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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s5x5의 штрафбат

[사일런트헌터4]LXXXVI. 열번째 초계의 끝 그리고 역사의 물결 위에서

작성자cjs5x5|작성시간21.03.30|조회수79 목록 댓글 6

지난 이야기

 

 

 

 

중국해안에서 홀로 항해하던 1600톤급 상선을 40mm 보포스 기관포로 격침시켰고, 오키나와 서쪽 동중국해 해상에서 초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잊지못할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잃어버린 고향처럼 필리핀 마닐라는 다시 되찾았고, 이오지마에서는 말 그대로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

 

 

오키나와 서쪽 동중국해 해상이었습니다. 드디어 소나로 미상선박을 감지해냈습니다. 좌현 116도.

 

 

소나로 10분뒤에 체크했습니다. 좌현 125도.

 

일단 미상선박의 침로는 동쪽이었습니다.

 

 

드디어 레이더로 감지했습니다. 우현 4도, 거리 22000m.

 

 

10분 간격으로 레이더를 껐다키면서 추적했습니다.

 

우현 70도, 거리 16000m.

 

 

적 콘보이의 침로를 확보했다 판단하고, 추적작도하고 매복지점까지 기동합니다.

 

 

드디어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아. 후방에서 구축함이 탐조등을 키고 저를 찾고 있었습니다. 레이더를 아예 일찍 꺼버렸는데도 걸렸습니다.

 

이제 일본 구축함들도 레이더 감지기뿐만 아니라 레이더를 장비하고 있음을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적 구축함이 저를 완전히 찾아내진 못했습니다. 일치감치 잠항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패시브 소나를 이용해서 콘보이 본대의 대략적인 위치를 추적했습니다. 일단은 우현 75도.

 

 

10분뒤에 체크. 우현 80도.

 

 

드디어 콘보이 본대의 실루엣을 육안으로 포착했습니다.

 

 

드디어 선박을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흘수 8.9m짜리 17000톤급 포경선이었습니다.

 

 

위 스샷의 위쪽에서 방위각을 보실 수 있듯이 콘보이 본대의 위치는 우현 90도였습니다.

 

 

드디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현 96도, 거리 5900m.

 

일치감치 잠항해서 추격해서 적 구축함을 따돌린건 좋았지만, 생각보다 오랫동안 전기모터를 최대출력으로 돌린터라 배터리를 많이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적 포경선 위치. 우현 102도, 거리 5400m.

 

다시 한번 추적작도하고 매복지점까지 기동했습니다.

 

 

그런데 포경선과 포경선을 호위하던 코르벳이 침로를 바꿨습니다.

 

 

그리고 이내 적 구축함이 자함의 위치로 가까이오더니, 결국 잠망경을 발견하고 폭뢰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일단 액티브 소나를 회피하기 위해 전기모터를 비상출력까지 올리고 80m까지 내려갔습니다.

 

 

일단 최초의 폭뢰공격은 여유롭게 회피했습니다.

 

그 뒤로는 폭뢰공격당하지 않고 구축함을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공격포기하고 다음기회를 기약했습니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래된 구닥다리 어선과 예인선을 빼면요.

 

 

다음 기회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압력선체의 손상으로 인해 압축공기가 서서히 새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압축공기가 없으면 잠수함은 물 위로 떠오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주만을 향해 귀항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연재를 진행하면서 임무 도중에 귀항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이제 마리아나 제도가 확보되었으므로 귀항길은 안전했습니다.

 

 

귀항하면서 두가지 뉴스를 전달받았습니다.

 

첫번째는 오키나와 전투도중 미 해군이 처음으로 '자살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 항공기 116척이 격추당하였고 3척의 미 구축함이 격침당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건의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전투중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일본 지휘부는 'Operation Kikusui No.1~10, 菊水作戦, Floating Chrysanthemum, 물위의 국화'이라는 작전명까지 붙였을 정도로 자살공격을 조직적이며 의도적으로 그것도 수차례 지시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Operation_Kikusui#Operation_Kikusui_VI

 

'물 위의 국화'라는 작전명에서 그 당시 일본 지도층의 일그러진 멘탈리티를 엿볼수 있습니다. 여기서 국화는 가마쿠라 시대 사무라이였던 마사시게 쿠스노기가 전투깃발에 사용하던 문장에서 따왔는데, 마사시게 쿠스노기는 일본에서 충성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인물이었습니다.

 

마사시게 쿠스노기는 지지받지 못하던 고 다이고 천황을 위해 가마쿠라 막부에 맞섰고, 1336년 미나토가와 전투에서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인물을 이렇게 표현한다고 합니다.

 

'七生報國, Would that I had seven lives to give for my country!, 국가를 위해서라면 나는 일곱번 목숨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 당시 일본이라는 국가는 자국민들을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이런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Kusunoki_Masashige

-

 

 

두번째 소식은 바로 야마토 전함의 최후였습니다.

 

연합군이 본토침공에 앞서 1945년 4월 1일 오키나와를 침공하자 대본영은 천호작전을 구상하여 이에 대응하고자 하였습니다. 천호작전의 의도는 연합군에 대하여 일본해군의 잔존한 수상함대의 전력을 현시하고, 야마토를 오키나와 해변에 일부로 좌초시켜 불침포대로 삼아 완전히 격파될때까지 싸우게 만드는 것에 있었습니다.

 

야마토는 최대한의 탄약과 편도분량의 연료(현장 지휘관 재량에 의해 좀 더 받음)를 수령받았으며, 1945년 4월 6일 도쿠야마에서 출항하여 9척의 구축함 및 아가노급 순양함 야하기와 함께 '수상특별공격전단'을 편성하여 오키나와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은 감청과 암호해독을 통해 이미 천호작전에 관련된 모든 첩보들을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야마토는 이미 본토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규슈와 시고쿠 사이의 분고해협에서 미 잠수함 Threadfin과 Hackleback에게 접촉당하였습니다. 일단 회피기동하여 공격받진 않았으나 위치는 미국 항모타격전단에게 보고당했습니다.

 

이에 미국 스프루언스 제독은 오키나와 해변을 포격하던 6척의 전함으로 아마토 요격전에 대비하려 했었는데, 마크 밋처 제독의 항공모함들에게 그 역할을 맡겼습니다. 6척의 전함과 7척의 순양함과 21척의 구축함은 혹시모를 만약을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야마토의 운명은 1945년 4월 7일 새벽에 다가왔습니다. 최초의 연합군 항공기는 2기의 수상기이었고 야마토는 주포용 대공포탄인 삼식탄으로 대응하였으나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은 10시에 F6F 헬켓들이 혹시모를 일본 전투기들에 대비하여 제공권을 확보하기위해 작전지역에 나타났으나 그런건 없었으므로 별일없이 다시 돌아갔습니다.

 

낮 12시 30분. 280기의 급강하폭격기들과 뇌격기들이 나타났습니다. 최초로 엔진문제로 뒤쳐졌던 일본 구축함 아사시모가 격침당하였고, 나머지 구축함들은 야마토를 둘러싸고 원형진을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낮 12시 41분 야마토는 최초로 폭탄 3발에 피격당했했고 이때 레이더실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는 미 함재기들에게 일방적으로 난타당했습니다.

 

14시 02분. 뒤늦게나마 이함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야마토의 출력은 10노트까지 떨어졌으며 화재가 극심하여 주 탄약고는 유폭될 위험속에 있었습니다. 함교에서는 탄약고를 침수시켜 유폭을 막아보려 시도했으나 펌프실이 폭격으로 인해 무력화된 상태였습니다.

 

14시 23분. 야마토는 결국 함체가 급격히 기울다가 탄약고 유폭으로 대폭발을 일으켰습니다. 매우 빠르게 침몰하였고 함대 사령관인 해군중장 이토 세이이치을 포함하여 승조원들 3055명에서 3332명이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야마토는 최소한 11발의 어뢰와 6발의 폭탄에 맞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Japanese_battleship_Yamato#Operation_Ten-Go

 

 

그리고...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수면중에 서거하였습니다.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거인 한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 해리 S. 트루먼이 국군통수권자이자 33번째 미합중국 대통령으로써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했습니다.

 

 

오키나와에서는 슬슬 미 해병대의 상륙전이 시작될 듯 합니다.

 

오키나와 이에섬에 상륙준비포격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유럽전선에서는 붉은군대의 기세가 막강합니다.

 

소련군이 체코슬로바키아의 비엔나를 해방시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몰랐을 겁니다.

 

이 사건이 1968년의 봄을 짓밟아 놓을줄은.  

 

 

그렇게 역사의 물결을 타고 저는 모항인 진주만에 거의 다 왔습니다.

 

 

하와이섬이 보이는데 상선도 보였습니다. 한번 봤습니다.

 

 

미국의 상선입니다. 여태껏 일본 상선만 주구장창본터라 매우 생경한 느낌이었습니다.

 

 

야자수가 보입니다. 적어도 조선소에서 압력선체의 빵꾸를 메울때까지는 파인애플을 질리도록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열번쨰 초계임무를 완수하고 귀항하였습니다.

 

8건의 임무중에서 7건을 완수하였고, 1건은 수행중에 선체의 치명적인 이상으로 인하여 중도에 귀항했습니다.

 

총 10010톤의 상선 3척을 격침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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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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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cjs5x5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3.30 정말 끝이 보이는거 같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도중에 죽고 끝나겠지 했는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네요 ㅎㅎ
  • 작성자나아가는자 | 작성시간 21.03.31 ㅎㅎ 잘 버티고 계시네요. 대단하십니다.
  • 답댓글 작성자cjs5x5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3.31 저도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습니다. 하다보니 어떻게 또 됐네요 ㅎㅎ
  • 작성자ZEALOT | 작성시간 21.03.31 밸런스패친가 점점 먹고살기 힘들어져요 ㅋ
  • 답댓글 작성자cjs5x5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3.31 만약 일본 구축함들이 개전초부터 지금같은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면 정말 위협적이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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