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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J.D. 밴스의 전향 1편

작성자미르팡|작성시간24.08.01|조회수293 목록 댓글 3

현재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J.D. 밴스(Vance)는 트럼프가 인기를 끌며 주류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던 2016년에 그를 두고 "미국의 히틀러가 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혹평했던 인물이다. 

 

사람들은 네버-트럼퍼(Never-Trumper,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공화당 지지자)였던 밴스가 몇 년 만에 열성적인 트럼퍼 지지자로 변신해서 그의 부통령 후보까지 되는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공화당 정치인 중에 트럼프를 공격하다가 굴복하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밴스만큼 적극적으로 트럼프를 지지, 옹호하고, 그와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 지독한 주장을 펴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J.D. 밴스는 왜 그렇게 극적인 전향을 했을까?

먼저 약간의 배경을 설명해 보자. 밴스의 책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는 미국 대선이 열리던 2016년에 나와서 왜 일부 미국인들이 트럼프에게 열광하는지를 설명해 줬고, 2020년에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로도 제작해 또 한 번 인기를 끌었다. 

 

제목에 등장하는 힐빌리는 흔히 '외딴 산골에 사는 가난한 백인'을 의미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산골'은 엄밀하게는 미국 동부/중서부에서 남부로 이어지는 애팔래치아산맥과 그 주변 지역이다. 그런데 아래의 두 지도를 보면 알다시피 사람들이 흔히 "애팔래치아"라고 말하는 지역(왼쪽)과 미국의 쇠퇴한 공업지대("러스트 벨트Rust Best")와 빠르게 폐쇄되고 있는 탄광 지대는 많이 겹친다.

 


왼쪽이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애팔래치아 산맥 지역, 오른쪽이 러스트 벨트와 석탄 산지 (이미지 출처: Wikipedia, Britannica)

 


J.D. 밴스는 오하이오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오하이오주는 러스트벨트와 애팔래치아, 양쪽에 문화적으로 모두 걸쳐 있는 곳으로, 20세기 후반부터 공화당과 민주당을 오가는 경합주(swing state)로 알려졌지만, 트럼프의 등장 이후로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기울면서 트럼프의 가장 단단한 지지기반 중 하나로 변신했다.

따라서 밴스의 극적인 변신을 설명하는, 사람들 사이에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이렇다: 밴스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오하이오주에서 공화당 지지자로 성장했지만, 정치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시점에 고향인 오하이오주가 완전히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기 때문에 책을 출간했을 때처럼 네버-트럼퍼로 남아있어서는 절대로 당선될 수 없었다.

 


2016년의 밴스, 2024년의 밴스 (이미지 출처: The Washington Post, Chicago Sun-Times)

 

 

하지만 사람이—그것도 많은 사람이 감탄한 훌륭한 책을 쓸 만큼 지적인 사람이—정치적인 야심만으로 다른 사람인 척할 수 있을까? 

 

저널리스트 카라 스위셔(Kara Swisher)는 트럼프가 J.D.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발표한 직후 나온 팟캐스트에서 어느 순간 트럼프를 대신해 사람들을 미친 듯이 공격하는 개("rabid attack dog")가 되었다면서, "그가 연기를 하는 건지(performative),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바뀐 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게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그는 트럼프 쪽으로 완전히 전향(轉向)한 걸까, 아닐까?

이에 관해 뉴욕타임즈의 에즈라 클라인(Ezara Klein) 기자는 흥미로운 분석을 한다.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인지부조화를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란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불편한 경험"을 말한다. 

 

클라인의 말은 정치인이 속으로 트럼프를 싫어하면서 잠깐 동안 그를 지지하는 척 할 수는 있지만, J.D. 밴스처럼 그렇게 몇 년씩 열렬하게 그를 지지하며 사람들을 공격할 수는 없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밴스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생각을 바꿨다는 얘기다. 그럼 그는 왜, 언제 그렇게 트럼프주의자로 전향하게 되었을까?

J.D. 밴스가 공식적으로 정치에 뛰어들겠다고 한 건 2021년 7월이었고, 이때는 이미 트럼프 지지자들의 지지가 필요한 때였기 때문에 트럼프를 찬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그 시점에 갑자기 180도 방향을 튼 게 아니다. 

 

그가 트럼프 쪽으로 기우는 과정을 시기별로 분석해 놓은 기사가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밴스는 '힐빌리의 노래'를 썼던 시점만 해도 트럼프가 아닌 트럼프 지지자들의 생각과 정서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는 그런 지지자들을 이용하는 트럼프를 "미국의 히틀러," "문화적 헤로인"으로 공격했다.

 


'힐빌리의 노래'는 2016년에 출간되었고, 2020년에 영화화되었다. (이미지 출처: 흐름출판, 넷플릭스)

 


그랬던 J.D. 밴스가 트럼프에 관심을 갖게 된 시점은 트럼프 정권 2년 차인 2018년 즈음이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 동부 켄터키주 사람들이 가진 울분을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하나"라는 말을 한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당시 그의 생각을 바꾸게 된 중요한 사건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때문에 노동자를 구하기 힘들다고 불평하는 호텔 체인의 대표와의 대화였다. 그 기업인은 밴스가 자기 생각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고 한 말이었지만, 밴스는 "그 대표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노동자들의 문제에 더 관심이 있었다."

또 하나의 사건은 트럼프가 지명한 연방 대법관 후보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의 인사청문회였다. J.D. 밴스의 아내 우샤(Usha Vance)는 캐버노 밑에서 재판연구원(law clerk)을 지냈고, 밴스 부부는 민주당 의원들이 캐버노 판사를 강하게 공격, 저지하는 장면을 보면서 캐버노를 임명한 트럼프에 대한 호감이 커졌다고 한다.

그가 트럼프와 트럼프의 정책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19, 2020년이다. 그는 트럼프가 즐겨보는 폭스뉴스의 간판 프로그램인 터커 칼슨(Tucker Carlson) 쇼에 등장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이때부터 밴스는 트럼프를 공격하는 대신 공화당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워싱턴의 보수 잡지에서 개최하는 연례 갈라에 연사로 나서서 트럼프가 대중국 정책과 중동 문제에서 "깜짝 놀랄 성공"을 거두었다고 극찬했다.


벤 샤피로 (이미지 출처: The Ben Shapiro Show)

 


2019년부터 본격화된 그의 보수 매체 출입은 2020년 인기 팟캐스트 벤 샤피로(Ben Shapiro) 쇼에 출연하면서 완성된다. 샤피로는 리버태리언(Libertarian, 자유주의자)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우파 논객으로 보수층에서도 젊은 남성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J.D. 밴스가 출연한 이 에피소드는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데, 샤피로는 도입부에서 밴스를 소개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2016년에 나온 밴스의 책은 평론가와 일반 독자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았는데, 2020년에 나온 영화는 시청자들은 좋아했지만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은 이유가 뭐냐는 것. 그러면서 영화 '힐빌리의 노래'를 비판한 언론사들을 소개하는데 영상 자료에 등장하는 매체들은 가디언, 복스, 애틀랜틱, 뉴요커와 같은 진보적인 "주류(mainstream)" 매체들이다.

샤피로는 팟캐스트에서 2016년에는 진보 쪽 사람들이 유독 이 책을 환영했는데(이건 사실이다), 자기 생각에는 2017년이 되자 이 책을 싫어하기 시작했다면서, 그 이유가 뭔 것 같으냐고 J.D. 밴스에게 묻는다. 밴스의 책은 트럼프 현상이 등장했던 시점에 나와서 애팔래치아 지역의 트럼프 지지자들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책으로 환영받았지만, 정작 트럼프가 당선되어 취임한 후에는 그 책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 밴스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 다른 얘기로 시작한다.

J.D. 밴스는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트럼프 지지자들에 관해 물을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고 한다. 결국 고향의 자기 가족과 친구들이 어떤 사람들이냐고 묻는 건데, 그들은 자기를 보면 마치 제인 구달(Jane Goodall)을 만난 것 같은 호기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진짜로 만나봤냐," "그 사람들은 말을 어떻게 하느냐," "행동은 어떻게 하느냐" 같은 질문을 들으면 마치 제인 구달에게 "침팬지가 어떤 동물이냐"고 묻는 것처럼 자기를 통해 트럼프를 지지하는 지역으로 사파리 여행을 하는 듯 보였단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가 하는 모든 이야기에 트럼프 지지자들에 대한 비판이 깔려있다고 단정하고 있는 듯했다.

 


침팬지 연구 대가 제인 구달 (이미지 출처: janegoodall.org.au)

 


벤 샤피로의 질문, 즉 "왜 사람들이 '힐빌리의 노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선 그들이 저자인 자기의 정치적 성향이 우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건 틀린 말이 아니다. 

 

J.D. 밴스의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이를 가장 반긴 쪽은 트럼프 현상의 본질을 알고 싶어하는 진보 진영이었다. 미국의 진보 쪽에서는 아이비리그를 나온 저자, 즉 자기네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트럼프 지지자를 설명해 주는 책이라며 반겼다. 반면, 보수적인 미국인들, 특히 밴스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켄터키주와 오하이오주를 중심으로 하는 애팔래치아 지역 사람들은 밴스가 자기네 이야기를 진보 쪽 구미에 맞게 왜곡해서 전달했다고 분노했다.

하지만 J.D. 밴스는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변화가 진보 쪽에서 있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캠브리지 어낼리티카와 페이스북을 통해 이뤄진) 러시아의 선거 개입이었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패했을 때만 해도 미국 동부와 서부에 사는 진보적인 미국인들은 가난한 미국 백인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반성하는 분위기였지만, 러시아가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거 패배의 원인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자기 책에 대한 진보 지식인들의 관심도 떨어지게 되었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인종주의자(racist)"라는 주장이 트럼프 당선 이후에 진보 쪽에 퍼졌다는 것이다. J.D. 밴스의 생각에 이 주장은 학계에서 조사 결과를 통해 처음 등장했다가 주류 언론을 통해 확산되었다. 

 

밴스는 학자들이 사용하는 조사 방법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똑같은 질문을 해보면 백인 뿐 아니라, 남미계, 흑인들도 인종주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데 트럼프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고 그들만 인종주의자로 치부하는 게 맞느냐는 얘기다.

J.D. 밴스가 2020년에 했던 주장에는 분명한 구멍이 있지만—트럼프 지지자들은 단순히 설문조사에서만 인종주의적인 의견을 드러낸 게 아니라, 다른 인종 집단과 달리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인종주의를 표출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설득력이 있다. 

 

그가 '힐빌리의 노래'를 쓴 후에 만난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한 분명한 반감이 자라고 있었음은 분명하지만, 2024년 트럼프의 러닝메이트가 된 후에 쏟아내는 악의에 찬 발언과는 완전히 다른, 차분하고 논리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물론 트럼프는 차분하고 논리적인 2020년의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게 아니라, 지독한 발언을 쏟아내는 2024년의 밴스를 선택했다.

트럼프의 낙점을 받기까지 밴스는 더 변해야 했다.

 


2017년 버지니아주에서 남부연합 로버트 E. 리 장군의 동상 제거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KKK. 이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옹호하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활동이 급증했다. (이미지 출처: Times of 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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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클리퍼s | 작성시간 24.08.01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를 잡아족치던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으나 예수님을 만난 후 기독교의 교부가 되었죠
  • 작성자나아가는자 | 작성시간 24.08.01 잘 읽었습니다. 흥미롭네요.
  • 작성자으흐흐 | 작성시간 24.08.01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사상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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