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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ta di 'il Duce'

작성자bamdori| 작성시간20.07.28| 조회수428| 댓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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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ZEALOT 작성시간20.07.28 사회주의하라고 이름지어준 아들놈이 사회주의자를 때려잡네?!
  • 답댓글 작성자 bamdor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7.28 아부지 광광 우러욧ㅠㅠ
  • 작성자 너클 작성시간20.07.28 저 시대 유럽에서 빨갱이들이 이기는 것도 재밌었을텐데...
  • 답댓글 작성자 bamdor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7.28 그래봐야 최후의 승자는 미국...
  • 답댓글 작성자 너클 작성시간20.07.28 미국도 빨갱이 되면 모르죠
  • 작성자 헨셀 Jung 작성시간20.07.28 재밌어오
  • 답댓글 작성자 bamdor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7.28 감사합니다!
  • 작성자 노스아스터 작성시간20.07.28 이탈리아인:내정은 나쁘지않는데?그러니 머머리 두체는 내정에나 집중해라!나 배고파!
  • 답댓글 작성자 bamdor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7.28 내정은 ‘물리’로 다스리는것!!
  • 작성자 덮어쓰기 작성시간20.07.28 고속도로를 처음 만든 것이 이탈리아였다니 몰랐습니다.

    그나저나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다르게 군수 산업이 아니라 공공, 기간 산업 중심으로 경제를 발전시켜서 전쟁의 필요성이 그리 크지 않아 보이는데,
    패권 쪽만 추구 안 했으면 나름 끝이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네요?

    좋은 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 답댓글 작성자 bamdor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7.28 만일 패도를 걷지 않았다면, 또는 2차대전에 참전하지만 않았다면 무솔리니는 편안하게 눈을 감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사후 대접도 훨 좋았겠죠. 하지만 그랬다면 이탈리아는 지금도 구시대적 권위주의 문화가 잔뜩 남아있었을 겁니다.

    뼛속가지 민주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인 저로서는 머머리 덕에 이탈리아가 갈아엎어져 민주공화국이 된게 아이러니한 다행이라 느끼네요ㅋㅋㅋ
  • 작성자 waterloo 작성시간20.07.28 그의 흑화는 어쩌면 탈모와 관련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킹리적 갓심이 드는군요(...) 이래서 탈모는 위험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bamdor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7.28 이잌ㅋㅋㅋ 풍성좌파와 부족우파입니까ㅋㅋㅋㅋ
  • 작성자 아무것도 모르오 작성시간20.07.28 그냥 내정만하지...
  • 답댓글 작성자 bamdor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7.28 그러기엔 머머리 아죠씨의 야망이... 허세충 찐따에게 내정만 하라는 것은 불가능이와요...
  • 답댓글 작성자 아무것도 모르오 작성시간20.07.28 bamdori 머머리들의 명예를 더럽힌 두체는 죽음뿐
  • 작성자 나스레딘 호자 작성시간20.07.28 무솔리니의 좌파에서 우파로의 돌변은 제가보기에는 1차세계대전의 파업의 영향이있을거같습니다.
    1차대전당시 좌파는 이전쟁은 제국주의 부르주와들의 탐욕스러운 전쟁이라고해서 전쟁반대와 파업으로 군수물자등을 생산하지말자는 운동을 했는데 프랑스와 독일의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지않는다고 선언했던걸로 기억이남니다.
    아마 이와같은 파업을하지않는 모습에 무솔리니는 노동자들이 꼭좌파정책을 지지하는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을수 있다고봄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이상에맞춰서 파시즘을 만들어냈겠죠.
  • 답댓글 작성자 bamdor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7.28 저는 일단 1차적 원인으로 무솔리니 개인의 야망을 뽑고 싶습니다. 당시 무솔리니는 ‘아반티’지의 편집장으로서 엄청난 명성을 누리고 있었고,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높은 위치에 올랐죠. 왜 대개 권력맛을 본 사람들은 흑화하기 쉽잖아요. 여기서 무솔리니가 권력에 대한 의지를 갖기 시작했고, 때마침 터진 전쟁을 기회로 이용해 우파로 전향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좌파의 전쟁 거부 운동이 ‘애국자’였던 무솔리니의 개인적 가치관과 충돌하기도 했고요.
  • 작성자 나스레딘 호자 작성시간20.07.28 파시스트 창당맴버를 보면 다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가 있었죠 보노는 군대자문역활, 비앙키는 파시스트당 무솔리니의 뒤를잇는 2인자 베키는 이태리 식민지청 직원, 발보는 파업이나 농장 좌파를 때려부수는 돌격대
    그나저나 파시스트 창당맴버 보노, 비앙키, 발보, 베키 중에서 일찍 결핵으로 죽은 비앙키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무솔리니를 반대 했네요.
    발보는 리비아에서 아군함정의 오인사격으로 죽고 보노는 무솔리니 탄핵후 독일군에잡혀서 사형.... 베키도 탄핵에 찬성했는데 비행기타고 탈출해서 나중에 전후 그라치아니의 네오파시스트당에 참여하고

  • 답댓글 작성자 bamdor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7.28 특히 이탈로 발보가 좀 많이.. 개기죠ㅋㅋㅋ 오죽하면 발보를 죽인 산 조르지오 함의 대공사격이 두체의 명령이었단 썰까지 나돌았을까요ㅋㅋㅋ

    이번에 자료 찾으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로마 진군 당시 이탈로 발보의 나이가 고작 스물다섯이었더군요. 개인적으로 갈레아초 치아노와 함께 두체 정권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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