고 선언했고, 준비를 마친 후 즉시 떠났습니다. 봉군 지휘관은 즉시 장작림에게 이 사실을 연락해서 곽송령이 달아난 정보를 알렸습니다. 전투는 정지 상태로 돌아섰습니다.


 6만. 혹은 7만의 부대로 위풍당당하게 북벌하던 곽송령의 부대는 지리멸렬하게 흩어졌고, 곽송령은 겨우 200명 남짓한 경호 부대와 함께 탈출했습니다. 그의 부인인 한숙수가 옆을 따르고 있었고, 비서처장 뇨한상, 정무처장 임장민 등이 동행했습니다. 한숙수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경호 부대를 데리고, 빨리 달리는 아라비아 말을 타고 먼저 가시지요."


 곽송령은 부인의 정에 감동하면서 뇨한상 등은 문인이라 말을 탈 줄 모르니 모두 같이 도망가자고했습니다. 본래는 산해관 방면으로 도주하려고 했지만, 봉군 기병이 막고 있는지라 다른곳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주 중에 노새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경호 부대가 뒤를 따랐는데, 워낙 느려서 목적지는 멀기만 했습니다.


 오준승이 흑룡강성에서 데려온 기병 부대는 전투 후에 곽송령군의 패잔병들을 추격, 섬멸하려 이리저리 움직이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제7여단 25단 곽보산이라는 인물이 길을 잘못 들었다가 우연히 이 행렬을 발견하고 맙니다. 결국 전투가 벌어졌지만, 중화학 무기 없는 경호 부대는 상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정무처장 임장민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뇨한상은 도망쳤습니다. 곽송령 부부는 토굴에 숨어서 몸을 피했습니다.


 잠시 후 기병 제7여단장 왕영청이라는 인물이 소식을 듣고 도착했습니다. 상황을 본 그는 곽송령은 이미 도주했겠구나 싶어 곽보산 부대를 풀어 근처를 추적하도록 하고는 자신은 그곳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골 아낙네가 이상한 소리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집 근처에 무를 저장하는 토굴이 있는데, 두 사람이 숨어 있습니다. 남자 한 사람, 여자 한 사람입니다."


 "뭐라고?"


 왕영청은 즉각 병사들을 데리고 토굴 속을 수색했습니다. 곽송령은 어쩔 수 없이 토굴 위로 올라왔습니다. 곽송령 부부가 나오자 왕영청은 경례를 붙이면서 말했습니다.


 "군단장님. 방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그래. 가자……"


 계속 상급자가 나타나서, 잠시 후엔 동북 기병의 사단장 목춘이라는 인물이 도착했습니다. 목춘은 곽송령 부부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 좀 하다가 일단 휴식을 하게 해놓고는 장작림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황 보고를 했습니다. 목춘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장작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목춘이냐? 그만 들어가거라."


 곽송령이 조금만 버텼어도 목춘은 이때 추격을 멈추고 돌아갔을테지만, 이미 곽송령 부부를 붙잡은 목춘은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상장군께 보고 드립니다. 곽송령 부부를 체포했습니다. 현재 제가 잡아다 놓았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정말입니다. 감히 허황된 보고를 하겠습니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장작림은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살려 둘 필요가 없어! 좋아, 잠시 후 다시 이야기해 주겠다."


 조금 고민을 한듯, 다시 전화가 걸려온것은 한시간 쯤 뒤였습니다.


 "목춘이냐? 곽송령이를 죽였느나, 안 죽였느냐?"


 "아직 안 죽였습니다.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이지 않았다면 죽일 필욘 없어. 내가 내일 사람을 보내마. 그리고 너희들에겐 상으로 20만원을 보내 준다. 사람을 보내겠다."


 다음날, 12월 25일 아침 8시 경 장작림의 부관 고금산 장교가 경호원들을 트럭 5대에 나누어 태우고는 자신은 승용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고금산이 목춘에게 말했습니다.


 "형님, 지난밤에는 아무 일 없었지요?"


 "이곳에 이렇게 많은 부대원들이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나? 그래, 상장군꼐서는 뭐라고 하시던가?"


 "아침 일찍 출발할 떄 곽 군단장을 심양으로 보내 심문하겠다고 하시더니 오는 도중에는 또 살려둘 필요가 없다고 전보하시더군요. 형님이 보기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것 같습니까?"


 "자네들이 기왕에 왔으니, 부부를 넘겨주겠네. 알아서들 하시게."


 고금산의 선택에 곽송령 부부의 목숨이 달려있었는데, 고금산은 매몰찬 대답을 했습니다."


 "좋습니다. 우리에게 넘겨주면 3~4리 정도 밖으로 데리고 가 요하 강변에서 총살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수급을 가지고 심양으로 가지요. 어떻습니까? 이렇게 하는게. 아, 그리고 구두 자백은 받아 보셨습니까?"


 "아우님이 한번 물어보시게."


 "좋습니다. 내가 한번 물어보지요. 넘겨줄 준비나 하세요."


 마침 곽송령 부부는 아침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밥 한 그릇에 네가지 반찬이었습니다.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기에 곽송령은 심양에서 사람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 입맛이 나질 않아 밥은 반공기만 먹고 더 먹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고금산이 집 안으로 들어와 곽송령의 앞에 나타났고, 곽송령 부부는 온돌 위에 앉은 채로 그를 맞아들였습니다. 고금산이 물었습니다.


 "군단장님. 이번 일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곽송령이 말했습니다.


 "소수의 독군들이 군사를 몰아 산해관을 넘어 싸우는것에 반대한다. 이것은 동북 인민들을 곤궁에 빠지게 하고 동북 인민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일이다. 동북 삼성은 땅이 넒고 물산이 풍부하다. 만일 입관하여 전쟁을 하지 아니하고 건설에 힘쓴다면 충분히 나라를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상장군께서는 건설에 힘쓰지 않고 병력을 함부로 동원하여 전쟁을 일삼았다. 동북 인민들의 고혈을 짜 입관하여 전쟁을 벌여 지지 기반 쟁탈전만 하였다. 또 소수인의 이익만을 위하여 매년 군사를 동원하고 있다. 나는 일찍이 이에 반대했지만 상장군은 오히려 나에게 욕을 해 댔다. 그래서 나는 거병 후 동북으로 회군하여 상장군의 하야를 요구하고 다시는 입관하지 않고 동북 건설에만 주력하고자 했다."


 미리 준비라도 한듯이 침착한 말이었습니다. 


 "좋습니다. 심양으로 갈 준비를 하시지요."


 고금산은 그리 말하고 물러났지만, 눈치가 나쁜 사람이 아니기에 곽송령은 이제 끝장이라는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종이를 가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궤짝 위에 올려놓은 채로 글씨를 썻습니다.


 ─ 한경(장학량) 아우님.

 우리 부부는 속히 죽기를 원하니 다음 사항에 대하여 선처를 해주기실 바랍니다. 첫째. 이번 거사는 국가와 인민을 위하여 이 형이 모든걸 주장했으며 부하들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둘째, 형의 동산과 부동산은 노목적, 심진영, 장진로 등 3명의 군수 담당관에게 요청하여 채무를 제외한 전부를 중학교에 기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막 세번째를 쓰려고 하는데 고금산이 들어와 더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마당이 되자 기분이 나질 않는지 곽송령도 더 쓰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목춘은 이 서신을 나중에 심양으로 돌아와 장학량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곽송령은 25일 오전 10시 요하의 강변에서 총살되었습니다. 곽송령은 처형 직전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대의를 부르짖고 일어섰으나, 힘에 부쳐 죽음으로 이별하게 되었구나."


 부인 한숙수도 결연하게 말했습니다.


 "남편은 나라를 위하여 죽고, 나는 그 남편을 위하여 죽는다. 우리 부부, 더 이상 여한이 없다."


 곽송령은 42세, 한숙수는 32세였습니다.



 다나카 기이치



 이들의 시체는 차에 태워져 심양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냇가에 던져 버리고는 사흘동안 묻지 않았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동북 기병 제 14사단 참모 겸 작전 과장이었던 방서계라는 인물은 목춘의 명령에 따라 곽송령과 장시간 대담을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방서계는 강무당 출신으로, 강무당 교관이었던 곽송령은 그에게 선생님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방서계는 거병의 원인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곽송령은 평온하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원인이야 많지. 주원인은 양우정 한 사람 때문이지. 나는 장씨 부자에 대해선 악감정은 없어. 지난해 직봉전쟁 승리 후 내가 상장군에게 여러 번 건의했지. 우리는 결코 입관하여 지지 기반 싸움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이야. 동삼성은 지하자원이나 지상자원이 풍부하여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아. 일본의 다나카 기이치는 이토 히로부미의 대륙 정책을 계승하여 그 창끝을 동삼성에 겨누고 있단 말이야. 조선과 대련, 여순 등은 동북 침략의 근거지일세. 우리는 모든 역량을 산해관을 넘는 정책에 쏟고 있는데 일본이 일단 난을 일으키면 동북 삼성은 우리 것이 아니야! 그러면 우리는 분명히 진퇴유곡의 국면에 빠지게 되지. 상장군도 내 말에 수긍하는 눈치였어. 그런데 이틀 후 상장군을 보러 갔을 때 하는 말이 '양 총참의가 그러는데, 자네 말에 동의하질 않았네. 그의 견해가 자네보다는 높지!' 이러질 않는가!"


 곽송령은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 입관하여 싸운 것은 모두 양우정이 주모한 걸세. 양우정은 동삼성 공병창을 장악하고 있으면서 10년간 단 한번도 정산을 하지 않았지. 자기는 무기를 내놓지 않고 전부 외국에서 받은 총과 대포를 사 왔는데 한번 움직일 때마다 몇백만원이 왔다 갔다 했지. 게중에 3할이 양우정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네. 이번에 그가 강소 독판으로 갔는데 작은 장군(장학량)이 먼저 나하고 상의를 한 후 내가 가라고 했는데 내가 가지 않고 양우정이 갔지. 1개월도 안되어 3개 사단이 쫒겨 왔고 강등선도 도망을 나왔네. 이경림, 장종창도 직예 독판, 산동 독판을 맡았지만 탐관오리가 되어 백성들 고혈만 짜내 관내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 두통거리였지. 누가 이익이고, 누가 손해인가? 내가 이번에 일으킨 거사의 주목적은 상장군 주변의 썩은 놈들을 청소하는 것이지, 장씨 부자를 뭘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장씨 부자는, 나는 그들을 아직도 존경하고 있다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니, 그런 이야기는 더 할 필요가 없겠지."


 그리고 일본의 유혹을 물리친 이야기도 했습니다.


 "천진에서 일본 대사가 나를 보러 왔지. 봉천으로 진격하는것 데 도와주겠다고 말이야. 조건은 철로에 몇 개의 조계지를 만들고 길회로의 노선권을 달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어."


 곽송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전 반대, 관내 진입 금지, 일본 제국주의와의 협력 반대를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패망했으니, 최소한 말을 바꾼 적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방성계는 담화 기록을 장학량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장학량은 기록을 가만히 보다가, 곽송령 부부의 체포 과정을 묻고는, 길게 장탄식을 했습니다.


 그는 매우 가슴이 아팠습니다. 곽송령 부부가 붙잡혔다는 소식이 들렸을뗴, 즉각 비서장에게 전보를 쳐 부부를 자신의 사령부로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비서장이 물었습니다.


 "그를 데려와서 어떻게 하실 작정이신지……"


 "곽 형은 인재야! 국가를 위해 나는 그를 외국으로 보내 공부를 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늦어 곽송령은 피살되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장학량은 발을 구르면서 안타까워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아아, 끝났구나! 끝나버렸어!"


 뒤이어 총본부에서 각 부대에 총살된 곽송령 부부의 시체 사진을 보냈는데, 장학량은 보지도 않고 문서에 "불태워 버릴 것"이라고 아주 크게 적어버렸습니다. 그 처참한 장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곽송령은 체포되고 애처로운 말로 장학량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양우정이 이를 중간에서 없애버렸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곽송령의 부인 한숙수는 사상적으로 개화된 인물이었고,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빈민학교를 세우고 마약 퇴치에 앞장섰습니다. 빈곤 인민을 위하여 의복을 만들고 일용품 모집 운동을 했습니다. 부부가 모두 처참하게 죽자 많은 사람들이 애도와 추도회를 열어 그를 위로했습니다. 풍옥상은 태산에 곽송령의 사당까지 세우고, 그의 항일 애국정신을 높이 숭모했습니다.



 곽송령은 죽었지만, 그의 부하들이나 병사들은 많이 있었고 이들은 봉군에 잡혔습니다. 그들의 처리 문제가 이제 논의되었습니다. 오준승이나, 특히 무엇보다 양우정은 매우 분노하고 있었기에 곽송령을 따라 거병을 한 부대의 여단장들을 죽여버리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원로중에 한명인 장작상은 성품이 온화했기에 이에 반대했습니다. 


 "곽송령 놈은 이미 죽었습니다. 기타 장령들은 모두 용서해 줍시다."


 하지만 곽송령을 증오하는 사람들은 그 의견에 반대했고, 두 시간 가까이 장작상은 필사적으로 변호를 했습니다. 최소한 몇놈은 죽여야 분이 풀리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자 장작상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먼저 죽이시게! 나, 다시는 이런 참극을 보고 싶지 않아!"


 이렇게까지 하자 분위기가 좀 가라앉아습니다. 참석자들은 이 문제를 장학량에게 묻자고 권유했고, 장작림이 장학량에게 물어보자 당연히 장학량은 살리자고 했기에 결국 그들은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이 문제를 볼때 흥미로운것은, 장작림이 그의 오랜 형제들이 마음껏 논의하도록 내버려 두고, 격렬해지기까지하는 토론을 지켜만 보고 서로 반박을 하게 하고, 자기는 마지막에 결론대로만 행동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쉬운것은 아닙니다.


 장작림이 보기에, 초유의 역적질이 벌어지면서 봉군의 분위기가 많이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해 연극을 준비합니다. 주연 배우는 본인이었습니다. 그는 곽송령군 평정 기념으로 큰 연회를 개최했고, 많은 고관들과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이를 축하했습니다. 장작림은 잔을 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곽가 놈을 쳐 없앴습니다. 이 못난 놈이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술은 특별히 여기 계신 분들을 위해 놀랐던 가슴을 위로하기 위하여 마련한 것이니 모두 마음껏 드시기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상장군!"


 그렇게 한동안 서로 벌주 놀이도 하면서 마시고 있는데, 연회장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4명의 무장 부관이 큰 가죽 상자 하나를 들고 입장했습니다. 그들은 장작림에게 경례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보고 드립니다, 상장군! 곽송령 부대 수색 중에 이런것이 나왔습니다!"

 
 장작림은 짐짓 모르는척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물건인고?"


 "보고 드립니다! 이 상자 안에는 우리 성안에 있었던 사람들이 몰래 곽가 사통한 편지들이 들어 있습니다!"


 "뭐, 뭐라고!"


 장작림은 얼굴색까지 바꾸고 노기를 띤채 만족스러운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니! 간이 부은 놈들이 아닌가!"


 그러면서 매우 위협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모두 쥐죽은 소리 하나 내질 못했는데, 한참을 그렇게 있던 장작림은 한바탕 곽송령의 욕을 하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됐다, 됐어! 곽가 놈이 이미 죽어 버렸으니, 일은 끝난 거다. 나머지는 더 이상 조사할 필요가 없다. 이 상자를 들고 나가 태워 버려라!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 모두 진탕 먹고 마시자. 오늘 이후부터는 이런 흥 깨는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하지. 자, 자, 마시자!"


 그러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술을 마셨습니다. 물론 이는 연기였지만, 실제 사통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장작림의 이런 태도는 봉군 내부의 결속과 안정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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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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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argon | 작성시간 12.07.12 마지막은 조조의 일화를 흉내낸거군요
  • 작성자나카노 아즈사 | 작성시간 12.07.12 결과적으로 일본의 손아귀에 놀아난 꼴이 되었지요. 장작림이 이권을 위해 자기를 살려준 관동군을 무시할 순 없었을테니...그나저나 신불해님의 필력엔 감탄할 뿐 입니다. 쉽게 싫증내는 제가 최근 들어 야간에 일하고 오전 7시에 퇴근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챙겨보고 잠들거든요. 피곤에 쩔어서 어쩌다 한 번 댓글을 남기지만 정말 잼있네요. 앞으로도 잼있는 이야기들 많이 남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kingrapter21 | 작성시간 12.07.12 마지막은 어디서 자주 들어본 이야기네요ㅋㅋ
  • 작성자▶◀ 치우승천 | 작성시간 12.07.13 아예 대놓고 조조의 일화를 베꼈네요. 하지만 이런 응용력이라니... 센스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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