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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연이 말했다.
“승상이 비록 죽었어도 나는 건재하오. (승상)부의 가까운 관속들은 곧바로 상여를 운구해 되돌아가 장례를 치른다 하더라도 나는 응당 제군을 이끌고 적을 공격해야 하오. 어찌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천하의 일을 폐하라 하시오? 더구나 나 위연이 어떤 사람인데 양의가 부륵(部勒-부서를 정하여 배치함)한 바에 따라 뒤를 끊는 장수가 되겠소!”
그리고는 비의와 함께 떠날 부대와 남을 부대를 나누고, 비의에게 친필로 자신과 함께 연명(連名-이름을 쭉 잇달아 씀)하여 제장들에게 알리도록 했다.
비의가 위연을 속이며 말했다.
“그대를 위해 되돌아가 양장사(楊長史-장사 양의)를 이해시키겠소. 장사는 문리(文吏-문관)라 군사(軍事)에는 어두우니 필시 명을 거스리진 못할 것이오.”
비의가 문을 나가 말을 달려 떠났고 위연이 곧 후회하고 뒤쫓았으나 미치지 못했다.
위연은 사람을 보내 엿보게 했는데 양의 등이 마침내 제갈량의 성규(成規-규범,규정)에 따라 여러 군영들이 차례로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갔다.
위연이 대노하여 양의가 출발하기 전에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앞질러 남쪽으로 돌아가며 지나온 곳의 각도(閣道-잔도)를 불태워서 끊었다. 위연과 양의가 각각 서로 반역했다고 표를 올리니 하루 사이에 우격(羽檄-새의 깃털을 꽂아 긴급함을 표시한 공문)이 번갈아 도착했다. 후주(後主-유선)가 시중 동윤(董允), 유부장사(留府長史) 장완(蔣琬)에게 묻자 장완, 동윤이 모두 양의를 보증하고 위연을 의심했다.
양의 등은 산의 나무를 베어내며 길을 뚫고 밤낮으로 행군하여 또한 위연의 뒤를 따라붙었다. 위연이 먼저 도착해 남곡구(南谷口-포야도 남쪽 입구.즉 포곡)를 점거하고 군사들을 보내 양의 등을 역격(逆擊)하니, 양의 등은 하평(何平-왕평)을 앞에 세워 위연을 막았다.
- 정사 위연전
제갈량의 5차 북벌때 동원 병력이 약 10만.
전투를 치루고 여기저기 작전상 조금씩 흩뜨려 뜨리고, 이후에 난리치는 위연 직속 부하들 등등 이것저것 제외해서 조금씩 뺀다고 해도 7만 ~ 8만 이상.
그런데 위연은 제갈량이 죽고 난 뒤에 양의 때문에 열 받는다고 자기 휘하 부하들 이끌고 먼저 남하한 다음, 주위 잔도는 모조리 다 불태우고 야곡 남쪽 입구를 장악하고 길막 시도.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저 곳은 소수 군대로도 대군을 막을 수 있을만한 지형에 돌아가려면 한참을 먼저 가야함. 그나마도 위연의 반란이 하도 갑작스러워서 돌아가기도 늦어서 갈 수 밖에 없는데 위연이 잔도를 불태우는 바람에 숲의 나무를 베어가면서 없는 길을 만들어서 돌아감.
더군다나 저 후방은 적지인 위나라 영토에 현재 상황은 총사령관이 급사하여 급히 회군하는 상황.
까닥하면 온 나라가 심혈을 기울여 동원한 북벌군 8만 이상이 적지에서 전멸 당하거나 흩어져 위나라에 항복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던...
위연에 대해 동정론이나 "화 날만 했다" 는 식의 말이 많은데, 위연이 막상 죽기 직전에 한 행위가 얼마나 어이없는 행위였는지에 대해선 많이 인식을 못하더군요.
왕평은 낙곡전투도 낙곡전투지만 앞장서서 저걸 초기에 재빨리 진압한 것만으로 나라 한번 구한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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