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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계의 숨은 킹메이커, 엄창록과 윤여준

작성자타메를랑|작성시간12.11.17|조회수4,225 목록 댓글 1

아래 글은 정치 평론가이자 자유 저술가인 이동형 씨의 저서 <정치과외 제 1교시>에서 참조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대 선거에서 정치인 곁을 지키며 그들을 코치해 제갈량의 꾀를 내는 사람들은 숱하게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은 김대중의 책사인 엄창록과 한나라당 출신이었던 윤여준이다.

 

김대중은 평생 2만권의 책을 읽었고, 연설문도 자신이 직접 쓸 정도로 지혜에 자신감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조차 딱 한 사람, 바로 엄창록의 말이라면 군말 없이 들었다. 이유는 엄창록이 '선거전의 여우'라고 불릴 정도로 선거의 귀재였기 때문이다.

 

1967년 총선에서 박정희는 공화당과 정보부에 "무슨 일이 있어도 김대중과 김영삼을 반드시 낙선시켜라."는 지령을 내렸다. 그에 따라 공화당과 정보부는 김대중의 지역구인 목포를 특별 지역구로 지목하여, 공화당이 내세운 후보인 김병삼을 당선시키기 위해서 막대한 돈을 앞세운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박정희와 공화당의 전폭적인 지원과 정보부의 대대적인 공작에도 불구하고 김병삼은 김대중과의 선거에서 끝내 패배하고 말았다. 그 원인은 김대중의 참모인 엄창록의 뛰어난 선거 전략 때문이었다.

 

엄창록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선거에서 점조직을 만들어 활용했다. 그리고 요즘 많이 하는 피켓을 이용하는 선거도 엄창록이 처음 도입했다. 1970년 신민당 대통령 경선에서 당선이 확실하던 김영삼을 밀어내고 결국 김대중이 승리하게 만든 인물도 바로 엄창록이었다. 바로 그 때, 엄창록이 만든 점조직이 엄청난 힘을 발휘했는데, 심지어 김영삼의 텃밭이었던 경남 출신 대의원들조차 엄창록의 회유에 넘어가 김대중을 찍었을 정도였다!

 

이런 엄창록이었기에 중앙정보부는 골치를 앓았다. 엄창록 때문에 여당에서 하는 공작은 씨알도 안 먹혔다. 오히려 역공을 받기 일쑤였으니, 중앙정보부는 엄창록을 김대중과 떼어놓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이던 김계원은 그를 회유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으나, 엄창록은 꿋꿋이 김대중 곁을 지켰다. 

 

그러나 박정희의 모사였던 이후락이 정보부장에 임명되자, 엄창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대선을 열흘 앞두고 갑자기 김대중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뒤에 곧바로 중앙정보부는 박빙의 선거판을 뒤엎을 획기적인 작품을 들고 나오니, 바로 그 유명한 지역감정 조장이었다. "호남인이여, 단결하라." "영남에 빼앗긴 대통령 호남인이 찾아오자"라는 플래카드와 전단들이 선거를 앞두고 대대적으로 영남 지역에 살포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엄창록의 작품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엄창록은 "정보부에 회유된 것도 아니고, 그들을 위해 일하지도 않았다."고 강력히 부정했고, 당시 정보부 간부들 역시 "엄창록을 회유하는데는 성공했으나, 활용도는 없었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지역감정 조장정책은 분명히 엄창록의 아이디어였다."는 증언도 있었다.

 

어쨌든 엄창록이 선거판의 여우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대통령인 박정희도 그가 만든 선거 보고서를 보고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고 하고, 김대중은 자서전에서까지 그를 잃은 안타까움을 토로했으니 엄창록이 선거전의 귀재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태우는 엄창록에게 사람을 보내, 어떻게 하면 자신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지를 물어보았다. 이 때, 엄창록은 아래의 말을 남기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모두 나오기로 했으니 끝난 이야기인데, 더 이상 뭘 물어 보는가? 노태우가 당선되는 것은 확실하니, 물러가라."

 

그리고 그의 예언대로 결국 1987년 대선에서는 단일화에 실패한 김대중과 김영삼을 누르고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이상의 엄창록의 이력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제갈량이라고 불렸던 윤여준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 역시 녹록치 않은 귀재이다.

 

윤여준은 대한민국 최고 명문고인 경기고를 졸업했다. 그러나 대학은 SKY가 아닌 단국대에 입학했다. 당시 경기고를 들어가는 수재라면 누구나 서울대나 연세대 및 고려대를 선택하는데, 이상하게도 윤여준은 단국대를 선택했다.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일설에 의하면 윤여준은 건강이 안 좋아서 공부를 할 수가 없어서 대신 독서에 몰두하는 바람에 그리 되었다고 한다. 당시 방대한 독서량이 훗날 그를 정치판의 제갈량으로 만든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윤여준은 단국대를 졸업하고 나서,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하면서 언론계에 발을 내딛는다. 이후 그는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을 거쳐 기자 생활을 하다가, 주 일본 한국대사관의 공보관으로 옮겼고, 이후에 공보비서관을 지내면서 자연스레 여론과 정치를 배워나갔다.

 

그리고 1997년, 윤여준은 이회창 캠프에 합류해 김대중 진영과 대선을 놓고 경쟁했으나, 선거에서는 패배했다. 이 결과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윤여준이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실패했다고 비판하지만, 사실 윤여준은 1997년 대선에서 별로 한 일이 없었다. 오히려 1997년 대선에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회창은 윤여준을 자신의 정무특보로 임명했을 정도로 그를 신임했다.

 

2002년 드디어 윤여준은 한나라당 미디어대책위원회를 맡으며 지략가로서 면모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윤여준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거판을 짜지 못했다. 한나라당 내에서 윤여준을 견제하는 세력들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윤여준이 한나라당 내에서 자주 따돌림을 당했던 이유도 한나라당 및 새누리당 내에서 그를 반대하던 세력들의 견제 때문이었다.

 

결국 윤여준은 2002년 대선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2004년 노무현 탄핵열풍이 거세지면서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하자, 한나라당은 다시 윤여준을 불렀다. 그리하여 윤여준은 한나라당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으며 화려하게 컴백을 하게 되고, 당시 최병렬의 뒤를 이어 다 쓰러져가는 한나라당을 이어받은 박근혜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세요. 핑계도 필요 없고 이해를 구하는 것도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 다음엔 이러지 않겠다, 반성한다고만 말하세요. 그것 말고는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박근혜는 빙긋 웃으면서 "잘됐네요. 어렵지도 않고..."라고 말했다는데, 어쨌든 총선에서 전멸할 것 같았던 한나라당은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윤여준의 충고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도 같고 전략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필자가 다른 책에서도 여러 차례 말했지만, 대한민국 선거판에서 진보 개혁 세력은 절대 보수를 이길 수가 없다. 백 번 선거하면 백 번 다 깨져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수 쪽에서 늘 알아서 삽질을 해주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의 삽질이 없다면 절대 진보 개혁 세력은 승리하지 못한다.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아무 발언도 안 한다. 즉 아무것도 안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삽질을 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선거의 여왕이 되는 것이다.

 

윤여준의 발언도 당시 한나라당 보통 의원이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윤여준은 눈 앞의 사태를 대단히 객관적으로 무섭고 정확하게 판단한다. 단언컨대, 새누리당이나 보수진영에 이런 사람은 없다. 그런 정확한 진단 아래에서 기획과 전략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윤여준의 인터뷰를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이런 사람이 새누리당에서 핵심 직위에 있다면 다음 대선에서는 결코 야당이 이길 수가 없다.

 

또한 딴지일보 총수이자 나꼼수 4인방 중 한 사람인 김어준은 윤여준을 보고 "합리적이고 말이 통하는 보수"라고 했다. 윤여준은 다른 보수 진영 인사들과는 달리, 김대중과 노무현의 공적도 상당 부분 인정하고, 새누리당의 잘못도 굉장히 날카롭게 비판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그가 일본을 방문해서 "나는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공산당 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이런 노무현의 발언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은 강력한 비난과 항의를 하려고 했지만, 윤여준은 다음과 같은 말로 최병렬을 달랬다.

 

"우선 발언의 진의를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일본 공산당이 어떠한지도 자세히 모르지 않는가?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윤여준은 오세훈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에도 "이런 일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짓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했었다. 오세훈을 시장으로 만들어준 인물이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윤여준은 최병렬을 한나라당 대표로 만드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지만, 전면에 나서고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한나라당 내에서 그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늘어갔다. 이런 움직임에 실망한 윤여준은 미련없이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한동안 야인으로 지냈지만, 그의 실력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2006년 지방 선거에서 윤여준은 오세훈의 선거기획위원장이 되어 그를 당선시켰다.

 

이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와 이명박 측이 동시에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윤여준은 모두 거절했다. 그리고 이명박이 당선되자, 윤여준은 이명박에게 날카로운 비판을 퍼부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이명박과 윤여준은 사이가 나빠지고, 윤여준은 한나라당과도 다시 거리가 멀어졌다.

 

윤여준의 특색이 하나 더 있는데, 그는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스타일이다. 지금은 이명박과 사이가 나쁘지만, 만약 이명박이 당선되고 나서 그를 찾아가 좋은 자리에 써주겠다고 했다면, 충분히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윤여준이 지금은 놀랍게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선거 캠프에 합류했다! 문재인 후보가 윤여준이란 인물의 진가를 아는 것일까? 아니면 윤여준에게 또 무슨 놀라운 책략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뭇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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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Magnum force | 작성시간 12.11.1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과연 윤여준씨가 어떤 역할을 할는지 그게 또 궁금해지는 이번 대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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